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영사의 방식 #11
“뭐야? 벌써 돌아왔나? 이 여편네가 미쳤나?”
추정훈은 아내가 돌아왔겠거니 하고 별 생각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놀랍게도 경찰과 그의 어머니 류화영이었다.
“어?”
“추정훈 씨 되시지요. 경찰입니다.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젠장. 장난 해?! 엄마! 이게 뭐야?”
추정훈은 당황해서 자신의 모친, 류화영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류화영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하다.
그 전까지 류화영은 추정훈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 좀 한기가 느껴지는 시선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게 여기던 새끼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가 어느새 자라서 어린 시절의 귀여움을 잃었을 때, 그래서 마음이 떠난 사람 같다.
“정훈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크게 되진 않을 거야.”
“아니 엄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영웅이라고 했지? 그 아이는 안심해라. 내가 맡아서 잘 키울게.”
“어? 엄마가 어떻게 그 애를 알고 있어?!”
추정훈은 깜짝 놀랐다.
영웅이라면… 추정훈의 사생아다.
아내 외에 따로 만나고 집도 얻어준 여자와의 사이에서 생긴 자식으로 집안에는 비밀로 하고 따로 키우고 있던 자식의 이름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럼. 추정훈 씨. 살인 교사 혐의로 서까지 동행 부탁드립니다만. 아 그리고 수색영장도 나와 있습니다.”
경찰들은 혹시 추정훈이 난동을 부릴까 걱정하면서 집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컴퓨터도 뜯어내기 시작했다.
* * *
성신아는 갑자기 급반전된 일에 당황하고 있었다.
‘이 경우 물어보려면 그 남자에게 물어봐야 겠지?’
성신아는 시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마침 근처에 있으니 제가 만나러 가지요.’
그렇게 말한 시현은 과연 전화를 끊자마자 2분도 채 되지 않아서 성신아의 앞에 나타났다.
“으와. 대체 무슨 일이죠. 이건?”
류화영이 수사에 적극 협조하면서 추정훈이 경찰을 위협하는 데 사용했던 로펌과의 계약도 해지되었고 가택수사에도 호의적으로 문을 열어주어 경찰들은 손쉽게 추정훈의 자택에서 마약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내다 버린 것 같지 않은가?
분명히 이전 까지는 법이고 뭐고 상관없이 아들을 싸고돌던 류화영이 어째서 이렇게 바뀐 걸까?
시현이 그에 대해 답했다.
“류화영 씨에게 추정훈을 잡는데 협력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할망구가 자기 자식을 잡는데 협력한다고요? 왜요?”
“류화영 씨는 자기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지요. 어찌나 사랑하는 지 살인을 저지르건 뭘 하건 싸고 돌 정도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자식을 키우는 데 자기 시간을 들이진 않았습니다. 애가 어릴 때도 집에서 아이를 돌보거나 시간을 함께 하기보다는 교회에 나가서 그 커뮤니티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데 시간을 보냈지요.”
“...아, 그런 사람?”
성신아의 삶이 그렇게 긴 것은 아니지만 그녀도 자신의 일천한 인생경험 속에서 흔하게 보던 타입의 인간이었다.
“네. 결국 그녀의 자식사랑은 가문과 혈통을 계승할 분신을 사랑하는 거지요. 아들이기 때문에 추정훈을 사랑하는 거지 그 자리에 추정훈 아닌 다른 것이 들어가 있어도 상관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추정훈을 대신해서 그녀의 이기심을 충족시켜줄 대상이 생기면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추정훈을 대신할 수 있는 대상은 뭔가요?”
“추정훈의 사생아입니다. 조사해보니까 추정훈이 혼외 사생아를 두고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더군요. 그 사생아의 양육권을 찾아주겠다고 하니 류화영 씨가 기꺼이 계약에 응하더군요.”
“그렇게 빨리요?”
“네. 류화영도 자기 아들이 마약에 찌들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야 외동아들이니까 그냥 내버려 뒀겠지만 가문을 계승할 수 있는 손자가 있으면 마약에 찌들고 여기저기 무능하다는 게 들통 난 아들보다는 손자에게 기대를 하기 마련이지요. 오히려 이 경우 아들을 적극적으로 감옥에 보내버리는 게 손주에 대한 영향력을 더 강화할 수 있어서 좋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가문과 핏줄을 계승할 대상이 생기자마자 기꺼이 이전까지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워오던 자식을 내다 버렸다.
