소설리스트

데드맨31-190화 (190/269)

제190화

영사의 방식 #2

그런 사이다패스와 최형림을 살펴보던 지은재가 문득 말을 꺼냈다.

“그런데 류장천 회장님의 지원을 받는 데 조건이 그 따님과의 약혼이었지요? 그 따님은 어떤가요?”

“무슨 뜻에서 물어보시는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결혼을 해도 무방한 상대냐 이거지요. 혹시 딸이 뭐 하자가 있어서 억지로 떠넘기는 거 아닌가 하고.”

지은재는 그렇게 말하며 힐끗 사이다패스를 돌아보았다.

‘이거 봐라?’

최형림은 지은재가 사이다패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걸 파악하고 황당해했다.

사이다패스는 유명한 연쇄살인마다.

그것도 지금 그녀는 본체가 있는 게 아니다.

그녀에게 힘을 주는 존재와의 이상한 계약으로 그녀는 여기에 있으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그녀가 먹은 음식들이 실제로는 전혀 먹히지 않고 멀쩡히 남아있음으로 알 수 있었다.

최형림의 집에서 그녀가 멋대로 냉장고를 털고 음료나 음식을 먹으면 당장은 먹은 것처럼 보여도 그녀가 가고 난 이후에는 멀쩡히 남아 있곤 했었다.

그게 너무 꺼림칙해서 최형림은 한동안 음식들이 멀쩡히 남아있어도 내다 버리곤 했었는데, 놀랍게도 지은재는 이런 껄끄러운 존재도 여자라고 호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굳이 약혼을 언급하는 건 아무래도 최형림이 인물도 좋고 이 무리를 주도하고 있으니까,

‘이 남자는 약혼자가 있다.’

그 사실을 이성에게 알리기 위해서 일부러 말을 꺼낸 것이다.

‘놀랍군.’

이런 상황에서도 이 모임을 무슨 대학교 동호회나 소모임 같이 생각하는 것에 최형림은 감탄했다.

학교 모임 술자리 등에서 인기 있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 사람은 애인이 있다. 약혼자가 있다. 그렇게 나불거리는 걸 설마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가진 능력에 비해서 사람이 참 모자라는 데? 아깝군.’

최형림은 지은재가 가진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 능력을 직접 컨트롤 할 수 있다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최형림이 지은재의 견제에 그런 생각을 할 때 영사가 대신 답해주었다.

“류하리 아가씨 말입니까? 후후. 물론 미인이지요.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기도 했고. 엄청난 재원입니다.”

영사는 최형림을 부추겼다.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적극적으로 류하리 아가씨에게 어필을 하시지 그래요. 그래서 시현을 괴롭히는 겁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검사 일이 너무 바쁘군요.”

평검사 업무하랴, 이런 범죄조직 운영하랴, 최형림은 하루 24시간도 부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쁜 짓도 제대로 하려면 피곤하다.

이 세상에서 쉬운 일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때 지은재가 나섰다.

“그럼 한동안 저하고 사이다패스 둘이 팀을 짜서 저희들끼리 할 수 있는 커다란 일을 맡겨주시는 게 어때요? 그동안 최 검사님은 좀 쉬시고, 연애도 하시고 그러는 거지요. 연애라고 해도 그게 노는 건 아니잖습니까? 앞으로 정치에 뜻이 있으시다면 유력자들과 잘 지내고 그래야지요. 회장님도 생각이 있어서 먼저 약혼 이야기를 꺼내신 걸 텐데 그것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형림을 배제하고 어떻게든 사이다패스와 엮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일까?

지은재가 꽤 그럴싸한 이야기를 했다.

“그거 괜찮은 이야기군요. 물론 제가 관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최 검사님은 일이 너무 많으시니까요.”

영사가 나섰다.

‘지은재나 사이다패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들인데 영사가 저들을 제어하면 괜찮겠지. 그렇지만 영사 이 인간도 위험한데.’

사이다패스나 지은재와 달리 영사는 유능하고 위험한 인물이었다.

저 악마들, 형언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가까워질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최형림을 배신하고 파멸시킬 수 있는 인물에게 독자적으로 팀을 운영하게 해서 되겠는가?

그러나 또 여기서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해보도록 하지요. 마침 표적들을 많이 뽑아두었으니까 영사 씨가 세부계획을 짜고 진행을 맡아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영사는 기쁜 마음으로 임무를 수락했다.

* * *

“자 그럼 보람찬 일을 해볼까요?”

최형림에게서 지휘권을 이양 받은 영사는 의욕을 내기 시작했다.

“저 이사님. 그런데 뭘 하시려는 겁니까?”

“성취 리스트 아십니까?”

“성취가 그 성접대하고 뇌물먹이고 한 녀석들 말인가요?”

“네. 그게 말하자면 더러운 권력자들의 커넥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이들을 처단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사이다패스는 뻔뻔한 소리를 하는 영사를 보며 코웃음 쳤다.

영사는 폭력배들이나 사기꾼들, 각종 범죄자들과 커넥션이 있으며 본인 또한 범죄자였다.

그런데 남들을 이렇게 쉽게 비난할 수 있다니.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래서?”

“성취 리스트만으로는 언젠가는 다 죽여 없애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여기서 새로이, 계속해서 리스트 업을 하지요. 정보를 뽑아내서 죽일만한 놈들을 더욱 더 많이 찾아내자는 겁니다.”

“의욕적이네? 하지만 뭐 좋아 그건.”

그때 지은재가 손을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저기. 이사님. 그게. 혹시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경우도 처단할 수 있을까요?”

“너무 개인적인 일을 가지고 처벌하면 우리들의 신변이 노출되니까 가급적 삼가고 싶은데 누굽니까?”

