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사랑원 아이들 #9
늦은 밤, 최형림은 자신의 자택에 먼저 들어와 있는 사이다패스를 보고 쓴 웃음을 지었다.
‘익숙해진다는 게 무섭군.’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의 침대 위에서 태블릿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사랑원이라. 이거 죽이자. 성취 리스트에 있는 놈들을 너무 연속으로 죽여서 좀 숨 돌릴 때도 되었지.”
그녀는 바로 어제에도 성취리스트에 있는 고위 공무원을 죽였다.
사이다패스는 최근에도 쉬지 않고 성취 리스트의 인물들을 죽여왔다.
하지만 너무 성취리스트의 인물들만을 죽이면 다음 표적이 쉽게 노출되니까 때로는 청원 사이트의 인물들을 죽이곤 한다.
그걸 숨 돌린다고 표현하다니 어딘가 인간으로서 잘못되었다.
애초에 살인을 수단으로 선택한 시점에서 인간으로서 잘못되긴 했지만 종종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사이다패스와의 대화에서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안됩니다. 그건.”
“왜?”
“이 청원은 조작되었습니다. 부정접속으로 청원 리스트를 올렸더군요.”
“조작이라고?”
“네. 노골적인 조작입니다.”
“그래? 경찰의 함정일까?”
“경찰이 그런 함정 수사를 벌일 수는 없지요.”
대한민국에서 사람을 죽여달라고 경찰이 청원했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다.
함정 수사를 하지 않으면 잡을 수 없는 데, 규정상 함정 수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함정수사를 한다면 그 부담은 본인들이 져야 한다. 예를 들어서 미성년자 성매수범을 잡기 위한 함정수사라면 설령 경찰들이 실수한다 해도 성적 약취를 당할 미성년자가 없다.
그러나 사이다패스를 상대로 함정수사를 했다가 실패하면 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러니 사이다패스를 상대로 함정수사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뭐 페이지 뷰 조작정도야 다들 하는 거 아냐? 여기 청원 올리는 사람들, 대부분 간절하잖아?”
사이다패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억울한 일이 있어서, 국법이 아니라 그녀에게 청원하는 자들이다.
그 간절한 마음에 페이지 뷰 조작이나 투표 조작 같은 걸 한다 해서 그들을 뭐라고 탓할 수는 없으리라.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이건 너무나 노골적인 조작입니다. 왜냐면 유입이….”
“유입이 뭐?”
“민원24 페이지, 경찰청, 서울시청 등등의 IP로 되어 있습니다.”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하라는 청원사이트는 남미쪽 호스팅 업체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VPN이 없으면 접속할 수 없지만 이 청원자는 대담하게도 정부 공공기관의 IP를 위조해 들어온 것이다.
“즉 뭐냐. 조작은 하지만 일은 벌이지 말아달라는 거네?”
“네. 그렇겠지요.”
“그럼 그대로 하지 말고 가만히 있는게 상대 수법에 놀아나는 거잖아? 안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상대방은 청원 페이지에서 1등은 하되, 사이다패스가 이들을 죽이지 않길 바라는 것일 수 있었다.
“그렇게나… 하고 싶습니까?”
“그래. 내용이 최근에 추가로 올라왔거든.”
“추가로 말입니까?”
“아직 안 봤어?”
사이다패스가 태블릿 PC를 최형림에게 돌려주었다.
그걸 본 최형림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랑원 관계자의 증언이 쓰여져 있는 데 그것에는 놀랍게도 원생들 끼리 집단괴롭힘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그걸 원장이 무마하기 위해서 그 후 주민등록을 조작해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중복등록해 원생 수를 증언이 있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사랑원이라는 곳은 아이들끼리 서로 죽이게 만드는 지옥이었다.
“그럼 누굴 죽일겁니까? 원장? 아니면 살인사건에 가담한 원생? 이 원장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방송국PD?”
“모두 다.”
사이다패스는 대량학살을 천명했다.
“안됩니다. 이렇게 다수를 죽여야 하는 청원은 설령 조작이 아니더라도 거부해야 마땅합니다.”
한 사건에 한 명 정도 죽여야 하면 쉬운일이다.
죽이고 난 뒤에나 경찰이 인지할 테니까.
그러나 만약 여럿을 죽여야 하는 사건이라면?
한 놈을 죽이고 또 다른 놈을 죽이면 경찰도 눈치챈다.
‘이 사건 관련자를 죽이네? 그렇다면 다음에는 누구를 죽이겠구나.’
그리되면 일이 까다로워진다.
그래서 거부했는데 사이다패스가 짜증을 냈다.
“언제부터 이렇게 까다롭게 된 거야? 이건 내가 하고 싶어.”
“이유가 뭡니까?”
“이유? 내가 당신이 자기 직장상사 죽이자고 할 때 물어봤어?”
“적어도 그때는 의견이 일치했으니까요. 제 대답은 분명합니다. 이건 조종당하는 행위입니다. 당신은 조종당하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야 해요.”
“애초에 난 이런 놈들을 참을 수가 없어.”
“이런 놈들이라면….”
“됐어. 구질구질하게 서로서로 이야기할 것도 없잖아? 알겠어. 이건 당신 도움없이 내가 알아서 하지.”
그 순간 최형림은 깜짝 놀랐다.
“무슨 생각입니까? 안됩니다.”
“이봐. 살인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내게 있어. 그런데 내가 죽이고 싶은 것도 당신 허락을 받아야 하나? 당신이 대체 뭘 걸었는데?”
“……”
“편리하니까 서로서로 이용하는 관계일 뿐이야. 선 넘어오지마. 그럼 당신을 죽여버릴 테니까. 알지? 나 검사란 족속들 상당히 싫어해.”
