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화
폭풍 속에서 #1
비바람 속에서 류하리는 시현과 행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
시현은 차량을 몰고 묵묵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어쩔건가요? 사이다패스도 사라졌는데. 아니 이 여자는 자기가 자기 몸 케어하겠다면서 어디로 간거야?”
결국 김유라의 신변관리는 류하리가 해야 했다.
방송작가 유정미와 장기정 기자는 둘이서 따로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따고 그들의 증언을 모으겠다고 행동하는 중이었다.
“우선 김유라 양의 머리를 그 모양으로 만든 친구들을 찾아야 겠죠.”
“네? 아니 벌써 한국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사람 머리를 고무망치로 적당히 죽지 않을만큼의 뇌손상을 가하는 친구들은 꽤나 고급 인력입니다. 청부 살인이나 폭행의 프로라고 할 수 있지요. 이정도 숙련도를 쌓았는데 한 탕 하고 도망쳐서 해외에서 살기엔 그 기술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게다가 김유라 양의 진술에 의하면 그들은 한국어를 꽤 유창하게 했습니다.”
“아.”
“잠깐은 수사를 피해 외국으로 도망치더라도 그들의 능력을 비싸게 팔아먹을 곳은 한국이란 말이지요. 아마 지금 쯤 다시 한국에 들어와있을 겁니다. 게다가 청부일을 하는 친구들이니 찾는데 그리 어렵지 않을 거구요. 사실은….”
“사실은 뭐요? 혹시 이미 알고 있는 건가요?”
“네. 하는 짓거리가 제가 아는 사람의 수법이더군요.”
“…….”
그러니까 시현은 사이다패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누가 실행범인지 대충 눈치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르는 체 표정관리를 했다니 대단하다.
하긴 그때 표정관리를 안했으면 사이다패스가 시현이 자신을 농락했다 생각해서 관계가 나빠졌을 것이다.
나중에 감정 좀 가라앉고 나서 이야기 하던가 아니면 시현이 그 실행범들을 잡고 나서 이야기 하는 게 좋겠지.
그런데….
류하리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 엄마?”
류하리는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가 입을 손으로 막았다.
다 큰 처녀가 남앞에서 모친을 엄마라고 부른게 부끄러워서였다.
“받으시지요.”
“아 네.”
류하리는 전화를 받았다.
“네. 엄마.”
[하리 너! 형사 노릇 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니?!]
류하리의 모친은 전화가 연결되자 마자 속사포처럼 추궁을 던졌다.
“네? 형사 노릇이라니요?”
[여자애가 위험하게 범죄자들 쫓아다니고 그런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면 당장 경찰 그만두렴! 아니 대체 네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짓을 하는 거니. 흑… 이 엄마 혈압약 먹고 있어. 오늘 그 소리 듣고 쓰러질 뻔 했단다. 제발 하리야. 엄마 생각해서라도 경찰 그만둘 수는 없니?]
“…….”
류하리는 자신의 몸이 약한 걸 미끼로 회유하는 어머니의 호소에 표정을 구겼다.
그녀는 모친을 사랑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통스럽다.
자신의 몸이 약하기 때문에 안전을 항상 최우선 적으로 생각하는 그녀의 모친은 종종 류하리를 답답하게 했다.
류하리는 사격선수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활달했고 활동적이었으며 본인 스스로 그러한 성향을 즐겼다.
그런데 어머니는 다칠까봐 걱정하고 우려해서 류하리를 치마폭 안에 싸고 들려고 했다.
경찰 대학의 진학을 허락해준 건 그저 경찰 대학은 기부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대학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친 입장에서 경찰대학은 류하리가 부잣집 딸이라 잔디 깔아주고 대학 들어간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높은 심기체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다른 부잣집 자제들에게 좋은 신부감임을 입증할 기회였을 뿐이다.
류하리가 경찰이 되어서 사회정의에 이바지하고, 본인의 의지로 자아를 실현하는 건 완전히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나쁜 마음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검증된 성공공식을 류하리가 그대로 따라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누구에게 연락을 들었어요?”
[그야 네 약혼자인 최 검사지.]
“아 네 그렇군요.”
류하리는 혀를 찼다.
아마도 최형림은 그녀와 시현을 갈라놓기 위해 류하리의 약점을 공격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정말 아픈 곳을 찔려서 류하리로서는 최형림의 수작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확실히… 모범생인양, 귀한 집 자제인양 굴며 내숭을 떨던 때에 비하면 지금의 최형림이 훨씬 더 류하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분노가 대다수라서 문제긴 하지만 관심이 가는 건 확실하다.
[어쨌건 네가 뭐라고 하건 일단 서장님께 연락해서 보직을 변경해달라고 했다.]
“네?! 아니 엄마! 지금 무슨 짓 하시는 거에요?! 다큰 어른이 직장상사에게 부모가 연락하게….”
류하리는 어머니가 저지른 짓에 경악했다.
[뭔 소리니. 원래부터 연락하던 사이야. 딱히 이제와서 연락한 건 아니란다. 그럼, 오늘 밤에 꼭 집에 오렴.]
어머니는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평소의 심약한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단호한 통보였다.
“아 제기랄. 최형림 이자식이.”
류하리는 최형림을 이자식이라고 불렀다.
“흠 보아하니 최 검사님이 류 경위님을 공격한 것 같군요.”
“네. 이래도 돼요? 생판 남이 남의 가정사에 멋대로….”
“뭐 약혼자니까 아주 남은 아니지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류하리가 혀를 찼다.
