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26화 (226/269)

제226화

악마의 제전 #3

“괜찮을까. 할머니에게 보이면….”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물어보았지만 시현은 코웃음쳤다.

“너무 다르니까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의 사이다패스는 그녀가 본래 건강할 때의 모습에 과한 화장과 염색을 더해 화려하게 만들어진 모습이다.

손녀의 모습이 아무리 변해도 못알아보는 게 부모의 정이라지만 지금 손녀의 육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그녀가 설마 손녀가 이런 해괴한 모습으로 돌아다닐 줄은 모를 것이다.

그때 시현이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님. 혹시 이상한 사람이 찾아오진 않았습니까?”

“이상한 사람이라… 음. 시민단체 사람이라는 이들이 왔어요.”

“명함은 주던가요?”

“며, 명함이요? 글쎄요.”

“연락처는 요?”

“그것도 잘….”

“네, 알겠습니다.”

시현은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이다패스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니 그녀는 제대로 세상에 맞서는 법을 모른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게 되면서 집안의 생계는 이제 전적으로 그녀의 손에 달리게 되었다.

매니저인 어머니는 히스테릭해졌고 집안의 분위기는 끔찍한 지옥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런 김유라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숙적같은 소녀가 한 명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양지희.

공안검사 출신이며 지금은 선진당의 대표인 양천용 의원의 외동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아역 배우의 길을 걸은 양지희 입장에서는 자신의 배역을 빼앗아 가는 김유라를 용서할 수 없었다.

마침 양지희는 김유라보다 한 살이 더 많았고 김유라가 다니던 진양예고의 1년 선배였다.

“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집단괴롭힘이 시작되었어.”

“진양예고 였지요?”

“그래.”

아역 배우 활동을 하면서 예술고에 진학한 김유라는 역시 같은 고등학교에 먼저 입학해있던 양지희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다. 그 가혹한 괴롭힘이 어찌나 지독했는지 지금 말하는 중에도 손이 덜덜 떨리는 듯 했다.

“여러사람들이 작정하고 날 괴롭힌다는 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몰라. 아빠에게 학교 안가고 홈스쿨링 하고 싶다고 말해보았는데… 가뜩이나 연예계에 어린 시절부터 몸을 담그면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아빠는 허락하지 않았지. 딸인 내가 학교에서 어떤 고통을 받는지도 모르면서….”

“뭐 대한민국 부모들은 또 그런 게 있지요. 요새야 모르겠습니다만 당시에는 홈스쿨링은 대인관계에서 낙오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습니까? 아버님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

“잘났어. 정말. 하여튼 최악의 학교생활 속에서도 내게 기회가 왔어. 유명 감독인 장제현 감독의 새 TV시리즈에 주인공의 아역으로 등장하는 배역에 대해서 오디션 공지가 난 거야. 나는 그게 따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어. 학교도 째면서 열심히 했지. 마침 그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고 있었고 그래서 내 매니저인 어머니도 배역을 따는데 사활을 거셨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배역은 따냈어. 양지희를 꺾고 내가 배역을 따냈지. 후후. 학교에서는 날 괴롭히지만 재능이나 능력에 있어서는 내가 훨씬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였던 거야.”

아무생각없이 스탭이 준 과자를 먹은 김유라는 갑자기 컨디션이 안좋아져서 병원에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몸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온 것이었다.

“마리화나 브라우니 케익이라던가 젤리라던가 그런게 미국에서는 꽤 유행하지요.”

“그래 그거였어. 누가 줘서 먹었는데 그게 설마 마약이 들어있는 건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생긴건 일반 과자랑 똑같이 생겼는데!”

결국 그렇게 남에 의해 속아서 마약을 투약하게 된 사이다패스는 그후 기다렸다는 듯 들이 닥친 수사반에 의해서 체포당했다.