일견 극성으로 보이던 류화영의 자식사랑에 그런 이면이 있었다는 걸 들은 성신아는 혀를 찼다.
“으음. 부잣집 자식이란. 꼴좋다고 생각되면서도 뭔가 좀 혐오스럽네요. 크리피하다고 해야 하나? 사람이라기보다는 닭 뼈에 들끓는 지네 떼를 보는 기분이….”
그렇게 말하는 시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문제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힘을 빌려선 안 될 상대에게 힘을 빌리고 말았군요.”
“네? 저요?”
“아뇨. 성 경위님은 솔직히 별로 도움이 안 되다.”
“그렇죠? 아하하하. 가 아니라 너무 말이 심한 거 아니에요?”
“후우. 그러게요. 이거 엄한 놈에게 걸려서 괜히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요.”
시현은 과연 영사와의 거래를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영사 같은 존재와의 계약은 무시한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 *
서울 서부지검의 앞은 차가 밀려 있었다.
비가 내리면서 거리에 차들이 유독 많다. 그 앞의 카페에서 최형림은 예상외의 인물과 만나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였다.
“당신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무슨 일입니까?”
“너무 그러지 말라고. 지금 나는 그저 좀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일 뿐이잖아.”
“그것도 꽤 골치 아픕니다. 아무래도 제 직장 근처의 카페라서 사람들이 다들 알아보거든요.”
게다가 최형림은 이미 몇 차례, 사이다패스 대책 본부의 브리핑 등에서 전국적으로 얼굴을 팔았다.
법무부의 형사 과장이자 사이다패스 수사본부장인 천용덕 검사가 최형림을 적극적으로 프레스센터에 보내 기자들을 상대하게 했던 것이다.
“영사 그 작자 말야. 날 잘라내고 싶어 하지?”
“놀랍군요….”
“아니라고 말하면 나도 놀랄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당신이 그런 걸 신경 쓴다는 게 놀랍군요. 언제든지 저와 갈라서서 떠날 준비 되어 있던 것 아니었습니까?”
최형림이 그걸 물어보자 그녀가 끄응 하고 머리를 숙였다.
원래는 그녀도 그랬으리라. 하지만 당장 그녀는 성취 리스트라던가 이번에 얻은 로비스트 리스트를 쓸 수 없었다.
그 명단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누군지 사진이나 주소 구하는 것부터가 그녀에게는 아주 요원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검사인 최형림은 간단하게 그들의 주소, 사진, 각종 특기 자료들, 의료기록 까지 쉽게 구할 수 있다.
최형림의 정보력에 기댄 그녀는 확실히 말해서 편리함에 길들여져 있었다.
게다가 영사는 그렇다 쳐도 최형림은 그녀에게 꽤나 호의적이라는 게 이번 충돌에서 밝혀지지 않았던가?
‘굿 캅, 배드 캅 전략일지도 모르지만…. 그걸 그 단시간에 짜고 했다면 대단한 거지.’
최형림과 영사가 서로 짜고서 영사는 사이다패스를 공격하고 최형림은 옹호함으로서 그녀의 심리를 조작하려는 시도이지 않을까?
그런 의심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영사와 사이다패스의 격돌은 다분히 우발적, 그 짧은 사이에 서로 내통해서 ‘굿 캅, 배드 캅.’ 전략을 펼쳤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당신을 쳐내는 건, 제 목적이 달성되고 난 이후가 될 겁니다. 아니면 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당신의 희생이 필요해지거나요.”
“전혀 안심할 요소가 아닌데.”
사이다패스도 최형림의 목적을 눈치 채고 있었다.
치형림은 자신의 아버지 한영그룹 최중선 회장을 자신의 손으로 꺾고 싶어 한다.
일개 검사로는 어림도 없는 일, 정계에 진출해도 상당한 거물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단시간 안에 그런 거물이 되려면 상당히 파격적인 업적이 필요하다.
“지금 당신을 잡는다고 해서 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직 더 일 해주셔야 합니다.”
“그건… 좀 안심이 되는 군.”
지금 사이다패스를 잡았다고 해서 최형림이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포석을 잔뜩 깔아두고 사이다패스가 좀 더 확실한 사회문제가 되고 난 뒤에나 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말인데. 영사 그 작자는 지금 뭘 하고 있는 지 알아?”
