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27화 (227/269)

제227화

악마의 제전 #4

사이다패스는 몸서리쳤다.

“법은 약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아! 저들은 날 이렇게나 쉽게 파멸시켰는데 무고하게 가만히 있다가 먼저 공격당한 내가 그저 복수 좀 할려고 치면 목숨은 물론, 영혼까지 다 내놔야 하다니! 억울해! 왜 무고한 사람이 희생당해야 해? 무고한 사람과 죄지은 놈의 목숨이 일대일로 치환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여기서 영혼까지 빼앗긴다면 일대일도 아니잖아? 내 영혼에, 내 목숨에 가치가 그정도로 없는 거야? 저 잘나신 놈들에게 복수좀 하기 위해서 다 내던져야 할만큼 나는 무가치한 존재냐고!”

부당하게 침해받은 자가 복수하려면 자신의 모든 걸 바쳐야 한다.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사이다패스는 견딜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뭐 그래서 무고하지 않은 자가 되려고 했습니까? 그렇다면 확실히 성공했군요.”

이제 사이다패스는 무고한 자라고는 할 수 없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마를 무고하다고 할 수는 없는 법.

“그래. 그러니까 이젠 모든 걸 끝내도 되겠지.”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다 자신의 팔을 손톱으로 긁었다.

피가 흘러내리지만 그녀의 육체는 결국 꿈에서 만들어진 것, 금새 아문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팔을 쥐어뜯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머리로는, 감정적으로는 복수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잃어야 할 것, 그 영혼을 악마에게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젠장. 억울해. 그냥 잘 살고 있었잖아. 아빠 사업이 망하긴 했지만 나는 그 드라마의 배역을 따냈어! 우리 가족은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고! 그런데 왜! 왜 이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나는 영혼까지 바쳐야만 하는 거야?!”

“그럼 복수를 포기하시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어!”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결국 나는 복수를 선택했겠지! 복수를 해도 지옥, 안해도 지옥같을 테니까!”

사이다패스는 고통과 절망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사이다패스가 된 겁니까? 당신이 파멸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청원을 들어주고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것으로 남기기 위해서?”

사실 시현은 사이다패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같은 악마의 계약자 신세이니 그가 아니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원수를 갚아버리면 영혼이 징수당한다.

그걸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억지로 원한의 외연을 확장시켜왔다.

이것은 그녀의 의지이기도 하고, 또한 그녀와 계약한 악마의 의지이기도 하다.

악마 입장에서도 기껏 인간 세상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장난감이 고작 한 번에 망가져 못쓰게 되는 걸 원하진 않겠지.

그래서 목소리로 개입해 그녀에게 경고했고 그녀는 그 목소리로 인해 번민한다.

악마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시나리오일 것이다.

무고한 피해자였던 그녀가 복수할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로 인한 번민과 고통, 그 안에서 점점 자신의 손을 피로 물들이고 최형림이라는 거대한 야심가와 함께 맞물려 들어가 이 세상에 사이다패스라는 이름의 살인마로서 입지를 다져가는 모습은 악마 입장에선 참으로 즐거운 것이었겠지.

“전혀 시원스럽지 못하군요. 대체 당신의 어디에 사이다가 있는 겁니까? 앞으로는 고구마패스라고 불러드리죠.”

“그래. 인정하지. 젠장.”

사이다패스도 시현의 말에 할말을 잃었다.

“그런데 악마에게 내 영혼이 징수당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김유라라는 인간은… 그냥 저렇게 병상에서 시들어 죽어가겠지? 그 영혼인 나는 악마에게 끌려가고?”

“흐음. 아마도요.”

“그렇다면 그 전에 최대한 날뛰어서 사이다패스라는 걸, 내 목소리를 이 세상에 전하고 싶어. 어차피 복수는 할 거니까. 내 영혼이 저 악마들에게 떨어져 버릴 테니까 그 전에 최대한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고. 더해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원한도 대신 풀어주고.”

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최형림과의 협력은, 미카엘이 주선했습니까?”

대답 대신 사이다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면 내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해서 말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신이 이용당하기만 했지요?”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데드맨. 난 아직 당신을 완전히 믿고 있는게 아니야. 나와 최형림을 이간질해서 재미를 보겠다는 네 심보를 모를 것 같아?”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저는 당신들을 이간질 시켜서 이득을 볼 입장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의 그 고구마패스같은 행동들, 저의 고객의 이익에 상충되지 않는한 하건 말건 전혀 신경 안씁니다.”

“신경 안쓴다고? 사람을 죽여대고 살인을 하는데도?”

“저 역시 사법체계하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소망을 이뤄주고 그들의 수명을 거둬가는 입장입니다. 법을 자의적으로 넘어선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지요.”

“그럼 왜 나에게….”

“저라면 당신의 원한도 갚고 당신의 영혼도 악마에게 끌려가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

사이다패스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야! 너 되는 대로 대충 던지는 말이면 너 내 손에 죽는 거야!”

“당신은 절 못죽인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겠습니까? 아 그런데 잠깐.”

시현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류하리에게 박아둔 태그가 가까워지고 있는게 보였다.

* * *

류하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현과 사이다패스가 한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뭐야 이건?’

분명히 그녀가 보았던 시현과 사이다패스는 서로서로 죽일 듯이 싸웠었다.

시현은 사이다패스의 목을 찢어버리고 악마의 매개물인 타자기로 후려쳐서 그녀를 약 1주일 정도 잠적하게 했었다.

