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3화
사랑원 아이들 #4
“흐음. 시설이라면 자기 친부모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자료를 좀 더 장기 보관할텐데 말이죠.”
시현은 그 점을 지목했다.
해외로 입양갔던 사람이 과거 시설의 기록으로 자기 뿌리를 찾는다던가 하는 걸 봐서 알겠지만 정상적인 시설이라면 원생에 대한 자료는 무기한으로 보관한다.
그러나 직원의 태도는 뻔뻔하고 당당했다.
“증축하고 그러면서 손실되었습니다.”
“귀중한 자료일텐데도요?”
“네. 왜냐면 사랑원에서는 아무도 입양 간 사람이 없으니까요.”
“입양 간 사람이 없다고요?”
“네. 대부분 입양 없이 저희 시설에서 졸원합니다.”
“…….”
“대부분 남자애들이거든요. 인간도 펫샵의 상품들과 마찬가지라서 어릴 적부터 예쁘고 암컷이면 쉽게 팔려나가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들은 남기 마련입니다.”
“흠?”
시현은 자조섞인 웃음을 짓는 직원에게 놀랐다.
원생들을 무슨 상품에 비교하다니 끔찍한 발언이다.
하지만 시현이 보기엔 이 직원도 사랑원 출신 원생이다.
그는 자신을 비하하고 있는 것인가?
“사랑원은 각 시설에서도 수용되지 못하고 남겨지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안식처입니다. 경찰 여러분들도 부디 이상한 오해하지 말고 여기를 좋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군요. 이걸 찍어도 되겠습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진열장의 상장들도 사진으로 찍었다.
“…상장들은 왜요?”
직원이 경계하는 눈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아뇨.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다 싶어서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직원의 얼굴 근육이 실룩였다.
“실례지만 직원분도 사랑원 출신이시죠?”
“네.”
“성함이?”
“조민혁입니다.”
“조민혁 씨 말고도 다른 졸원생들이 사랑원에서 일하고 있지요?”
“네. 사랑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끔씩 자원봉사로 와서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여기저기 입양도 못된 하자있는 녀석들이라 일자리를 주시는 원장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거짓이 섞여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직원이 원장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건 알겠다.
“흠. 그렇군요. 졸원한 원생들도 와서 원장님이나 후원자분들을 위해서 남들에게 베푸는 삶을 사나 보군요.”
“…….”
“아 그럼 자료사진을 다 찍는대로 떠나겠습니다.”
시현은 자신을 흘겨보는 직원, 조민혁의 시선을 피해서 그렇게 말하고 류하리를 도우러 갔다.
* * *
시현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사랑원이 잘 보이는 곳에 감시 카메라와 도청기 들을 설치했다.
“대놓고 불법 도청을? 안걸리겠어요?”
“도청 만큼 가성비 좋은 정보수집방식이 없습니다. 요새는 소프트웨어들이 발달해서 소리 필터링해서 뽑아내기도 좋고 저장용량도 충분하고. 테이프로 녹음하던 시절 과는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죠.”
“…저도 다 알아요. 누구에게, 왜 설명하는 거에요?”
“저를 보고 있을 악마들에게?”
“…….”
류하리는 시현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자료가 많네요. 30년 넘게 운영해서 그런가.”
사랑원의 역사는 30년이 넘는다.
그래서일까? 거쳐간 원생들의 수는 엄청나다.
“내가 미쳤지.”
류하리는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정리할 생각에 혀를 찼다.
“안심하세요. 이건 제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당신 쪽에서 처리요?”
“네.”
시현이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지 서버에 올려놨으니까 오늘치 자료들, 자동인식 프로그램 돌려서 서류로 만들고 대조해가면서 스프레드 시트로 정리해줘.”
“어디에 전화 건 거에요?”
“직원들입니다.”
“직원이요?”
“시현 탐정 사무소는 아니지만 제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들 중 하나죠. 평소 업무는 제 산하의 요식업체들을 관리하는 일을 합니다만 그러면서 일이 없을때는 이렇게 정보 분석 작업을 돕지요.”
