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사랑원 아이들 #10
사이다패스는 난항에 빠져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사랑원 원장을 찾으러 사랑원에 왔는데 그를 맞이한 건 자원봉사자들과 원생들 뿐이다.
원장은 없다고 하고 원생들의 절반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지능발달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라서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지치고 힘들어보였다.
피가 섞인 친자식이래도 돌보기 힘들텐데 생판 남인 이들을 돌보는 이들을 보니 그들의 노고와 희생이 보기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어….”
정작 원장은 돈 횡령하고 따로 놀고 있겠지.
얼마 있지도 않은 직원도 노인 두명 정도만 남았다.
젊은 남자 직원은 갑자기 외출할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는데 정말 외출할 일이 생긴건지 아니면 기부 받을거 다받아서 놀러나간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원장의 행보를 알아내자니 여기에 있는 이들을 협박하거나 해야 하는데 장애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협박하는 건 사이다패스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직원들은 말단직원일 뿐이고 자원봉사자들은 정말 자원봉사자라서 여기서 행패부릴 수는 없었다.
“완전 망했네.”
사이다패스는 시작부터 막혔다는 걸 깨닫고 머리를 감싸쥐었다.
역시 누굴 죽일지 말지 결정하려면 그에 따른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런 정보를 최형림이 제공해줬는데 바로 방금 전에 최형림이랑 싸우고 나왔는데 정보를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자니 민망하기 그지없다.
‘젠장. 어쩌지? 일단 방송국 PD를 조져놓을까? 방송국 PD와 그 아내는 그나마 찾기 쉽겠지?’
그리 생각한 그녀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빠져나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녀는 방송국 PD의 아내가 하고 있는 복지재단의 사무실 근처에 와 있었다.
“좋아. 여기는 어떨까?”
그녀는 심기일전하고 고무망치를 손가락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복지재단 사무실에 가보았다.
두꺼운 방화문으로 만들어진 사무실 도어가 닫혀있었다.
거기에 귀를 대고 안의 소리를 들어보니 아무도 없다.
그렇겠지.
이 복지재단은 사실상 PD가 방송을 한 것의 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한 수단.
평상시에 출근할 필요가 없다.
“아. 제길! 이 자식들! 이제 어쩐다?”
사이다패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최형림 없이 해볼려고 했는데 시작하자마자 이런 난관에 부딪히다니.
다시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나?
아니,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번엔 지은재에게 찾아가기로 하고 눈을 감았다.
* * *
“어?!”
영사의 사무실에서 게임을 하던 지은재가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사무실에 사이다패스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으아니 차! 자, 잠깐만. 잠깐만요. 어쩐 일이에요?”
“하던거 계속해.”
“아, 네. 아 그, 그래. 여자친구가 와서 킬 따였네.”
지은재는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변명했다.
“여자친구?”
사이다패스는 코웃음쳤다.
게임을 하는 걸 보니 지은재는 브론즈 티어에서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야! 칼잡이! 탑에서 그렇게 뒈져서 상대를 키워주고 자빠졌냐? 그렇게 키워주면 다섯쌍둥이도 수월하게 키우겠다 새꺄!]
“병신. 지는 정글도 다 털리고는….”
[내가 탑라인 한다고 했잖아! 개새꺄!]
[둘 다 병신인데 그만하지? 나 탈주한다?]
[넌 짜져. 장난하냐? 나 대리기사야. 원래 내 실력은 임마 플래티넘이다!]
[병신 본계정 인증해봐라! 니가 플래면 난 다이아다.
[그럼 난 프로게이머다.]
보아하니 게임보다는 이제 서로서로 남탓하고 비하하는데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흠. 참 편리한 삶이네. 남들 근무시간에 회사 컴으로 게임이라니.”
“아, 그, 그게 진짜 할짓이 없어서요. 아 나 탈주함.”
지은재는 게임을 끄고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그래도?”
“네. 어차피 부계정이라.”
“흠?”
사이다패스가 컴퓨터를 보니 지은재의 계정들이 중복 접속해있는게 보이는데 전부 브론즈 등급이다.
부계정 본계정 차이가 뭐지?
그런 의문이 잠깐 들었다.
“그래서 어쩐 일이에요?”
“아니 정보 밑 아이디어가 필요해서.”
“네? 정보라면 최형림 검사가….”
“싸웠어.”
“아. 그, 그렇죠. 네.”
“그래서 이것들을 죽이려는 데 뭐 아이디어 없어?”
사이다패스는 사랑원 청원사이트를 열어서 지은재에게 보여주고 물어보았다.
“아, 아이디어요?”
“영사라는 사람 쫓아다니면서 봤을 거 아냐?”
“아 이사님 말이죠. 그게 이사님의 수완은 주로 인맥에서 나와서 제가 뭐라고 하기는…. 아 그래볼까요? 이사님 명령이라고 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
사이다패스가 궁해서 오긴 했지만 지은재의 대책을 들으니 그녀조차 당황스러웠다.
‘이 새끼 무슨 깡이지?’
영사의 명령을 위조해서 영사의 정보망을 가동시켜보겠다는 건데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사이다패스가 황망해 하자 지은재가 멋쩍게 웃으며 코 밑을 쓱 훔쳤다.
“뭐든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요. 뭐든 말씀하세요.”
“아, 아니 고맙지만.”
사이다패스의 호감을 사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은데 그게 더 두렵다.
원래 뒷생각 없이 좌충우돌 마음대로 살던 사이다패스가 걱정할 정도라니.
“됐어.”
“아, 아니 정말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러는 거에요.”
“그건 나중에 쓰지. 지금 써먹기엔 아까우니까.”
“어 그래요?”
