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4화
사랑원 아이들 #5
“미친 놈들 아냐 이거. 경찰 신분증을 위조하면 무슨 일 생기는 줄 알아?”
폭력배가 다른 이들의 범법행위애 대한 우려를 표명하다니 우스운 일이다.
‘아니 그건 진짜 신분증인데.’
류하리는 이 상황이 우스웠지만 일단 모든 교섭을 시현에게 맡겼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 남자는?’
류하리는 시현이 뭘 알아챘고 그걸로 왜 이들에게 협박비스므레한 짓을 하는 지 의문이었다.
시현이나 류하리나 조사를 같이 했는데도 왜 시현은 뭔가 알아채고 이렇게 말하는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사랑원 원장 조철진을 파멸시키고 싶지 않습니까?” 시현은 처음부터 직구를 던졌다.
“뭐?”
장인제의 얼굴이 굳었다.
“사랑원 원장 조철진 말입니다.”
“…….”
장인제는 순간 생각에 잠겼다.
법도 무시하는 깡패로 살아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랑원 원장에게 저항한다는 생각은 해본적도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럴싸하다.
왜 내가 그 자식을 미워하지 않았던 거지?
그런 간단한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인제에게는 사랑원 원장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이 생판 모르는 남자가 찌르고 들어왔다.
“왜요? 당신도 함께 파멸할 것 같아서 그렇습니까? 안심하세요. 공소시효 자체는 지난 일 아닙니까? 게다가 당신들은 사건 당시 미성년자였으니 아무 문제 없지 않습니까?”
“이, 이자식. 너 뭐야? 어떻게 그걸 알고 있어? 나, 나는 안했다고!”
장인제가 거부하자 류하리도 당황했다.
‘아니 지금 이 둘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시현의 수사과정을 본 류하리로서는 대체 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장인제의 리액션을 보면 완전 제대로 짚은 것 같은데?
과연 시현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신은 안했다? 그럼 누가 했습니까?”
“그게…. 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네놈 대체 뭐야?”
“저는 탐정입니다. 약간의 대가를 지불한다면 사랑원 원장에게 그 죄에 합당한 파멸을 치르게 하지요.”
“뭐?”
“물론 당신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할 겁니다. 시현 탐정사무소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거든요. 계약만 한다면 말입니다.”
“…….”
“당신이 그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지금 당신의 삶을 파괴하면서 까지 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저 아주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시면 됩니다.”
“이자식, 그게 지금 날 협박하는거 아니고 뭐야? 대체 내게 뭘 원하는데? 깜빵에 들어가라는 거냐? 아니면 돈이냐?”
“아니요. 수명입니다.”
“수명?”
“네. 당신의 수명 1년입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미친 놈이?”
장인제는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명을 달라고 하면 당연히 놀라겠지.
제정신 박힌 사람은 수명을 거래할 수 있다는 말을 절대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제게는 그 수명을 받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수명 1년으로 당신이 경찰에 잡혀가는 일 없이 깔끔하게 사랑원 원장을 파멸시켜 드리지요.”
“저, 정말 수명을 받아가겠다고? 돈이 아니라?”
“네.”
“…….”
수명을 달라고 하면 미친놈처럼 들리지만 돈도 필요없이 수명만 받겠다고 하면?
더 미친 놈처럼 들린다.
그러나 그 미친 놈이 놀랍게도 그의 가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죄책감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묻어둔 비밀을 적나라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자, 잠깐. 생각 좀 해보고.”
장인제는 시현의 말에 손을 떨었다.
“다, 담배 좀 피고 와도 되나?”
차에서 해방시켜달라는 요구다.
물론 믿을 수 없다.
“참으시지요?”
“제기랄.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
“그렇습니까?”
시현은 장인제의 팔뚝에 드러난 문신을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사랑원 원장과 아직도 함께 일을 하고 있나 보군요.”
“아냐 일은 무슨…… 딴놈들은 그 작자 밑에서 월급받고 있지만 나는 달라.”
“월급이 걸린게 아니라 사업파트너 아닙니까?”
“아, 아니야.”
“보통 수명을 달라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자세히 물어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늘어지지 담배를 피고 오겠다느니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할 수 없겠다느니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보아하니 원장을 공격하지 못할 입장인 것 같군요?”
“아, 아니라고.”
장인제는 그렇게 말했지만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그가 폭력배가 된 이후 사랑원 원장과는 이래저래 많은 이익을 주고 받았다.
돈 세탁을 위해서 사랑원 원장이 보유한 피혁 회사등과 거래를 하고 대신 사랑원 원장이 저지른 짓들의 뒷수습을 돕곤 했었다.
장인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뜯어먹던 사랑원 원장을 경멸했다.
허나 또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랑원 원장을 보며 자신이 다른 이들과 달리 거물이 되었음을, 자신이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 마침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사랑원 원장과의 거래로 그는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뭐 알겠습니다. 당신이 관심이 없으면 당신은 제외하고 다른 분들과 계약을 해야 겠군요. 아무래도 원생들 중 처벌받는 자가 나와야 이야기가 성립되겠지요. 원장만 구속되면 이상할 테니까.”
“아, 아니 잠깐!”
장인제는 자신을 은근히 협박하는 시현의 말에 당황했다.
“그, 수, 수명이 대체 뭔데? 어떻게 계약하는 거야?”
대답 대신 시현은 계약서를 꺼냈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사랑원 원장을 처벌하기 위해서 당신의 수명이 1년 정도 줄어들어도 아깝지 않다고 진지하게 생각해주시면서 서명하시면 되는 거지요.”
“지, 진짜인가? 정말 그거면 된다고?”
