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9화
이독제독의 현장 #1
픽서란 범죄조직에 있어서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자를 말한다.
그들은 새로운 사기 수법이나 범죄 수법을 개발하고 그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고 없다면 훈련을 하거나 범죄자가 아닌 이들을 회유하여 팀을 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사는 그러한 픽서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며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 내 최대의 범죄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간접적이며 영사 자신은 그 어떤 범죄조직에도 속해있지 않다.
그렇게 영사가 간접적으로 관리하는 이들 중 일부는 영사의 명에 따라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사이다패스의 본체, 김유라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반 시체로 죽어있는 이를 감시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요양병원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전염병에 취약한 노약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관련자가 아니면 출입할 때마다 명부를 작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사의 명을 받은 조직원 한 명은 아예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서 요양병원에 취직해서 사이다패스를 밀착 감시하고 있었다.
이렇게 감시하면서 조직원은 요양보호사로서 급료도 받고 보다 더 친근한 위치에서 표적을 감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을 해야 하니 피곤하다.
요양보호사라는 게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감시를 하기 위해 위장취업한 거지만 일을 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휴일 주면 주는 대로 쉬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밀착감시를 위해서라면 사람이 계속 붙어있어야겠지만 그러다가는 과로사할 판이었다.
하물며 영사가 그렇게 자주 감시결과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데 괜히 열심히 감시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해이해진 감시원이 비번을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영사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아 네. 오, 오늘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처리하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시원은 영사의 전화를 받고 김유라를 처리하라는 명령에 깜짝 놀랐다.
하필 비번인데....
그러나 이 일을 처리하면 더 이상 여기 요양병원에 위장취업하고 있을 필요도 없게 된다.
그건 좀 다행일지도? 일이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없던 감시원은 요양병원의 일을 그만둘 기회라고 여기고 암살용 약물을 챙기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 * *
요양병원 입구의 직원이 감시원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아 김정식씨? 무슨 일이에요? 오늘 비번일텐데?”
“아, 아뇨. 두고 간 물건이 있어서.”
그는 그리 말하고 안에 들어갔다. 직원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그가 들어오게 해주었다.
“그런데... 어?”
김유라의 병실에 가본 감시원은 깜짝 놀랐다.
김유라가 자리에 없다.
그냥 없는게 아니라 그녀의 명패가 빠져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김유라 씨는?”
“아 병원 옮기겠다고 퇴원하셨어요.”
“네? 어, 언제요?”
“오후 네 시 쯤? 왜요?”
“그, 아 보호자 분에게 뭐 좀 빌려드린게 있어서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급하게 뺐어요?”
퇴원이 그렇게 급하게 되나?
감시원이 당황해하자 직원들이 의아해했다.
“저기 그 보호자 분이랑 새로 옮기는 병원 연락처 좀 얻을 수 있나요?”
“잠깐만요. 뭘 빌려드렸다고요? 뭘 빌려주셨는데요? 혹시 금전 거래같은 건가요? 하면 안 돼요. 그런거....”
병원에서 요양보호사나 간병인들을 대상으로 다단계나 종교권유하는 일이 워낙 잦다보니 대부분의 병원에서 그런 사적인 교류를 규정으로 금지시키고 있었다.
“그, 반찬통이에요. 반찬통. 별건 아니고. 그래서 어떻게 된건가요? 옮긴 병원이나 보호자 연락처를....”
“음 곤란한데요. 알다시피 병원을 옮긴다고 하면서 사실 병원비가 부담되어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있고 해서 원래 알려주면 안되는데. 반찬통 정도면 그냥 줘버려요. 돈 문제라면 솔직히 이야기 해도 되지만 주임님에게 알려야 겠지요.”
직원은 감시원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 큰일났네. 어쩌지. 이거.”
영사에겐 별 문제 없다고 미리 말했는데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렇게 감시원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다시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영사의 전화였다.
“아 네. 전화받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지? 보고하겠다면서?]
“그게 저....”
[혹시 문제가 생겼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야기 하도록. 빠른 보고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니까.]
“아 저기... 놓쳤습니다.”
[놓쳤다면?]
“병원을 옮겼다고 하는데 그게 병원을 옮긴 것 같지 않습니다.”
보통 요양병원에서 병원을 옮긴다고 하면 정말 옮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게 아니면 병원비를 더 이상 부담하지 못하게 되어서, 병원비가 부담되니까 스스로 퇴원하는 경우가 있다.
즉 일반 직원이 캐묻는다고 알려주기 애매하다.
이 감시원이 평소에 다른 직원들과 친하게 지냈다면 알려주겠지만 감시원 입장에선 업무에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다른 직원들과 친하게 지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흠. 알아보도록. 걱정은 마라. 문책하진 않을테니까.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은 좀 져야겠지.]
“채, 책임 말입니까? 제발 그걸 좀.”
[빨리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도록.]
영사는 그렇게 지시하고 전화를 끊었다.
‘큰일났다.’
감시원은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사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면 바보다.
책임을 지라고 했으니 어서 빨리 후속정보를 알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몸을 돌려서 접수부의 직원에게 다가갔다.
“아니 그러니까....”
직원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감시원에게 거부의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감시원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시발,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냐?! 얼른 말해! 이새꺄!”
“컥?!”
“빨리 말해 이새끼야! 처웃지 말고!”
