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화
사랑원 아이들 #6
“왜죠?”
“사람 정도 죽지 않으면 사랑원 원장처럼 뻔뻔한 인간이 자중할 리가 없지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또 설득력이 넘치긴 하는데……”
류하리는 시현의 뻔뻔한 행동에 경탄했다.
“그리고 사랑원이 군대같이 운영한게 30년입니다. 고등학교 졸업한 다큰 성인들을 모아둬도 군부대 역사가 30년이면 사망자가 적잖게 나옵니다. 하물며 어릴 때부터 군대식으로 굴린 곳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 그렇게 말하니까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그걸 가지고 냅다 졸원생에게 찔러보는 건 너무 무모하지 않나요?”
“콜드 리딩이지요. 처음부터 살인사건이니 뭐니 말한 게 아니라 저들의 반응을 보고 조절해가면서 한 겁니다.”
“……….”
그러니까 시현은 장인제의 반응을 보면서 완급을 조절했다는 것이었다.
대화하는 와중 전혀 막힘없이, 청산유수로 말했는데 그게 콜드리딩을 하면서 선택한 것이었다니.
류하리는 새삼스럽게 시현의 담력과 임기응변에 놀라워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어째서 계약자인 권성현씨는…. 그걸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권성현의 사랑원 생활 기간을 살펴보면 몰랐을 리가 없다.
하지만 권성현은 사랑원 원장이 위선자라고, 횡령과 아이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말했을 뿐,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자신도 가담자이기 때문이지요.”
“네?”
“자기도 사건에 연관이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켕기는 일을 굳이 들추어낼 생각은 없었던 거죠.”
“놀랍군요. 보통은 자신이 가담자면 사건 조사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텐데요.”
“의뢰 내용을 보면 원장을 파멸시켜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의뢰인은 그저 사랑원 원장이 법의 심판대로 끌려가 말랑말랑한 처벌을 받는 걸로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려다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법보다 더한 처벌을 원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랑원 원장의 범죄행위를 입증하기가 꽤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것만 입증해줬어도 될 일을 시현이 수명 욕심에 괜히 일을 크게 키우는 게 아닐까?
시현은 사이다패스는 아예 죽여주기까지 하니까 자신도 법으로 할 수 있는 미적지근한 처벌 이상의 처벌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계약자가 그걸 원한 건 아니지 않는가?
‘이 인간이 괜히 일 키워서 여럿 엮어가는 거 아냐?’
류하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빠앙!
경적 소리와 함께 눈앞에 스타렉스 승합차 한 대가 시현의 차를 막아선 것이다.
* * *
장인제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애써 기억 속에 묻어둔 기억이 다시금 스멀스멀 떠오르면서 그의 입술을 파르르 떨게 했다.
사랑원 생활중 유달리 굼뜬 녀석이 있었다. 분명히 이름이 정태호였다.
그 아이 때문에 다들 단체로 기합을 받는 일이 매번 벌어지자 당시 군기반장이던 장인제와 그 동기들은 정태호에게 린치를 가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버릇만 고쳐주려고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태생이 굼뜬 정태오는 긴장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실수를 하는 타입이었고 그때마다 사랑원 원장은 모두에게 연대책임이라며 계속 학대를 퍼부었다.
잠잘 시간을 줄이고, 근로시간을 늘이고, 뜨거운 물 대신 찬물에서 씻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원장 자신이 돈 아끼려고 핑계를 댄 것 같았지만 사랑원의 아이들은 그러한 내막까지 헤아릴 줄은 몰랐다.
그저 모두의 원한이 정태호에게 쏟아질 뿐.
결국 다들 정태호를 기수 열외하기로 하고 시시때때로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어느날 정태호는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다.
전신에 멍이 잔뜩 든 채로.
누가 보더라도 폭행에 의해 살해당한 그 처참한 모습에 아이들은 충격을 받았다.