“그래. 으음. 어쩐다? 생각 없어? 이 원장이란 놈이랑 방송국 PD 부부 놈들 집이 어딜까? 알 방법은?”
“사랑원이라는 데를 뒤엎으면 거기 서류같은게 있을 거아니에요? 직원들에게 물어보거나.”
“다들 선량해보이는 사람들 밖에 없던데?”
“선량해보인다고요?”
“그래. 보니까 급료를 받는 직원은 마침 출근 안했고 나머지 사람들 상당수는 그냥 자원봉사자들이었어.”
사이다패스는 그리 생각하다가 혀를 찼다.
먼저 들쑤셨을만한 인물을 생각해보니 마음에 짚이는 이가 있었다.
‘그 새끼를 찾아가 볼까? 아 내가 미쳤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최형림에게 다시 머리를 숙여야 하는데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 * *
그녀는 시현 탐정 사무소 근처에 와 있었다.
시현 탐정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게 안된다.
“타자기의 악마 때문인가?”
그녀는 시현 탐정 사무소의 계단을 올라가 보았는데 문이 닫혀있다.
문에는 외출중이라는 패널이 붙어있었다.
혹시 몰라서 초인종을 눌러보았는데도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문을 비틀어 열려고 했지만….
문에 힘을 주는 순간 몸에서 힘이 빠진다.
“어… 뭐야?”
문을 손에 잡은 순간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이 문을 파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때 따르르릉 하고 옛날 전화기에서나 울릴법한 소리가 근처에서 울리는 게 아닌가?
“?”
사이다패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소리가 벽에서 나는 걸 알아챘다.
벽에 붙어있는 소화전 박스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다가가서 안에 문을 여니 안에는 휴대폰이 하나 있었다.
화면에는 ‘to 사이다패스’라는 화면과 함께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네?”
[제 사무실은 주인이 초대하지 않으면 당신같은 존재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고 혹시 불지르거나 하지 마세요.]
“놀랍군. 내가 올 걸 알았나?”
[뭐 별로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그냥 저는 항상 준비를 해두는 법이지요.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세요.]
“카메라가 있다고?”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고 현관 앞에 있는 카메라를 발견했다.
“내가 보여?”
[역시 안보이는 군요.]
사이다패스는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찰들이 그렇게 사이다패스의 흔적을 찾느라 고생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그럼 어떻게 내가 온 걸 안 거야?”
[소리는 들립니다. 보통 CCTV는 음성은 녹음하지 않으니까요.]
악마들이 계약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공권력에 걸리지 않는 정도의 보호다.
공권력에 걸리면 악마들도 좋을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다 가려주는 건 아니다.
계약자도 어느정도는 스스로 생각하고 좀 궁리도 해보고 몸도 사려야 하는 것이다.
“………”
[그래서 여기 찾아오신 걸 보니까 최형림 검사님하고는 일이 잘 안되는 모양이군요.]
“뭐?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사이다패스는 자신과 최형림과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시현에게 놀라버렸다.
[흠. 거기서는 모르는 체 해야지요. 놀라버리면 인정하는 거잖습니까? 상대가 찔러본 것일 수도 있는데, 쯧쯧.]
“아 이 자식 진짜….”
약오른다.
“사랑원 원장이 자리에 없던데. 당신이 수작부린 거야?”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보군요.]
“오해?”
[네. 저는 당신이 하는 일을 딱히 방해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제 고객님의 안전과 고객만족을 더 우선할 뿐이지요.]
“성취 같은 쓰레기 녀석을 보호해줬잖아? 당신?”
[그가 제 고객이었으니까요. 그는 제 고객으로서 제게 수명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성취 리스트 까지도 시원하게 제공했지요. 몰랐습니까? 당신이 손에 넣어서 사람들을 죽여대는 그 리스트가 어떻게 유출되었는지?]
“………”
사이다패스는 그 말에 할말이 없어졌다.
[최형림 검사와는 왜 갈라섰습니까? 잠깐의 감정적 대립입니까? 아니면 이제 아예 독자 노선을 걷기로 한 겁니까?]
“왜 그걸 묻는데? 말해주면? 우릴 이간질해먹을 생각이지?”
[그럴리가요. 저는 진심으로 두분이 화목하게 오래오래 협력했으면 합니다.]
“뭐?”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하나는 상대 손에 죽을 텐데 아무리 적이래도 누군가의 영혼이 악마 손에 떨어지는 건 불쌍하잖습니까?]
“……….”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말의 교묘함에 내심 감탄했다.
이간질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면서 둘이 싸워서 서로 서로 죽이지 않겠느냐고 대놓고 불안심리를 부채질한다.
게다가 죽으면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느니 하는 말로 공포심을 더욱 더 조장하는데 어째 이놈이 최형림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걸로 사정은 알겠군요.]
“무슨 소리야?”
[말을 하는데 있어서 좀 훈련을 받으셔야겠군요. 우리를 이간질 할 생각이냐고 물어봤다는 건 지금 단계에서 영원히 갈라선 게 아니라 잠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소리가 아닙니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하지만 지나가는 말들을 내뱉는데 그 사이에서 냉정하게 포인트를 집어내는 시현이 놀랍다.
사이다패스는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내가 역정보를 줬을 수도 있지.”
[후후….]
“웃지마. 이 자식아. 죽여버린다.”
[이미 한 번 절 죽이려고 시도해봤잖습니까?]
“………”
그랬었다.
사이다패스는 시현에게 승부를 걸었지만 오히려 시현에게 당해 퇴치당해서 한동안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골골거렸다.
사실 지금도 아직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최형림은 죽일 수나 있지. 이놈은 오히려 내가 당했지.’
그걸 생각하면 이녀석에게 찾아온 건 잘한 일일까? 아니면 화를 자초한 것일까?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