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39화 (239/269)

제239화

폭풍 속에서 #5

“흠.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맞물리는 군요.”

시현은 양천용의 행동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아내와 딸을 멀리하며 혼자 지내고 있는 기러기 아빠같은 존재, 그런데 유흥업소 쪽에서 소문이 돌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양천용은 원래 동성애자인데 위장으로 결혼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지희가 무리한 짓을 저질러도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겠지.

‘어? 이자식….’

사이다패스는 시현이 넘겨 짚긴 했지만 그가 말한 대략적인 설계에는 들어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양천용이 일반적인 검사들과 다른 성벽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족에게 죄책감이나 어떤 부채감을 가지고 있어서 양지희가 말해달라는 건 다 들어준다는 걸 맞춘 것이다.

‘눈썰미가 장난이 아닌데?’

자세한 원인, 왜 죄책감이나 부채감을 가지는가를 알아채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근처까지만 맞춘 것만 해도 대단하다.

물론 무작정 난사하듯 쏴댄 추론의 결과지만 그렇다 해도 놀라운 일 아닌가?

사이다패스를 고객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지 양천용 의원을 스토킹하고 있던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 또, 시현이 그 특유의 넘겨짚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상하군요.”

“응? 뭐가?”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한 업소도 많이 있으니까 일반적인 동성애자라면 강휘씨 당신이 알아도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양천용 의원은 다릅니다. 그는 동성애자용 업소에는 죽어도 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정치가니까.”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회다.

설령 급진적인 소수정당이라 해도 대놓고 동성애자임을 내밀고 출마하는 이는 아직까지 없었다.

급진당에서도 그럴진데 메이저 보수 정당의 핵심 당수인 양천용 의원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건 그만이 아 니라 그의 당 전체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다.

권력을 사유화해서 딸에게 험담하는 사람을 묻어버리는 것과 동성애자인 것, 둘 중 어느것이 양천용의원에게 치명상인가 하면 단연코 후자 쪽이다.

그러니 남들 가는 업소같은 걸 함부로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도 새로운 의뢰인을 소개받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역시 자기 예리한데?”

강휘 역시 시현의 예리한 통찰력에 혀를 내둘렀다.

“맞아. 소개해줄 만한 친구가 한 명있어.”

강휘는 그리 말하고 윙크를 해보였다.

* * *

“그런데 그 새 의뢰인 굳이 필요한가?”

사이다패스가 의문을 품었다.

“왜요?”

“아니 양천용이 동성애자라는 증거만 잡아서 뿌려버리면 되잖아? 생각해보니까 그녀석 동성애자인 거 세간에 알리기만 해도 정치가로서의 녀석을 끝장낼 수 있고 이처럼 완벽하게 죽일 방법도 없을 것 같은데?”

사이다패스의 복수를 위해서는 굳이 복잡하게 갈 거 없이 양천용이 동성애자라는 증거만 잡으면 된다.

시현 특유의 미행과 도청능력을 적극 활용하면 그런 걸 잡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시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림도 없는 말씀이십니다.”

“뭐? 왜?”

“우선 첫째로 설령 아무리 정확한 증거자료가 있다고 쳐도 성취 리스트 때 그랬던 것처럼 자료 자체의 진위를 의심할 겁니다.”

합성, 편집, 조작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자료의 진위를 입증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둘째로, 동성애자인 것 만으로 처벌받는다면 그건 제 미학에서 어긋나는 군요. 아무리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지만 고객의 복수를 위해 상대의 무고한 다른 혈족을 해친다거나 하는 건 제 취향이 아닙니다. 그가 죄를 짓고 잘못을 범한 영역에서 그를 파멸시켜야지 그럴 거면 그냥 양지희를 비롯해 그들 친척을 한 명씩 차례차레 죽이거나 납치해서 고문하는 쪽이 더 쉽지 않습니까?”

“그거 혹하는 데?”

“사이다패스는 왜 그렇게 안했죠? 지금까지의 사냥감들 모두 삼족을 잘근잘근 죽일 수도 있었을텐데요.”

“그야....”

“그런 짓을 하면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니까 겠지요. 자신은 지키던 원칙을 저보고는 어기라니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동성애자여서가 아니라 사악한 범죄자라서 파멸해야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알겠어. 내가 잘못했네 그건. 그래서 셋째는?”

“세번째로는 당연히 수명을 더 징수해야지요.”

“.......”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아직 재건축 되지 않은 상점가의 원룸 건물의 벨을 눌렀다.

그러자 안에서 부스스한 머리의 청년이 나왔다.

“음... 뭐야? 아? 너는?!”

그는 시현을 알아보았다.

“그때 그... 최 사장님 긁었던 신참!?”

시현이 과거 호스트로 위장잠입해서 최형림의 누이, 최설아에게 접근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같이 호스트 바에 있던 호스트가 강휘가 소개해준 새 의뢰인이었던 것이다.

“역시 세상 좁군요. 들어가겠습니다.”

“잠깐! 들어오지 마! 안치웠....”