사랑원 원장은 그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우리 애들이 사람을 죽이다니.’
자신이 아이들을 괴롭혀 서로서로 물어뜯게 만들고 결국에는 이 사달을 일으켰다는 인식은 전혀 없었다.
그저 뻔뻔하게, 아이들이 정태호를 때려죽였다는 인식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수를 써보마. 대신 너희들도 이건 비밀로 해야 한다. 너희들 남은 인생을 죄다 감옥에서 허비하고 싶지는 않겠지?’
사랑원 원장은 아이들을 얼르고 달랬고 감옥 갈까봐 두려워진 아이들은 다들 입을 다물었다.
모두 공범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저 탐정이 들쑤시고 다닌다고?
짜증난다.
그는 이 감정을 짜증이라고 규정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부하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어본다.
“일단 그 연놈들 차는 미행하고 있는데요.”
“위치는 알고 있다 이 말이냐?”
“네. 당장 춘천을 떠날 줄 알았는데 근처 길가에 세워두고 있네요. 습격할까요?”
“하지만 혹시 형님이 걔들이랑 뭐 약속하신게 있다면 놔둘 수 도 있습니다.”
장인제의 부하들이 시현과 류하리를 습격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까페에서 장인제는 시현에게 단번에 제압당해 그의 차에 끌려가 버렸다.
그런 추태를 부하들 앞에서 보였으니까 이 부하들이 내심 그를 우습게 본다.
지금 말하는 거도 그렇다.
‘혹시 형님이 약속하신 게 있다면 놔줄 수도 있다.’
굉장히 건방진 말이었다.
‘빠따나 맞고 살던 새끼가 말하는 뽄새가….’
장인제는 실실 웃고 있는 부하들을 흘겨보았다.
장인제는 이 부하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 생각해보았다.
명분상 형 동생 하고 부르고 때때로 구타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저런 핏덩이들에게 농락당하는 걸 보고서도 계속 자신을 윗사람이라고 생각할까?
건달들이 의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사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하지만 부족한 것이 의리이기 때문이다.
동생 놈들이라고 방심했다가는 언제 뒤통수 깨져서 넘어갈지도 모르는 짐승같은 놈들이다.
하나같이 짐승같은 놈들인데 그놈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야 잠깐만. 원장에게 전화걸지.”
장인제는 사랑원 원장 조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번거롭게 되었군요.”
시현은 자신의 차 앞에 스타렉스 승합차 한대가 서서 길을 막는 걸 보며 혀를 찼다.
길에 세워두고 류하리와 함께 정리된 서류를 읽어보는 중이었는데 그 사이에 차가 달려와 그의 진로를 막은 것이다.
그리고 승합차에서 야구배트와 쇠파이프로 무장한 흉악해보이는 인간들이 내려섰다.
시현도 바로 차 문을 열고 나갔다.
“아니 잠깐만요.”
“차 안에 있으면 이놈들이 차를 때립니다. 차가 부서지는 건 싫거든요.”
“……….”
보통 차 부서지는 게 싫다고 무기를 든 폭도 앞에 나가면 차 대신 몸이 부서지기 마련이다.
아무리 차가 비싸도 자기 목숨보다 귀할 리는 없다.
하지만 시현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지.
“야 이 새끼야. 너…….”
“혹시 장인제 씨가 보내서 오셨습니까?”
“뭐 임마? 네가 그건 알아서 뭐해?”
“이제 곧 장례식장으로 직행할 놈인데?”
“대답 여하에 따라 여러분들의 부상정도를 조정하려고요. 요새 조직폭력배 해서 먹고 살기도 힘들텐데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시현이 싱긋 웃으며 그리 말하자 어이없어한 한 폭력배가 쇠파이프를 시현의 머리에 휘둘렀다.
-퍽.
시현이 머리에 쇠파이프를 맞고 쓰러졌다.
무기를 휘둘렀던 놈이 놀랄 정도였다.
