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17화 (217/269)

제217화

사랑원 아이들 #8

“그렇다면 앞으로 더더욱 쓸모가 많아지겠지요. 사이다패스를 쉽고 저렴하게 조작가능해진다는 소리 아닙니까?”

“아니 그게 말이죠.”

류하리는 시현이 표적들, 그러니까 사랑원 원장이나 방송국 PD, PD의 아내이며 사회복지 재단의 이사장의 목숨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류하리는 문득 생각해보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잡혀 항상 위태로운 상황에 있는 그에게 그저 죽음, 단지 죽음이란 얼마나 부러운 것인가?

그러니 저들의 죽음에 대해서 동정하거나 우려하라는 것은 적어도 시현에게는 너무한 처사였다.

‘자 가난한 이여. 저기 부자들을 위해 울어주렴. 네가 노동을 하다 프레스에 손가락 발가락이 잘렸을 때의 고통보다 저들이 골프 라운딩을 하다 얻게 된 골프 엘보의 통증에 가슴 아파해주렴.’

이런 것도 아니고… 하물며 저들은 선인도, 무고한 이도 아니지 않는가?

‘뭐 나도 경찰 아니면 그런 악당들 목숨을 신경썼겠냐만. 경찰이란 말야.’

그래서 류하리는 자신의 입장을 말해주었다.

“전 경찰이라는 입장이 있잖아요.”

“다행이군요. 저는 탐정이라 그런거 없습니다.”

“개….”

“네?”

“아, 아뇨.”

류하리는 순간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욕할 뻔 했다.

‘욕할 명분은 없지만 욕하고 싶다. 진짜.’

뻔뻔한 시현의 태도에 류하리의 시선이 방황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 청원 사랑원 사건 전원에 대한 청원이잖아요? 왜 이렇게 한 거죠?”

시현이 청원 사이트에 올린 청원은 사랑원 원장을 죽여달라는 청원이 아니다.

-춘천의 모 무인가로 시작한 오래된 복지원이 최근 모 방송에 출연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그 방송의 모 PD는 아내명의의 사회복지 재단으로 1차 취합해 수수료를 떼고 전달하는 방식으로 사욕을 취하고 있다.

-복지원에서는 해병대 식으로 아이들에게 기수를 부여해 학대하고 있으며 병영문화에 찌든 원생들끼리의 학대행위도 심각하다.

-또한 장애인의 등록을 중복해 지원금을 부정수급하고 있으며 원장은 별도의 사업체를 통해 돈세탁을 하고 있다.

청원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사이다패스가 누굴 먼저 죽일지 모른다.

방송국 PD와 그 아내를 죽일 것인가.

아니면 원장?

사건에 관여한 원생?

전부 다?

“뭐 여긴 경찰들도 주목하지 않습니까? 예상되는 타겟을 늘려놓아야 경찰들이 더 번거롭겠지요.”

‘아, 네. 죄송합니다.’

류하리는 내심 다른 경찰들에게, 특히 이 사이다패스르 전담해서 수사하는 전담 팀에게 죄송한 마음을 느꼈다.

경찰들이 격무로 헐떡이고 있는데 일을 더 늘리다니….

경찰의 배신자가 된 기분이다.

“자 그럼 이제 밑작업은 끝난 것 같고 본 작업에 들어갈까요?”

시현은 전화기를 들어 귓가에 가져가면서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 * *

시현의 고용주, 그러니까 제일 처음 시현에게 의뢰를 들고 온 의뢰인 권성현은 당황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랑원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조민혁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가, 간만에 무슨 일이야? 조민혁?”

권성현이 더 연상이긴 하지만 사랑원 기수로는 둘은 동기 였다.

비록 권성현이 전과를 벌여 기수 열외같은 상황이 되긴 했지만 사랑원 졸원생들 중에 전과자는 의외로 많았기 때문에 졸원생들 사이에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기수라는 거 졸원하고 나니까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사회 곳곳에 진출해있는 해병대들 기수 문화도 득실을 따지자면 애매하다.

