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화
이독제독의 현장 #2
방송작가 유정미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의 방송단지 인근의 고층 아파트에 자신의 작업실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유명 PD를 숙부로 두고 있어서 방송가에서 나름 대접을 받는 그녀는 최근 욕구불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가 주로 만드는 것은 여행 프로나 기타 흥미용 가벼운 예능 교양프로그램들.
이러한 것들은 당장은 사람들의 이슈가 되지 않지만 지역 방송사나 케이블 TV 방송사의 재방송율이 높아서 그녀에게 마치 연금같은 수익을 안겨다 준다.
하지만 그녀는 좀 더 유명해지고 싶었다.
남들의 관심을 끌고 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고 싶다.
이미 유명PD인 숙부를 두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턱끝으로 유명한 배우나 아이돌 가수등을 부르고 그들과 친한 척하며 스스로의 지위를 셀리브리티로 승격시키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알찬 실수익의 방송작가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보다 더 세상의 중심에서, 화끈한 방송권력을 장악하고 싶었다.
“으 어떻게 방법이 없나? 응?”
그날도 혼자 자택에서 인망과 유명세에 대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던 그녀에게 갑자기 한통의 전화가 날아들었다.
“이건, 그때 그 탐정이네? 무슨 일이지?”
그녀는 창문 밖으로 일산호수공원을 내려다보며 와인셀러에서 와인을 꺼내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유 작가님.]
“아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혹시 양지희 씨에 대해서 아십니까?]
“양지희? 배우 양지희 말인가요?”
유정미는 눈살을 찌푸렸다.
배우 양지희는 정통극 관련 여배우로 솔직히 말해서 방송계에선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
성격 사납고 안하 무인이라 여럿 피곤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런 주제에 자기 역할은 엄청나게 가려받아서 솔직히 말해서 빽이 대단하지 않으면 방송에서 쓸 이유가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빽이 너무 대단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수 없이 쓰는 인물이다.
여행 다큐멘터리나 교양 예능을 주로 만드는 유정미이지만 양지희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정도로 악명이 널리 퍼져있는 상태였다.
“그 여자가 왜요?”
[그녀에게 피해를 본 사람의 의뢰가 들어왔는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도움 말인가요?”
유정미는 잠시 혹했다.
양지희가 다른 방송작가나 방송인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인지 잘 안다.
그녀를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방송업계에서 존경을 받지 않을까?
그녀의 피해자를 조망하면 양지희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엄청난 배경을 생각하니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양지희가 파멸하면 좋겠지만 굳이 내가 손을 더럽히고 총알받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거절하지요. 굳이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러지 마시고 잠깐 이야기라도 좀 하면 어떨까요? 작가님께서 거절하시면 제 의뢰인의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네? 제가 말을 안들으면 그 사람을 죽이겠다고요?”
[그럴 리가 있나요. 그저 그녀가 양지희 측에게 희생당할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지요. 아 그리고 지금 저희 쪽에 K일보 장기정 기자님이 계시는데….]
“……”
시현은 지나가는 듯 신문기자를 언급했지만 애초에 왜 언급하는 것인가?
이쪽에 신문기자가 있으니까 네가 거절하면 거절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런 소리가 아닌가?
“알겠어요. 뵙도록 하지요. 내일 뵈면 될까요?”
[아뇨 마침 근처에 있습니다. 지금 찾아뵙지요.]
“네? 잠깐만요! 근처에 있다니 그게 무슨….”
하지만 전화가 끊겨 버렸다.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있어!?”
깜짝 놀란 유정미는 얼른 거울을 향해 달려갔다.
“나 미쳐! 화장도 다 지웠는데!”
* * *
“…….”
“어. 음.”
류하리와 장기정 기자는 시현의 막무가내 돌격에 당황하고 있었다.
유정미 작가에게는 전에 한 번 당한 적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화끈하게 갚아줘도 되는 걸까?
타인의 사적영역을 이렇게 흙발로 돌격해서 짓밟아도 되나?
“뭐 긴급상황이니까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 아닙니까?”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는 게… 이건가? 이 여자 누구지?”
장기정 기자는 들것에 실려있는 김유라를 바라보며 당황했다.
“김유라 양입니다. 어릴 적엔 양지희 씨의 라이벌이었죠.”
“어? 아, 알아. 김유라면 그 선유 컵라면 광고에 나왔던….”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세상에. 이게 그 김유라란 말야? 완전히 좀비같이 되었는데?”
“좀비…는 너무했네요.”
듣고 있던 류하리가 한마디 했다.
하지만 딱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전신의 근육이 말라버려 간신히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보기만 해도 안쓰럽기 그지 없다.
“뭐 말라있는게 수명에는 더 도움이 됩니다. 살쪄있는 것보다는 낫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거동도 못하니까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는데….”
“…….”
“…….”
시현과 장기정 기자 둘 다 그윽한 눈빛으로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엑? 제가요?”
“제가 할까요?”
시현은 별로 거리낌없다는 듯 말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성이 젊은 여성의 기저귀를 갈아준다는 건 김유라에게나 시현에게나 못할 짓 아닌가?
“아니 역시 제가 하죠. 아 맙소사.”
류하리는 스스로 하겠다고 말하면서도 당혹스러웠다.
설마 이런 걸 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시현이 차량을 유정미 작가의 아파트 주차장에 대자 주차장에서 한 인물이 걸어나왔다.
“…야. 내가 관리할게.”
사이다패스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어? 이 아가씨는?”