사이다패스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고 청원사이트를 살펴보았다.
“집단 괴롭힘인가.”
최형림은 무엇이 사이다패스를 자극했는지 깨닫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요새 점점 더 조작하기 까다로워지는 군.”
최형림은 사이다패스가 슬슬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는 걸 느꼈다.
* * *
춘천과 가평의 중간지대, 헌 농가건물을 개조해 만든 펜션에 시현과 류하리가 도착했다.
농사용 저수지 겸 연못을 옆에 끼고 있는 아늑한 산장에는 아침 안개가 잔뜩 껴있어 한폭의 수묵화같은 그윽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흠흠흠….”
시현은 콧노래를 부르며 다과를 테이블에 배치하고 있었다.
앞으로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미리 바비큐용 테이블 자리에 테이블 보를 깔고 손님들을 위한 과자, 차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뭐하는 거에요 대체?”
“그러게요. 정보과 경찰은 바쁘실텐데요.”
“아니 저 말고요.”
류하리는 자신에게 카운터를 날리는 시현에게 당황했다.
“왜 그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거에요? 이런 산속 펜션에서? 다들 모아두고 뭐 살인사건이라도 벌이게요?”
“그건 아닙니다. 뭐 당사자들간에 죽이려들 수는 있는데. 그걸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이들에게 계약을 받아낼 겁니다.”
“음.”
류하리는 눈으로 테이블의 좌석 숫자를 셌다.
여섯 명의 자리가 있다.
“여섯 명 전부요?”
“네.”
“욕심도 과하셔라.”
“딱히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고객만족을 제외하고는 지극히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그걸 경찰 앞에서 자랑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남들 다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살아요. 뭐 대단한 일하는 척 말해요? 게다가 지금 말하는 걸 보면 고객만족을 위해서는 법과 질서 쯤은 무시한다는 소리기도 하잖아요?”
“하하하.”
“왜 웃어요?”
“아니 그냥 할말이 없어서요.”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 그가 하는 일처리 방식은 류하리에게도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과거 류하리가 탐정이던 시절 그녀는 법이고 뭐고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된 지금 그녀는 경찰이라는 입장에 충실하다,
탐정이던 류하리를 기억하던 시현에게 지금의 류하리는 어색하다.
저 악마들이 한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쉽게 파멸시키고 왜곡시켰는가.
탐정 류하리와 경찰 류하리의 낙차에서 악마의 힘과 그들이 할퀸 상처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쨌건 고객님을 지켜주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 다른 분들까지 덩달아 혜택을 받는단 말이죠. 그게 고객님께는 얼마나 안좋은 일입니까? 굳이 혼자서 희생을 감수하는 데 다른 이들이 덤으로 무임승차하다니. 안될 말이지요.”
“나 하나 희생해서 내 친구들의 안전을 챙기는 걸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순진하시군요. 가족도 아닌데 그러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순진하달 것 까지야.”
그러나 시현은 어차피 이들에게 전부다 계약을 종용해 수명을 뜯어낼 심산이었기 때문에 류하리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할 생각도 없고.
“그럼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응?”
그때 시현의 전화기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현이 전화를 받았다.
[저, 사장님. 감지기에 알람이 왔습니다.]
사랑원 인근에 뿌려둔 카메라와 도청기의 모니터링을 하던 직원이 연락해온 것이었다.
“확인해봤습니까?”
[네. 카메라는 먹통이 되었는데 젊은 여자 목소리가….]
카메라가 먹통이 되었다면 사이다패스일 확률이 높다.
“어디 들어보죠.”
시현이 어플을 조작하자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원장 어딨어?]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젊은 여성이 사랑원에 와서 무례하게 대뜸 반말로 원장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들은 어영부영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시현과 류하리가 방문했을 때 있던 직원이 때마침 부재중인 모양이었다.
“사이다패스?”
류하리가 그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랐다.
왠지 모르게 티꺼운 태도로 말하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장거리 도청기를 통해서 들어와서 소음제거 필터를 몇차례나 걸쳐 뭉툭해진 음성이지만 말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네. 아무래도 청원 사이트에 1등으로 올려둔 것 때문에 사랑원에 찾아온 모양이군요. 사랑원 주소는 인터넷 검색만 해도 알 수 있으니까요.”
“그, 그거 큰일난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사랑원 원장은 사랑원에 잘 안나오거든요. 대부분 춘천이나 서울에 놀러다니고 있습니다.”
“아니,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사이다패스가 찾아다닐 거 아니에요? 그리고 최형림 선배가 그녀를 돕는다면….”
검사의 정보력은 장난이 아니다.
경찰들에게 수사 지시를 내릴 수 있고 검찰 수사관들은 기본적으로 유능하다.
사랑원 원장이 딱히 도피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최형림이 관여한다면 사이다패스가 사랑원 원장을 잡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현은 태연했다.
“별 일 아닙니다. 현재 최형림 검사와 사이다패스는 별도로 행동하고 있는 것 같으니 신경쓰실거 없이 일을 진행하지요.”
“아니 잠깐만요.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거죠?”
“그야….”
시현이 설명하려 할 때였다.
갑자기 시현의 휴대폰에 또 알림이 왔다.
사무실 방범장비에 뭔가 걸린 모양이었다.
“아 잠시.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여기서 해요.”
그러자 시현이 말 없이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겠냐는 항변이었다.
“제가 염치없이 군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당신도 제 경찰이라는 신분이나 입장을 이용해서 절 농락한 적이 많지 않아요? 그러니 이정도는 해주시죠. 딱히 뭐 당신을 감시하자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저도 알고 싶어서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야.”
시현은 그리 말하고 전화기를 여러개 꺼내더니만 그중 하나를 골라 그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젊은 여성, 사이다패스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