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16화 (216/269)

제216화

사랑원 아이들 #7

실로 우스꽝스러운 사진이다.

저런 걸로 협박이 될까 싶지만 집근처 아파트 벽면에 프로젝터로 뿌려준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폭력배들의 사회에서 명예, 의리,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것은 사실 그들이 그것들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위압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놀림감이 되었을 때를 감당하지 못한다.

‘윽, 상상해버렸어.’

류하리는 지금 이 끔찍한 사진이 아파트 벽면에 프로젝터로 비춰지는 장면을 연상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그걸로 저들을 협박하려고요?”

“그건 아니고 향후 노출될 수 있다는 약간의 불안감을 남겨주려고요. 그런 약간의 스릴을 더해주면 삶이 더더욱 즐겁고 매일매일이 두근두근 가슴설레지 않겠습니까?”

치욕 사진이 언제 노출될지 모르는 상황의 두근거림을 가슴이 설레인다고 표현해도 되는 건가.

류하리가 궁금해했지만 시현은 자신의 자의적 해석에 만족했는지 장인제에게 문자를 보냈다.

‘수명을 3년으로 늘려서 받겠습니다.’

“엑? 그게 끝이에요? 이 자식들을 보낸 건 그 인간인데요?”

“그래도 어쨌건 계약을 나누신 고객님 아닙니까? 고객만족의 길이란 멀고 험하지요. 특히 무형의 서비스 업종에서는 말이죠. 아무래도 수명을 받는다는 수상한 계약을 하다보니 고객님이 종종 저를 시험해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단 말이지요. 뭐 그런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고객만족을 선사하는 게 시현 탐정사무소의 영업목표입니다.”

의뢰인인 권성현이 뭐라고 의뢰했건 간에 시현은 자신의 방식으로 ‘고객만족’을 선사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런데 장인제 그 사람이 당신에게 계약 이야기는 다 들어버렸는데 어쩔거에요? 당신이 수작 부리는 건 이제 사랑원 쪽에서도 다 알텐데?”

류하리는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아무리 시현이라고 해도 자신이 수작부리는 걸 상대방에게 들켜버렸는데 과연 이후로는 어떻게 해나가려는 걸까?

“뭐 그거야 가장 훌륭한 조력자를 써먹을 때가 되었네요.”

“조력자?”

류하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현의 조력자라면, 그가 자주 이용하는 신용정보회사?

아니면 사기칠 때 함께 팀을 짜는 사기꾼들?

그것도 아니면 폭력배들을 말하는 건가?

워낙 짚이는 게 많아서 누굴 이야기하는 건지 모르겠다.

* * *

사랑원 원장 조철진은 언제나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다독인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병대 식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때로는 굶기고 아이들 끼리 서로서로 매질하게 시키는 것?

요즘 세상에서는 아동학대로 여겨지는 이러한 행위 조차 그에게는 삶의 전부였다.

그가 체험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 구타와 학대였기 때문에….

아이들이 게거품을 물며 기절하고 엉엉운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교육’을 절대로 멈추지 않았다.

이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몸소 아이들에게 주입하기 위한 교육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끼리 서로 때려죽인 정태호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일말의 불안함이 있다면 그건 아이들이 잡혀갈까봐 불안한 것 뿐.

왜냐면 자신은 죄가 없으니까.

응당 아이들에게 주어져야 할 지원금을 횡령해도, 아이들의 식비를 줄이고 쓰레기같은 음식들을 먹여도, 때리고, 때로는 성적으로 학대하더라도 자신이 선하다는 것에 전혀 의심이 없었다.

매 순간순간 자신을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그에게 삶이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어제 갑자기 찾아온 자칭 경찰이라는 이들은 그에게 불안을 안겨주었다.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는 건 그리 두렵지 않다.

‘나같은 선한 사람을 사이다패스가 죽일 리 없다. 왜?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랑원의 졸원생이자 이 지역 근처에서 건달 일을 하고 있는 장인제에게도 경찰이라는 그들이 접근한 것이었다.

설마 경찰이 아니라 다른 사기꾼인가?

그 점이 그에게 불안을 안겨주었다.

참으로 놀라운 자기 긍정이었다.

* * *

“뭐? 자세히 확인해 두지 않았다고?”

조철진은 사랑원의 졸원생이자 지금은 사랑원의 시설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민혁에게 짜증을 냈다.

“네. 경찰이라는데 아는 경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건 인제 형이 더 잘하지 않겠습니까?”

“경찰 신분증 같은 건 사진으로 찍지 않았고?”

“화상 통화로 보여드렸잖습니까?”

“이 멍청한 녀석아. 화상통화는 슥 지나가잖냐.”

‘그럼 당신이 휴대폰에 저장을 해놓았어야지. 세상 어느 경찰이 경찰 신분증 사진으로 자세히 찍게 해달라고 하면 네 그러세요 하겠냐?’

조민혁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눈살을 찌푸렸을 뿐이다.

“뭐하는 녀석이지? 장인제에게도 접근했다는데….”

사실 접근 정도가 아니다.

시현은 장인제와 그 후배들을 아예 박살을 내놓았지만 이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허세가 심한 성격인 장인제가 자신의 추태를 굳이 이들에게 말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졸원생들에게 연락을 돌려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민혁이 그렇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래! 그거 좋겠군. 네가 돌려봐라.”

“제가요?”

