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사랑원 아이들 #3
시현도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갑자기 실종된 이후 시설에서 잠깐 몸을 의탁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낳기만 하면 부모는 자식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애가 입양되어도 친부모가 나타나서 양부모에게 아이를 돌려달라고 하면 돌려줘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도 한때 시설 신세를 졌기 때문에 친권 문제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사랑원의 아이들은 그 친권문제가 해결되어 있습니다.”
“해결되어 있다고요?”
“네. 전부 사랑원 원장이 친권을 가지고 있군요. 친부모들이 친권을 넘겨주고 갔거나 그게 아니라면 서류를 잘 위조했거나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후자겠지요.”
“사문서 위조군요.”
애매하다.
보통 사문서 위조죄는 사기나 다른 중요 범죄에 딸려오는 것이지 그 자체로 실형까지 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사랑원의 운영을 정지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건 너무 처벌이 가볍다.
“저도 사문서 위조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애들 버리고 간 부모로부터 친권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라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낳기만 하면 그 외 부모의 도리를 하지 않더라도 친권이 유지된다니 쓰레기나 할법한 발상이지요. 하지만 이쪽도 좋은 생각으로 사문서 위조를 한 것 같지는 않군요.”
“진행된 입양은 있나요?”
“없습니다. 다른 곳에 비해서 입양하기 쉬운 조건의 아이들 뿐인데도 입양이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는 건 무슨 뜻이겠습니까?”
“돈 벌어다 주는 애들을 굳이 밖으로 내놓고 싶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맞았습니다.”
사랑원의 입장에선 아이들은 곧 노동력이고 수입원이다.
돈 벌어오는 노예.
직접 일을 시켜서 돈을 벌게 할 수도 있고 인원만큼 지원금을 뽑아낼 수도 있고 그들을 적당히 치장하면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해 후원금을 받아낼 수도 있다.
이런 귀중한 수입원인데 굳이 돈안되는 입양을 시켜서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입양조차 시키지 않고 시설장이 친권을 독점하고 있다면 이 울타리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친권자들이 친권포기 각서를 써냈다면 현재로서는 원장이 사실상의 양부모로군요.”
“네. 아이들을 적당히 폭행하고 학대해도 경찰은 손 쓸 방법이 없습니다. 원장이 직접 애들을 거의 패죽여야 개입할 명분이 설텐데 사랑원의 내부는 병영같이 꾸려지고 있군요.”
사랑원의 아이들은 병영의 군인들처럼 다뤄지고 있고 사랑원 원장은 간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자신이 직접 폭행하지 않더라도 아이들끼리 상호 폭행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러면 아이들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일단 사랑원 내부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을 때는 본인들도 공범이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치부를 밖에 드러낼 수 없는 것이다.
의뢰인 권성현은 그나마 사랑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랑원의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뭐 전과를 생각해보면 사랑원 쪽에서 내팽개친 거겠지만.’
권성현이 범죄를 저지르자 사랑원에서 도마뱀 꼬리 자르듯 잘라버린 것에 가까우리라.
“방송국 PD랑 돈을 나눠 먹은 건요?”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그것도 범죄로 입증하기 힘든 영역의 문제입니다. 뭐 후원금을 받는 쪽이 PD의 아내가 운영하는 사회복지재단이라고 지적하면 사회적, 도덕적 지탄은 받겠지만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지요.”
시현이 말하는 대로였다.
류하리가 생각해봐도 복지재단이니 시설에서 아이들을 학대한다고 처벌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곳보다 아이들 친권자가 따로 있는 어린이 집에서 아동학대를 하더라도 처벌이 미적지근하다.
하물며 친권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평생 가는 상처가 되는 일들 뿐이지만 미묘하게 법적인 처벌로 처치하기엔 힘들다.
아이들에게 가야할 돈을 횡령하는 것도, 아이들을 강제노동에 투입해 자신의 사익을 취하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친권이라는 이름하에 용납된다.
“원장의 친권을 부정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처벌은 솜방망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뭐 세부조사에 들어가면 횡령 정도는 걸릴 테니까 실형을 선고받게 할 수 있지만 사이다패스라는 경쟁자가 있는 이상 그 정도 처벌 수위로 고객을 만족 시킬 수는 없지요.”
사이다패스라면 아무런 대가 없이도 원장을 잔혹하게 죽여버렸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기껏 수명을 제공한 시현이 미적지근한 2년 형이나 집행유예 같은 걸로 때려놓으면 과연 고객이 만족할까?
“시현 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수명 계약이라면 특히나 말이지요.”
“대충 속이고 윽박지르고 해서 후려치는 게 아니라요?”
“대충이라니 무슨 섭섭한 말씀을….”
시현은 그녀의 오해를 정정해주었다.
“속일 때는 제대로 속입니다.”
“그야 그러시겠지요. 그런데 잠깐만요. 친권 부정이라면….”
류하리는 시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채고 혀를 찼다.
친권자라고 해도 도저히 손대선 안되는 것이 바로 정조.
노동을 시키거나 폭행을 하는 것도 친권으로 무마가 되지만 성추행이나 강간 같은 행위는 친권자임을 부정하는 행위다.
“그렇다는 건 강간의 증거 같은 걸 찾아내서 공개하면 된다는 건가요? 원장이 원생들을 강간하고 있다. 그렇게?”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이 말한 것에 소름이 돋았다.
끔찍한 범죄다.
