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38화 (238/269)

제238화

폭풍 속에서 #4

청부폭력범들은 사이다패스가 김유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정보를 불었다.

청부폭력배들이 쉽게 백기를 들자 사이다패스가 분개했다.

“왜? 계속 개겨보지? 아니 항복하건 말건 상관없이 해치워버리면 안되나?”

“참으세요. 이들의 증언은 매우 필요합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청부 살인이나 청부 폭력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어서 증거가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부살인이 실패하는 건 실행범들이 불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무슨 뜻이야?”

“즉 실행범들의 증언이 매우 중요하다 이거지요. 다만... 영사가 일군 조직에 속한 놈들이라 크게 실효를 거두진 못할 것 같군요.”

과연,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수사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이다패스도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들은 영사와 연결된 브로커에게 의뢰를 받고 철저히 현금으로 금액을 지불받았다.

이래서야 증언을 해봤자 그들의 윗선 브로커까지만 잡힐 것이다.

양천용이나 양지희는 털끝하나 상하지 않으리라.

* * *

사이다패스를 습격한, 아니 정확히는 김유라 양을 습격한 이들에게 증언을 얻었다.

하지만 이 증언만으로는 결정적인 타격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은 그들을 놓아주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젠장 쓸데없는 짓을 한 기분이야. 기껏 잡은 놈들을 풀어주다니. 이럴바엔 그냥 그 자식들 머리통을 고무망치로 12초마다 한 번씩 두들겨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사이다패스는 기껏 손에 넣은 원수들을 풀어준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시며 물어보았다.

“설령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원한을 풀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 왜냐면 악마가 만들 그 어떤 지옥도 지금 내가 겪는 지옥만은 못할 것 같거든.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처녀가 기저귀를 차고 남에게 똥오줌을 받게 하는 데 무슨 존엄이 있어? 내게 이 힘을 준 악마가 내 영혼을 바란다면 기꺼이 줘야지! 안그래?”

이 세상의 다른 어떤 것들도 그녀에게 힘을 준 악마 만큼 그녀를 배려해주지 않았다.

세상은 잔혹한 황무지였고 오직 악마만이 그녀에게 목을 축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으니 바라는 게 영혼이건 뭐건 줘서 나쁠게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인드로 접근하면 싫어할텐데요.”

하지만 시현은 그런 사이다패스의 말을 부정했다.

“자포자기 하는 거 잖습니까.”

“그럼 날보고 어쩌라는 거야? 최대한 몸부림치다 고통스럽게 파멸하라는 거야?”

사이다패스가 시현에게 의견을 물어보자 시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게 정답이다.

악마들은 인간이 최대한 인간성으로 몸부림 치는 걸 원하니까.

“증언을 받아두었으니 저들을 풀어줘도 괜찮습니다. 왜냐면 이 증언은 양지희 씨를 파멸시키기엔 부족할 지라도 저들을 파멸시키는 데는 충분하니까요.”

브로커와 의뢰주에 대해서 불어버리면 저들 청부폭력배들이 오히려 위험해진다.

산사태가 날 불안정한 산 위에서 자신들의 발 밑을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짓이다.

청부폭력을 알선한 브로커는 자신을 배신한 저들을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이들의 증언을 받은 것으로 당신은 이들의 목숨을 손에 쥔 겁니다. 게다가 한가지 명확한 사실을 알수 있게 되었지요.”

“어떤 거?”

“일처리가 상당히 꼼꼼합니다. 브로커를 2중으로 쓰다니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지요.”

“왜?”

“실행범들이 받은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브로커들의 수수료로 나가니까요. 하청에 재하청을 해도 실행범들에게 적잖은 돈을 쥐어줄 수 있다면 이건 상당한 수완과 재력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즉 이건 양천용 의원이 직접 손을 댄게 틀림없습니다. 양지희 개인이 독단으로 저지를 수 있는 수법을 넘어섰으니까요.”

이정도 전문적인 브로커를 끼고 청부 폭력을 행하려면 양천용 의원정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뭐 다 알고 있던 사실이잖아?”

