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사랑원 아이들 #1
권성현 씨는 최근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날도 그는 어느 당구장에 음식을 배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죠. 경찰도 영 도움이 안되고 그렇다고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하는 것도 솔직히 언제 들어주는지 모르겠고, 살인예술가인지 뭔지는 부탁하면 내가 살인범이 되는 것 같은데?”
당구장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청년이 당구장 사장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만약 죽일 정도 까지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탐정을 쓰는 건 어떤가?”
“탐정이요? 그런게 도움이 되나요?”
“내가 아는 탐정이 하나 있는데…. 아주 대단한 사람이야. 강남경찰 서장 모가지도 날렸다니까. 게다가 거슬리는 놈들 있으면 반죽음으로 만들어놓는다네.”
“고작 반죽음이요? 사이다패스는 아예 죽여버리는 데도요?”
당구장 사장이 자신있게 말했지만 상대는 시큰둥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증오하면 법률보다 훨씬 강한 처벌을 원한다.
죽이지 않고 처벌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뜨뜻미지근하다.
게다가 사이다패스는 공짜 아닌가.
‘이놈 새끼들. 전혀 급하지 않나보군.’
당구장 사장, 고찬하는 자신에게 상담하는 이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혀를 찼다.
사이다패스와 데드맨, 둘을 저울질 할 정도면 별로 급하지 않은게 분명하다.
‘역시 사이다패스는 마음에 안드는 군.’
대가없이 여론에 혹해서 사람을 죽이는 놈은 너무 가볍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최소한 자기 수명 정도는 내놓을 수 있어야지.
무료로 사람을 죽여주는 사이다패스는 그만큼 경솔하고 가볍다.
그런데도 굳이 사이다패스를 탐하는 놈이라니.
“흠. 뭐 그럼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보던가.”
“그게 또 경쟁자가 많더라고요.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사이다패스도 무슨 근거로 일을 들어주는 지 모르겠어서. 그래도 타정은 돈이 들고 거긴 공짜잖아요.”
“그럼 뭐 어쩔 수 있나. 기다려보게.”
그러자 당구장 사장에게 말을 걸던 이가 물러났다.
“원 세상에.”
당구장 사장, 고찬하는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 * *
권성현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지금 이 당구장 사장, 누구를 말하고 있는 거지?
혹시나 싶어서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당구장 사장에게 다가갔다.
“저, 저기요.”
“아 듣고 있었나?”
“네. 그게 말이죠. 말씀 드릴게 있는데요.”
권성현은 계속 콜이 오는 배달 앱을 잠깐 끄고 당구장 사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사랑원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당구장 사장은 진중하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음 그렇단 말이지.”
“네.”
“잘 찾아왔네. 내가 아는 탐정을 소개해줄까?”
“그런데 그 탐정, 정말 괜찮은 가요?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면서요?”
“정말 누군가를 증오한다면 죽여서 한 방에 끝내는 걸 피하라고.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사람의 재산을 싹 날려버려서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뜨려야 해. 가난뱅이의 삶이 부자의 죽음보다 고통스러우니까.”
가난뱅이의 삶이 부자의 죽음보다 고통스럽다고?
너무나 끔찍한 말이지만 진실이다.
그러고보면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하는 건 역시 너무 안일한 것 같다.
“그러니까 그 탐정에게 부탁하면 남을 가난하게 만든다고요?”
“뭐 사회적 명성을 파괴하거나 그렇게 하기도 하지.”
“와, 탐정이 그렇게까지 하나요? 돈은 얼마나 받는데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운 나쁘면 한푼도 안내도 되는 모양이야.”
“네? 운이 좋으면이 아니라요? 아 실패해서 깜빵가면 공짜다 뭐 그런건 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이거 내 입으로 말하긴 그런데. 일단 상담을 해보게.”
* * *
다음날 아침 권성현은 소개받은 탐정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오셔서 이야기 하지요. 언제 방문가능하십니까?’
생각보다 젊은 목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랐다.
이거 믿어도 되는 건가?
혹시 당구장 사장님이 짜고 하는 거 아닌가?
권성현을 속이고 놀린다고 해서 뭐 이득이 있겠냐마는 요새는 또 그렇지도 않다.
스트리머.
남을 가지고 놀고 몰래카메라라고 비웃는 것으로 컨텐츠를 뽑아서 그걸 수익으로 만들 수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득이 된다. 그러니 조심해야 겠다.
지금 직업이 일하면 하는 만큼 버는 일이라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손해인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아쉬운건 권성현이었기 때문에 그는 큰 마음을 먹고 탐정 사무소를 찾아가보았다.
탐정사무소는 주택가에 인접해있는 근린생활시설, 상가건물의 2층에 위치해 있었다.
권성현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2층 벨을 눌렀다.
“들어오십시오.”
안에는 젊은 탐정이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코트 차림에 큰 키, 차분한 인상이지만 어딘가 항상 피곤함과 권태로움을 달고 다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젊고 잘생긴 용모지만 그가 달고 다니는 권태로움의 분위기는 세상 평지 풍파 다 겪고 질려버린 그런 노회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신뢰가 간다.
권성현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저 당구장 사장님에게 소개 받고 온 권성현이라고 하는데요.”
“네. 자리에 앉으시지요. 그래서 무슨 용무로 찾아오셨습니까?”
“그게… 혹시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도 하십니까?”
“원한 문제인가 보군요.”
“아 네.”
