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21화 (221/269)

제221화

사랑원 아이들 #12

다만 장인제와 권성현, 이미 시현과 계약을 나눈 이들은 시현의 말에 당황했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사람은?’

‘무슨 뜻에서 이런 개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총이 있으니 가만히 있어야 겠군. 맨손으로 내 부하들을 가볍게 초죽음으로 만든 녀석이야. 총까지 있으니 여기 여섯이 다 덤벼봤자 사이좋게 시체가 된다.’

그때 사랑원 직원이자 여기서 제일 막내인 조민혁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릴 죽이려고?”

“으음. 사실 탐정 업무에는 맞지 않습니다만 저희 시현 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거든요.”

“시현 탐정 사무소?”

사무소 이름을 말했어?

조민혁은 그 사실에 놀랐다.

‘아악….’

‘저, 정말 다 죽여버리려는 건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경악했다.

시현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다는 건 여기서 누구도 살아나가지 못한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모두들 덜덜 떨 때 시현이 말을 이어나갔다.

“저희 고객 분 입장에서는 젊은 시절 사업이 어려울 때 시설에 맡긴 아들이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미인가 시설에 넘어갔을 뿐 아니라 그후 시체도 찾을 수 없고 자식의 주민등록은 다른 놈으로 등록되어 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겠습니까? 그 원통함을 좀 풀어달라고 하셔서….”

“죽이겠다는 거군?”

“……”

시현이 대답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대답이나 다름없다.

다들 두려움에 덜덜 떠는 걸 확인한 그는 말을 돌렸다.

“그런데 사실 여기 두 분은….”

시현은 장인제와 권성현을 가리켰다.

“저와 계약이 되어 있는 고객분이십니다. 이 분들은 제게 대가를 주고 이 사건의 보다 본질적인 책임자, 사랑원 원장을 파멸시켜달라는 부탁을 하셨지요. 자신들의 소중한 걸 기꺼이 내놓으면서 사건을 바로잡고 속죄하려 하는 그 태도가 바로 진정한 참회의 증거 아니겠습니까?”

“……….”

옆에서 듣고 있던 류하리가 기겁했다.

어쩜 이렇게 거짓말이 술술 나올까?

우선 정태호의 친부라는 사람은 본적도 없다.

그런데 시현은 그 이야기를 지어내서 여기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에게 원한있는 자가 있다는 뉘앙스를 전달한 것이다.

이미 협박을 했고, 총기를 들어보였고 사람 대가리도 시원하게 깬 데다가 내부에 배신자가 둘이나 있다.

훈련된 스파이라 해도 넋이 나갈텐데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들은 이 강압적인 정보조작에 정신을 못차릴 것이다.

과연 다들 앞 다투어 계약을 하겠다고 나섰다.

“으아!”

“우, 우리도 후회하고 있었어!”

“장인제 저 새끼 완전 나쁜 놈이라고! 젠장! 저놈보다는 내가 더, 나 매일 밤 잠을 제대로 못잤다고!”

보아하니 깡패가 된 장인제보다 더 속죄하지 않는 자로 여겨지는 게 너무 억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사랑원 직원인 조민혁이 코웃음쳤다.

“개소리들 하고 있네.”

그는 사랑원 졸원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진짜로 잘못했다고 속죄를 해?”

“닥쳐. 조민혁. 이 새끼야. 나이도 어린 게.”

“기가 막혀서 그런다. 개자식들아. 너희들은 천박한 새끼들이야. 떡 한 개라도 더 먹겠다고 애들 두들겨 패던 놈들이 뭐? 살고 싶으니까 이제 와서 잘못을 고쳐잡겠다고? 훨씬 전엔 뭘 하고?! 내가 원장에게 불려갈 때는 뭘 했냐고!”

“이새끼가….”

다들 조민혁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원장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있던 조민혁이었다.

강간을 했다는 건 아니다.

