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25화 (225/269)

제225화

악마의 제전 #2

마치 사이다패스를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그녀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참는다는 듯한 말투다.

“웃기시네! 전번에 운좋게 이겨놓고선! 이번에도 그게 통할 것 같아?”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고 다시 원심력을 얻기 위해 문짝을 잡고 빙글 돌았다.

그러나 이번엔 시현이 손을 썼다.

-탕!

총탄이 그녀의 다리에 명중하자 사이다패스도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꺄악!”

사이다패스가 지면을 박차고 일어났지만 어느새 그녀의 눈 앞에 다가온 시현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물론 머리에 총을 맞는다 해도 사이다패스는 죽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멈춰섰다.

‘타자기도 없는데….’

전에는 매개물인 타자기에 두들겨 맞고 한 주 정도 컨디션 난조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시현은 지금 타자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그런데도 겁이 더럭 난다.

“그래도 잘 오셨습니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걱정되었는데.”

“걱정?! 당신이 나를?”

“네. 당신이 위험한 상황이거든요. 김유라 양.”

“!”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건 알겠지요? 당신은 제 도움이 필요합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총을 거두고 대신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사이다패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시현의 손을 어색하게 붙잡았다.

“젠장. 당신이나 최형림이나 똑똑한 놈들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인데.”

“뭐 머리가 나쁘면 몸과 마음 다방면으로 고생하는 법이지요.”

“…….”

면전에서 대놓고 욕하는 거나 다름없는데도 사이다패스로서는 차마 반박할 말이 없었다.

* * *

최형림은 고민하고 있었다.

사이다패스가 그에게 말도 없이 데드맨과 접촉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

영사가 사이다패스를 잘라내자고 말했을 때 최형림은 사이다패스의 증오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영사의 제안을 거절했었다.

사이다패스가 절실히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영사가 제안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자신조차 영사에게 조종당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사의 존재는 최형림에게만 껄끄러운게 아니었다.

사이다패스에게도 영사의 존재는 껄끄러웠기에 영사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이다패스와 최형림간의 사이가 벌어지고 균열이 발생한다.

최형림이 사이다패스를 믿어준다 하더라도 사이다패스가 최형림을 믿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렇게 생각하는 시점에서 믿는다고는 할 수 없겠군.’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고 눈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인근 PC방에 들어와 있는 상태.

그런데 미카엘은 정말 게임을 키더니 게임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좋아하나 보군요.”

“안해봤나?”

“잡기 삼아서 조금 해봤습니다만….”

최형림은 마치 옛 선비가 바둑을 익히듯 게임을 접해보았을 뿐이다.

그가 처한 환경이 너무나 가혹하고 그가 목표로 하는 복수가 너무나 험한 길이어서 게임에 몰입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이건 정말 멋진 놀이야. 하라는 것만 하면 나같은 놈도 인간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데다가 이 적나라한 인간들의 욕구와 열망, 숨길 수 없는 그 본성을 느낄 수 있단 말이지.”

미카엘이 그렇게 하고 있는데 채팅창에서는 지금 미카엘이 고른 캐릭터에 대해서 욕설이 난무하고 있었다.

“물론 좀 화도 나지만 화가 난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거 참….”

최형림은 그걸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영사와는 잘 지내?”

“뒷조사를 좀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절 조종하려고 하기에 약점을 잡아야 겠다 싶어서.”

“후후. 약점은 잡았어?”

“아니요. 딱히. 애초에 그사람의 신분, 양원일? 그건 마치 유령같은 사람이더군요. 어린 시절에 학교도 안다니고 바로 검정고시후 방송통신대학과정을 거쳐 학위를 취득하고…. 다른 사람들과 접점 없이 성장한 게 딱 봐도 만들어진 신분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쳐내기엔 너무 멀리 왔지?”

“네. 그가 류장천 회장을 소개시켜 줬는데… 괜찮습니까?”

최형림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헥사곤 엔터테인먼트의 윤회장도 최형림에게 투자를 많이 했다.

당장 미카엘이 구해다 준 자금들도 윤회장에게서 나온 돈이 아닌가?

“뭐 잘나가는 검사나 정치인이 스폰서가 하나 뿐일리 없잖아? 게다가 류하리와 네가 약혼하는 건 우리가 바라는 사항이고. 아버지, 그러니까 윤 회장이라면 딱히 신경쓰지 마. 떡값 뿌리는 대상이 하나 둘이 아닌데 뭐.”

“…데드맨에게 구애를 받는 군요.”

최형림은 시현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일부러 류하리와 자신을 약혼시켰다는 미카엘의 의도를 눈치채고 혀를 찼다.

“너도 좋지 않아? 그녀를 좋아했을텐데?”

미카엘의 말에 최형림이 흠칫 놀랐다.

“좋아했었다?”

“아니라고 말할 건가? 아니라면 왜 사이다패스와 한패거리라고 그녀에게 고백했지?”

“그녀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해줬을 뿐입니다.”

“아니지, 아무리 상대가 의심하더라도 보통은 절대로 자기 입으로 긍정하지는 않지. 당신은 그저 류하리에게 심리적으로 밀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다른 여자들은 네가 재벌가 자식이라던가 잘생긴 청년검사라던가 하는 요소 만으로도 네게 흥미가 있을텐데 그녀는 네게 흥미가 없거든. 약혼을 해도 흥미가 없던 그녀가, 네가 사이다패스와 한패라고 고백하니까 흥미를 보이지? 그렇지 않아?”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었다.

“너무 심심해서 제정신이 아닌가보군요. 그런 망상까지 하게 되다니. 그것보다 문제는 사이다패스입니다.”

“왜?”