장기정 기자가 당황해서 사이다패스를 바라보았다. 고무망치를 든 여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괜찮습니다. 저희 스탭입니다.”
“스탭? 왜 여기있는데? 여기 집결하기로 약속이라도 했었나?”
장기정 기자가 당황했지만 사이다패스는 그를 피해서 시현의 차 뒷문에 다가갔다.
“됐고. 내 몸은 내가 관리할게.”
그녀는 뒷문을 열고 의식을 못차리고 있는 김유라의 몸을 들것에서 들어올렸다.
시현이 휠체어를 꺼내 펼치며 경고했다.
“조심하세요. 뼈가 약해서 함부로 나르다 쉽게 골절됩니다.”
“알아. 이거 참 기묘한 기분이네.”
사이다패스는 앙상하게 매말라버린 자신의 몸을 직시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자신의 몸을 나르면서 약해져서 부서질까 조심해야 한다는 건 과연 무슨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까?
* * *
유정미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시현과 그 일당을 보면서 할말을 잃어버렸다.
“들어오라고 허락을 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인원이 많군요. 게다가 저 시체는 뭐에요? 살인했어요? 이거 그건가요? 살인했다고 친구 집에 찾아다니면 시체 숨겨주는 이야기?”
“저희가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요.”
“제 말이! 바로 그거에요! 우리 이렇게 친하지 않잖아요? 왜 이 시간에 대뜸 찾아와요?! 혼자도 아니라 여럿이 우르르!”
“혼자 찾아왔으면 환영했을 거라는 뜻인가요?”
“아니 그, 당신이 잘 생긴 건 알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유정미는 시현의 능청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
류하리는 그런 유정미 작가의 발언에 흠칫 놀랐다.
‘이 여자 시현에게 관심있나? 하긴 아니면 야밤에 쳐들어오다시피 하는데 오라고 허락할 리가 없긴 하지만….’
시현도 이 여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니까 이렇게 대놓고 들이댄 걸까?
“상식을 벗어난 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두면 저 사람이 진짜 시체가 될 수도 있어서 피신 온 겁니다.”
“저 사람이 누군데요?”
“김유라라고 아십니까? 양지희와 비슷한 때에 아역배우출신이던?”
“아, 옛날에 좀 보였던?”
“그녀는 양지희의 피해자입니다. 양지희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하고 인터넷에 댓글을 달다가 어느날 폭한들에게 습격당해서….”
“그 다음은 내가 말하지.”
사이다패스가 시현의 말을 끊었다.
“그러니까 당시 나, 아니 김유라는 방송에서도 잘리고 맥주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지. 그런데 아무래도 참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양지희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었지. 다른 연예인들은 그런게 이슈가 되어서 홍역을 치루는 걸 봤으니까. 그런데 양지희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전혀 그런게 없더라고. 쓰는 족족 글은 지워지고 사람들에게 이슈는 전혀 안 되고 그러던 찰나 어느날 아르바이트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자취하던 집 문앞에서 폭한에게 습격을 당했지. 거구의 남자 둘이 문의 자물쇠를 열고 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습격해서 그녀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 거야. 그들은 간단하게 김유라를 제압하고 이걸 들었지.”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고무망치를 흔들어보였다.
“이게 우스꽝스럽지만 아주 괜찮은 무기야. 적당한 강도로 휘두르면 사람 두개골을 깨뜨리지 않고 안의 내용물만 훼손할 수 있거든. 거구의 남자들이 가벼운 여자애 하나 짓누르고 머리를 두개골 안깨질 만큼 계속 때려주면 10대 후반의 여자애가 순식간에 치매환자처럼 되는 거야. 뇌가 곤죽이 되어서 기억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똥오줌도 못 가리게 된다고.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괴롭힐 수 있지. 젠장.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지. 괜히 얼마 없는 가족들까지 덩달아 괴롭히는 거야?”
“…….”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그러니까 사이다패스가 고무망치를 무기로 쓰는 건 자신을 폐인으로 만든 흉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사이다패스가 저 고무망치를 들고 다니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단 말인가?
“그래도 김유라는 그들이 말하는 건 기억하고 있어. 쌔끈한 여자인데 망가뜨리는 게 아깝다. 손대도 되냐? 아니 그런 짓 했다가 증거 남아서 잡힌다. 프로는 프로답게 돈 벌어서 사먹는 게 훨씬 안전하다. 하지만 가끔 아마추어 특유의 풋풋함이 땡기지 않냐? 이런 소리를 하더라고.”
“잠깐만요. 이상한데요? 김유라 이사람이 뇌가 망가졌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누가 그런 걸 증언한 거죠? 지금 말하는 건 마치….”
네가 김유라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느냐?
유정미 작가는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이게 정말 양지희가 사주한 일이라는 증거는 없잖아요?”
다들 그런 의문에 실소했다.
그야 증거는 없지.
그러니까 청부폭력이 아닌가.
범인이 잡히고 그 범인에게 송금한 흔적, 범인의 증언이 있어야 청부폭력의 죄를 입증할 수 있다.
범인이 잡히지도 않았으니 양지희가 범행을 교사했다는 증거따윈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아 이 머저리 보는 듯한 시선하고는. 알아요. 저도 양지희가 나쁜 소문을 달고 다닌다는 것 쯤은. 연예계에서 양지희 지랄맞은 거 저도 다 안다고요. 하지만 법적으로 처리할 증거가 없잖아요? 차라리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하는 게 빠를텐데?”
“…….”
듣고 있던 류하리가 실소를 머금었다.
사이다패스를 앞에 두고 그런 소리를 하다니.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