말해놓고 보니 너무 끔찍해서 그런 일이 현실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현은 태연했다.
“뭐 악마의 계약이니까 그런 해답이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해답이 존재한다는 건….”
실제로 강간이 자행되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네. 이 끔찍한 위계질서와 지배력, 이건 소인배가 가져서 될 일이 아니지요. 인간이 누군가를 지배한다면 반드시….”
인간이 누군가를 지배하게 된다면, 손가락 하나로 그의 노동력, 헌신은 물론 육체까지 마음껏 유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하물며 사랑원 원장은 그저 속물이다.
정조를 건드리지 않는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걸, 그 욕구를 다른데에서 채우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고서도 충동을 참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악마가 정한 정답을 그대로 제출하는 것도 좀 마음에 들지 않는 군요.”
“네?”
“계약을 많이 울궈 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군요.”
“…아.”
류하리는 시현이 또 나쁜 흉계(?)를 꾸미고 있는 걸 보고 혀를 찼다.
“그래서, 오신 김에 좀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네?”
* * *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고 시현과 함께 사랑원으로 향했다.
사랑원의 아이들, 그리고 직원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저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는지요?”
대답 대신 류하리는 경찰 신분증을 꺼내보였다.
“실례합니다. 서울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네?”
“영장은 없지만 수사 협조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자, 잠시만요. 원장님께 연락드리고요.”
직원은 당황해서 그렇게 말했다.
잠시 후 직원이 전화기를 가져왔다.
화상통화였기 때문에 직원은 전화기의 카메라를 류하리에게 향했다.
[네. 사랑원 원장 조철진입니다. 어디 경위님이라고?]
화면 너머에는 느끼해보이는 올백 머리의 장년 남자가 있었다.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어허. 예쁜 아가씨네.]
사랑원 원장은 류하리를 위아래로 느끼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그런다고 카메라가 이동하는 건 아니지만 눈알을 굴리는 모습에서 류하리는 상대가 자신을 전혀 경찰로서 존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이자식이?’
류하리는 자신을 여경이라고 바로 대놓고 아가씨 운운하는 것에 짜증이 났다.
경찰이 일하러 왔다는 데 업무에 협조할지 말지나 결정할 것이지 여자라고 우습게 보다니?
하지만 이런 놈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녀는 분을 참고 침착하게 말했다.
“원생들 기록 자료를 열람하고 싶습니다.”
[왜요? 영장도 없이?]
“네 그게… 사이다패스 건 때문입니다.”
[사이다패스?]
“누군가가 청원에… 흠흠.”
류하리는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말을 끊었다.
[아, 그, 그렇습니까?]
사이다패스라는 말이 나오자 원장 역시 당혹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약 빨 잘먹히네.’
본인도 저지른 일이 있어서 찔리는 모양이었다.
[저는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그랬는데 그게 무슨….]
“아. 네. 진정하세요. 그건 인터넷 사이트라서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아무나 막 청원에 올리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이나 연예인들 뭐 할거 없이 이름만 좀 알려졌다 하면 다들 올리거든요.”
나는 전혀 당신을 의심하지 않고 있다.
그런 뜻을 전달하기 위해 류하리는 애써야 했다.
[그, 그럼 협력하겠습니다. 직원에게 그 원생들 서류를 갖다주라고 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류하리는 간단하게 원장을 설득했다.
그런데 이래도 괜찮은가.
‘시민들이 맡겨준 공권력을 이용해서 사적으로 유용하는 거잖아? 경찰의 직업윤리에 아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짓인데.’
허나 신기하게도 죄책감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 * *
시현은 류하리의 조수인 양 함께 사랑원 원장실에 들어왔다.
직원이 보고 있어서 서류를 마음대로 뒤지진 못한다.
하지만 사랑원 내부를 봐둬서 나쁠 건 없다.
어딘가 주눅들고, 눈은 퀭한데 살은 올라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1980년대의 영상물 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나쁜건 아니지만 그것은 아마도 푸드뱅크의 덕분이리라.
성장기를 고려하지 않고 공급에 의존한 식단이 아이들을 살찌웠다.
그리고 원장실 옆에 진열된 각종 상장들과 시상식 사진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디 나가서 타온 상은 없고 전부다 원장에 대한 상이다.
그리고 이런 시설이라면 아이들이 졸원할 때 으레 찍는 단체 사진같은 것도 없다.
아이들에 대한 사진과 상장은 없고 철저히 원장 자신의 과시와 자기애로 가득한 진열장이었다.
‘연도가 비는 군.’
시현은 매년 쏟아지던 상장들이 비는 연도를 확인해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2000년대 초에 갑자기 상장들이 사라지고 행사에 참석한 사진들도 사라졌다.
‘이렇게 투명할 수가. 너무 알기 쉽군.’
시설 신세를 졌던 시현은 그걸 보고 대략적인 눈치를 챘다.
지역사회에 얼마 있지 않은 사회복지단체.
매년 꼬박꼬박 받던 지자체의 상장을 어느 해 갑자기 받지 않았다면?
“왜요?”
류하리가 시현의 웃음에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아뇨. 저도 나름 시설 출신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군요. 제가 있던 시설은 나쁜 거 없이 정말 신실하게 운영되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때 직원이 원장실에서 자료를 들고 나왔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아 네.”
류하리는 서류를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사랑원의 역사가 30년을 넘어서 원생들 자료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일부는 확실히 유실되어 있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