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34화 (234/269)

제234화

이독제독의 현장 #6

태풍 예보가 내렸는지 비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는 날이었다.

최형림은 미카엘이 붙여준 두 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영사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이건 또… 귀한 분들이 오셨군요.”

“……”

“음.”

검은 양복의 남녀 둘은 영사의 사무실 앞에서 머뭇거렸다.

눈치를 보아하니 영사를 꺼려하는 듯 했다.

‘사이다패스도 물리친 자들인데. 영사를 꺼려하는 꼴이 역귀를 보는 듯 하구나. 귀신이라면 오히려 저들이 귀신이라 할텐데. 하긴 저들의 주인인 미카엘도 영사를 보기 싫어했지.’

어쩌면 악마에 속한 이들이 혐오하기 때문이 영사를 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무시무시한 악마들이 싫어하는 존재.

최형림은 문득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저 정도로 기피받는다는 건 역으로 말하자면 최상의 존중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상대는 초월자.

그들 앞에선 재벌도, 권력자도 그저 개미에 불과한 존재, 그런 압도적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사를 꺼려한다.

그런 점에서는 부럽기까지하다.

“들어오시지 않습니까?”

영사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영사를 꺼려하는 건 미카엘 만이 아닌지 미카엘의 경호원들도 문턱에 서서 머뭇거렸다.

“우리는….”

“별로 당신과 얼굴을 맞대고 싶지 않다.”

영사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참. 그분이라면 모를까 그 하수인들까지 날 싫어하다니. 그나저나 최형림 검사님. 검찰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그렇게 급하게 바뀔 것 같지는 않군요. 사이다패스가 잠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려면 꽤 시간이 걸릴테니까요.”

“사이다패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검찰 수사관들 말입니까?”

“예.”

양천용이 검찰 수사관들과 끈적끈적한 관계에 있으니 검찰 수사관들도 사이다패스가 병실에서 사라졌다는 걸 알아챌 것이다.

그걸 최형림이 조사하지 않았을리 없다.

영사는 그렇게 보고 있었다.

양천용이 최형림의 후원자가 되어주겠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최형림이 얌전히 양천용만 믿고 손가락빨고 있을 수는 없을테니까.

“검찰 수사관 모두가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보팀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검찰 수사관 정보팀 말입니까?”

“네. 양천용 의원이 그들에게 경조사비를 꽤 많이 주고 있더군요. 물론 본인이나 의원 사무실 명의가 아니라 법대 동창인 정보팀 과장을 통해서지만요.”

검찰 수사관 정보팀 과장은 K대 법대 출신으로 양천용 의원의 학교 후배였다.

양천용 의원은 그에게 돈을 주고 정보팀 과장은 그 돈을 부하들의 경조사 때 주어서 돈을 깔끔하게 세탁하면서 검찰 수사관들을 매수했다.

상사가 부하에게 돈을 주는 형국이고 이미 한 다리를 거쳐서 주는 거니 정상적인 부정부패 조사로는 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검찰을 누가 조사한단 말인가.

검찰 수사관들도 그래서 별 부담없이 돈을 받아들여 착실히 매수되어있는 상태였다. 아니 설령 물욕에 혹하지 않는 이들이라고 해도 양천용 의원이 주는 돈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눈밖에 나서 골치아파질 것이다.

이렇게 양천용 의원은 검찰 수사관들을 완벽하게 다스리고 있었다.

“그들이 최검사님께 잘 이야기해준 모양이군요.”

“제가 수사관들에게 평판이 좋으니까요.”

그리고 양천용 측에서도 최형림을 자기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데드맨이 의사를 움직여 소견서를 써낸 모양입니다. 자택요양으로 바꿨는데 그 자택은 어느 청소회사의 사택이라고 되어있더군요. 이것 역시 데드맨의 소행이겠지요. 알고 보니까 데드맨 이친구가 꽤 알부자더군요. 탐정 수입도 굉장한 걸로 아는데 그것보다 더 많은 돈이 따로 들어오다니, 부러울 정도더군요.”

“재벌가 아들이 보호아동 출신의 뜨내기를 부러워 해서 되겠습니까?”

영사는 최형림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세간의 눈치일 것이다.

굳이 걸 필요 없는 농짓거리였다.

“그럼 검찰 수사관은 거기까지겠군요.”

시현이 직접 나선 이상 검찰 수사관들이 합법적인 수단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다일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사이다패스를 설득하실 겁니까? 사이다패스가 언제 또 습격해올지 모르는데?”

“음. 상황이 이리 된 이상 설득은 힘들겠지요.”

“아. 마침내.”

“하지만 만나보면 설득하는 것도 염두에 두겠습니다.”

“…….”

최형림은 영사가 자신을 조종할 까 두려워 미카엘에게 손을 벌려 그의 경호원 둘을 데려왔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영사에게 보호를 의탁해야 했을텐데, 그 상황은 정말 최악이다.

차라리 미카엘에게 손을 벌리는 게 낫지 영사 이 작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흐음.”

그리고 영사 역시 최형림이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아마 사이다패스는 최 검사님이 무방비로 당해주었으면 기분을 풀었을 겁니다.”

“…네?”

“그녀는 꿈꾸는 존재라서 지극히 감정적이지요.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최검사님이 너무 빈틈없이 구셔서 그녀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 설득을 하려면 우선 그녀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겨야 할 겁니다. 그게 아니고서는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를 않을 겁니다.”

