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33화 (233/269)

제233화

이독제독의 현장 #5

“자네 능력의 트리거는 이미 조사해두었네. 누군가가 자네에게 상담하는 것으로 능력이 발동하니 그 친구에게 자네와 상담하도록 시키면 능력 발동 트리거를 충족시키겠지.”

영사는 조직원들에게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니 그가 지은재와 상담해보라고 하면 손쉽게 살인을 교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자살폭탄 테러범을 만드는 도구처럼….

“중요한 건 그 트리거를 발동시키려면 자네의 말재주도 좀 필요한데. 여기서 연습하도록 하지.”

영사는 그리 말하고 서류를 꺼냈다.

그런데…. 그 서류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노파는?”

“표적일 세.”

“네? 이 노파가요?”

지은재는 순간 당황했다.

사진 속의 노파는 아무런 힘도 없어보이는 여성이었다.

심지어 사진이 찍힌 곳은 요양병동.

오랜 병수발로 가산도 거덜났는지 입고 있는 옷도 허름하고 얼굴에도 온통 그늘이 져 있다.

지은재로서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보는 듯 했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간 이후 마을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며 농사일을 도우며 먹고 산 어머니의 고난의 흔적이 이 사진 속 노파에도 있었다.

서류를 읽어보니 더더욱 그렇다.

폐인이 된 외손녀의 병수발을 하기 위해 근근히 살아가는 힘없는 노파에 불과했다.

“이, 이런 할망구를 죽일 필요가 있는 겁니까?”

지은재는 당황해서 물어보았다.

“으음. 사실 사이다패스가 탈주했네.”

“네?”

“그리고 그녀는 사이다패스의 외조모이지.”

“아. 이 병원에 입원한 여자의 자매인가 보군요. 그래서….”

“아니. 당사자일세.”

“네?”

지은재는 눈을 깜빡였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뭐 자세한 이야기는 상담하면서 듣도록 하게.”

영사는 그리 말하고 지은재에게 약속장소를 가르쳐주었다.

* * *

영사가 가보라고 한 약속장소는 차는 커녕 오토바이도 두대가 동시에 못지날 것 같은 좁은 길목으로 이뤄진 쪽방촌이었다.

그 쪽방촌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거구의 남자가 안절부절하며 지은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여깁니다.”

“네. 지은재입니다. 제가.”

“기, 김정식입니다.”

그는 바로 요양병원에 위장취업했던 조직원이었다.

지은재보다 훨씬 덩치도 크고 험악해보이는 인상인데 그런데도 지은재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영사가 직접 보낸 상담역이라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사 님이 저에게 만회를 위해 시킬 일이라는 게…..”

“그 전에 저와 상담부터 하시죠.”

지은재는 자신의 능력 발동을 위한 트리거를 내밀었다.

영사의 명령이 있기 때문인지 상대는 별 부담없이 그 트리거를 받아들였다.

“네.”

“우선 사정부터 이야기 들어봐요. 이 노파는 누구고 왜 그녀를 감시했습니까?”

지은재는 그점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이 할망구는 사이다패스의 보호자 입니다.”

“사이다패스의?”

물론 지은재는 이 노파가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놀라운 점은 그게 아니다.

이 남자도 알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사이다패스의 정체 같은 거 감춰야 할 이야기 아니었어? 왜 이자가 알고 있지? 단순한 폭력배 조직원이 아닌가?’

영사가 거느리고 있는 조직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그냥 단순한 범죄자들이며 영사의 직속으로 명령을 듣는 이들.

단순한 범죄자이며 영사의 직속도 아닌, 필요한 때 불러모으는 자들.

그리고 초자연적인 일에 투입되는 정예이며 충성심 깊은 이들.

이렇게 나뉘는 것이며 사이다패스를 감시하는 일은 당연히 충성스럽고 초자연적인 일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가 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지은재로서는 이 남자가 사이다패스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네. 사이다패스는 저 병든 여자, 김유라였습니다.”

요양보호사는 그렇게 자신이 사이다패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지은재에게 말해주었다.

지은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 이 여자가 사이다패스라고요?”

“네. 모르셨습니까?”

“그 이야기를 드, 듣지는 못해서.”

“그렇습니까? 영사 님이 말씀을 안해주신 것 같군요. 뭐 워낙 생각이 깊으신 분이니.”

요양보호사는 영사를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그럼 어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지은재는 사이다패스에 대해 궁금한 점을 이 요양보호사 조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요양보호사 조직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김유라와 양지희 간의 불화, 그로 인한 청부폭력으로 김유라가 폐인이 된 것, 그로 인해 사이다패스가 되었고 그녀를 확보하기 위해 영사가 어떻게 그녀를 알아냈으며 언제부터 그녀를 감시했는가.

그것을 다 소상히 지은재에게 알려주는데 그 모든 것이 지은재에게는 생소하고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

* * *

‘와. 대단하다. 대단해.’

지은재는 이야기들을 듣고 경악했다.

그러니까 지은재가 조직에 들어오기 전, 심지어 최형림과 영사가 만나기 전부터 영사는 사이다패스의 정체를 눈치채고 그를 위장잠입시켰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사이다패스는 그것도 모르고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음대로 살인행각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로 이사님께 거스르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군.’

영사의 무시무시한 심계에 지은재도 손발에 핏기가 빠져 저려올 정도였다.

“그런데 그 사이다패스가 최근 데드맨이라는 녀석에게 홀려서 조직을 배신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저희 조직원은 아니죠 사이다패스는. 그러니까 조직을 배신한다는 건 좀... 그 뭐시기냐. 어패류?”

“어폐가 있다?”

“네. 그거죠 그거!”

