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7화
폭풍 속에서 #3
“여, 영사. 영사가... 범인이었어.”
“범인이라시면.”
“양지희가 범죄자들을 고용할 수 있었던 거....”
“.........”
시현이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고무망치로 사람의 머리를 적당히 두들겨 치는 수법을 쓰는 범죄자에 대해서도 안면이 있었다.
‘류장천 회장 밑에서 거두어졌을 때 종종 일하던 녀석들이었지.’
류장천 회장이 일하는 데 방해되는 녀석들을 잡아다 고문하던 놈들이다.
그런데 사이다패스는 그걸 뭐 굉장히 중요한 정보라고 시현에게 말하기 위해 뇌손상성 간질과 싸워가며 힘겹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기에 온 것도 그 친구들을 잡으러 온 거거든요.”
“뭐?”
“그 친구들을 잡으려고 할 때 당신이 감정적으로 나올까봐 양지희의 도착에 대해서 알려주었는데 당신 수명이 팍팍 줄어드는 게 보이더군요. 깜짝 놀라서 약을 투약해서 당신을 깨운 겁니다.”
“자, 잠깐. 그럼... 당신.”
“네. 저는 처음부터 영사가 그런 일을 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사는 이 바닥 최고의 픽서입니다. 당연히 이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청부폭력이라면 그가 연관되었거나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놈의 소행이라는 걸 알아챘어야지요.”
“윽... 이, 이.....”
김유라는 시현의 말에 분개했지만 사이다패스일때와 달리 지금의 그녀는 머릿속에 번뜩이는 충격과 고통으로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당신은 참, 사이다패스라고 하기엔 너무나 안타깝군요. 앞으로 정식으로 고구마패스라고 부르겠습니다.”
“개, 개새꺄.”
김유라는 시현에게 욕을 하며 다시 기절해버렸다.
그리고 대신 사이다패스가 시현의 차에 나타났다.
“너 이자식! 대체 정체가 뭐야?”
사이다패스는 대뜸 시현의 멱살을 잡았지만 그 순간 시현이 반색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마침 잘 왔습니다.”
“뭐? 이자식아! 지금 나랑 장난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영사가 알고 있는 녀석이거나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말이나 그 말이나! 너 날 우습게 보고 있지?”
“숙달된 프로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신같은 아마추어가 웃기지 않냐고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뭐?”
“안심하세요. 조롱해서 웃기다는게 아니라 문자그대로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라는 거지 딱히 당신을 경시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건 지금 저는 당신이 와서 매우 기쁘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며 옆에 손을 뻗어서 뭔가를 집어들었다.
사이다패스가 옆을 바라보니... 그곳엔 비닐백에 담긴 성인용 기저귀가 있었다.
“!?!”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만.”
“아!”
사이다패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안오시면 제가 하려고 했는데 혹시 괜찮다면 이대로 제가 해도 됩니다만?”
“다, 당장 나가! 이자식아!”
사이다패스는 시현을 향해 고무망치를 휘두르며 그를 내쫓았다.
* * *
시현은 비가 내리는 야외 주차장에서 우산을 펼쳤다.
잠시 후 차의 문이 열리고 김유라, 아니 사이다패스가 내려섰다.
“으... 젠장.”
사이다패스는 코를 막았다.
“잘 되었습니까?”
“너무 앙상해. 젠장. 원래 꽤 육감적인 몸매였는데 아주 볼품이 없게 되어버렸어.”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몸 라인을 따라 손을 쓱 쓸어보였다.
사이다패스로서의 그녀의 몸과 김유라의 앙상한 몸을 비교해보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래서 고구마패스씨. 당신을 고문학대했던 놈들을 잡을 건데 절 보면 그 친구들이 도망칠테니 퇴로를 잡아 줄 수 있겠습니까?”
“고구마 패스라고?”
“지금 당신의 행각 어디에 사이다가 있습니까?”
“썅. 내 도움이 필요한 거 맞지? 혼자서는 못 잡고 도망친다면서?”