영사는 마치 최형림과 사이다패스의 만남을 직접 본 사람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최형림 역시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에게 저항하지 않고 그녀에게 목을 내어줬다면 사이다패스가 설득되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최형림은 주도권만은 넘겨줄 수 없었다.

자신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느니 차라리 사이다패스를 적으로 삼고 그녀를 파멸시키는 쪽을 택하겠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지.’

영사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느니 미카엘과 손을 잡는다.

아마 영사가 굳이 사이다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은 사이다패스에 자신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리라.

‘너무 주도권을 안내주려고 무리하는 거 아니냐?’

영사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리라.

“사이다패스 쪽은 잘 부탁드립니다.”

최형림은 영사에게 그리 말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때마침 양천용 의원이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 * *

양천용은 어찌된 일인지 최형림을 불러 또 독대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최형림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검찰 조사관들이 보고했다.

최형림이 김유라 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자 검찰 조사관들은 그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검찰 조사관들은 최형림이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양천용 의원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연쇄살인 사건으로 바쁜 줄 알고 있었네만 그렇게 많이 바쁘지도 않은 것 같군? 왜 고작해야 요양병원에 있던 환자를 조사했나?”

양천용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여하에 따라서는 최형림이라고 해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은은한 노기가 느껴진다.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한다.

어떻게 할까?

시치미를 뗄까?

아니면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선언해서 양천용에게 자신이 만만한 놈이 아님을 어필할까?

최형림은 아주 잠깐 동안 머리를 굴린뒤 즉시 답을 도출했다.

“실은 제가 검찰수사관들과 사이가 좋은 편입니다.”

“사이가 좋다?”

“예. 그래서 어쩌다보니 그들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최형림이 적당히 둘러댔다.

둘러대긴 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너희의 약점을 다 알고 있다고 협박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로군. 재벌가 자제인데 검찰 수사관들이 말을 잘 듣던가.”

“그래서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물론 저는 의원님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만.”

“허튼 소리는 관두게. 음. 아마 이번에 병원을 옮긴 이는 내 딸을 노릴 걸세.”

“따님이라면….”

“그래. 내 딸. 여배우 양지희라네.”

“놀랍군요.”

“그래. 어지간하면 선거 때까지 한국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드라마 쪽에서 제안이 들어온 모양이야.”

“간만에 따님을 뵙게 되어 기쁘시겠군요.”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자 양천용이 쓴 웃음을 지었다.

“아니. 아마도 이번에 사이다패스가 노린다면 내 딸을 노릴 걸세.”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딸 아이는 적이 많네. 아무래도 연예인이나 배우다 보니까 원한을 쌓은 사람들이 많은 거겠지.”

양천용의 말을 듣고 최형림은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진심인가?’

대충 검찰 수사관들이 덮어준 사건만 해도 양천용의 딸 양지희는 소시오패스라고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냐오냐 하고 다 들어주면서 키웠는지 주위 사람들을 정말 끔찍하게 괴롭혀왔다.

그런 그녀가 배우나 연예인이라서 적이 많다?

‘어쨌건 김유라가 사이다패스라는 걸 모르고 말하는 거로군.’

처음에 양천용이 사이다 패스가 자기 딸을 노릴 거라고 말할 때는 천하의 최형림도 가슴이 출렁했다.

양천용이 사이다패스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양천용은 그냥 딸이 비난받을 짓을 많이 해서, 적이 많으니까 걱정하는 듯 했다.

“사이다패스는 확실히 한국 내에서만 일을 벌였지요. 그렇다면 따님이 와계실 때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네.”

“하지만 검찰이나 경찰이 따로 호위를 해주자면 그럴만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그런 명분이 있을까요?”

최형림이 다 알면서 노골적으로 물어보았다.

“호위는 염려하지 말게. 경호원들을 고용할 테니까. 그보다 자네가 사이다패스를 잡기 위해서도 내 딸을 예의 주시하는 게 좋다. 그렇게 말하려고 한 걸 세.”

양천용도 괜히 정치가가 아닌지 말을 잘했다.

양지희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어째서 미움받는지, 그런 내막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너희에게 사이다패스를 잡을 기회를 주려고 그러는 것이다. 이렇게 호혜적인 태도로 돌아선 것이다.

‘과연 괜히 정치하는 건 아니군. 제법인데.’

노회한 정치가를 보며 최형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님에게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지요. 따님분은 언제 입국하시나요?”

“오늘 오후 2시일세.”

“네?”

김유라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온게 오늘 아침, 양천용의원은 김유라가 실종된 사실과 딸의 입국 시간을 헤아려 보고 둘이 연관되어있지 않은가 겁이 더럭 나서 최형림을 부른 것이었다.

“따님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시나 봅니다.”

최형림은 참지 못하고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녀가 범죄를 저질러도, 적극적으로 싸고 도는 양천용을 보면 딸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보통 딸바보라면 딸을 애지중지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도 싸고 돌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애비가 자식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않나. 여하튼 그렇게 되었으니 내 딸을 부탁하네. 자네도 사이다패스를 검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 걸세.”

“네 감사합니다.”

최형림이 양천용의 호의(?)에 고마움을 표시할 때 창밖에 뇌우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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