다크웹을 통해서 거래되는 먀약의 특성상 수사 하는 쪽이 직접 함정수사를 하면서 화면을 캡처하지 않는한 온전한 증거를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결론이 나오기 전부터 언론을 붙잡고 자신들이 생각한 시나리오를 그대로 언론에 실리게 했다.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한 사이다패스의 어머니가 우울증에 시달려 다크웹에서 약을 구했고 그 약을 관리하지 못해서 딸인 김유라가 먹게 되었다.

그런 추측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각 일간지와 TV에 도배되기 시작했다.

유명 아역 배우 마약 투약!

이런 헤드라인을 달고 말이다.

불행한 가정은 다들 제각각의 형태로 불행을 안고 사는 법.

사이다패스의 집안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이미 금이 가 있었지만 그 사건이 결정타가 되었다.

* * *

“나는 미성년자라 체포되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는 체포되었고 난 배역을 잃었지. 그 후 연예계에서 난 완전히 퇴출되었어.”

“지금 병원에서 당신의 병수발을 드는 분은 어머님이 아니라 할머님이지요?”

“그래. 외할머니야. 어머니는… 무고함을 주장하며 조사받던 중 쓰러지고, 그렇게 옮겨진 병원에서 갑자기 뛰어내려서 자살하셨지. 그 후 아버지는 사업이 망해서 잠적하고 학교에서도 제적당한 나는 아무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사람들 피해서 살았어. 내 얼굴을 알던 사람들이 날 알아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으니까. 가끔씩 날 괴롭히던 학교 놈들을 만나면 그녀석들의 조롱과 멸시, 그리고 개같은 회유가 날 더 기분나쁘게 했지.”

“회유라면?”

“뭐겠어? 자기들 애인이 되라는 거지. 양지희 눈치 때문에 날 괴롭히는데 나섰던 놈들 중에도 내게 껄떡대는 놈들은 있었거든. 제기랄. 날 그렇게 괴롭혔으면서 몸은 탐난다 이거 아냐? 정말 기분 나쁜 새끼들이야.”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집안도 풍비박산난 이후 김유라는 어린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험한 삶을 살아야 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부터 아역배우의 길을 걸었던 그녀가 고교 중퇴의 아르바이트 생으로 살아야 했으니 삶의 낙차가 엄청났으리라.

“그런데 우연치 않게 양지희의 집에서 숙식을 하던 정원사의 아들을 만나게 된 거야.”

“정원사도 두고 있었군요.”

“대단하지? 참 잘나신 분이라니까. 그 정원사의 아들이 그러는 데 ‘양지희, TV에서 보는 것과 달리 성격 나쁘고 마약도 한다. 심지어 경쟁하는 애들은 아버지 빽을 써서 제거한다. 누구에게 먹이는 마약을 먹여서 제거하면 아주 쉽다더라.’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그 말을 녹음해서 법률구조공단과 변호사 단체에 가져갔지. 그런데 다들 날 미친년 취급하는 거 있지?”

그야… 어디서 누가 떠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말로 당시 여당의 중진의원이던 양천용 의원과 그 딸 양지희를 험담하고 있으니 제대로 들어줄 리가 만무하다.

“당신이 괜히 헛짓거리해서 그 정원사 아들은 죽었겠군요.”

“…그건 미안하네. 뭐 결과적으로 나도 이렇게 됐지.”

사이다패스는 눈을 감았다.

양천용과 양지희에 대해서 고발을 하겠다고 나선 후 어느날 밤, 갑자기 괴한들에게 습격당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전직 검사인 정치가 녀석이 작정하고 사건을 덮으려고 하면 나같은 어린 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 죄없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해도, 죄있는 놈을 무죄라고 해도 할 수 있는게 없어. 그저 눈뜨고 당하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여기저기서 괴롭힘당해도 아무에게도 동정받지 못하고 내몰려야 했어.”

