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4화
악마의 제전 #1
조철진의 비명을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지금, 펜견에 모여든 사랑원 졸원생들은 밀폐된 방안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조철진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서 감상하고 있었다.
다들 착잡한 표정이었다.
“정말 자수를 안 하네.”
“우리 입장에서 그게 낫긴 하지만… 대단하네. 협박했는데도 무시하고 재산 싸들고 도망치려고 했다는 거 아냐?”
“그보다 더 대단한 건 말이지.”
한지붕 아래에서 원장과 살던 그들보다 생판 남인 시현이 원장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보다 이 탐정이라는 놈 미쳤나….”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쉽게 납치하는 거야?”
“애초에 수명을 달라니 이놈은 뭐지? 악마 같은 건가?”
“악마? 하하하. 천기 너 그런거에 관심있었냐?”
“…….”
다들 웃어넘기긴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찝찝함을 느꼈다.
악마 같은 걸 믿지 않던 사람들이지만 시현의 솜씨를 보니 이제 그가 악마라고 해도 납득이 갈 지경이었다.
그때 그런 그들의 앞에 바비큐 그릴에서 채소와 고기를 굽고 있던 시현이 고기와 채소를 가져왔다.
“좀 드시겠습니까? 그래서 어떠셨습니까?”
“……”
“후, 훌륭해. 만족했어.”
시현을 끌어들인 장본인 권성현이 계약에 만족을 표했다.
“그럼 정산을 부탁드립니다. 정산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저, 정산?”
“네, 정산되었습니다. 다른 분들도 전원 말씀해주시지요.”
시현은 그렇게 그들에게서 수명을 징수했다.
“저, 정말 수명이 줄어든 건가? 모르겠는데?”
“확실히 받았습니다. 수명을 거둬가는 제가 이런말 하기는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100세 인생보다는 행복한 90세 인생이 낫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10년이나 줄어드나?”
“아니요. 예를 든 것 뿐입니다.”
“……”
“그럼 원장에게서 회수한 금괴를 조금 배분해드리겠습니다. 원장이 횡령했던 여러분들의 지원금에 물가상승률과 금리를 감안해서 드리겠습니다.”
시현은 10돈짜리 작은 금괴들로 이뤄진 원장의 비자금을 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요즘 시세로 대략 2천만원 정도 될 겁니다. 뭐 크면 크다고 할 수 있고 작으면 작다고 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이 정도는 당신들의 정당한 권리겠지요.”
“고, 고맙군. 하지만 그럼 남은 건. 당신이 먹나?”
“저는 원장이 실각한 이후 사랑원을 수습할 예정입니다.”
“뭐?”
“적어도 제대로 된 복지시설에 인계할 때까지는 말이죠. 그에 따르는 비용으로 쓸 생각입니다만?”
“…….”
다들 시현이 하는 말에 놀랐다.
그냥 적당히 사건을 의뢰하고 해결하는 줄 알았는데 사랑원의 원생들, 나머지들을 다 인수하고 돌봐주겠다는 말인가?
“아무리 사랑원이 아이들을 학대하고 장애인을 착취하는 곳이라 하더라도 원장이 실각하면 당장 이들이 붕 뜨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가 케어하고 관리해줄 필요가 있지요.”
“그런데 이제 원장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영원히 감금하는 건가?”
“그건 흠.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려있지요.”
모두의 뜻을 합쳐서 결정해봐라.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졸원생들은 서로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년시절을 지나 오랜 세월이 지나 그들의 얼굴에 시간의 상흔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린 아이처럼 늘 조철진을 두려워해왔다.
법을 어기고, 부당한 짓을 저리도 당당하게 하면서 오히려 지자체장이나 복지부서 관련단체의 상을 타는 모습을 보면 힘없는 고아들이 감히 원장에게 항거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결국 모두들 무기력을 학습하고 세계에 순종하게 된다.