“.........”

조직원이 지은재의 얼빵함에 새삼 감탄했다.

“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서 요양보호사로 위장하고 있던 저에게 김유라를 확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제가 하필이면 비번이라서 부랴부랴 준비하고 갔습니다만 이미 데드맨이 그녀를 빼돌렸습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갔는데 그 사이에 바로 빼돌렸다고요?”

“네.”

“그렇게 빨리 퇴원수속이 됩니까?”

“아니 그게 실은... 제가 비번때 좀 술을 마셔서요.”

그러니까 술을 마셔서 곯아떨어져서 반응이 늦었다.

연락을 듣고 부랴부랴 준비했다고 하지만 실은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었을 것이다.

요양보호사 조직원은 그렇게 고백했다.

“그,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사 님이 어떻게 해야 절 용서해주실까요?”

요양보호사 자격을 딸 정도면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라 꽤 머리가 돌아가는 인물일텐데도 그는 영사의 심정을 헤아리며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만큼 영사가 무섭다는 거겠지.

‘아닌게 아니라 나도 좀….’

지은재가 생각이 단순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냄비에 불피우고 있는데 그대로 앉아서 삶아질 만큼 바보는 아니다.

‘노파를 죽이지 않고 인질로 잡아도 되잖아? 왜 죽이지? 혹시….’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를 죽이면 최형림과 사이다패스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최형림은 영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겠지. 사이다패스 대신 영사의 조직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고 혼란을 일으켜 정체된 공직사회를 헤쳐나가려 할 것이다.

사람을 죽여야만 물결이 바뀔 정도로 정체되어 있는 공직사회도 미쳤지만 정말 사람을 죽여서 조직을 장악하고 싶어하는 최형림 검사도 미쳤다.

‘하지만 가장 미친 건 나지.’

지은재는 자신에게 상담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노파를 죽이라고 명령하면서 살인예술가의 능력을 발동시키면 이 자는 이제 뒷일 생각지 않고 노파를 죽이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영사가 지은재를 굳이 상담역으로 보낸 것은 지은재의 능력을 발동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죽이지 말고 확보하라고 하는 건 어떨까?

‘보아하니까 지금 그정도만 말해도 내 말을 들을 것 같은데.’

딱히 살인예술가의 능력을 발동시키지 않더라도 이 남자는 이쪽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지은재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일단 그럼 다시 그 노파를 확보하지요.”

“하지만 데드맨이 그 노파를 이미 데려가서 피신시켰습니다. 노파 집이 이곳 쪽방촌에 있는데 이미 짐이고 뭐고 다 뺐더군요.”

“그거라면 대충 어디일지 짐작이 가니 그쪽을 수색해보죠.”

지은재는 그리 말하고 카페에서 일어났다.

영사가 시킨 일에서는 약간 어긋났지만 굳이 사람을 죽이는 것 보다는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를 잡아서 설득할 수 있으면 그걸로 좋잖아?

영사는 이 요양보호사였던 조직원에게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를 죽이게 하라고 했지만….

일단 확보한 다음에 물어봐도 되겠지. 확보한 다음에 죽이라고 하면 그때 죽이게 해도 되지 않겠는가?

사실 죽이려고 하더라도 어쨌건 그녀의 위치는 파악해둬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지금 나는 굳이 이사님의 명령을 위반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지은재는 스스로를 합리화 하며 요양보호사 조직원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 * *

영사는 시현이 소유하고 있는 사업체와 그 사업체들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들에 대해서 리스트를 뽑아둔 상태였다.

그중에는 빌딩관리 업체도 있었는데 석달 전 시현은 이 업체를 통해 사이다패스의 외조모에 접촉해 그녀에게 정직원 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하면서 기뻐했고 새직장에 만족했으며, 그 새 직장의 사장이 소개한 시현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 한 것이었다.

“일단 이 빌딩관리 업체를 조사해봅시다.”

“아 네.”

“그런데 어떻게 하죠?”

“.....”

요양보호사 조직원이 그 순간 지은재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통 영사가 보내는 상담역은 범죄 기술과 법리 등에 빠삭하고 딱 부러진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상담역은 어째 나이도 어려보이고 경험도 없어보인다.

거물 픽서인 영사가 뭔가를 믿고 맡기기엔 너무나 철부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야 그 흔한 중고차 사기도 못맡기겠다.

“우선 이런 기업은 일용직 근무자 실태조사 나왔다고 하면서 들이치면 됩니다. 지역 노동청이나 그런 쪽으로 말하면서 이런 걸 패용하면….”

요양보호사 조직원이 목에 거는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적당히 위조된 신분증에는 구청, 소방서, 지역난방공사, 도시가스회사, 전기설비회사, 엘리베이터 회사 등등 남의 집이나 건물에 들어갈 때 패용하기 좋은 각종 신분에 따라 여러개가 구비되어 있었다.

“아 그렇군요. 이야. 대단하네 이거. 그런데 전 없는데.”

“여기 사진을 넣고 끼워서 만들면 됩니다.”

아직 비어있는 신분증을 하나 가져온 그는 간단히 지은재의 신분증도 만들었다.

제대로 보면 가짜라는 게 티가 나는 신분증이지만 목에 패용하고 다니는 신분증을 자세히 보자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아마 여기는 없을 겁니다.”

“그야 그렇겠지요.”

굳이 병원에서 사이다패스를 빼돌리기까지 했다.

당연히 사이다패스는 물론 그 외조모도 안전한 곳으로 빼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뭐라도 단서는 잡아야 하니까.

“그럼 가봅시다.”

직원처럼 변장을 끝마친 지은재와 조직원은 빌딩관리회사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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