시현은 의뢰로 엮인 사람들 중 일자리가 필요한 이들을 직접 채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쪽에 단순 작업들을 하청주니 과연 빠르게 자료가 정리되었다.
그러고보면 시현은 혼자서 탐정사무소를 꾸리고 있지만 필요하면 다른 탐정들에게 소정의 비용을 제공하고 일을 맡기기도 하고 직원들도 거느리고 있었다.
혼자서 굴리는 탐정사무소임에도 성과가 나오는 건 그렇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이 자료들을 조사하면 뭔가 공격할 틈이 생길까요? 횡령이나 사문서 위조는 확실히 한 것 같지만….”
그 정도로 해봤자 잠깐 살다 나올거고 그동안 올린 수익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그런데 시현이 미소를 짓는 게 아닌가.
“그것보다 확실히 파멸시킬 만한 일을 저질렀군요.”
“네?”
류하리는 깜짝 놀랐다.
시현이나 류하리나 같은 현장을 보고 같은 자료를 봤는데 시현은 왜 이렇게 확신을 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자신만만해요? 대체 뭘 어쩌려고?”
“자료가 정리되면 이야기 하도록 하지요. 그럼 이동해볼까요? 직원들이 자료를 정리해주려면 시간이 좀 걸릴테니까.”
“…….”
류하리는 시현의 추리력(?)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 *
장인제는 사랑원 졸원생이다. 나이가 다차서 시설에 있을 수 없게 되어 독립할 나이가 된 그는 사랑원을 박차고 나갔다.
대부분의 사랑원 졸원생들이 별다른 사회경력이 없어서 사랑원에서 운영하는 사업체에서 일자리를 구한 것과 달리 장인제 그는 학교에서부터 친구가 많았다.
그는 그 친구들의 인맥을 통해서 따로 사업을 시작했고 곧 그들을 따라 밤거리의 주민이 되었다.
스탠드바의 기도부터 시작해서 영업을 좀 배우고 나서는 스탠드바를 인수하고 지역 조직폭력배의 일원이 되어서 유흥업소를 관리하고 여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폭력배가 된 것이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사랑원 관련으로 취재할 일이 있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꺼져. 이제 더 이상 그쪽에 관심이 없으니까.”
장인제는 사랑원을 취재하겠다는 상대의 말에 거절했다.
얼굴 보고 말하는 중이었다면 안면에 침이라도 뱉을 기세였다.
사랑원을 생각하기만 해도 두통이 다 난다.
하지만 그순간 상대방이 재밌는 이야기를 해왔다.
‘안심하십시오. 당신을 비난하거나 고발하자고 하는 게 아니니까. 2000년대 초의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거 아닙니까?’
“뭐?”
장인제는 그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 자식….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젠장.’
결국 장인제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이 전화를 걸어온 이와 만날 약속을 했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상대가 만약 2000년대 초,의 사건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손을 볼 필요가 있었다.
* * *
그렇게 약속장소에 나간 장인제를 기다리는 건 젊은 남녀 둘이었다.
‘뭐야? 뭔가 위험한 놈들이 협박해온 건 줄 알았는데. 애새끼들이잖아?’
장인제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보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젊은 남녀 둘은 흡사 기자같은 분위기다.
요새 인터넷 신문이니 미디어니 뭐 그런게 많아져서 자칭 기자도 많아진 모양이다.
“뭐야 기자 양반인가?”
“그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지요. 장인제 씨 맞으시죠?”
남자가 장인제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 내가 장인제다. 어떻게 찾아온 거야?”
“사랑원의 졸원생들에게 추천을 받아서 그만.”
“흥. 다른 놈 통해서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누군데?”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그건.”
남자는 넉살좋게 웃으면서 정보원을 알리는 걸 거부했다.
‘뭐하는 놈이지? 진짜 기자라면 자기 소속을 말하고 있을텐데?’