“데드맨과 연락을 했더군요. 자기 멋대로 표적을 잡고 그 표적에게 접근하기 위해 데드맨에게 정보를 얻은 모양입니다.”

“흠? 그래서? 제거하게?”

“그것도 옵션에 두고 있습니다만 그녀를 제거하게 되면 영사의 뜻대로 끌려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냥 묵인하는 건 어때? 데드맨은 경찰이 아니야. 그는 계약 외에는 신경쓰지 않아. 어차피 사이다패스의 살인수법은 법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니까 하라는 대로 내버려두고 너는 그대로 정계에 진출하지 그래? 어차피 이제 굳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더라도 정계에는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다음에는요?”

“흠….”

“정치 초년생이 그렇게 쉽게 재벌들을 사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아예 당신이 계약자가 되는 건 어때? 그렇다면 다른 이들 신경쓸 필요없지. 어때? 계약을 하고 싶나?”

“글쎄요. 당신이 지금 제게 잘 대해주는 게 제가 계약자가 아니라서 아닙니까?”

최형림은 미카엘을 잘 알고 있었다.

뭐든지 이룰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인 이 악마는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에 갈망한다.

그 갈망 때문에 그는 누구보다도 자비롭다.

하지만 일단 계약을 해버리고 나면, 그리고 자신의 욕망의 밑바닥을 다 보여주고 그 결말까지 다 보이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해답은 이미 눈앞에 있다.

영사를 보라.

소망을 다 불태워 이제 남은건 초월자들에 대한 동경밖에 없는 영사를 대하는 미카엘은 그를 역겨워 한다.

“뭐 하지만 상관없잖아? 당신이 내게 존중받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 복수를 위해서 영혼 정도는 팔아도 다들 이해할 것 같은데?”

“싫습니다.”

“그렇다면 계약자가 아니라면 어때? 그 살인예술가인가 하는 얼간이 놈을 죽이면 그 능력이 당신에게 전이될텐데?”

“네?”

“악마들이라고 다들 뭐 영혼 내놓으면 힘을 주마 이렇게 천편일률적이지 않거든? 어떤 놈들은 그냥 저주를 풀어놓고 어떤 놈들은 생물 자체를 변화시키거나 만들지. 살인예술가라는 놈도 비슷해. 그냥 능력만 주고 그게 다양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걸 즐기며 관음하는 것 뿐이야.”

“관음한다면….”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능력을 주고 그 대가로 그녀석의 감정이나 마음에 동기화 되는 거지. 일종의 꿈이라고 해야 하나?”

“……….”

“살인을 할 정도의 녀석의 감정이면 항상 강렬하니까 말야, 그놈을 죽이면 그 저주가 그냥 옮겨오고 딱히 영혼을 파는 건 아니게 되지. 어때? 이런 건 관심이 있나?”

“상당히 역겹군요. 그건.”

“그럼 왜 보자고 한거야? 원수를 갚기 위해서 그냥 젊은 검사, 젊은 국회의원이 되어도 부족하다면서 계약은 하기 싫다고?”

“사이다패스와 이야기하려는 데 안전을 위해 당신의 부하를 좀 빌려주시지요.”

“뭐야? 계약은 안하면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야? 뻔뻔한데?”

“악마의 화신으로서가 아니라 헥사곤 엔터테인먼트의 영업상무인 미카엘 윤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아, 그렇다면야.”

미카엘은 최형림의 말에 쉽게 수긍했다.

* * *

사이다패스는 병원의 명패를 손으로 긁었다.

‘김유라.’

그 명패를 손으로 긁어 마치 맹인이 점자를 읽듯 감촉을 느끼던 그녀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꿈을 꾸고 있군요.”

시현이 사이다패스의 곁에 와 섰다.

“어떻게 알았어?”

그녀는 옆에 와있는 탐정, 시현을 바라보았다.

“저는 처음에 당신이 나타났을 때부터 당신의 성향에서 대충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뭐?”

“아시다피시 저는 억울한 사람들에게,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해주고 수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판례들을 수집하고 있지요. 아르바이트 생들에게 판례를 검색하게 해서 그중 억울할 것 같은 사건들을 추려내도록 하고 조사시키고 있습니다만.”

“아.”

“게다가 당신의 선언문은 당신을 너무나 잘 알려주었지요. 법조계에 불만이 있을만한 사건, 특히 판검사들에게 불만이 있을만한 사건을 추려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요.”

“최형림도 알고 있겠군. 그럼.”

사이다패스는 너무나 쉽게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아내버린 시현의 말을 듣고 혀를 찼다.

최형림과 영사도 자신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아예 적인 당신이 알고 있었다는 건 별로 걱정이 안되네. 난 분명히 당신을 적대했는데도 날 죽이지 않았으니 말야.”

데드맨은 그녀를 죽여야 안전한 상황에서도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함께 했던 이들은 어떤가?

위험하다.

사람을 죽인다는 선을 쉽게 넘은 인간들에게 살인이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그때 한 노파가 다가왔다.

“응?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시현은 다가오는 노파를 향해 인사를 했다.

깜짝 놀란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뒤에 숨었다.

노파는 그런 사이다패스를 의아해했다.

“제 일행이 낯을 좀 가리는 사람이라서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소득은 좀 있었수?”

“네. 조금 소득이 있었습니다만.”

시현은 그리 말하며 노파에게서 사이다패스의 얼굴을 몸으로 가려주었다.

그러자 노파는 병실로 들어가 병상에 앉아있는 여성의 몸을 뒤집어 주고 그녀의 다리를 주물러주었다.

오랜 병원 생활로 몸의 근육이 빠져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변한 몸을 뭐 주무를게 있다고 행여 부러질까 조심스레 다루는 노파를 보며 사이다패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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