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22화 (222/269)

제222화

사랑원 아이들 #13

보다 못한 류하리가 조민혁에게 다가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제가 이런 말 하긴 좀 이상하지만 그, 계약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계약?”

“사랑원 원장을 파멸시키고 그가 숨겨둔 재산을 빼앗을 거에요. 사이다패스에게 당신들이 죽지 않도록 해줄 거고요. 당신이 자포자기해서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도 못할 정도라면 차라리 한 번, 환경을 바꿔보는 셈 치고 해보는 게 어때요?”

“으음.”

류하리의 진정성 있는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시현과 류하리의 태도의 낙차 때문일까?

조민혁은 류하리의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알겠어. 그 계약이라는 걸 해보지.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지? 돈도 뭣도 없는데 뭘 약속하라는 거야? 원장은 보나마나 애인 집에서 숨어지낼 텐데?”

“수명을 1년 내놓으셨으면 합니다.”

“음. 어? 뭐?”

“수명이요.”

“수명?”

조민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아. 매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게 귀찮을 정도군요, 그렇지만 결국은 내주게 될 겁니다.”

시현은 그렇게 단언했다.

* * *

“잘 되었나?”

승합차 운전수이자 당구장 주인이자 시민 극단 배우인 고찬하씨가 물어보았다.

“무리하는 군. 성질도 다른 놈들을 한 번에 계약하려 하다니. 왜 그렇게 성급해졌나?”

“…….”

시현은 대답대신 봉투를 하나 꺼내 그에게 주었다.

“아니 뭘 이런 걸 다…. 아, 아니 이게 아니라. 험험.”

고찬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봉투를 받아들었다가 시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돈을 받고 질문을 그만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이다패스 같은 대형 계약자가 흔들릴 때가… 위험하지요. 그 전에 어떻게든 수명을 좀 확보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수명을 확보해둔다고?”

“네. 그리고 아무래도 제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찾아오는 것 같아서요.”

고찬하는 시현이 류하리를 보고 있는 걸 깨달았다. 류하리는 사랑원 사람들을 보살피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아가씨 때문인가?”

“…후우.”

시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제 난 가봐도 되나? 아니면 더 시킬 일이 남아있나?”

“매우 중요한 일을 해주셔야 겠습니다. 이번엔 젊은 시절에 아이를 사랑원에 맡겼다가 잃어버린 아버지가 되어주셔야 겠어요.”

“아.”

아직 귀찮은 일이 남았구나.

고찬하는 아쉬워했다.

그때 류하리가 시현과 고찬하에게 다가왔다.

“음 좋아요. 다 설득된 것 같군요. 그런데 사이다패스는 어떻게 하고요?”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사이다패스가 원장을 찾아서 먼저 죽여버리면 당신도 고객만족을 달성하지 못하겠지요?”

은근히 시현이 사이다패스를 막아주길 원하는 모양이다.

“뭐 사이다패스에게 가르쳐 준 방법으로는 원장은 못 찾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 사이다패스는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네?”

“바로 죽이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는 건 틀림없습니다. 사이다패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까.”

“…….”

류하리는 여전히 알지 못할 소리를 하는 시현을 보며 당황했다.

대한민국 경찰 전원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사이다패스의 목숨을 무슨 주머니 속에 동전처럼 쉽게 좌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다니.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진심으로 하는 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시현이 거짓말을 엄청나게 잘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그렇게 믿어지는 것이었다.

“뭐 아직은 괜찮을테니 이 일부터 처리하고 슬슬 사이다패스도 좀 손에 넣어야 겠군요. 그런데 류 경위님은 슬슬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하리 경위에게 박진감 경위의 전화가 왔다.

류하리는 너무 정확한 타이밍에 전화가 와서 시현을 의심했다.

‘설마 박진감 팀장도 감시하고 있는 건가?’

“별거 아닙니다. 방송국 PD 부부가 사이다패스에게 죽었다면 경찰에 비상이 걸렸을테고 정보 3팀처럼 예비부서 성향이 강한 곳은 다른 경찰들이 바빠질 때 여기저기 차출될 곳이 많아지기 마련이니까요.”

“절 보내고 싶은가 보네요? 제가 없는 틈을 타서 범죄를 저지르려고 그러죠?”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양심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당신 양심을 애초에 믿을 수가 있어야죠.”

류하리는 투덜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시현의 예상대로 얼른 지원 오라는 박진감 팀장의 전화였다.

“맞죠? 중간까지 태워다 드리죠. 다른 사람들도 돌려보내야 겠습니다.”

시현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

사랑원 졸원생들과 같은 차를 타고 가라고?

류하리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차량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곳이다 보니 선택지가 없었다.

* * *

사랑원 원장 조철진은 사이다패스 청원 사이트에 자신과 관련된 사건이 1위로 올라갔다는 것에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학대했다고 하는데 무엇이 학대란 말인가?

그는 어디까지나 군대식으로 아이들을 교육시켰을 뿐이다.

군대식 교육이 학대라면 국가도 범죄자, 학대범이 된다.

암 그럴리 없지.

국가가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조직적으로 학대할 리가 없지.

고로 그를 아동학대범이라 말하는 놈들은 국가 모독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횡령을 했다니?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는 건 오히려 아이들에게 사기당하라고 내모는 꼴이다.

졸원을 하고도 공장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뒷바라지 해주는 자신이 좀 더 사회적으로 부를 쌓고 성공해야만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푸드뱅크에서 거의 버릴 것 같은 음식들을 주워다 먹인다고?

아니 이놈들이 음식 귀한줄 모르는 구나.