“정확히는 저 혼자서 잡을 수 있지만 그 경우 그 친구들에게 심각한 상해를 입힐 확률이 높습니다. 당신이 돕는다면 상해를 최대한 덜 입히고 잡을 수 있겠지요.”
“당신도 최형림이랑 어떤의미에서는 비슷하네.”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혼자서 다 할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말입니까?”
“........”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는데, 놀랍게도 시현은 사이다패스의 속내를 다 꿰뚫어보는 지 그렇게 말했다.
“안심하세요. 저는 당신을 꽤 귀엽게 보고 있답니다. 최형림 검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여동생같은 귀여운 아가씨에게 괜히 주도권을 내줘서 이후 기어오르는 꼴은 보기 싫거든요.”
“뭐?”
“당신 기분좋자고 주도권을 내주는 경우는 앞으로도 없을 거다 이소립니다.”
시현은 그렇게 단언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 형제를 잡도록 해보죠. 고구마패스씨.”
“......”
시현이 자꾸 그녀를 고구마라고 부르는데 그녀로서도 할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꼬라지를 보면 충분히 그럴만했기 때문이었다.
* * *
상가 2층, 불고기 집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얼굴에 뱀문신이 있는 대머리 남자 둘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분위기가 자뭇 살벌하다. 보통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왔다가도 몸을 돌려 바로 뒤로 나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바람이 거칠게 불어서 창문이 들썩거리는 가게 입구에 한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시현이었다.
“응?”
그들은 가게 입구에 시현이 다가오는 걸 보며 깜짝 놀랐다.
“저자식.”
“시, 시현 아냐 저거? 그 탐정놈? 왜 여기 온 거지?”
그들은 시현을 알아보고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이 건물은 옛 다가구를 개조해 상가로 만든 것이라 뒤쪽으로 비상 대피계단이 있었다.
그들이 그쪽으로 피하려 하자 가게 점원 여성이 깜짝 놀라서 말렸다.
“어, 그 쪽은 출입금지에요.”
“닥쳐!”
“아, 머, 먹튀다! 먹튀에요 사장님!”
여직원이 놀라서 외치자 그들은 신경질적으로 여직원을 밀쳐버리고 가게의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비상계단 밖에는 이미 사이다패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죽이지 마세요. 고구마.”
“젠장! 알고 있으니까 그만 놀려!”
사이다패스는 즉시 망치를 휘둘러 처음 선두에 선 녀석의 무릎을 후려갈겼다.
“컥!”
“이 새끼들아!”
그녀는 또 다른 놈의 쇄골을 망치로 후려 갈겨 쇄골뼈를 부러뜨렸다.
무릎과 쇄골이 부러진 둘이 가게 안으로 나뒹굴었다.
“공평해야지! 너도!”
사이다패스는 쇄골이 부러진 남자의 다리를 망치로 쳐서 부러뜨리고 무릎이 부러진 남자는 쇄골을 쳐서 둘 다 똑같은 꼴로 만들어주었다.
이미 도망칠 기력이 없는 이들의 뼈를 잔인하게 분지르는 그녀의 행동이 과격했지만 다른 이들도 아닌 그녀를 폐인으로 만든 실행범들 아닌가?
죽이지 않는 것만 해도 굉장한 인내력을 발휘한 것이다.
“제기랄! 속이 다 후련하네!”
“벌써요? 쯧쯧. 누가 고구마 밭 아니랄까봐.”
시현은 사이다패스에게 빈정거렸다.
“뭐 임마?”
“이 정도로 벌써 후련하다니 어쩌느니 하는 걸 보니 이미 틀렸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날때부터 사이다랑 인연이 없는 것을. 팔자가 그러려니 해야죠.”시현은 그리 말하고 가게 점원과 주인에게 손짓했다.
“괜찮습니다. 경찰에 신고 안 하셔도. 이 친구들이랑은 친구거든요. 친구.”
“어. 음.”
직원과 사장이 당황해하자 시현은 돈을 꺼내서 그들에게 주었다.