“그렇다면 이 약혼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겠군요.”
“어쨌거나 내리세요. 그럼. 이제부터는 저 혼자 일하겠습니다.”
“네? 그게 무슨… 저도 알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 망치쟁이들을 찾을 수 있는 거죠?”
경찰인 류하리는 순수하게 시현의 수사력과 수사 방식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베테랑 형사가 하는 일을 보고 있는 신참 형사 기분이라고 할까?
물론 간혹 시현은 초능력을 쓰거나 그도 아니면 경찰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협잡, 사기 같은 짓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시현의 수사 방식은 그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당장 이 망치질을 한 청부 업자들이 다시 한국에 들어와 있을거라는 추리도 꽤 괜찮지 않은가?
그러나 시현은 류하리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 일신상의 이유로 한동안 바쁠겁니다.”
“뭘 또 그렇게….”
그러나 그 말을 하기 무섭게 이번엔 박진감 팀장의 전화가 그녀의 전화기를 뒤흔들었다.
“말했지요. 바빠질 거라고?”
시현은 어서 전화안받고 뭐하냐는 식으로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 * *
“으아아아!”
사이다패스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깨어나셨군요.”
그런 그녀를 시현이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윽… 아파!”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몸에 느껴지는 선명한 통증에 전율했다.
“조심하세요. 영사가 데리고 다니는 이들 중에는 당신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놈들도 있을 겁니다. 상당히 많은 악마추종자가 영사와 함께 있거든요.”
시현은 최형림이 미카엘에게 사람을 빌렸다는 걸 모르고 그저 영사에게 당했겠거니 해서 사이다패스에게 경고했다.
사이다패스도 그들이 미카엘의 부하인줄 모르니 그냥 영사의 부하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얼마나 지났지? 음? 뭐야. 항상 붙어있던 그 최형림 약혼녀는 어디갔어?”
“그녀는 지금 잠깐 집안 문제 때문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응? 집안 문제?”
“네. 최형림씨가 이상한 방향으로 손을 썼더군요.”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현은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류하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류하리의 약혼자는 최형림이다.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게 이번 일이었다.
최형림은 류하리를 훼방놓기 위해 류장천 회장을 통해 류하리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었다.
류장천 회장이야 건설 자재 납품등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지만 그 아내는, 류하리의 모친은 심약하고 허약한 인물이었다.
딸이 경찰이 되었다고 해도 그냥 사무직이나 전전할 줄 알았던 그녀는 최형림에게 딸이 현장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놀라서 까무라칠뻔했다.
그래서 류하리에게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쳤고 평소 알고 지내던 마포경찰서장에게 연락해 류하리를 정보과에서 아동청소년과로 옮겨달라고 난리를 친 것이었다.
사실상 한직인 정보 3과에 와서 그래도 자의적으로 이일 저일 해결해가며 자신의 주가를 높이고 있던 류하리에게 이것은 그야 말로 폭탄이었다.
임관초기 갑작스런 컨디션 난조로 박살났던 그녀의 평판을 어떻게 회복시켜놨는데 기껏 회복시켜둔 평판을 수직하락시키는 집안 리스크라고 할 수 있었다.
주가가 이렇게 폭락했으면 여러 사람들이 투신 자살해서 블랙먼데이를 재현했을 거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데? 뭘 하려는 거야?”
사이다패스가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음. 그게 말이지요.”
시현으로서는 난처했다.
그는 탐문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김유라를 습격했던 청부폭력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특수하고 전문적인 청부 폭력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소문이 날 수밖에 없으니까.
문제는 사이다패스와 함께 가면 일을 그르칠 거라는 것이다.
사이다패스가 그들을 보았을 때 과연 참을 수 있을까?
만약 사이다패스가 직접 손을 대서 죽일 경우 그것은 복수를 직접 자행한 것이 되어서 향후 그녀의 영혼을 해방하는데 있어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현이 그들을 찾아나서느라 여기저기 탐문했는데 그 후 그들이 죽어버린다면 살인범으로 시현이 의심받지 않겠는가?
‘할수 없나.’
시현은 사이다패스를 이 자리에서 치우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사이다패스에게 말해주었다.
“양지희가 귀국했습니다.”
“뭐?”
“당신의 원수, 양지희가 최근 진행중인 드라마의 프리프로덕션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 오늘 귀국했습니다. 혹시 보고 싶습니까? 비행기는 딜레이되어서 오후 3시에 도착했으니 지금쯤 공항에 가면 당신은 볼 수 있겠군요.”
사이다패스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야? 왜 그걸 내게 이야기해주지? 만약 내가 못참고 죽여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로서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당신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분을 못참고 그녀를 당신의 손으로 죽여버려 영혼을 징수당한다 한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제가 말릴 이유는 없지요.”
“으음.”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말을 듣고 망설이다가 눈을 감았다.
“최형림과 영사도 알고 있겠지?”
“네.”
“그렇다면 경호하러 거기 가있을 수도 있겠군. 그럼 나도 경거망동하지 않을 수 있겠지.”
사이다패스는 공항에 가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네. 잘 다녀오시길.”
* * *
양지희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그 흔한 기자도 없어?”
“일부러 선글라스도 쓰고 왔잖습니까.”
양지희의 매니저 겸 코디인 중년 여성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양지희의 사촌 언니지만 주도권과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리기 위해서 철저히 존댓말을 쓰도록 훈련받았다.
양지희는 친인척들 사이에서도 폭군이었으며 오히려 일자리가 없는 사촌 언니를 자신이 구제해 준다고 여기고 있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