“예.”
“……….”
“그게 싫으시면 그냥 나중에 처벌받으시면 됩니다. 사건 자체야 공소시효 지났을 때 벌어진 일이지만 시체가 나중에 발견되면 시체가 발견된 후로 공소시효를 재조정한 새로운 죄목이 추가될 것 같군요. 아마 위증죄나 시체유기는……”
“아, 알겠어. 이 개새끼야. 할께. 한다고.”
장인제는 시현의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장인제의 사랑원 원장에 대한 감정은 좀 복잡했다.
그를 도우면서 뿌듯하기도 했지만 사랑원 원장이 심판받아 마땅한 악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처벌할 수단이 없고 그도 함께 물려있어서 그렇지.
그렇다고 계약서를 쓰지 못할 거냐면 그것도 아니다.
* * *
시현은 장인제에게 거의 강요하듯 계약서를 받아내고 그를 차에서 내려주었다.
“흐음. 역시 아무리 학대 받던 사람이라고 해도 키운 정이라고 해야 하나. 인간의 마음은 단지 증오 하나만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니로군요.”
시현은 장인제를 보내주며 그렇게 평했다.
“그래서? 지금 이 계약 유효한 건가요?”
류하리는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시현이 거의 협박을 해서 계약서를 받았는데?
게다가 시현이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장인제는 성인이 된 이후에, 사랑원에서 완전히 독립한 이후에도 사랑원과 거래를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죄책감이나 사랑원 원장에 대한 혐오 또한 진실일 겁니다. 계약이 유효하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2000년대 초에? 대충 말하는 뉘앙스를 보면 그……”
살인사건 같은데.
하지만 류하리는 차마 그 말을 꺼내진 못했다.
경찰로서의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함부로 살인사건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살인사건이라고 경솔히 말했다가 민원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달리 경찰이 아닌 시현은 거칠게 없었다.
“사랑원에서는 2000년대 초, 원생들에 의한 원생 살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그걸 단언할 수 있죠? 전 자료를 봤는데 전혀 몰랐어요.”
“우선 진열장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갑자기 상장이 사라졌습니다.”
“그게 왜요?”
“사고 터진 후 나대기를 자제한 거지요. 그리고 그때와 동시에 일어난 일이 바로…. 친권 서류 조작입니다.”
류하리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게 왜요? 친부모에게서 친권을 빼앗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고 해서 그런게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봤는데 이게 아마 공문서 조작과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문서 조작이라니요?”
“주민등록 말입니다.”
시현은 그렇게 말했다.
“주민등록?”
“실제 원생들 숫자보다 서류상의 원생이 더 많습니다. 보고 의문을 품지 않으셨습니까? 사랑원 규모에 비해서 졸원생 수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걸?”
“그래서 주민등록을 위조했다고요? 아니 잠깐만. 그게 가능한가요?”
대한민국의 주민등록을 그렇게 쉽게 늘릴 수 있다고?
류하리는 반신반의했다.
주민등록 시스템은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무슨 디스토피아 같이 들리는 너무나 강력한 사회통제 수단이다.
전 국민의 지문까지 떠버리는 이런 시스템에 그런 맹점이 있단 말인가?
“시설에서는 쉽게 주민등록 위조가 가능하지요. 고아가 생겼다. 누가 고아를 앞에 버리고 갔다 하면서 이미 등록된 고아를 다른 사람인양 보여줘서 다시 등록하면 감쪽같이 서류 상 주민등록이 늘어납니다. 사람 하나로 여러 명의 주민등록을 만들 수 있지요.”
“지문은 어쩌고요?”
“주민등록 때는 기존 지문들 모두와 교차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그냥 지문 데이터를 데이터 베이스에 올릴 뿐이지요.”
실제로 수사현장에서 뜬 지문을 지문 데이터 베이스에 넣고 돌리면 컴퓨터가 풀 가동되어도 한참 대조작업이 진행된다.
등록할 때는 데이터 베이스에 올리는 것 뿐이니 동일인을 다른 이름으로 여러번 주민등록에 올리는 것은 가능하다.
즉 사랑원 원장 조철진은 고아들을 중복으로 등록시켜서 없는 인간을 만들고 보조금을 늘려받고 그래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원금을 받는데 실사가 나오지 않나요?”
“그 진열장의 상장들 대부분이 보건복지부와 춘천시장에게 받은 겁니다. 실사가 나오는 쪽이랑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게다가 원장은 나름대로 몸을 사린 겁니다. 처음 사랑원을 만들었을 때부터 주민등록에 손을 댄게 아니라 사건이 터지고 난 이후, 시체를 숨기기 위해서 원생의 숫자를 불리기 시작한 거죠.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암매장 당한 사망자를 숨기려면 가짜 주민등록을 무더기로 만드는 거죠.”
시현의 표정은 신랄했다.
“주민등록 제도는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신원 제도입니다. 하지만 시설에서는 그걸 아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지요. 다만 의무교육이나 군대문제 때문에 실사를 받을 수 있으니까 학교를 진학할 수 없는 지체발달장애인이 주민등록 늘리기에 적합하겠군요.”
“왜 그런 걸 자세히 알아요?”
“그야 저도 시설 출신이거든요. 뭐 저는 시설에 그렇게 오래 있진 않았습니다만 제가 시설을 운영할 때 어떻게 하면 악착같이 뜯어먹을 수 있을까 그런 걸 궁리해보았죠.”
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보통 시설출신이라고 그런 생각까지 하나? 류하리는 어이없어했다.
“그럼 당신은 정말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나요?”
“네. 오히려 살인사건이 아니면 이상합니다.”
시현은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