장인제는 이 청년이 그리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나이를 생각해보면 사회경험이 그리 많지 않을텐데도 이상하게 노련하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만 사랑원 출신 맞으시지요?”
“뭐야? 그거 때문에 온거야? 일 없으니까 돌아가.”
장인제는 혀를 찼다.
그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던 시절,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사랑원의 실태를 까발리고 자신을 구조해주길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일이다.
이 세상사람들은 서로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그래. 무관심한게 차라리 낫다. 관심을 가진다면 더더욱 엿같을 테니까 무관심한 쪽이 더 낫다.
그런데 이제와서 기자 놈인지 뭔지 자신을 불러내서 한다는 게….
“괜찮습니다. 15년도 지났으니 공소시효도 지났을 거고 설령 아니더라도 당신은 피해자 아닙니까. ”
“!”
역시…. 이놈 뭔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 어떤 놈이 유출시켰지?
그리 생각한 장인제는 벌떡 일어났다.
“너… 이새끼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은 어린시절부터 사랑원 안에서 자라나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지요?”
“개새꺄! 지금 날 협박하는 거냐!?”
장인제는 눈앞의 청년의 멱살을 잡았다.
하지만 청년이 그의 손목을 잡자….
-쿠당탕.
장인제가 꼴사납게 카페 바닥을 굴렀다.
‘윽, 이 새끼 본색을 드러냈구나!’
장인제는 마음이 편해졌다.
상대가 이렇게 힘을 쓴 이상 이쪽에서도 실력행사가 가능하다.
당연히 그는 약속장소에 혼자 오지 않았다.
옆에 대기시켜둔 부하놈들이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걸 보였다.
그러나 그때였다.
“자자. 진정하세요 괜찮습니다.”
청년과 함께 온 여성이 경찰 신분증을 꺼냈다.
“어? 경찰?”
순간 장인제는 당황했다.
장인제를 향해 다가오려던 부하들이 깜짝 놀라서 다시 테이블에 앉는게 보였다.
“뭐, 뭐야? 왜 날 체포하려고? 난 아무런 잘못이 없어. 여, 영장있어?”
“아 네네. 잘 알고 있습니다. 진정하세요.”
“진정이고 나발이고….”
“진정시켜드릴까요?”
청년이 장인제의 손목을 잡고 힘을 주자 장인제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아아아아악!”
“자자, 여기 영업 방해하지 말고 조용한 곳으로 가도록 하지요.”
청년은 장인제를 일으켜세웠다.
장인제의 발이 바닥에서 들린다.
‘뭐… 뭐야 이놈은?!’
장인제는 살집이 붙은 자신의 몸을 가볍게 들어올리는 청년의 괴력에 경악했다.
사람같지 않은 힘이다.
게다가 경찰이 함께 있어서 부하들의 조력도 기대할 수 없다.
* * *
“흐음.”
시현은 장인제를 조수석에 태우고 백 미러를 보았다.
장인제의 패거리로 보이는 이들이 당황해서 뒤따라 나온 게 보였다.
하지만 경찰 신분증을 내보인 류하리 때문에 함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뒤에서 안전벨트를 메고 있던 류하리와 시선이 마주쳤다.
“왜요?”
“아니요. 협력적이시네요.”
“이미 탄 배잖아요.”
“그런게 아니라….”
미카엘이 과거를 보여준 게 작용하고 있는 건가? 류하리가 상당히 협조적으로 돌아섰다.
뭐 그 전부터도 경찰로서는 굉장히 고분고분하고 협조적이었지만 말이다.
“다, 당신들 뭐야? 경찰 아니지?”
장인제는 그런 류하리와 시현의 대화를 듣고 퍼뜩 놀라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네. 저는 경찰이 아닙니다.”
시현은 정확하게 사실을 이야기 했다.
하지만 장인제가 듣기엔 류하리 역시 경찰이 아니라고 들었을 것이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