예쁘게 생겼다고 뽀뽀하는 부모처럼 굴었다. 원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게 좀 전신 곳곳 구석구석이어서 그렇지만 어쨌건 생식기를 삽입하는 행위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원장에게 불려간 조민혁은 항상 소위 말하는 그놈의 귀여움이 끝나고 나면 과자 등을 한 박스씩 받아왔고 다들 그걸 탐내기만 할 뿐 조민혁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왜 괴로워 하는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걸로 조민혁을 동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시기했다.

원장의 확실한 보호와 편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습지만 당시 아이들에게 원장의 보호와 편애는 설령 그 몸을 바친다 하더라도 갖고 싶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원장의 손가락 끝에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있었으니까.

목숨에 비하면 순결 따위는 사소한 것이었다.

게다가 원장도 실제로 강간까지는 하지 않았잖아?

나중에 사랑원을 졸원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제야 알겠다만 사랑원이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는 원장이 왕이었고 왕에게 편애받는 조민혁은 부러운 대상이지 동정할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랑원의 주박에서 해방된 지금,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조민혁의 희생과 고통을 동정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실수를 묵살하고 아직도 사랑원 원장과 함께 있으며 그들의 아픈 기억을 자극하는 조민혁을 조롱할 것인가?

장인제가 입을 열었다.

“원장에게 똥꼬가 따이더니만 아주 원장 애인 시다바리 노릇하느라 정신없지? 왜? 요새는 나이가 들어서 원장이 안 따주냐?”

순간 다들 말문이 막혔다.

“나는….”

조민혁은 장인제의 말에 분개했다.

조민혁의 처지를 잘 알면서 그걸로 조롱하는 것은 대체 얼마나 인간 쓰레기여야 가능한 일인가?

생판 남도 아닌데, 같은 운명을 겪었던 이면서 말이다.

“그래 너는 사랑원에 아락바락 남아서 원장 배 밑에 깔려지내던 놈이지. 배알도 없는 내시 새끼….”

장인제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퍽!

장인제의 손등에 트럼프 카드 한 장이 날아가 꽂혔다.

“끄아아악!”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트럼프 카드는 그 자체로 칼이나 다름없었다. 칼보다는 좀 가벼워 뼈를 자르기엔 쉽지 않은 무기지만 던진 사람의 완력에 따라서는 충분히 뼈를 끊는다.

“발언을 혼자서 너무 길게 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1분 정도씩 손들고 발언하세요.”

시현이 그리 말하고 바비큐 테이블 밑에 준비된 구급 상자를 류하리에게 건네주었다.

류하리가 그걸 들고 열어보니 테이프와 케이블 타이로 만들어진 지혈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사람들 조지려고 작정했구나.’

상대는 다수이고 이쪽은 소수니 말 한마디 씩만 해도 혼란스럽다.

그걸 감안해서 시현은 폭력을 쓰더라도 주도권을 완전히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훌륭하긴 한데, 이 사람 고객 아니었나? 고객의 손등에 카드를 박아넣어도 그놈의 고객 만족이 성립되나?’

류하리가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 * *

조민혁에게 전화가 왔다.

“어?”

“어디서 온 전화입니까?”

“원장.”

조민혁이 휴대폰을 들어서 시현에게 보여주었다.

“받으세요. 스피커 폰으로.”

“…….”

조민혁은 말 없이 전화를 테이블 위에 놓고 스피커 폰으로 받았다

[야! 민혁이! 너 지금 TV봤냐?]

“네? 무슨 소립니까?”

[시발 어딨냐? 사랑원 아니지 너? 아니 실장이라는 놈이 사랑원에 없으면 어떻게 해? 누구 멋대로 근무지를 이탈하래?]

“원장님은 어디계십니까?”

[뭐 임마? 알아서 어쩌게? 너도 나 죽이려고?]

“네?”

위치를 묻는 데 반응이 이상하다.

[아 이새끼 진짜 어디 산에라도 갔나. 지금 TV에서 난리났어! 전에 찾아온 그 방송국 PD가 사이다패슨가? 그거에게 죽었어!]

그 순간 모두들 헉 하고 놀랐다.

[다음엔 나일지도 몰라! 나 한동안 숨어지낼 거니까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알지?]

