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화
사랑원 아이들 #14
조철진은 뭐라고 변명할 거리도 없어서 눈알을 굴렸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복잡하다.
“어, 어르신이 그 애새끼들을 잡는데 도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뭐?]
“그러니까 아드님을 직접 죽인 그 애들 말입니다. 그놈들을 잡으려면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그래도 그녀석들에게 애비같은 놈이라 부르면 올 겁니다. 그러니 살인범인 그녀석들을 벌하시고 저는 살려주시면….”
자기가 살겠다고 애들을 잡는데 협력하겠다.
그런 소리였다.
그 모습을 본 영상통화 너머의 남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천박한 쓰레기같은 놈이로군. 이런 놈 죽여버리는 건 당장은 기분좋겠지만 내 아들의 죽음이 어둠에 묻히는 건 여전하겠지.]
“그, 그러면?”
[경찰에 자수하게. 내 아들의 죽음이 백일하에 드러나도록. 그렇게 해야 내 아이의 죽음에 공양이 되겠지.]
“그, 그러겠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물론 경찰에 자백하지요!”
조철진이 그렇게 대답하자 그의 머리에 두건이 씌워졌다.
[그럼 약속이네. 지켜야 할 거야.]
그리고 전기 충격기가 그를 지져 기절시켰다.
* * *
사랑원 졸원생들은 작은 승합차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차량 천장에 붙어있는 작은 모니터에 떠오르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바로 조철진이 고문당하고 자백하라고 협박당하는 장면이었다.
“아니 잠깐만… 다 좋은데 자수하라고 하면 우리들까지 걸리잖아?”
살인을 직접 수행했다고 비난을 받던 천기라는 이름의 졸원생이 그런 의문을 제기했다.
“미친 거야? 이자식!? 수명을 달라는 계약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우릴 배신할 셈이구나!”
그는 흥분하며 벙거지 모자를 벗었다.
머리가 벗겨진 부위에는 흉측한 상처가 나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를 내서 머리를 수술한 흔적이 있는 그의 눈은 어딘가 공허하다.
한눈에 보아도 이성적인 사리분별이 불가능해보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워낙 키가 커서 주위 사람들에게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 위협적인 모습은 폭력배인 장인제보다도 더 무시무시해서 사랑원 졸원생들 모두가 압도당했다.
“그 새끼 죽이자. 아무리 총이 있어도 우리랑 직접 만난 건 남녀 하나에 운전수 하나잖아? 우리가 인원이 더 많은데 제압하자면 못할 게 없어.”
“멍청한 소리 하지마.”
장인제가 천기를 말렸다.
“뭐? 너도 한패야? 장인제? 그러고보니 그놈이랑 미리 계약한 놈이 있다고 했지?!”
그러자 애초에 시현을 불러들인 권성현도 난감해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난 적당히 고발이나 해줄 줄 알았는데.”
“그래! 너였지! 네놈이랑 장인제가 먼저 계약했었다고 했어!”
“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걸, 천기는 계약자가 누군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는데 권성현이 혼자서 자수한 거나 다름없다.
권성현은 벌벌 떨고 있고 장인제는 짜증난다는 듯 천기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어라 천기. 어차피 공소시효도 다 지난 일이야.”
“웃기지 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어떤 법이 어떻게 적용될 줄 알고? 네가 뭐 변호사야?”
“총가진 놈을 제압하자고 덤비는 것보다는 그쪽이 안전하지.”
장인제가 그리 말하자 모두들 수긍했다.
“야 천기야. 총을 가진 놈에게 덤비자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젠장, 네놈들은 내가 죽였다고 우기려고 그렇게 편하게 앉아있지? 장인제 저새끼라니까. 난 막타만 쳤는데 왜 다들 나만 갖고 그래?!”
“하여튼 다들 자기 안위만 신경쓰고 있군요. 쓰레기 인간들.”
조민혁만이 불안보다는 경멸과 혐오로 같은 졸원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래서 참. 어차피 다들 그냥 감옥가는 게 차라리 더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너 이 새끼 자꾸 그런다?! 우리가 다 파멸해야 직성이 풀리냐?”