“애초에 사건 자체도 조작이었을 겁니다. 마약을 거래하는 다크웹에서의 기록이라는 게 누구를 쉽게 특정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머니가 그런 걸 먹는 걸 본적이 없어… 내가 믿어줘야 했는데, 나는 마지막 까지 어머니를 믿지 못했지. 나도 집이 사업에 망했고 학교에서는 양지희에게 괴롭힘 당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어머니의 마지막 날에 나는 모진 소리를 했어. ‘엄마가 미쳐서 내 인생까지 망가졌다!’라고….”

죽는 그날 사이다패스는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날 어머니가 자살했으니 사이다패스는 타임머신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자신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었다.

* * *

“그런데 양지희도 양천용도 살아있군요? 다른 사람들은 다 죽이면서. 왜 살려두고 있는 겁니까?”

“처음엔 당연히 바로 죽이려고 했어.”

사이다패스는 망치를 손에서 빙글 돌렸다.

“일에 관련된 놈들을 다 죽일거야. 양지희, 양천용, 그리고 그 놈들의 가족 까지 모조리…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니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더라고.”

“목소리?”

“내가 그들을 죽이게 되는 순간이 나의 끝이라고. 그들을 죽이는 순간 나는 영혼을 징수당하고 끝장난다고 말이지.”

“흐음. 그렇군요.”

사이다패스에게 붙은 악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다.

기껏해서 잡은 계약자인데 바로 원수를 갚아버리면 그 동력을 전부 소진하게 된다.

사이다패스가 처음부터 원수를 죽여버렸다면 그 이후 그녀의 존재가 악마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을까?

아무런 감흥도 없어지는 것이다. 영사가 그런 것처럼 모든 욕망을 소진해버린 존재는 악마에게 있어서 혐오감의 대상일 뿐이다.

악마와 계약할 정도로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있는 이가 그 소망을 이루어버리면 이제는 텅빈 욕망의 구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아니면 영사처럼 절대자에 대한 갈망만으로 살아움직이는 괴물이 되게 된다.

“머릿 속의 목소리는 아마도 나에게 힘을 준 그것의 목소리겠지. 하지만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그래. 이대로는 도저히 수지가 안맞아.”

“수지가 안맞는다?”

“그렇잖아. 양지희와 양천용. 그들은 권력을 가지고 자신들 마음대로 살면서 앞에 거슬리는 것들은 너무나 쉽게 치워버리지. 자기 딸에게 거슬린다고 마약을 먹여서 그 가족의 인생까지 다 파멸시켰다고!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복수하려면 인생을! 아니 영혼까지 걸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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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난 뭐지?”

“당신은 저 병상에 누워있는 소녀가 꾸는 꿈이지요.”

“꿈이라고?”

“네. 뭐 그런 계약자들도 있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다 전화기를 들었다.

“음. 이런. 류하리 경위군요. 일이 끝난 모양입니다. 이쪽으로 오겠다고 하는데….”

“상관없어. 어차피 당신이 그녀에게 나에 대해서 말할 거 아냐?”

“알겠습니다.”

시현은 류하리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고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음료수를 사왔다.

“그럼 그녀가 올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우선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세요.”

“내 이야기? 내 이야기는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대충은 알고 있지만 당신의 입으로 듣는건 또 다를테니까요. 서류상의 글자 몇자로 된 것과 당사자 입장이 같을 수 없지 않습니까?

“알겠어. 젠장.”

사이다패스는 짜증을 내며 시현의 앞에 앉았다.

* * *

사이다패스, 김유라는 본래 유명한 아역 배우였다.

어린 시절부터 어린이 프로의 방송에 나왔는데 어린 나이에도 다른 아이들과 격이 다른 카리스마로 카메라 맨이 무의식중에 카메라에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린아이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등에서 꽤 유명해지고 있었다.

공부를 하느라 그리 많이 활동하진 못했지만 여기저기서 그녀를 캐스팅하고 싶다는 오퍼가 알아서 쏟아져 들어왔었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밝은 미래가 펼처질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파멸이 찾아왔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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