“그래. 아무래도 너희끼리 이야기 하는 게 더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겠냐? 그럼 나는 교회 가마.”

조철진은 사랑원의 경영이나 관리는 졸원생인 직원들에게 맡기다 시피 하고 매일같이 교회를 나가곤 했었다.

고급 외제차나 명품을 입고 교회에 나가서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것이다.

조민혁은 그런 조철진을 한심하게 생각했지만 슬프게도 그런 조철진의 신뢰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다.

애정 따위는 쥐뿔만큼도 없고 그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소인배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인정이나 관심이 목말라서 견딜수 없는 것이다.

“네… 아버지.”

조민혁은 그리 말하고 심호흡을 했다.

* * *

HE엔터테인먼트의 박주원PD는 사회복지 전문 PD라고 불렸다.

적어도 앞에서는 말이다.

방송가 사람들은 이미 그가 어떤 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방송프로그램을 만들고 자신의 아내 명의로 된 사회복지재단의 후원계좌에 후원금을 쏘게 하고 그 돈을 적당히 유용한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다.

제대로 된 선의의 복지시설도, 누가 봐도 사기꾼이 운영하는 복지시설도, 일단 그는 자신의 아내를 이용해 돈을 한차례 우려낸 후에 넘겨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는 이미 강남, 서초, 송파에 여러 건물들을 매입한 알부자가 되어있었다.

그래서 사정을 알만한 사람들은 그의 성공을 질시하고 그를 혐오한다.

그러나 돈과 권력을 거머쥔 PD 앞에서 대놓고 그런 티를 내는 사람은 없다.

어디든 안그렇겠냐마는 방송계에서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것이다.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할 것 없고 귀찮게 구는 사람도 없으니까.

박PD 역시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다.

내게 내심 불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오히려 아부하는 사람들.

그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영향력과 지위, 그 권력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왜 옛날 권력자들이 뻔한 아부에 녹아나는 지 알겠다니까.’

아마 그 옛날의 군왕들도 그와 같은 심경이었으리라.

하지만 최근의 그는 그러한 위치와 권력이 약간 귀찮다.

그의 방송계의 권력과 금력을 두려워 하지 않는 남자, 사랑원 원장 조철진이라는 인간이 계속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후원금을 같이 나눠먹는 입장이니까 지속적으로 전화를 거는 건 업무상 필요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화를 보면 그런게 아니다.

그냥 방송인인 자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하긴….’

박PD는 사회시설들을 운영하는 이들 중 재정권한이 강한 사람들, 어딘가 수상한 사회시설을 운영하는 이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다 비슷하다.

땅값 싼 오지의 시설에서 그나름대로 그지역실세고, 시설의 아이들이나 직원들 위에서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인정이나 권위를 갈구한다는 것이다.

‘뭐 들러붙는 놈이 어제 오늘도 아니니 적당히 뜯어먹다 잘라내야 지….’

그런데 이번에는 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 * *

[그래서 자칭 경찰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우리를 캐고 갔는데 그쪽에서 어떻게 알아볼 방법 없소?]

“저는 그냥 평범한 PD일 뿐이라서요. 그런 것 까지는.”

박PD는 경찰이 조사하러 왔다는 이야기에 흠칫 놀랐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 지금까지 일 많이 해오셨으면 그런데를 모르지는 않을텐데?]

“그건 조 원장님이 더 잘하시지 않겠습니까?”

네놈이 깡패나 건달, 기타 범죄자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겠냐?

그런 뜻에서 한 말이었다.

[나야 내 사는 동네 밖에 잘 몰라서.]

조철진은 둔한건지 모르는 체 하는 건지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전화기에 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잠시 문자가 들어와서 확인 좀 하겠습니다.”

박PD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조철진의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문자가 미친 듯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 이건?!”

그와 관련있는 사람들이 다들 걱정해주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확인해보니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 내가 사이다패스 청원 사이트 1위가 되었다고?!”

* * *

“후우. 아주 유익한 작업이군요.”

“아, 맙소사.”

류하리는 시현이 하는 짓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에요?”

시현은 조철진과 박주원PD, 그리고 박PD의 아내이자 복지재단의 이사장인 전미영을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하라는 청원 사이트에 올려버린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스트리머 살인사건때 알게 된 웹 방송하는 변호사 장변TV에 박PD와 그 아내 전미영, 그리고 사랑원 원장 조철진의 행각을 적당히 고소하지 못할 정도로 뭉뚱그려서 보내놓았다.

물론 사이다패스 청원 사이트에는 장변 TV의 방송을 링크해놓아서 이들이 어떻게 이런 사기에 가까운 불법 모금을 해왔는지 설명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페이지 뷰 조작.

시현은 어렵지 않게 이 사건의 청원수를 1위로 올려놓았다.

경찰들의 조사를 피해 해외 각지로 우회해서 수사에 훼방을 놓은 것은 물론이었다.

“당신이 사이다패스에게 청원을 넣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만약 사이다패스가 죽이기라도 하면….”

“괜찮습니다. 페이지 뷰 조작이라는 걸 최형림 검사가 모를 리가 없지요. 중요한 건 여기 명단에 오른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불안해진 사람들은 아무래도 다루기가 쉬워지니까요.”

류하리도 물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니 하지만 만약 최형림 검사가 모르고 그냥 진행해버리면 어쩌려고요?”

류하리는 그점을 지적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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