보통 사람은 눈 앞에서 무기를 휘두르면 어떻게든 급소를 가리는 법인데 시현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머리로 쇠파이프가 날아오건 말건 그대로 맞아버렸다.
막으려다가 팔이나 부러지길 바라고 한 일인데….
“크, 큰일났다!”
폭력배들도 시현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설마 쇠파이프를 피하지도 않고 그냥 눈 뜨고 맞아버리다니.
“뭐 이런 새끼가 다있지?!”
“어쩌지? 도, 도망쳐야 하나?”
폭력배들조차 당혹스러워 하는 그때….
“흐음.”
시현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일어났다.
“영상은 괜찮게 찍힌 것 같고.”
시현의 뒤에서 차량의 블랙박스가 푸른 LED광을 번뜩인다.
“뭐, 뭐야? 너?!”
“이자식이….”
다들 쇠파이프를 맞고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일어난 시현을 보며 기겁했다.
시현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할짝 혀로 핥으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터 정당방위의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만 혹시 지병 있으신 분은 미리 말씀하세요.”
“뭐? 임마?”
“우릴 뭘로 보고…..”
“아니 그런데 저놈… 상처 없어지지 않았어?”
쇠파이프로 머리를 후리면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와야 정상이다.
머리에서 피가 튀면 분수나 폭포를 방불케 해서 지혈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위험해진다.
뇌 손상도 손상이지만 실혈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피가 지혈도 하지 않는데 멎어있다.
“뭔 상관이야! 어차피 조져야 할 놈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폭력배들은 자신들을 우습게 여기는 시현의 도발에 분개해 앞 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지병이 없을 리가 없는데? 미리 말해두라고 경고했습니다?”
시현은 폭력배들을 향해 미소지었다.
그리고 사람을 두들겨 패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 *
‘와. 소리가 진짜.’
류하리는 사람을 때릴 때 철떡철떡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며 경악했다.
너무 과장되지 않았으면서도 섬찟한 소리다.
잠시 후 폭력배들이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다행이군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도망갈까봐 걱정했는데.”
“으윽….”
“이, 이자식.”
폭력배들은 바닥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시현은 그들에게 다가가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으악!”
“뭐, 뭐하는 거야?!”
“그, 그러게요.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에요?”
보고 있던 류하리도 기겁했다.
“아 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폭력배 여러분들을 위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요.”
“기념사진?!”
“이걸 찍어두고 여러분들의 집 근처나 춘천호 공원 같은데에서 프로젝터로 상영회를 틀어두면 재밌지 않겠습니까? 그렇잖아도 요새 캠핑용 프로젝터들이 값싸게 나와서 야외에서 영상을 틀어두기 쉬워졌단 말이지요.”
“……..”
폭력배들은 기겁했다.
“야 이….”
“아, 아니 저기. 선생님.”
“마, 말로 합시다.”
다들 벌벌 떨었지만 시현은 그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폭력배들의 바지를 벗겨 우스꽝스럽게 포개놓은뒤 사진을 찍었다.
실로 우스꽝스러운 사진이다.
저런 걸로 협박이 될까 싶지만 집근처 아파트 벽면에 프로젝터로 뿌려준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폭력배들의 사회에서 명예, 의리,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그것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위압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놀림감이 되었을 때를 감당하지 못한다.
‘윽, 상상해버렸어.’
류하리는 지금 이 끔찍한 사진이 아파트 벽면에 프로젝터로 비춰지는 장면을 연상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그걸로 저들을 협박하려고요?”
“그건 아니고 향후 노출될 수 있다는 약간의 불안감을 남겨주려고요. 그런 약간의 스릴을 더해주면 삶이 더더욱 즐겁고 매일매일이 두근두근 가슴설레지 않겠습니까?”
치욕 사진이 언제 노출될지 모르는 상황의 두근거림을 가슴이 설레인다고 표현해도 되는 건가.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