본인이 그 안에서 긍정을 얻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면 득실이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사랑원 졸원생 대부분은 아주 작은 득실조차 소중했다.

남들이 버리는 티끌조차 긁어모으지 않으면 모진 세파를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졸원하고 나면 기수나 그런 것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어제 누가 사랑원에 찾아왔어.]

조민혁이 말문을 열었다.

“뭐? 누구?”

의뢰인 권성현은 시치미를 뗐다.

[경찰이라고 하더군. 졸원생들 정보를 이것저것 조사해갔는데 인제 선배 말로는 경찰 아니라고 하더라고.]

“뭐?”

[그리고 사이다패스 청원 사이트에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올라가 있지. 어쩌면 원장님을 죽일지도 몰라.]

“원장 말야?”

권성현은 미묘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원장을 증오한다.

다들 원장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원생들 사이에서는 묘하게 원장을 옹호하고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사랑원의 직원으로서 원장의 최측근을 자처하고 있는 조민혁이 그러했다.

그는 사랑원 원장 조철진에게 가장 가혹한 학대를 받은 인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예쁘장한 용모를 가지고 있던 그는 종종 원장에게 불려갔었는데 어릴 때는 다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알게 되었다.

다 자라서 더 이상 원장에게 성적 학대를 받지 않게 된 조민혁은 그 후에도 사랑원 원장을 위해서 지극정성으로 일하며 스스로 심복을 자처하고 있었다.

[동기나 선배들 중에 배신자가 있어.]

‘이 미친 놈아. 그게 나다.’

권성현은 짜증이 났지만 또한 두려웠다.

조민혁은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미친 놈이니까.

[혹시 의심가는 사람 있으면 제보해줘.]

“그, 그래. 아 배달 콜 왔다. 일하니까 끊을께.”

권성현은 감히 배신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조민혁을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 * *

조민혁과의 전화를 끝마친 의뢰인 권성현에게 다시금 전화가 왔다.

시현의 전화였다.

“다, 당신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경찰을 사칭해서 사랑원에 들렀다고? 그걸 왜 내가 사랑원 친구에게 들어야 하는데?”

[자 진정하시지요. 아직 의뢰 받은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그러시면 곤란하지요. 조사에 대한 보고를 드리고 싶은데 찾아뵈어도 되겠습니까?]

“찾아뵙겠다고? 아니 내가 어디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그게 실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뭐?”

의뢰인 권성현은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을 하는 대로 돈이 되기 때문에 배달 프리랜서들은 종종 가혹한 환경에 스스로를 혹사하곤 한다.

의뢰인 권성현 또한 그래서 그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서 컵라면과 즉석 식품들로 끼니를 떼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 탐정을 만날 수 있을까?

뭐 사실 이미 고용 계약은 성사되었으니 그후에 고용주가 번듯하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이미 발목에 전자발찌 까지 찬 의뢰인 권성현은 더더욱 남의 시선을 신경썼다.

내가 천하다고, 가난하다고, 못생겼다고,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고, 전과자라고, 그런 이유들로 남이 자신을 업신여길까봐 두렵다.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올바른 양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의 인성은 온통 상처 뿐이었으니 누가 보듬어주지 않은 그의 언행은 다른 이들에게 또한 상처를 주는 법.

본인도 자신의 존재가 남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는 걸 알아 조심하려 하는데 그럴 수록 피해망상은 더욱더 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런 어떤 대응도, 혹은 자학도 하기도 전에 탐정이 당도했다.

“윽… 어떻게.”

“뭐 워낙 일을 잘하는 탐정이니까요.”

“일을 잘하긴… 원장도 알게 되었잖아.”

“누가 자신을 조사한다는 걸 말이죠?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제가 알아낸 걸 공유해드리지요.”