“곧 올 겁니다.”
“아 여기서 만나기로 했나? 흥. 너무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거 아냐? 그 작자를 믿어?”
“당연히 믿지는 않지요. 하지만 쓸모 많은 사람입니다. 지금도….”
“지금도?”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최형림은 실소를 머금었다.
영사가 사이다패스를 자극해 준 덕분에 놀랍게도 지금 그녀는 영사에 대항해서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형림 입장에서는 정말 형편 좋은 일이다.
너무 좋아서 두려울 정도다.
‘영사 이 작자의 수완이 대체 어디까지지? 이래서야….’
과거 중국에서 내시들이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며 권력을 장악하고 휘두르던 게 왜 그런지 이해가 간다.
이렇게 입안의 혀처럼 모든 일을 형편 좋게 처리해주는데 그 편리함에 중독되지 말라는 게 외려 무리가 아닐까?
‘역시 데드맨의 스승이라고 할 만 하군. 정신 차리고 있지 않으면 나도 그대로 집어삼켜지겠어.’
최형림은 이번 사건으로 영사를 더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 * *
시현은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그가 태그를 박아둔 무수한 점들이 명멸 한다.
그 중 하나, 류하리에게 박아둔 태그가 저 앞에 있었다.
-타다다닥.
타자기가 울렸다.
[그녀도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비록 그녀는 더 이상 데드맨이 아니고 당신이 알던 그녀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취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그녀가 뭘 좋아하는 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금 그녀를 손에 넣어보는 건 어떻습니까?]
시현은 자신을 유혹하는 타자기를 노려보았다.
“영사를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또 이용할 때는 잘도 이용하는 군.”
[제가 이용한 게 아닙니다. 그가 스스로 행한 것이지요.]
“.........”
[그냥 포기하고 수명을 받는 대로 쓰세요.]
현재 시현은 계약에서 승리해 정산 받은 수명을 류하리에게 적립하고 자신의 몫은 31일만을 남기고 있었다.
그렇게 적립된 류하리의 수명이 인간의 그것을 넘어가게 되면 그것도 또한 악마의 패배가 될 것이다.
악마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서는 안 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으니까. 류하리가 혼자 200살 300살 그렇게 오래 살면 곤란하겠지.
즉 시현은 악마가 더 이상 계약자를 구해다 주지 못할 때, 그리고 류하리가 정상인 이상의 수명으로 언론과 사회의 이목을 끌게 될 때 승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라면 모를까 후자의 승리조건은 그것은 시현이 매 순간순간 악마와 자신의 영혼을 건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앞으로 못해도 50년 이상 계속 승리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매 순간순간 자신의 영혼을 건 싸움을 하면서 말이다.
악마는 그러지 말고 굴복하라고, 시현을 회유하고 있었다.
[당신과 그녀의 목숨을 벌면서 저에 대한 대항의식을 버리고 그냥 적립하는 것 없이 남의 수명을 빼앗아서 사세요. 당신의 능력이라면 죽을 일 따위는 없지 않을 것 아닙니까? 애써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데 왜 사랑하는 여인도 손에 넣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겁니까?]
“날 코찔찔이 애로 보는 군.”
시현은 코웃음 쳤다.
[그녀를 정말 타인에게 빼앗겨도 좋은 겁니까? 당신은 그녀를 위해서 데드맨 계약을 받아들였잖습니까. 자신이 손에 넣지도 못할 여자를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희생하다니 이 무슨 지난 세기에나 유행할 법한 순애보입니까?]
“야. 이 자식. 날 설득할 생각 따윈 없지? 그냥 날 고통 받게 하고 싶어서 류하리를 언급하는 거 아냐?”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서 설득하는 시늉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저 시현을 조롱하고 고통주기 위해서, 그가 번뇌와 고통에 몸부림치길 바라고 류하리를 들먹거리는 것이다.
“타자기라서 다행이야. 종이를 빼면 더 이상 개소리를 내뱉질 못하니까.”
[아….]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가 뭐라고 하건 간에 종이를 쓱 타자기에서 빼버렸다.
“젠장.”
시현은 다시 거울로 가서 자신의 머리 위 숫자를 확인해보았다.
그의 수명은 다시금 31일이 남아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