“이들 밥값은 제가 사도록 하지요. 그리고 아 혹시 사이다 있으면 좀 주시겠습니까?”
시현이 낸 돈은 이미 이들의 밥값을 하고도 남을 돈이라서 사장은 즉시 돈을 받고 직원에게 눈짓했다.
“사, 사이다요?”
“네. 부탁드려요. 시원한 걸로.”
직원이 사이다를 가져오자 시현은 그걸 사이다패스에게 내밀었다.
“야. 이자식이.”
절대로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 * *
뼈가 부러져 도망칠 수도 없게된 두 대머리 남자는 강제로 식당 의자에 앉혀졌다.
“큭. 시현. 이자식.”
“너 영사 형님이랑 아는 사이라면서!? 우리에게 이런 짓 해도 될 거 같아?”
“아니 그보다 대체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냐?! 왜 우리에게 이러는데?”
바닥에 쓰러진 이들은 시현에게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반말을 했다.
그걸 본 점원과 가게 주인이 어쩔줄 몰라 할 때 시현이 의자를 가져와 그들 앞에 놓고 앉았다.
“염소랑 양을 망치로 도축하면서 익힌 기술로 사람들을 기막히게 손질해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든다고 해서 반백정이라 부르지? 너희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뭐?”
“두 달 전에 안산에서 조합장 손목 자르고 도망친 것도 당신들이지?”
“......”
“그리고 몽골에서 한 달 잠적 타다가 들어왔고. 몽골에서 결혼해서 애도 둘 씩 있지? 아니 여기서는 셋 인가?”
“이새끼. 어떻게....”
그들은 시현이 자신들의 신변 정보를 쉽게 술술 외는 걸 보며 당황했다.
원래 시현은 고아원에서 류장천 회장에게 거두어져 영사 밑에서 수사기술과 사기 기술, 전투 훈련을 받으며 이들과 함께 했었다.
즉 영사의 조직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시현이 류하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침으로서 없어졌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건 시현과 영사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사는 종종 시현을 의식했고 영사의 조직원들은 시현을 그런 영사가 알고 있는 후배같은 녀석, 이상한 탐정 정도로 알고 있었다.
물론 영사의 조직원이면서 악마 숭배자이거나 계약자인 이들은 시현의 정체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이들 망치잡이 둘은 일반적인 범죄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시현이 자신들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에 놀랐다.
이 자식이 이렇게나 철두철미하게 사전조사를 했구나.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날 보자마자 달아나려고 한 걸 보니 아마 나에 대해서 귀띔정도는 들은 모양이군.”
시현은 그들이 도망치려 했다는 점에서 영사가 이들에게 경고 정도는 했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아. 알겠어. 젠장.”
“그래서 뭐 어쩌자고? 우리에게 뭘 원하는데?”
“아니 당신들의 기술에 감복해서 말이지. 저 아가씨가 당신들 기술을 재현해보려고 하는 데 그 몸을 교보재로 제공할 생각은 없나 해서.”
“......”
“뭐?”
그들은 고무망치를 들고 자신들을 잡아먹을 듯 내려다 보고 있는 사이다패스의 눈빛을 보았다.
“아...”
“마, 말도 안 돼.”
그들은 사이다패스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에서 떠올린 모양이었다.
“하. 이 자식들은 그나마 기억력이 좋네?”
사이다패스는 양지희와 달리 자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보며 기막혀했다.
황당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도 양지희처럼 사이다패스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속 텨저서 이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뭘 원하는 거야?”
“별건 아니고 의뢰인인 양지희에 관련된 사건만 좀 넘겨주면 되겠는데.”
“미쳤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죽어!”
“뭐 아니면 교보재가 되는 거지. 당신들이 하던 일을 배우고 싶어하는 젊은 아가씨가 있는데 후학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몸을 제공해주지 않겠어? 사실 그쪽도 좋을걸?”
시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사이다패스가 그 말을 듣고 시현이 내준 사이다를 마셨다.
“매우 환영이지!”
사이다패스가 의욕을 내비쳤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