학교폭력이 그렇고 군대의 부조리가 그렇고 이 사회 어디나 그렇다.
부당함과 부조리에서 아이들은 무기력하게 부조리에 의해 희생되거나 아니면 본인 역시 그 부조리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부조리의 칼자루가 그들의 손에 들어왔다.
언제나 절대 강자이던 원장이 이렇게 초라하게 보일 줄이야?
“당신을 다시 고용할 수 있나?”
조민혁이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네. 저야 당연히 환영이지요.”
“그럼 부탁할게 있는데.”
조민혁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수하려는 걸 도와줘.”
조민혁이 그렇게 말하자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지요.”
* * *
“뭐?”
“이 자식이!?”
조민혁이 자수하겠다는 말을 들은 졸원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특히 천기와 장인제는 눈에 띄게 분노했다.
아무래도 그들이 괴롭힘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밀이 밖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려 할 때 그들의 발 앞에 따닥 하고 스테인리스 스틸 카드가 꽂혔다.
시현이 카드를 던진 것이었다.
펜션의 나무 데크에 꽂히는 걸 보니 사람에게 맞아도 꽂힐 것이다.
“자 다들 얌전히 계시길. 저희 시현 탐정사무소는 과거 계약의 고객들도 존중해드립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현재 고객님을 우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
바로 그들은 과거의 고객이 된 것인가.
“우선 알려드리겠습니다만 고객님께서 자수하신다고 해도 여러분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진 않을 겁니다. 살인은 법 개정에 의해서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여러분들의 경우는 살인으로는 기소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무거운 형벌이라봐야 폭행치사죄라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지요.”
“하지만 알려지는 것 자체가 싫다고.”
“물론 그러시겠지요. 그러나 지금 자수하는 조민혁 님의 경우는 실질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원장을 도와 공문서 위조에 협력했으니 말이지요. 조민혁 님은 그걸 알고서도 자수하겠다고 하는 거니 여러분들도 그 정도는 양해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제기랄. 이 깔끔떠는 새끼 같으니. 너 혼자 그렇게 잘났어? 네가 그렇게 착하고 잘난 놈이냐고!”
장인제는 이제와서 자수해야 겠다는 조민혁을 비난했다.
“저 녀석이 이걸 각오하고 그러는지는 모르는 거잖아?”
다른 사랑원 졸원생이 그렇게 말하고 조민혁을 설득했다.
“야. 너도 감방갈 수 있어. 다른 건 몰라도 장애인 한 명 가지고 여러번 주민등록한 건 지금도 처벌받을 일이잖아? 네가 감방갈 줄 모르고 자수한다고 한 거지? 얼른 아니라고 말해.”
“상관없어. 그 정태호 형의 아버님도 원하실거 아냐?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개입했고 사랑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밝히려면 내가 자수해야 해.”
조민혁은 다른 졸원생들이 애걸해도 뜻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시현이 조민혁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왜? 원장에 협력해서 피해자를 계속 양산하던 내가 자수하겠다니까 우습나?”
조민혁은 시현이 자신을 비난했던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어느정도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무기력이 학습되어서 원장의 심복이 되어 그의 사업을 도왔던 그였다.
원장의 공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이제와서 다들 사건을 묻으려고 하는데 뭐 잘났다고 자수하려는 건가?
“아닙니다. 그때의 말은 제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무기력을 학습당한 사람이 자신의 사슬을 끊어내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요. 그걸 해내지 못했다고 누굴 비난한다면 그건 큰 실수입니다. 당시에 제가 당신을 도발했던 것은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일부러 했던 말이지 제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시현은 조민혁에게 사죄했다.
“그래서… 자수하는데 비용을 얼마나 내야 하지?”
“흠. 뭐 이정도는 비용 없이 애프터 서비스로 해드리지요.”
그걸 본 사랑원 졸원생들은 다들 깨달았다.
‘편애하네.’
‘이 새끼가….’