“사람이 잘못했으면 죄값을 치러야지요.”
조민혁은 확고하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도 너처럼 원장에게 똥꼬나 따이라는 거냐?”
장인제가 코웃음쳤다.
그때 승합차 옆의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자 다들 진정하시고…. 여러분들끼리 열심히 토론하는 건 좋은데 다 들립니다.”
복면을 쓴 남자, 시현이 기절한 조철진을 차에 실은뒤 천기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리고 고객님께서 무모한 짓을 하시기 전에 잠깐 가르침을 드리겠습니다.”
“뭐?”
-덥썩.
시현은 가볍게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왁?!”
천기가 놀라서 저항하려고 했지만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차량 천장이 보이는 게 아닌가?
“…….”
덩치도 큰 천기를 무슨 어린애 다루듯 제압해버리는 모습에 모두들 기겁했다.
“원래 고객님께 가급적 손을 안대긴 합니다만 여러분들이 행여 숫자를 믿고 무모한 짓을 하실까봐 적절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저희 탐정사무소는 정말 고객만족을 위해서 분골쇄신의 각오로 임하고 있으니 믿어주십시오.”
“원장이 자수하면 고객이 만족 못할 것 같은데?”
조민혁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하하. 이 원장 성격상 자수할 리가 없지요.”
“흥. 원장이랑 한 지붕 아래 살던 우리도 장담을 못하는 데 당신이 뭐라고 장담을 해? 만약 자수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무리 원장이 철면피라지만 목숨을 위협당했는데 자수하지 않을리 없잖아? 그건 양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그러면 보수없이 무상으로 봉사해드리죠. 더해서 한 명당 1억씩 드리겠습니다.”
“뭐?”
다들 당황했다.
“자수하면 1억을 준다는 거지? 하지만 자수하지 않으면? 우리도 뭔가 내야 하나?”
“딱히, 이미 고객님들 아닙니까. 고객만족을 위해서 이정도 여흥 정도는 괜찮습니다. 게다가 원장이 자수하면 여러분들이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감안했을때 내기가 공평하게 성립되려면 제가 뭔가 더 여러분들에게 얻어내면 안될 것 같군요.”
“…….”
아무래도 엄청나게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자수를 안한다면 다행이지만.”
“진짜 1억 줄거야?”
졸원생들은 시현의 호언장담을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쳇.”
조민혁만이 불쾌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 * *
조철진이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사랑원 인근에 밭두렁에 있었다.
“아으으으으!”
기절했다가 깨어났음에도 전신이 너무 아프다.
“나 죽네….”
그러나 이대로 쓰러져 있으면 정말 죽을 것이다.
조철진은 간만에 옛 해병대 시절의 근성을 끌어올려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채찍을 맞은 곳은 피부 밑의 모세혈관이 죄다 터져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정말 죽다 살아난 것이었다.
그렇지만 납치했다가 풀어주다니?
진심으로 조철진에게 사건을 자백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웃기지 마.’
잡혀서 두들겨 맞을 때는 한 대라 도 덜맞기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일단 풀려나고 나니 말도 안될 일이다.
이 사건이 밝혀지면 자신이 주민등록을 위조해 지원금들을 횡령해왔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까발려지기 때문이었다.
그게 세간에 알려지기만 해도 그는 파멸하고 사랑원도 빼앗기고 만다.
물론 조철진은 사랑원 공장과 각지의 부동산 등 이미 재산을 상당히 형성해두었지만 그도 자신의 씀씀이가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딸보다도 어린 나이의 유흥업소 접대부의 스폰서 짓 같은 것도 해봤다.
젊고 예쁜 여자들이 자신의 앞에서 아양을 떠는 그 재미, 결국 자신의 돈을 보고 웃음을 파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재미에 일단 맛을 들이고 나면 이제와서 돈없는 거지꼴로 산다는 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고문당하는 순간에는 고문의 고통이 더 컸지만, 풀려난 지금은 고문보다는 가난이 더 두렵다.