“저희 아버지에게 살인을 청부한 이들을 찾고 싶은데요. 가급적 찾아서 처벌했으면 합니다.”

“아 그건 너무 개인적이군요. 기각합니다.”

영사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기실 지은재가 찾고 있는 인물은 바로 영사였지만 영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정도로 동요할 인물도 아니고.

“그, 그런가요? 역시? 음 하지만 그럼 개인적인 원한은 대체 언제쯤에야 갚을 수 있을 까요?”

“됐고, 팍팍 죽이자고. 팍팍 죽이다 보면 그런 개인사에 관련된 이가 섞여 들어가도 모를 거 아냐? 경찰과 검찰이 혼쭐이 나도록 죽여대면 되겠지.”

사이다패스는 눈을 빛냈다.

* * *

“저기! 실례합니다!”

경찰들이 지나가는 여성을 불러 세웠다.

여성은 머리에 헤드폰을 쓰고 손에는 커다란 집음기 같은 것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주로 버드워칭, 야생 산새들을 찾는데 쓰는 장비 같지만 지금 그녀가 움직이고 있는 곳은 도심 한복판이다. 사람들의 사생활을 무단으로 침해할 소지가 있다.

“실례지만 신분증 좀 보여주실까요?”

“아 수고가 많군요.”

여성은 경찰들이 불러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짜증내거나 동요하는 모습 없이 신분증을 제시했다.

놀랍게도 경찰신분증 이었다.

“마포경찰서 류하리 경위입니다. 죄송해요. 일반인들 시선은 피하고 있었는데 경찰은 무의식중에. 경계하질 않아서.”

“아 류하리 경위님이시군요.”

“어쩐 일로?”

“그게. 하하하. 중요한 수배자가 있어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헤드폰을 뺐다.

헤드폰 너머에서는 불륜 남녀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음.”

“괜찮으십니까?”

경찰과 류하리가 있는 곳은 서울 도심 한복판, 모텔거리.

러브호텔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 * *

“당신 때문에 완전히 개망신을 당했잖아요!”

류하리가 시현에게 분개했다.

“제 일을 도와주시면 첩보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동의한 사항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설마 꽃다운 아가씨에게 불륜 도청을 시키다니.”

“그 시간에는 경찰들이 순찰을 돌거든요.”

“아 그럼 걸릴 걸 알고 절 보낸 거군요.”

“네. 당연하지요. 류 경위님은 경찰이니 걸려도 잘 얼버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제가 했지요.”

“아 네….”

류하리는 어이없어하면서 녹음된 메모리카드를 시현에게 건네주었다.

“자. 거래해야죠? 거래?”

“네. 보이스피싱 총책인 김장령은 지금 애인 집에 숨어있습니다. 대림동 유토피아 오피스텔이지요.”

“재주도 좋아.”

류하리는 즉시 정보가 튀어나오는 시현에게 놀라워했다.

“부끄럽지만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요. 생각나는 인물들 상당수에게 태그를 박아두고 종종 그들을 감시하죠. 그러면 재밌는 정보가 많이 나오더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류하리가 내민 메모리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배고프지 않아요? 뭔가 제가 열심히 뛰어다니고 수치도 당했으니 이 정보만으로는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식사라도 사는 게 어때요?”

“식사 말입니까?”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류하리의 전화기가 울렸다.

최형림이었다.

“아. 네. 최 선배님?”

류하리가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최형림이 웃음을 터뜨렸다.

[선배님은 너무한 발언이군요. 류 경위님. 어쨌건 형식상 약혼자 아닙니까?]

“아, 그, 그렇지요. 그럼 저기 뭐라고 불러야?”

[선배님이라고 부르세요. 계속 상호 존대하는 게 낫겠지요.]

“아, 아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류 경위님. 내일 저녁 시간 되십니까?]

“내일 저녁이요?”

[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눠보지요. 혹시 괜찮다면 오늘도 좋고요.]

“어, 그, 그게….”

류하리는 난감해하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이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오늘 뵙지 그래요? 중대한 일인 것 같은데. 아마 상대도 오늘 보자고 하고 싶은데 오늘 일정이 비어있는지 어떤지 알지 못하니까 내일 보자고 하면서 필요하다면 오늘로 앞당길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흠. 옆에 누가 있나요?]

“예. 그, 그게 지금 일하는 중이라서요. 저도 준비 좀 해야 하니까 내일 봬요.”

[알겠습니다. 그럼 약속장소는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흐음. 최형림 검사입니까? 류 경위님. 저희가 성취의 대여금고를 조사할 때 검찰 측에서 바로 대여금고 위치를 확인했었다는 거 아십니까? 최 검사가 사이다패스의 협력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그, 그건 저기 그때 성취가 위험한 상황이어서 특별대책을 강구중이었다고 하잖아요.”

공식적으로 성취의 대여금고 조사 사건은 검찰이 성취의 경호와 안전을 위해 조사했었다.

그렇게 되어 있었다.

즉 사이다패스의 협력자가 검찰에서 들러붙어서 수사를 지휘한 게 아니다.

그런 입장이었다.

“흠.”

그리고 시현도 심증만 갈 뿐 딱히 최형림이 사이다패스의 협력자라는 증거는 대지 못하고 있었다.

‘미카엘과 있었던 것만으로도 98%정도는 확실하지만. 미카엘이 다른 검사들도 접대하고 있으니….’

“최형림 선배가 많이 싫은가 보군요.”

“네 좋아하진 않습니다.”

“아하하. 곤란하네요. 그거.”

“그럼 저녁 식사하러 가실까요?”

“네?”

류하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밥을 사달라고 우기긴 했지만 시현이 정말 밥을 사려고 할 줄이야.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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