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잃어버린 것 #3
다행인 것은 경찰의 직업윤리를 지키지 못하는 경찰들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다는 점이다.
‘뇌물을 받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일을 대충 처리해서 결국 보호를 요청한 시민이 범죄자에게 살해당하게 방치하거나 하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이지 않은가! 아 아니 하지만 살인범을 묵과하는 것도 꽤 쎄구나.’
사실 직업윤리라는 건 말은 쉽게 해도 지키기 쉽지 않은 것이다.
변호사, 성직자, 검사는 물론 다른 모든 이들도 직업윤리라는 점에서 100% 성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 걸 감안해볼 때 자신의 이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도덕심 때문에 경찰의 직업윤리를 깨는 류하리는 오히려 깨끗하다고 할 수 있었다.
시현은 류하리가 두루뭉슬하게 말하는 걸 듣고 추리해보았다.
“재벌 오너들의 나이를 생각할 때 검사로서 재벌들을 단죄하려면 시간이 많이 부족했겠지요. 재벌을 수사하려면 평검사 신분으로는 어림도 없을테니까. 승진을 서둘렀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공을 세운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공직사회에서 승진 속도는 정해져 있죠. 아마 최형림씨가 부장이 될 때 쯤에는 재벌 오너들은 죄다 자연사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시현은 최형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정계진출을 서두르는 겁니까?”
“놀랍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요? 아 혹시 과거의 최형림 선배를 알고 있어서?”
류하리는 시현의 추리력(?)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눈 앞에서 시현이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해서 순수하게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자세히 알진 않고 있습니다.”
“미카엘이 보여준 과거에서 최형림 선배에게 의뢰를 받았던데 그건 어떤 의뢰였나요? 설마 기억이 안난다고 잡아떼진 않겠지요?”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게된 이들에게 집단 괴롭힘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집단 괴롭힘을 당했어요?”
“당시의 최형림 씨는 지금처럼 뭐랄까? 유능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었지요.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
“설령 집안 문제를 눈치채고 있다 하더라도 고작해야 탐정 따위가 한영건설그룹을 상대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을리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의뢰로 집안 문제를 들고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인터넷 커뮤니티 사건은? 어떻게 해결했죠?”
“상대를 특정해서 약점을 역으로 캐냈지요.”
“약점?”
“네. 상대는 40대 후반 무직에 보이스피싱 조직에 걸려서 약점 영상을 찍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40대 후반 무직 남성이 당시 고교생이던 최형림과 죽자살자 인터넷에서 싸우고 괴롭힘을 주도했다는 소리가 아닌가.
류하리는 상대의 한심함에 놀라워했다.
“그래서요?”
“그 영상을 구한 뒤 그걸 자택 근처 맞은편 아파트 벽면에 프로젝터로 밤에 쏴줬습니다.”
“와.”
보이스피싱 조직에 의한 약점 영상이라면 아마도 자위행위 영상일 것이다.
그게 집 근처 아파트 벽면에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프로젝터로 쏘아진다고?
상대가 한심한 인간이긴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자살할 것 같은데?
류하리는 시현이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요? 그 사람은 영상이 노출되어서 자살이라도 했나요?”
“물론 실제로 완전히 틀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그 동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만 알 수 있도록 얼굴을 모자이크 해두고 일이 막 시작되기 전에 정지시켜놨지요. 그 후 성심성의를 담아 협상을 했더니 모든 게 술술 잘 풀리더군요.”
“그야.”
“협박은 총을 쏘기 전에 하는 거지요. 영상을 틀어버리면 이미 상대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넣은 뒤인데 그럴바엔 협박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이 할 짓인가요? 차라리 죽이지 그게 뭐에요? 너무 잔인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는 류하리가 한 짓이지만 시현은 그렇게 말했다.
과거의 류하리에 대해서 지금의 류하리에게 말하는 건 싫다.
지금의 류하리는 과거의 그녀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보다 확실히 해두고 싶다.
그렇지 않고 지금의 류하리에게 들러붙으면 잃어버렸던 걸 추억할 수도 없을 것 같아서.
‘뭐 계속 내 눈앞에서 그녀의 숨결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만.’
류화영의 의뢰 때는 마음이 들떠버려서 그만 영사에게 도움을 받는 추태를 벌이고 말았다.
“그럼 과거에서 정보를 얻은 것도 아니라면 최형림 선배에 대한 건 온전히 추리로만 알았다는 거네요?”
“대단한 추리랄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정계진출을 위해서 류장천 회장님이 당신과 그를 약혼시킨 거 아닙니까? 정계진출을 생각하는 건 확실하니까 그의 사정과 정계진출을 짜맞춰 보면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도 초선의원인데 과연 가능할 까요?”
“검사 출신이니 초선이래도 법사위에 위촉될 가능성이 높죠. 법사위 의원이라면 대기업 회장도 충분히 엮어 넣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당에서는 별로 원하지 않겠지만… ”
검사를 죽여대는 사이다패스의 소행 때문에 최형림이 정계에 진출했다고 해서 선배 검사들이 ‘저 새끼, 까분다. 우리도 못하는 짓을?!’ 하며 갈구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류 경위님이 살아 돌아온 걸 보면 최형림과 손을 잡기로 했나요?”
“그럴리가요. 그냥 묵과는 하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살려서 보내줬다?”
“아마 최형림 선배는 그 자리에서 날 죽이진 않겠지요. 돌아가는 길에서 습격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오지랖 넓은 탐정님이 날 미행하면서 지켜준 것 같은데요?”