‘어차피 이놈들, 다시 날 납치하긴 힘들거야. 주의해서 잘 피해다니면 되겠지. 얼른 사랑원에 가서 감춰둔 재산을 가지고 한동안 동남아에라도 가있지!’
조철진은 엉기적거리며 사랑원으로 향했다.
* * *
사랑원 입구에는 원장의 심복인 조민혁이 텃밭에 물을 주다가 다가오는 원장을 발견했다.
“오셨습니까. 원장님. 그런데… 어디 교통 사고라도 나셨습니까?”
“아냐. 미친 놈들에게 습격당했어. 경찰, 경찰 신고해라.”
“미친 놈들이요? 뭐 그건 모르겠지만 경찰이 찾던데요. 마침 잘되었군요.”
“경찰이 날 찾고 있다고?”
“네. 사이다패스 사건 때문에… 연락 안 갔어요?”
“……….”
조철진의 휴대폰은 방전되어 있었다.
충전기에 꽂고 켜보니 과연 모르는 번호에서 여러차례 전화가 와 있었다.
“일단 경찰에게 원장님이 무사하다고 연락하겠습니다. 더해서 신고도요.”
“아니. 신고는 잠깐 기다려봐.”
조철진은 생각에 잠겼다.
경찰들이 경호해주면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생각해보니 경찰들이 지금까지 사이다패스에게서 사람을 지켜낸 역사가 없다.
오히려 경찰들이 지키면 귀신같이 사이다패스가 찾아내서 죽여버렸으니까 인터넷 상에서는 경찰내부자가 사이다패스와 협력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었다.
아예 경찰 중에 사이다패스가 있는게 아닌가?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재산을 빼돌려야 하는데 경찰에 잡혀있을 시간 없어! 경찰들은 어차피 영원히 날 지켜주지도 못할 거 아닌가? 그럴바엔 차라리 한국을 떠나서 어디 동남아로 피신하는 게 낫지. 그동안 복지사업에 너무나도 분골쇄신(?)하여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으니 말야.’
조철진은 재산을 빼돌려 국외에서 편안하게 은퇴생활을 즐기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됐다. 일단 움직여야 겠다.”
“네?”
“너는… 아니 됐다.”
원장은 잠시 조민혁에게 돈을 맡기고 자기가 외국에서 쓰는 동안 송금을 시킬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조민혁이 뒤통수를 치는데 너무 취약해진다.
그냥 계좌를 들고 가서 쓰면 되겠지만 차명계좌에 감춰져있는게 대부분인데 그걸 국내면 모를까 해외에서 꺼내 쓰기란 그리 쉽지 않다.
뭐 잘못해서 꼬이기라도 하면 해외에서는 처리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금괴와 차명계좌로 재산을 옮겨둬야 겠군.’
조철진은 철저히 계획하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금은방 사장에게 연락했다.
* * *
“으음.”
조철진은 눈부신 빛에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다.
지하실로 보이는 깜깜한 곳에 쇠사슬 호이스트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에 그의 발과 몸이 고정되어있었다.
“엑?!”
분명히 이리저리 나뉘어있는 차명계좌들을 정리하고 알고 있던 금은방에 들러서 현금들을 일부 금괴로 바꾼뒤 차에 싣고 돌아오려고 하기까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지?
‘아!’
그래. 차에 시동을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목 뒤에 전기 충격이 와닿았다.
차에 금괴를 싣고 운전석에 탄 순간 뒷좌석에 숨어있던 이가 튀어나와 그의 목에 전기 충격기를 꽂은 것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짐벌에 꽂힌 휴대폰이 놓여있었다.
[흐음. 놀랍군. 보통 이렇게 납치해서 죽도록 패면 사람이 겁을 먹어서 어떻게든 경찰에 달려가기 마련인데. 설마 풀어주자마자 도망가려고 재산을 정리하다니.]
“아, 아닙니다. 아니에요!”
[설마 다시 잡을 재주도 없이 풀어줬을 거라고 생각했나? 뭐 시간은 많으니까 변명을 해보려면 해보게. 녹화해둘 테니까 열심히 말이 되는 변명을 해보라고.]
“아닙니다. 아아 제발 봐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조진철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 지하실에서 그의 비명을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