시현은 의뢰인 권성현의 테이블 앞에 앉아서 말했다.

“2000년대 초, 사랑원에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컥?!”

갑자기 대뜸 한가운데 직구를 날리는 시현에게 의뢰인이 놀랐다.

“괜찮습니다. 말해주지 않으신 건 그 이유를 알만하니까요. 본인도 가담하셨지요?”

“아니… 저기… 대체 그걸….”

의뢰한지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벌써 그렇게 알아냈단 말인가?

물론 이것은 시현이 발로 뛰어서 알아낸 사실이다.

하지만 의뢰인 권성현 입장에서는 너무나 신비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들이 평생 꽁꽁 감춰온 비밀을 단번에 알아내버리니 마치 영화나 소설 속의 명탐정을 목도하는 듯, 그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뭐 그게 제 테크닉이긴 합니다만.’

시현은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객을 압도한다.

설령 그것을 위해 사기를 치더라도.

뭐 결과가 워낙 좋으니까 과정은 사소한 문제다.

“그래서 말인데 관련자 전원을 불러낼 생각입니다만….”

“관련자 전원을?”

“네. 그런데 당시 원생들이 학대에 가담했다는 건 아는데 누가 어느정도 책임을 지고 있는지는 모르겠거든요. 그걸 알려주시지요.”

“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동기들을 해치고 싶진 않아.”

“설령 그게 살인이라도 말입니까?”

“그, 그렇잖아? 이건 원장의 잘못이야. 원장이 우리들을 그렇게 시켰다고! 안그래? 서양에선 그러면 그 교육자나 감독자의 책임이잖아?”

의뢰인은 그렇게 주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지나치게 자학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어기제를 엉뚱한 사람이 쓰면 안되지요.”

“뭐?”

“뭐 이건 고객님을 생각해서 하는 개인적인 충고입니다만. 이경우 고객님이 스스로를 자책했어야 합니다.

‘난 살인자야. 죽어 마땅해. 그런데 목숨이 모질어서 죽지도 못하겠어. 이 더러운 삶. 아침에 눈을 뜨는 매 순간 나는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야!’

라고 말입니다.”

“…….”

시현은 마치 연극하듯 양팔을 벌리며 과장되게 외쳤다.

의뢰인 권성현이 되려 놀라고 당황스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살인자를 언급할 때는 심장이 오그라들어 얼굴로 피가 몰려 죽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객님이 그렇게 자책을 과하게 하셔야 제가 위로할 거 아닙니까.

‘아 그건 고객님의 잘못이 아니라 원장놈이 잘못한 겁니다. 해외 법률을 보면 다 원장놈이 잘못한 겁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

“만족스럽지 않습니까? 고작 1년치 수명을 내걸었는데 삶의 지혜, 사회생활과 대인활동의 원칙마저 알려주는 탐정서비스라니. 괜찮으시다면 지금 지도 앱을 눌러서 저희 사무소의 평가에 별 다섯개를 던져주시지요.”

“…….”

의뢰인 권성현은 순간 시현에게서 공포마저 느꼈다.

거절했다간 죽일지도 몰라.

그런 근거없는 공포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그를 사로잡았다.

‘배달 일을 해서 요식업자들,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별점에 목을 메는지 알고 있었는데 탐정도 그런가? 이 자식 뭐 악마같은 거 아니야?’

그들의 가장 끔찍한 비밀을 단번에 파헤치고 수명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 탐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초자연적인 존재 같다.

그런데 별점을 달라고 한단 말이지.

“자 여기 당시에 사랑원에 있던 이들을 리스트업했습니다. 여기에서 관련자들을 각각 직접 살해자, 간접 살해자, 방관자, 피해자로 나누어 정리해주시지요.”

의뢰인 권성현는 홀린듯 시현이 내미는 리스트를 받아들었다.

이 탐정의 현란한 말솜씨, 그를 쥐고 흔드는 말재간과 은근한 협박에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