“아니죠. 한가지 중요한 의문이 생기지요.”

“무슨 의문.”

“대체 양천용 의원이 왜 그렇게까지 딸의 응석을 들어주냐는 겁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아무래도 양천용 의원에 대해서 좀 조사해야 겠습니다.”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말하더니만 이제부터 조사라고?”

“네. 이상한 점이 있어서요.”

“이상한 점이라니? 딸 응석 들어주는 거 말야? 그런 사람은 흔하잖아?”

“그런 것 만이 아닙니다. 성취리스트에 그가 없습니다.”

사이다패스는 무게를 잡고 말하던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피식 웃었다.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성취리스트에 없을 수도 있지.”

“이 시절 검사가 없다는 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이 시절 검사?”

“공안 검사라는 건 검사 중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보직 중 하나입니다. 검사 사회의 핵심 이너서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당시 검사들이 술과 유흥으로 결속을 다지던 조직이라는 거죠.”

“그게 왜?”

“판검사란 조직은 대한민국에서 부정부패를 당당히 저지르는 이들입니다. 전관예우라는 것 자체가 곧 부정부패 아닙니까? 그 부정부패를 당당히 저지르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결속이 매우 중요하지요. 그리고 그 결속을 다지던게 바로 같이 손을 더럽히는 겁니다. 유흥업소에서 다 같이 부정한 돈을 받고 부정한 향응을 즐기는 모습으로 서로서로의 약점을 잡고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입문의식을 쭉 저질러 왔다 말입니다. 요새 검사들은 어떨지 몰라도 옛날 검사들은 그걸 피할 수 없었단 말이지요.”

시현은 성취리스트를 슥 훑어보았다.

“그래서 그 시절 대부분의 검사들은 향응에 무감각합니다. 성취리스트에 실린 놈들 명단을 보세요. 판검사들 상당수가 실려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리스트에 그처럼 거물이 실리지 않았다는 건 분명히 이상한 일입니다.”

“혼자 청렴결백한 검사일 수도 있잖아.”

“당신을 작살내놨는데 청렴결백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양지희에 대한 자료도 꺼내놓았다.

“그리고 양지희를 너무 오냐오냐하는 것도 이상하군요.”

“뭐가? 딸 바보 아빠는 흔하잖아?”

“그런 것 치곤 지나치게 둘이 같이 지내는 시간이 없습니다. 서로서로 거의 안보고 지내요. 소위 말하는 기러기 아빠처럼... 양지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아예 아내와 양지희 모두 미국에 보내두고 혼자 살고 있지요. 그런데도 양천용 의원은 딸을 위해서라면 좀 가만히 있어도 될법한 일까지 다 손을 대고 있지요. 당장 당신 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내버려두면 될 일을 굳이 사람을 써서 자칫하면 자신의 모든 걸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범죄를 태연히 저질렀단 말이지요.”

“굳이 딸이 예뻐야 딸말 들어주는 것도 아닐거 아냐. 그냥 워낙 자신이 남다른 혈통이라서 나처럼 미천한 일반인이 자기 혈족에 이빨을 들이댄게 기분나빴던 게 아닐까? 이자식들 선민의식이 장난이 아니잖아.”

“개인적으로는 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다 해주는 거였으면 재밌을 것 같군요.”

“뭐? 무슨 소리야?”

“뭔가 딸에게 죄책감을 가질 일을 해서 딸이 해달라는 걸 다 들어주되 서로서로 얼굴은 안보는 부녀라면 어떻습니까?”

사이다패스는 시현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고 혀를 찼다.

“너무 억측이 심한 거 아냐?”

양지희나 양천용이 그녀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이 하는 말은 선을 많이 넘은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 추리라는 건 억측이 심한 겁니다. 셜록 홈즈에서도 홈즈가 항상 추리를 넘겨짚어서 하다가 미망인에게 말실수하고 혼나는 장면이 있지요.”

“그래. 잘 알고 있네. 그럼 자제 좀 해.”