그럼 귀한 음식을 그냥 버리란 말인가?

방송국 PD랑 짜고 부당하게 후원금을 받아 유용했다?

그건 방송국 PD가 방송을 찍자고 한 일이고 후원금은 받아서 당연히 사랑원 재단이 경비로 썼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을 합리화 하는데는 도가 튼 인물이었다.

절대로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 그의 완성된 방어기제는 어떤 짓을 해도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사이다패스가 자신과 관련된 관계자를 죽였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이 바뀌면 생각도 달라지는 법.

* * *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요!”

물리적인 위협이 피부에 와닿으면 없던 죄책감이 절로 솟아나는 법이다.

굵직한 쇠사슬 후크가 매달려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거꾸로 매달린 조철진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조철진은 사랑원을 운영하며 빼돌린 돈으로 유흥업소에서 만난 젊은 접대부를 한 명 스폰하고 있었는데 사이다패스가 그를 죽이려 들자 그 오피스텔로 피신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피스텔에 들어갔을 때 그는 갑작스러운 전기 충격에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어느 농가 비닐하우스에 매달린 상태가 아닌가?

이미 그의 몸은 전부 테이프로 쫙 감겨져 있어서 옴짝 달싹할 수 없다.

‘사이다패스인가?’

조철진은 자신을 너무나 쉽게 납치한 상대의 수완을 두려워했다.

다 큰 장정을 이렇게 쉽게 납치하다니 예사놈이 아니다.

그때 복면을 쓴 남자가 작은 휴대폰 하나를 짐벌에 끼워서 들고 가져와 그 모습을 촬영했다.

아니 정확히는 화상 통화 중인 한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너무 멀쩡하군.]

검은 실루엣만 비추는 장년남자의 목소리가 변조되어 들려왔다.

복면을 쓴 남성이 음성변조기를 꺼내서 말했다.

장난감에 불과한 장비지만 원래 음성을 못 알아듣게 할 목적에는 충실했다.

“어디 발목이라도 자르고 시작할까요?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리면 그 후 고문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의식이 선명할 때 고통 또한 선명한 법이지요.”

“히익?!”

듣고 있던 조철진이 몸을 버둥거렸다.

“사, 살려주십쇼! 선생님! 저 돈 마, 많습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원하는 게 있으실 거 아닙니까?”

[혹시 태호라고 기억하나?]

“네? 저, 태호요? 어떤 태호요? 김태호? 유태호? 박태호?”

워낙 스쳐지나간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철진은 누군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랑원 내에서 사망까지 한 아이를 기억 못 한다는 건 말도 안된다.

“어쩔 수 없군요.”

복면남자가 와이어 채찍을 꺼냈다.

호신용품으로도 쓰이는 와이어 채찍이었다. 채찍이라고 해도 생긴 걸 보면 휘어지는 곤봉같은 것이다.

쇠좆매나 블랙잭을 강철 와이어 다발로 만든 셈이다.

그걸 휘두르자 쫙 하는 소리와 함께 조철진의 몸을 묶고있는 테이프와 옷들이 찢어졌다.

처음에는 그렇게 아프지 않다.

옷과 테이프가 대신 찢겨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대, 세 대 째가 되자 옷을 뚫고 맨살에 채찍이 닿으면서 기절할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마치 피부 전체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아픔이었다.

“으아아악!”

조철진이 비명을 질렀다.

실제로 맨 살위에 맞은 순간 한 방에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나갔다.

늘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던 권력자였던 그가 처음으로 도마 위의 생선 신세가 되었다.

이제 저들이 식칼로 토막을 내건 산채로 삶건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런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정말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나?]

“예. 그럼요. 그럼요.”

[어디 말해보게.]

“에. 그러니까 저기… 으윽….”

[뭐 괜히 물어봤군.]

-촥!

다시 한 번 채찍이 휘둘러졌다.

“으아악!”

간신히 고통이 잦아들었던 피부 위로 다시금 불길이 내달렸다.

피부가 가을 들판이라면 이 채찍의 통증은 처음에는 들판에 떨어지는 번개 같다. 너무 강렬하고 충격적인 아픔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면 그 후 들판 위로 들불이 번진다.

타들어가는 불꽃처럼 고통이 계속 상처 부위에 남아서 속까지 태운다.

채찍질의 고통으로 쇼크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정말 홀딱 벗겨두고 채찍질을 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나마 조철진이 기절하거나 쇼크사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옷을 입혀 두고 때리기 때문이다.

옷이 찢겨진 틈사이로 채찍을 맞으니까 채찍의 공격력 전부를 받지 않는 상황, 일부만 들어오는 데도 기절할 것 같다.

[내 아들의 주민등록을 엉뚱한 놈이 쓰고 있더군. 더 웃긴 건 그 놈이 혼자서 세 명 분의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던데?]

조철진은 그제야 정태호를 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으, 그건 불량한 애들이 죽였습니다. 네 애들이 죽였지요.”

[아이들이 죽였고 원장인 자신은 책임이 없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려고 했습니다만 이게 참 검은 머리 짐승이 괜히 검은 머리 짐승이 아니더군요. 애정과 사랑을 다해 키워봤자 쓰레기같은 천성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말은 참, 그런데 애들이 시체를 암매장했나? 주민등록을 위조하고? 그건 당신이 한게 아닌가?]

“그건… 어, 어린애들이 그런 거라 애들의 인생이 불쌍해서 그랬습니다.”

[그렇게 말할 거면 애들 핑계를 대지 말았어야지. 앞뒤가 안맞잖아?]

“그, 그건….”

아무렇게나 변명을 주워삼던 조철진이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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