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11화 (211/269)

제211화

사랑원 아이들 #2

“그럼 보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지요. 우선 간단하게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경우 주당 500만원에 필요경비를 청구합니다만….”

“헉?”

“보아하니 부담되시나 보군요. 그럼 돈 안쓰는 방향으로 가지요.”

“네.”

권성현은 가슴을 끌어내렸다.

“수명을 1년 받겠습니다.”

“아 네. 엑? 뭐라고요?”

“수명을 1년 받습니다. 당신의 수명이 앞으로 40년 남아서 89세에 사망할 운명이라면 수명을 1년 떼어주면 88세에 사망하시게 됩니다.”

“그, 그걸 떼어준다고 떼어갈 수 있는 건가요?”

“네. 가능합니다. 진심으로 이 서비스가 수명을 떼어줘도 아깝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

뭐야. 이사람 미친 사람인가?

권성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순간 시현이 컴퓨터를 조작해 파일을 보여 주었다.

“보아하니 사랑원 인근의 통장, 이장, 마을 사람들 모두 사랑원 원장 조철진과 한통속이 되어 있는 상태로군요. 마을 사람들의 평가가 매우 좋습니다.”

“이건… 뭔가요?”

“시의원의 조사 보고서입니다. 복지시설의 경우엔 아무래도 주민들이 존립을 반대할 수도 있으니까 시의원들이 바뀌거나 의정활동 보고서 써내야 할 때마다 의향조사하기 좋은 재료거든요. 보통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하는데 여기서 마을 사람들의 복지시설에 대한 지지도는… 5점 만점에 4.2로군요.”

“네?”

“한마디로 말해서 동네 지역 유지들이 포섭되었다. 즉 혼자서 거기에 가서 들이받아봤자 아무것도 안되고 오히려 역공당할 거다. 이겁니다.”

“…….”

“그래서. 계약하시겠습니까?”

수명을 달라는 해괴한 계약조건은 아무래도 내키지 않지만….

눈 앞에서 이 탐정이 너무나 쉽게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는 걸 보니 마음이 흔들린다.

‘뭐 그렇기 때문에 사전조사를 해두는 거지만.’

시현이 탐정일 하면서, 이 데드맨 계약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이 바로 수명 받기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사람들은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고, 광인 보듯 노려보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의 반발심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먹음직한 미끼를 미리 준비해서 흔들어줘야 한다.

수명을 내놓으라는 수상한 이야기를 해도 잘 먹히는 건 악마의 힘이 상대의 의식을 흔들어 저항감을 줄이는 것도 있지만 시현이 사전에 준비해서 정말 계약만 하면 일이 바로 이뤄질 것 같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네. 계약하겠습니다.”

권성현은 쉽게 수명 양도 계약을 체결했다.

* * *

류하리가 시현탐정사무소에 가보니 시현은 이미 계약자와 계약을 끝마친 뒤였다.

“오셨군요.”

“어. 누군가요. 이 아가씨는?”

권성현은 미모의 젊은 아가씨가 사무실에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제 조수입니다.”

“네 조수요?”

“….네.”

류하리는 자신이 시현의 조수라는 걸 부정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걸 본 권성현은 당황한다.

젊고 매력적인 이성을 대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그런 그녀를 앞에 뒀을 때 자신을 제어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이 언제 또 범죄를 저지를지 모르는 폭탄이라는 걸 알기에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춘천 사랑원이라는 곳의 오너 조철진 씨가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고 이용하며 아이들에게 써야 할 예산등을 횡령하고 있다는 고발이 제기되었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를 파멸시키고 관련된 이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달라는 요청이지요.”

“흠. 그래요? 의외네요.”

류하리는 의아해했다.

“보통 아동학대라면 법률적으론 사형이 나오지 않지만 감정적으로는 죽어 마땅한 죄니까….”

사이다패스에게 가져가지 않았겠느냐?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사이다패스는 지금 일이 많을 겁니다. 매일매일 바쁘게 사람을 죽이고 돌아다녀도 이 세상의 원한들을 다 해소하려면 끝이 없을 겁니다.”

“아.”

권성현은 시현이 자신의 전과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 것에 고마워했다.

아무리 실제로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도 성폭행 전과 같은 걸 젊은 여성 앞에서 말하는 건 부끄러웠으니까.

“그럼 의뢰인 께서는 이만 돌아가보셔도 좋습니다. 바로 조사에 착수하도록 하지요.”

“네. 부탁드립니다.”

* * *

의뢰인 권성현이 돌아가자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의뢰인에게 성폭력 전과가 있습니다. 그래서야 사이다패스가 일을 해줄리 없지요.”

“그걸 말해줘도 돼요? 방금 전에 대충 얼버무려서 의뢰인이 감동한 것 같은데?”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요. 앞으로 보게 되었을 때 몰라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말해두어야 합니다.”

“…….”

“다 고객만족을 위한 일이지요.”

“네네.”

“자 그럼 일단 조사를 해볼까요? 우선 간단하게는 저 후원금 계좌를 보도록 하지요.”

시현이 제일 먼저 조사한 곳은 방송후 기부금을 받은 후원금 계좌였다.

조사해보니 사랑나눔회 라는 이상한 법인이 나왔는데 법인의 대표는 전미영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소지는 놀랍게도(?) 방송국 PD의 주소와 일치했다.

“이건….”

“감동 포르노 전문 PD로군요.”

“네?”

“일부러 후원금 많이 생길만한 방송을 하면서 PD의 아내가 하는 사회복지 재단으로 후원금이 유치되도록 하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이익을 당사자와 나누는 겁니다. 사회복지재단의 회계야 적당히 쳐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데다가 어쨌건 실제로 저쪽 단체에 돈으로 주긴 하니까.”