그러자 다른 직원,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놀라서 다가왔다.
“정식씨! 미쳤어요!?”
“뭐, 뭐하는 거에요!? 지금!”
“아니 이새끼들이 지금 내가 말하는 게 안들려? 귓구멍에 X박았나!”
“아... 그, 그게... 주치의라는 사람이 연락해서 옮겼어요. 여, 연락처 알려드릴테니까 이거 놔주세요.”
“.....”
감시원은 그제야 잡고 있던 직원을 놓아주고 겁을 먹은 직원들에게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 * *
시현은 주치의를 붙여서 김유라를 자택에서 요양하도록 하여 요양병원에서 빼내는데 성공했다.
평소에 김유라 양의 외조모를 설득해두었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기에 김유라 양의 외조모는 적극적으로 시현을 믿고 맡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병원에서 나오고 나니 과연 잠시 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저희 병원 직원 중 한명이 뭐 보호자 분께 빌려준게 있다고 병원에서 난동을 부렸는데 혹시 알고 계신가요?]
보아하니 영사가 잠입시켜둔 이가 뒤늦게 찾아와 난동을 부린 모양이었다.
“사실이군요. 놀라운데요.”
류하리는 시현이 말한 대로 정말 최형림과 영사 측에서 김유라를 제거하려고 했었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다.
“혹시 당신이 사람 써서 조작한 거 아니에요? 사이다패스 조종하려고?”
영사나 최형림과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서 일부러 사람을 써서 마치 그들이 추격자를 보낸 것처럼 만든다.
시현이라면 그런 자작극도 가능하지 않을까?
“절 너무 의심하는 군요. 그렇게까지 제가 못미덥습니까?”
“당신이라면 그런 짓도 할법하다 싶어서요.”
“물론 꽤 괜찮은 수법이긴 합니다만 이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군요. 김유라 양은 이미 검찰수사관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데 거기서 누군가를 고용해서 노골적으로 난동을 부리게 하면 검찰 수사관들이 제 뒤에 붙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검찰수사관들의 블랙리스트에 있어서 조작을 안한 거지 필요하면 했을 거라는 말이지요?”
“후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가정하지 말도록 하지요. 어쨌건 이건 제가 아닙니다. 아마도 영사의 하수인이겠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김유라 양의 외조모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다면 혹시... 다른 곳으로 잠시 피신해도 될까요?”
“피신 말인가요?”
“네. 폭한이 찾아올 수 있으니 피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겨, 경찰에게 가면.....”
“경찰은 별 도움이 안될 겁니다. 경찰 내부에도 적이 있을테니까요.”
“아. 네.”
김유라 양의 외조모는 시현의 말에 설득되었다.
경찰인 류하리 입장에서는 입맛이 쓴 장면이었다.
그렇게 경찰을 못 믿나.
그렇지만 그녀로서는 그럴만해서 그러는 것이다.
김유라가 괴한에게 습격당해 폭행을 당했을 때, 경찰의 수사태도가 정말 건성건성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 생활을 하던 김유라가 갑자기 뜬금없이 폭한에게 폭행당했는데 경찰의 수사태도가 방만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이 외조모는 이미 수사중 고의인지 실수인지 모를 일로 딸 까지, 김유라의 어머니 까지 잃지 않았던가?
경찰이나 검찰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로 피신하시려고요? 애가 거동도 제대로 못해서 ”
“원래부터 이런 검경을 피할 때는 언론이나 성직자의 힘을 빌려야 하지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윙크를 해보였다.
* * *
“미쳤냐! 절대 안돼!”
시현과 평소 거래를 많이 하던 K신문의 장기정 기자는 대뜸 펄펄 뛰었다.
“야. 양지희는 이미 대부분 연예부 애들이 다 빠삭하게 알고 있어. 알아? 성격 더럽고 거 걸그룹 레드페인의 리더 박솔을 대기실에서 싸다귀도 쳤다고. 완전 안하무인에 마약도 한다는 거 다 알지. 그런데 왜 다들 기사 한 줄 못쓰는 줄 알아?”
[왜 못 씁니까?]
“애비가 양천용이니까. 양천용 그 인간이 장난 아냐.”
[흠 놀랍군요. 장기자님은 승진같은 거 도외시한 막나가는 분 아니었습니까?]
“그야 이제와서 승진이니 월급 인상 같은 건 뭐 덜 먹고 덜 쓰면 되는 문제지만, 잡혀가서 처맞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다르거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어.”
[그 점은 별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얼마 안남으셨는데.]
“.........”
장기정 기자는 시현의 말을 듣고 순간 얼어붙었다.
“노, 농담이지?”
[수면을 많이 취하고 평소에 운동도 좀 하고 오메가3도 챙겨드시도록 하시죠.]
“평소에 아무리 물어봐도 말 안해주더니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장기정 기자는 시현이 사람들의 잔여 수명을 읽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어찌나 정확한지 성취가 알콜 중독으로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정확하게 집어서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놈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자기 수명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는 것이다.
[신경쓰이십니까?]
“그야 겁나 신경쓰이지.”
[도와주시면 어련히 제가 배려해드리지 않겠습니까?]
“아, 알겠어. 다만 내가 다 총대를 멜 수는 없고 어디 방송이나 달리 아는 사람 있나?”
결국 신경이 쓰인 장기정 기자는 시현에게 협력하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