“…….”
사실이다.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가 준비해준 새 계약자에 대한 자료를 준비하다가 류하리가 최형림을 만나러 가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미행했고 그녀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최형림이 류하리를 직접 죽이려 하지 않더라도 영사의 부하들이나 사이다패스가 류하리를 살려둘 이유가 없으니까.
뭐 영사의 경우 류하리를 죽이진 않겠지만 그녀를 미끼로 시현을 낚고 싶어하는 악마들에게 협력하려 할 것이다.
‘어느 쪽이건 간에 걱정되어서 오긴 했지.’
그런데 류하리가 그걸 언급하다니?
“갈 때는 별 생각없이 갔었군요? 그러다가 나중에 머리가 식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고 또 왜 자신이 무사할 수 있었는지도….”
“그야 이 시간에 전화했는데 바로 집앞에 있었으면 뻔하지 않나요? 아무리 바보라도 알아챌 거에요. 그러면.”
“그걸 아셨다면 다음부터는 좀 조심하시지요. 최형림은 당신을 죽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붙어있는 이들은 다릅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 앞에선 여유를 부리고 있지만 혼자인 몸이라서….”
언제까지고 너만을 지켜줄 수는 없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그럼 차도 잘 마셨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밤은 안전할 것 같군요.”
“그래요?”
“네 새로 의뢰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해서.”
보통 탐정이라면 의뢰를 받고 나서 일에 착수할 텐데 시현은 의뢰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는 건 아마도 타자기가 정해준 다음 계약자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사람은 한달 단위로 무조건 계약을 처리해야 하지?’
수명이 걸린 일을 처리하면서 류하리를 지켜주는 것 까지 하려면 확실히 몸뚱아리 하나로는 부족하다.
류하리는 그런 시현의 말을 듣고 새삼스럽게 자신이 경솔했음을 깨달았다.
“알겠어요. 주의하도록 하지요.”
“네 그럼.”
“…아 저기.”
“네?”
“늦은 시각인데 조심해서 가라고요.”
“하하하.”
시현은 불사신인 자신을 걱정하는 류하리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녀의 집을 뒤로 했다.
* * *
권성현은 강도, 사기, 절도, 강간등의 화려한 전과를 가지고 있는 전과범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시장통에서 잃어버린 후 사랑원이라는 유사 복지시설에서 자라났다.
‘사랑원’.
그곳에서의 기억은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였다.
원장은 아무런 관련 학위나 교육, 훈련이 없이 해병대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정부와 사회복지 재단, 종교단체의 기부금을 받아 횡령하고 아이들에게는 거의 음식 쓰레기에 가까운 것들을 주곤 했었다.
사랑원의 아이들은 질 나쁜 음식을 먹고 헌옷 수거장에서 수거했음이 분명한 허름한 피복을 돌려가며 입으면서 살아야 했다.
먹고 입는 것 만이 아니라 생활 또한 최악이었다.
아이들은 그 나이에 울 수도 없었고 아침마다 알통 구보를 해야 했으며 정해진 입소 연차에 따라 서열을 나누어 서로서로를 매질해야 했다.
그리고 원장은 아이들을 자신의 수익사업에 노동력으로 투입시켰다.
아이들은 피복 공장에서 가방을 만드는 작업에 투입되었으며 최저 임금 이하의 대접을 받고 매서운 매질과 감금에 휘둘리며 노예처럼 살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장래를 위한 준비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학업 성취도도 엉망진창에 강압적인 사랑원 커뮤니티 내에서 자란 이들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원의 노예 울타리 안으로 스스로 기어들어오거나 아니면 사랑원 밖에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권성현은 후자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우연히 TV방송을 보게 되었다.
-사랑으로 30년, 20명 다둥이 아빠 조철진.
사랑원 원장을 고결한 희생자로 탈바꿈시켜주는 말도 안되는 방송프로그램이었다.
그런 방송프로그램을 본 순간 권성현은 분노로 이성을 잃어버렸다.
자신이 아직도 눈을 뜨고 있는데, 이런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다니?
하지만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그 진실을 알 수 있을리 없다.
그들은 그저 ‘아 저런 훌륭한 사람이 있구나.’ 하고 화면 하단으로 나오는 후원계좌에 아무생각없이 돈을 보내겠지.
여기서 권성현이 나서서 어떻게든 이걸 막고자 아우성쳐봤자 성자라고 방송에 나온 사람과 성폭행 전과가 있는 그중 누구 말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지는 안봐도 뻔하다.
분노한 그는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를 떠올렸다.
사이다패스라면 저 사이비 위선자를 처단해주지 않을까?
그러나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하는 곳, 다크 웹에 들어가는데는 많은 컴퓨터 지식이 필요했다.
컴맹에 가까운 권성현은 자력으로 다크웹에 접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조력을 구하던 와중에 그의 정체가 까발려 졌다.
-야. 저새끼 저거 강간 전과 있네?
-뭐야? 자기도 범죄자면서 원장 죽여달라는 거야?
-거기서 거기인 놈이잖아?
-와 강도랑 성폭행 전과, 그런데 벌써 사회에 나온게 말이 되냐?
-이새끼 부터 죽여야 되는 거 아님?
사람들은 전과자인 그에게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아무리 사랑원의 피해자라 하더라도 그가 더러운 인간임이 밝혀지자 누구도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차였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