그러나 그때 시현이 쓴 웃음을 지었다.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여러분들도 제 애프터 서비스가 필요하게 되었으니까요.”
“뭐?”
“무슨 소리를….”
그런데 그때 펜션 입구의 나무가 우드득 하고 쓰러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무 옆에 젊은 여성 한명이 핑크색으로 물들인 요란한 머리를 하고 분개하고 있었다.
사이다패스가 찾아온 것이었다.
“데드맨!”
“그렇죠?”
시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그냥 여자애잖아?”
다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 * *
“이 새끼! 날 호구로 봤지?!”
그녀는 대뜸 주차되어 있던 차를 붙잡더니 문짝을 뜯어버렸다.
“!?!”
“억?!”
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기겁했다.
문짝을 뜯어낸 것만 해도 놀라운 데 그녀는 몸을 빙글 돌리더니 원심력을 실어서 그 문짝을 무서운 속도로 던져내는 게 아닌가.
사랑원 졸원생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문짝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시현의 행동도 상상을 초월했다.
시현은 날아드는 문짝을 뒤로 몸을 젖혀 피하며 문짝의 유리창에 어퍼컷을 꽂아넣었다.
유리창이 깨져나가며 시현의 팔이 문짝을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시현 또한 빙글 몸을 돌리며 힘을 더해서 던져진 문짝의 힘을 죽이며 멈춰세웠다.
그가 그렇게 멈춰세우지 않았다면 날아드는 문짝에 사랑원 졸원생들이 참수당했을 것이다.
“…….”
“어….”
보고 있던 이들은 기겁했다.
분명히 인간의 싸움이지만 이들이 보이는 신체능력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진정하시지요. 원참.”
시현은 간신히 문짝을 멈춰세우고 팔을 빼냈다.
차량 문짝을 멈춰세우느라 무리해서인지 팔의 피부가 유리파편과 프레임에 찢기고 팔꿈치도 탈구되었다.
하지만 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탈구된 팔을 스스로 끼워맞췄다.
그 태연한 모습에 공격했던 사이다패스도 주춤했다.
신체능력에서는 그녀가 우위이긴 하지만 데드맨도 어차피 불사신.
그녀로서는 죽일 수 없는 상대다.
반면 데드맨은 그녀를 패퇴시킨 적이 있었다.
비록 악마의 매개물인 타자기로 후려갈겨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녀의 공격을 무마시키는 걸 보니 역시 상대하기 껄끄럽다.
“왜 그렇게 화가 났습니까?”
시현이 태연하게 상처를 추스르며 질문을 던졌다.
“네놈이 사랑원 원장이랑 원생들을 내게서 빼돌렸잖아! 게다가 이 청원도….”
“그에게 들었나 보군요.”
시현은 고객들 앞에서 최형림의 이름을 언급하는 걸 자제했다.
고객들이 최형림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영사나 미카엘이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리 없고 아무리 시현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이들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 날 갖고 놀아?”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당신은 앞으로의 수사방법에 대해 조언을 얻었고 저는 필요한 수명을 얻었지요. 여기에 무슨 부당 거래가 있습니까?”
“네놈이 청원으로 날 조종했잖아!”
“청원 사이트에 저는 청원하지 말라는 법이 있던가요? 분명히 저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게다가 조종한 게 아니라 당신이 선택한 것 아닙니까?”
“………”
“그리고 전에도 해봐서 알겠지만 당신은 절 못 죽입니다.”
“알아. 그래도 저 놈들을 다 지키면서 싸울 수 있을까? 여긴 이렇게나 한적한 곳인데?”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고 다시 문짝을 뜯어냈다.
“경찰도 지나가는 행인도 없지! 네가 아무리 불사신이래도 사지를 잘라놓고 저놈들을 토막내면 나의 승리다!”
사이다패스가 흉흉한 살기를 뿌리자 시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아. 전 진심으로 당신을 상처입히고 싶지 않습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