사이다패스니까 안죽고 살아있는 거지 보통사람이라면 열 번은 죽을 중상이었다.

그렇게나 서로 죽이려 했던 이들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오셨군요. 류 경위님.”

“아니 잠깐… 지금 저기 이 사람은.”

“사이다패스.”

“네. 알아요. 아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어쩌면 고객님으로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서요.”

“고객이라니, 사이다패스를요?”

“네. 그녀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안다면 그에 따른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지요. 그것이 바로 고객만족 아니겠습니까?”

“…여기는 대체?”

“그녀의 본체가 저 요양병원 안에 있습니다.”

“네?”

“우선 이야기를 해드리죠. 앉으세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사이다패스의 가정사, 그녀의 정체를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양천용 의원의 딸이자 젊은 여배우인 양지희가 자신의 라이벌이던 김유라 씨에게 마약이 담긴 쿠키를 먹여서 마약사건을 일으켜 그녀의 가족 전부를 싹 파멸시켰습니다. 그 대가로 그녀는 사이다패스가 되었지만 원수들을 바로 죽여버리면 스스로 파멸할 것을 알기에 최대한 파멸을 늦추고 있는 상황이고요.”

“…야이 씨. 요약이 너무 빠르잖아.”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인생사를 그렇게 쉽게 요약해버리는 시현에게 짜증을 냈다.

“뭐 추가하고 싶은 거 있습니까? 고구마패스 씨?”

“아니 그런 건 없는데. 정말 고구마라고 부르냐?”

“…이 요양병원에 사이다패스의 본체가 있다고요?”

“네. 김유라 양입니다. 그녀를 죽이면 사이다패스도 사라지겠지요. 아마 최형림씨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녀와 그 가족이 검찰 수사관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거든요.”

“네? 그말인 즉, 검찰 수사관이 그녀를 사찰하고 있다는 건가요?”

류하리가 놀라워하자 시현이 피식 웃었다.

“당신도 절 사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민주주의 시민사회에서 사법기관이 누군가의 사리사욕 때문에 민간인을 사찰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사찰 그 자체는 정보과, 방첩임무등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산업스파이나 군사스파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사찰은 필수불가결한 요소,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무서운 이미지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언급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결국 하기는 하되, 들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찰 수사관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다면….”

“양천용 의원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여전히 검찰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겠지요.”

“그래서 말인데. 뭐야? 데드맨. 어쩌려는 거야?”

“흠 고구마패스씨.”

“아 자꾸 그렇게 부를래?”

“그럼 고구마 양.”

“…시발놈아.”

“제가 복수를 대행해드려도 되겠습니까? 대가는 당신의 남은 수명 전부입니다.”

“뭐?”

“제가 당신의 복수를 대신해 양천용, 양지희 두 사람을 파멸시키겠다는 소리입니다. 대신 당신은 쩨게 모든 수명을 빼앗겨서 죽고, 그렇게 되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길 일 없이 해결되겠지요. 악마는 당신의 진짜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지 못했으니까.”

“…….”

듣고 있던 류하리는 기가 막혔다.

“잠깐만요. 양천용 의원은… 현재 선진당 당대표라고요. 그를 파멸시키겠다고요?”

“그러게? 그냥 죽이는 게 쉽지. 데드맨 당신은 사람을 안죽인다면서?”

“그야. 깔끔하게 죽여버리는 건 너무 허망하지 않습니까? 모든 걸 잃고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 만큼 고통스러운 게 어딨겠습니까? 특히 가진게 많은 사람일수록 잃어버렸을 때 그 낙차를 견디지 못하는 법이지요.”

“…….”

시현이 하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가난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삶은 고통스러운 것.

이 세상이야 말로 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 수권정당의 당수까지 역임한 자는 파멸하는 법이 없다.

설령 그가 감방에 들어가 실형을 살더라도 그는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보통 서민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부와 권력을 누릴 것이다.

즉 그를 사회적으로 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라리 암살하는 게 그나마 원수를 갚는 길일텐데.

사람을 죽이지 않는 시현이 과연 사이다패스를 대신해 복수를 해줄 수 있을까?

게다가 시현이 내놓으라고 하는 것도 너무 과하다.

“내 남은 수명 전부를 달라고? 날 보고 죽으라는 거야? 다 때려치고?”

“영혼이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거 가벼운 마음으로 제시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에게 들러붙은 악마에게 엿을 먹이면서 계약을 빼돌리는 게 되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더 이상 무고한 사람은 아닙니다. 알지요?”

“…….”

“어느 정도는 책임을 지셔야지요.”

“쳇. 난 죽어 마땅한 놈들만 처치했어. 넌 어떤데? 너는 뭐 파멸시켜도 될 사람들만 파멸시켰냐?”

“저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요. 그러니 우리 둘 다 지옥에 떨어지기 보다는 저만 지옥에 떨어지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습니까?”

“…….”

“뭐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거지요. 생각해보세요.”

사이다패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현이 하는 말이 이치상으로는 옳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다가올 파멸에 벌벌 떠느니 깔끔하게 죽어 없어지는 쪽이 차라리 낫지.

하지만 시현을 믿을 수 있을까?

방금 전까지 적이었던 사람인데?

“날, 속이려고 하지 마. 내가 어리다고 우습게 보고 어린아이 속이듯 하지 말라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시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아, 제기랄.”

사이다패스는 그런 뻔뻔한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이 어느새 사라지고 대신 요양병원에서 김유라가 깨어났다.

“!!!!!!!”

병실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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