“이번 달에 식대랑 피복비 줘야 하는데요? 전기료하고….”

평소에도 사랑원 일은 조민혁이 다 했다.

하지만 돈을 꺼내 쓰는 일만은 원장이 직접 관리했다.

[아 좋은일 하니까 외상해달라고 해! 어제 오늘 일이냐? 그런 것도 알아서 못해?]

원장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 사이다패스라고?”

모두들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사연, 사랑원이 사이다패스의 청원 사이트에 올랐다는 건 들었지만 설마 정말 사이다패스가 움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자 그럼….”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계약 이야기를 해볼까요?”

* * *

계약을 하면 사이다패스에게 지켜주는 건 물론 사랑원 원장을 처단하고 만약 그가 감춘 재산이 있으면 드러나게 하여 본래 받아야 할 지원금이나 정책자금 등을 보상받을 수 있게 하겠다.

시현이 그러한 계약을 이야기 하자 대부분 계약에 호의적이었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달리 조민혁은 코웃음치며 계약을 거부했다.

“다들 정말 죽은 태호 형에게 미안하다면 그냥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하지 그래? 이런 계약으로 구질구질하게 살아남느니 사이다패스나 이 사람에게 죽는게 낫잖아? 안그래?”

“당신이 원장에게 계속 학대당하는 걸로 스스로를 벌하듯이 말입니까?”

시현은 조민혁이 왜 원장의 밑을 떠나지 않았는지 알아채고 쓴 웃음을 지었다.

“닥쳐!”

조민혁은 시현의 손에 권총이 들려있건 말건 짜증을 냈다.

“날 아는 체 하지 마. 네가 뭔데 잠깐 본 정도로 날 아는체 해?”

“흔한 케이스니까요. 아니면 당신이 유달리 특이한 케이스라서 몰라볼까봐 그러십니까?”

“뭐?”

“본인은 자기연민에 빠져서 원장 밑에서 고통받는 게 자기에게 주어진 마땅한 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하는 짓은 결국 사랑원 원장을 도우며 새로이 들어오는 아이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걸 재차 반복하는 것 뿐입니다.”

시현은 조민혁이 자가당착에 빠져있음을 알아채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란 설령 그게 객관적으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인정하고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인간은 감정의 생물이니 아무리 이치로 논파한다 한들 감정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근데 이 자식이 날 어떻게 안다고….”

과연 조민혁은 시현의 말에 발끈했다.

그 말이 맞건 그르건 간에 그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함부로 재단하는 시현에게 화딱지가 났다.

“뭐 보나마나 뻔하죠. 난 죄를 범했으니까 원장 등에게 고통 받아도 이건 내 잘못에 따른 벌이다. 어차피 나는 잘 살 자격이 없어. 이 지저분한 곳에서 계속 추하게 찌그러져 있는 게 옳아. 그 따위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냐! 이….”

“아니십니까? 정말로? 대단하군요. 당신의 자기연민 때문에 대체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을 그런 꼴로 만들어야 직성에 풀리십니까?”

“그건….”

조민혁은 막상 아니라고 말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시현이 말한 대로였다.

“자신도 속이지 못할 거짓말은 하지 마시죠. 저는 당신같은 사람 지긋지긋하게 봐왔습니다. 저도 시설 출신이라서, 뭐 제가 있던 곳은 여기처럼 막장스러운 곳은 아니었습니다만, 제가 아무런 경험이나 근거 없이 당신이 그럴 거다라고 생각하는 거 아닙니다.”

“………”

보다 못한 류하리가 시현을 손가락으로 불러서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저기 아무리 그래도 원장에게 성폭행도 당한 사람인데 너무 심하게 대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조민혁이 당황했다.

강간까지는 안당했다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본인이 항변하기에도 이상한 말이다.

“뭐 고객이 아니니까요.”

“네?”

“고객님이라면야 꽃으로도 맞지 않도록 걱정해드리죠.”

“어휴. 진짜.”

고객이 아닌 사람은 모조리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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