“이런 쓰레기같은 짓을 다하는 군요.”

“하지만 법에는 저촉되지 않습니다. 후원금 중 얼마나 기부사업에 썼느냐를 따져본다면 이 재단은 나쁘지 않은 축에 들 겁니다.”

“네?”

“예를 들어서 이 재단이 방송을 하고, 방송을 탄 복지원이나 자선가와 반반씩 나눈다고 칩시다. 그럼 후원금의 절반은 재단이 잘라가고 나머지 절반을 복지원에 주는데 그것만으로도 후원금 대비 50%의 복지 지출이 있었던 겁니다. 이정도면 소형 사회복지 재단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지출비율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받은 복지원에서 돈이 어떻게 쓰이는 지는….”

“복지원에 넘겨준 돈이 정당하게 복지사업에 쓰이는지 어떤지는 또 별개의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복지원이 다시 다른 복지원이나 단체에 돈을 주면 간단하게 복지사업 지출비율을 올릴 수 있지요.”

즉 재단 몇 개끼리 서로 돌려먹기를 하면 빼먹을 건 다 빼먹으면서 서류상으로는 얼마든지 건전하고 양심적인 복지단체로 만들 수 있다.

“뭐 괜히 선량한 복지단체를 의심하는 게 될 수도 있지만 이런 사건들의 경우 대부분은 의심이 사실이더군요. 애초에 입방아에 오르는 시점에서 혐의가 있거든요. 다만 저는 선량한 복지단체에서 자랐습니다.”

“아… 네? 고아였어요?”

“고아라기엔… 나이가 좀 있을 때 부모님이 갑자기 실종되셔서.”

“친척은요?”

“한국에서는 시 씨가 그렇게 많지 않은 성씨입니다. 믿을만한 친척이 없었지요. 음. 제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이제 발로 뛸 차례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차 키를 손가락에 끼고 흔들었다.

“간만에 드라이브나 가볼까요? 물론 가기 전에 춘천 쪽의 다른 탐정들에게 의뢰를 넣어두고 말이지요.”

* * *

사랑원은 춘천과 가평 사이에 위치한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위에는 펜션과 농경지가 있고 대부분은 딱히 별다른 산업 없이 휴가철에 관광 사업, 평상시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사랑원은 그 곳에서 농사 및 자체적으로 피복류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이 사랑원의 혹독한 체계 하에서 농사일을 하기도 하고 공장 일을 하기도 하면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주위의 농사꾼들에게는 김 매기를 도와주는 군기 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보일 수가 없다.

‘요새 아이들 허약하고 그런데 여기 애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좋다.’

그렇게 사랑원의 교육방침을 오히려 지지하는 것이었다.

딱히 주위 사람들을 돈주고 매수할 필요도 없이 아이들의 자발적인 자원봉사, 노동력 제공 만으로도 사랑원은 충분히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다.

* * *

사랑원 근처 공터에 시현의 차가 멈춰서 있었다.

“…….”

류하리는 조수석에서 태블릿 PC를 조작해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태블릿 PC안에는 시현이 탐정업에 종사하는 다른 이들에게 부탁해서 입수한 자료들이 들어있었다.

지금 류하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랑원 원장이 춘천 시내 외제차 매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게 요청하자마자 싹 오는게 기분나쁘네요.”

류하리는 너무 빨리 자료가 온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다.

당일 의뢰받자 마자 조사해선 나올수 없는 속도다.

설마 탐정이란 놈들은 아무데나 미리미리 조사해두나?

여기저기 멋대로 도청하면서 사람들을 감시하냔 말이다.

“탐정들 중 상당수는 전직 경찰들입니다.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수상한 놈들을 잘 알고 있죠.”

“즉 처음부터 사랑원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다?”

전직경찰이던 형사가 의심스러워서 조사하고 있었다.

시현에게 온 것은 바로 그때 조사하던 자료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의뢰를 넣자마자 바로 자료가 날아온 것도 납득이 간다.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아넣지는 못한 것 같군요.”

“하지만 본인은 외제차를 사모으고 아이들은 노예같이 굴리는 데도요?”

일단 상대가 악인이라는 건 분명하다.

지금 나온 정보들만 봐도 이 사랑원 원장 조철진인가 하는 사람은 사랑원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쌓아올렸다.

아이들은 푸드 뱅크와 농장에서 나온 찌그러진 농작물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본인은 왕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시현은 그 자료를 보고도 만족스럽지 못한 듯 했다.

“음 의외로 어려운 일이 되겠군요.”

“네? 뭐가요? 미성년자를 노동시키고 있잖아요. 게다가 본인은 그 이익으로 호의호식하고 있고.”

“그걸로 처벌받게 해봤자 고객이 원하는 것에 미치지 못합니다.”

“네?”

“미성년자를 노동하게 하는 건 법률상으론 중죄지만 사회 통념상으론 별거 아닙니다. 특히 이들이 유사 가족 형태로 엮여 있다면 더더욱.”

확실히 가족 끼리 농장 일 정도를 돕는 건 흔한 일이다.

공장일 역시 마찬가지.

가업으로 공장을 한다면 그곳에서 미성년자가 일을 돕는 건 흔한 일이었다.

“방송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사랑원의 원장은 자신이 이 아이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즉 아동 노동정도로는 처벌해봤자 경고나 벌금형 정도가 고작이라는 거지요. 왜냐면 이 아이들의 친권이 현재로서는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시현은 친권을 언급했다.

“이 친권 때문에 이건 꽤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친권 때문에요?”

“네. 대한민국에서 친부모의 친권이란 매우 강력한 권한입니다. 아이를 버리고 가도,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친권은 특별히 포기한다는 의사를 표방하지 않으면 강제로 유지되지요.”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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