“물론 합니다. 다만 그 원한이 정당할 경우에만 가능합니다만 그건 알고 오신 거겠지요?”
“네.”
“흠. 알겠습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말씀하시는 동안 제가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 편하게 말씀해주시지요.”
“아 네.”
권성현은 생각에 잠겼다.
사랑원 시절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고 권성현도 말재간이 그리 좋지는 않았기 때문에 어디부터 말해야 할 지 몰랐다.
“사, 사랑원이라고 아십니까?”
“흔한 이름이라 여럿있습니다만 지금 이 타이밍에 말씀하시는 걸 보면 춘천 사랑원 조철진 씨를 말하는 거겠군요.”
“아 네. 마, 맞습니다.”
권성현은 단 번에 그가 말하려는 바를 꿰뚫어보는 걸 보며 깜짝 놀랐다.
역시 탐정이다.
“그가 방송에 나오지 않는 횡령과 아동학대를 벌이고 있나 보군요.”
“네!”
“그런데 경찰에게 제시할만한 증거는 없는 상황이고 오로지 증언뿐.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네 맞아요!”
권성현은 모든 걸 그가 말하기 전에 일사천리로 말해버리는 탐정에게 감탄했다.
자신이 여기 찾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정도는 되니까 당구장 사장님이 추천했구나.
그런데….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자면 절 찾아오기 전에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해보진 않으셨습니까? 학대의 수준이 심각하다면 사이다패스도 충분히 죽이려고 할 텐데 말이지요.”
탐정은 그 점을 물어보았다.
그 순간 권성현은 말문이 막혔다.
만약 이 탐정이 권성현 그가 전과자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
전과자의 말 따윈 아무 가치가 없다고 해서 이 의뢰를 거절하진 않을까?
아니면 의뢰대금만 야금야금 빼먹으면서 그를 괴롭힐 수도 있고.
그렇지만 그가 말문이 막혀하는 걸 보자 마자 탐정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사이다패스가 원하는 피해자상과 거리가 머셔서 그런 것 같군요. 괜찮습니다. 저는 설령 고객님이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다고 해서 편견으로 고객님을 대하지 않습니다. 저희 시현 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지요.”
“정말입니까?”
“네. 물론입니다.”
탐정은 그리 말하며 의미심장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 * *
사람들은 죽음을 갈망한다.
정확히는 자신의 적의 죽음을 갈망한다.
내 적이 죽었으면 좋겠다.
죄인이 죽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에게서 사회적 책임과 가식의 가면을 제거한 인터넷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사소한 범죄에도 죽음의 죄를 안겨주는 것에 찬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시현은 그렇게 단언했다.
“개나 고양이, 아니 곰이나 호랑이가 산에서 사람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들은 인간성의 적이 아닙니다. 증오해야 할 필요도 없지요. 그저 식욕이나 본능에 지배되어 사람을 죽이는 재해일 뿐이니까요.”
“아 네.”
“오직 인간만이 인간성의 적입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인간성이 그를 증오해 마땅할 존재로 격상시키는 것이지요.”
“…….”
권성현으로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겁니다. 다만 사이다패스가 사람들을 죽여대는 통에 살생을 하지 않는 저로서는 요새 손님을 많이 빼앗기는 군요. 뭐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좋긴 하지만….”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가 계약자를 수급해오지 못하면 해방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동안 악마에게 떼인 수수료, 악마에게 넘겨준 수명을 배 이상 돌려받게 되며 이것이 만약 인간의 상궤를 넘는다면 비단 타자기의 악마 뿐 아니라 악마들 전부의 행동을 제약할 수도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악마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세상에 알리지 않는 선에서 개입하며 인간성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자신들의 존재가 증명되어버리면 인간들 전부가 영향을 받아 변화하게 되니까 관측자가 관찰대상에 영향을 줘버리면 더이상 순수한 관찰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상황을 절대적으로 피하고 싶은 악마들에게는….
시현이 타자기의 악마에게서 승리하면서 돌려받은 수명으로 천년만년 살며 사람들의 의구심을 자극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취하기 위해서는 돌려받을 수명이 엄청나게 많은 상황에서 악마에게 승리해야 한다.
모순이다.
계약자가 많아야 수명을 많이 적립할 수 있을 것이고.
계약자가 없어야 악마에게서 승리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모순된 상황을 잘 제어해서, 절묘한 밸런스를 유지하다가 승리하는 게 시현의 목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사이다패스는 참 난감한 경쟁자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원수가 죽기를 원하는 지라 본래 시현에게 왔어야 할 계약자들 상당수가 사이다패스에게 몰리고 있었다.
사이다패스는 무보수로 일을 하는데 비해 시현은 돈 내놔라, 수명 내놔라,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시현을 찾아오는 이들은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할 수 없는 하자가 있거나….
상대를 죽이 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저 보수는….”
권성현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최근 배달기사들의 수입이 괜찮긴 하지만 탐정을 고용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지출이었다.
하물며 권성현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집도 월세고 저축을 쌓아둔 것도 없고 오토바이 할부금도 아직 다 못갚았다.
월세 보증금도 전과자 재활 기금에서 보증서줘서 대출받은 것이다.
사실 냉정히 따지자면 제 코가 석자다.
사랑원이 무슨 짓거리를 하건 여건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위선자는 사람들의 후원금을 빨아먹고 있을테고 그의 밑에서 아이들은 학대당하고 있을 것이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