“자제를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넘겨 짚다가 틀려서 혼나봤자 약간의 꾸중 정도가 고작 아닙니까? 하지만 넘겨 짚어서 맞추면 상대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흔들수 있는데 막 질러봐야죠.”

“........”

류하리는 이미 익숙한 일이지만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최형림이 이 자식을 은근히 고평가 하고 있었는데 그 실체가 이거란 말야?’

시현은 뻔뻔스럽게도 탐정이란 억측을 남발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이 업계의 전문가에게 물어보러 갈까요? 마침 바쁘지 않을 시간이니.”

* * *

시현은 스타일리스트 강휘의 가게에 찾아왔다.

강남에서 유명한 미용실과 에스테 샵을 운영하는 스타일리스트로 시현이 호스트 클럽에 잠입할 때 도움을 준 인물이었다.

시현의 과거 의뢰인이었기에 시현이 사람들의 의뢰를 들어주고 수명을 거두어 간다는 걸 잘 알고 이해하는 협력자였다.

게다가 그의 업장은 강남 쪽, 서초구에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이쪽 사람들 소문에 훤할 것이다.

“음 슬슬 영업준비할 시간인데. 그래도 잘왔어. 오늘은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니까 손님도 적겠지. 커피 줄까?”

“손님 적으면 망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 임대료 비쌀텐데.”

“하하하. 걱정해주는 건가? 자기가 돈이 많잖아? 어떻게 융통해주겠지? 그래 무슨 일이야? 갑자기 찾아온 걸 보니 또 뭐 시킬 일이 있겠지?”

“음. 혹시 양천용 의원 아십니까.”

“양천용 의원? 그 사람이 왜?”

“검사치고는 유흥업소 출입기록이 없던데 혹시 그에 관련된 소문이나 정보 없습니까? 아니면 잘 알만한 사람이라던가.”

스타일리스트 강휘는 두개의 영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일반인들 대상으로 하는 전문 스타일 샵이고 다른 하나는 유흥업소 접대부들을 위한 업소였다.

이곳은 유흥업소들로 출근하는 접대부들을 마치 F1레이싱에서 피트인한 차량 정비하듯 빠르고 전문적으로 손질해주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 싫어도 이쪽 업계의 여러가지 비밀들을 알게 된다.

‘모 접대부가 이번에 대박 스폰서를 구했는데 그게 어디 재벌가 사람인데 열쇠를 몇 개 해줬다더라.’

‘연예인 누구가 유흥 죽돌이인데 취향이 독특하더라.’

그런 소문들이 이쪽 바닥에 돌고 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증권가 찌라시와 유훙업소 가십들, 이것은 터무니 없는 헛소문과 진실들이 뒤섞여 흐르는 곳으로 시현 처럼 틀리면 틀리는 대로 발로 뛰며 해결하는 방식의 탐정에게는 최고의 정보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검사들이 이 근처 유흥업소 먹여 살리던 것도 옛날 이야기야. 옛날 이야기. 요즘 애들에게 그런 말 하면 틀딱 노인네 취급받는다고. 그리고 그런 건 자기가 직접 조사하는 게 특기 아냐?”

강휘는 그렇게 말했지만 분명히 뭔가 마음에 짚이는 게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영사가 붙어있어서 미행하면 그쪽이랑 부딪힐 것 같은데요.”

“아…그래.”

“확실히 뭐 알고 있는 거 같군요.”

“그게… 말하기 좀 그런 건데.”

“그런거라뇨?”

“아이 참. 이거 내가 말하면 안되는데. 그니까 그쪽이야. 그쪽. 종로나 을지로.”

“아니 무슨 대답이 그 모양이야?”

듣고 있던 사이다패스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종로나 을지로라니 무슨 소리야?”

종로와 을지로는 고전적인 회사들의 본사들과 그 유흥업소가 밀집한 곳이었다.

하지만 강휘가 하는 말의 의미는….

“동성애자라는 소립니다.”

“뭐?”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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