호스트 청년이 문을 막으려 했지만 시현이 문을 당기자 맥없이 끌려나왔다.

“아 젠장... 이 미친 놈이. 힘은 겁나 세 네. 3대 몇치냐?”

시현은 호스트의 질문에 대꾸도 없이 사이다패스를 대동하고 들어왔다.

해가 들이치지 않는 낡은 원룸의 거실에는 빨래 건조대가 놓여있고 빨래가 한창 실내에서 건조 중이었다.

“그럼 어디 이야기를 들어보죠. 혹시 사탕 드시겠습니까?”

시현은 식탁에 멋대로 앉아서 주머니를 뒤적여 사탕을 꺼내놓았다.

“.......”

호스트는 한숨을 내쉬고 자기 집 현관 문을 걸어잠갔다.

* * *

“손님이 왔는데 뭐라도 내오지?”

사이다패스가 그렇게 말하자 호스트가 코웃음쳤다.

하지만 시현이 멋대로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꺼내 사이다패스에게 건네주었다.

“음 뭐야. 스타벅스네?”

“업소에서 요즘 이걸 쓰거든요. 업소 창고에서 슬쩍 털어온 모양입니다. 손님이 안마신 거 가져온 건가?”

“잘 아네. 그래서 뭐야? 당신이 정말 그 강휘 형님이 말한 해결사야?”

“네. 최설아 씨 때 봤잖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건 그 진상하고는 비교도 안되는 거물이라서.”

“양천용 의원 말입니까?”

“그, 그래. 어디까지 알고 왔어?”

호스트는 긴장해서 물어보았다.

사실 그는 상대가 워낙 거물이라서 강휘 같이 평소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겨우 이야기 했을 뿐 그 외엔 입을 다물고 벙어리 냉가슴앓듯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이야기를 꺼내자니 말하고 싶은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한데 어우러져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때마침 천둥소리가 원룸을 뒤흔들었다.

시현이 입을 열었다.

* * *

“강휘 씨는 매너가 좋은 사람입니다. 고객의 비밀 같은 건 그렇게 쉽게 밝힐 사람이 아니지요. 그래서 제가 추론을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추론?”

“어쨌건 명색이 탐정이니까요.”

“해봐.”

호스트가 허락하자 시현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아마도 당신은 돈을 벌기 위해서 데이트 어플같은 걸로 남자들에게는 돈을 받으면서 데이트를 해줬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갔다가 그만 납치당해버린 거지요. 정신을 잃고 있는 사이 강간당하고 버려졌는데 의식이 흐릿한 와중에 그만 범인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그런데 그게 바로 양천용의원이라서 어디가서 말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고 있다. 이런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사이다패스와 호스트, 둘 다 동시에 놀라버렸다.

“아니 강휘 형님이 그렇게 다 말해줬단 말야?!”

“아, 아냐. 그런 말 없었어.”

사이다패스가 손을 내저었다.

“까고 있네! 짜고 헛소리 하지 마! 추론은 무슨 개뿔이....”

“아니 헛소리 아냐! 진짜로 그 아저씬 그런 말 안했다고!”

사이다패스는 억울해서 가슴을 쳤다.

“뭐 간단한 추론입니다. 아시다시피 양천용 의원은 거물 정치인이라 동성애자인 걸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처지. 그런데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자가 바로 그 권력 때문에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거죠.”

문제는 동성애가 밝혀지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데이트로 파트너를 수급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외모가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나이는 많고 또 그렇다고 클럽이나 동호회등에서 적극적으로 파트너를 구하려면 이래저래 개인정보가 파이니까요. 개인정보를 극단적으로 감추려면 항상 자신이 통제자 위치에 있어야 하지요. 마침 청부폭력배들을 부릴 수 있을 만큼 유능한 브로커가 붙어있으니까 생각해볼 수 있는게 이것 밖에 없네요.”

“대단해....”

호스트는 여전히 불신하고 있지만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저 말이 온전히 추리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감탄하고 있었다.

“뭐 그렇게 대단할 건 없습니다. 역으로 말해서 강휘씨가 의뢰인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면 소거법으로 생각해봐도 뻔합니다. 그렇죠?”

강휘가 양천용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강휘가 소개해주는 의뢰인은 억울한 일을 당했고 아마도 그 사건 때문에 양천용 의원의 성적취향이나 정체성을 알게 되었을 것.

게다가 이 호스트가 직접적으로 양천용을 언급하지 않으면 강휘 입장에서는 양천용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이런 정보에서 역으로 추산해보면 나올 답이 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도로 추론을 할 수 있다는 건 놀랍다.

“아 그래서 뭐 다 알고 왔으면 설명이 짧아져서 좋네.”

호스트 청년은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서 동영상 파일을 하나 재생해주었다.

호스트 청년이 인적 드문 유흥가 뒷골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다가간 남자 둘이 갑자기 스턴건을 꺼내 호스트를 기절시키고 그를 부축해서 주차해둔 차량으로 가서 그를 태워 사라진다.

동영상을 촬영하던 이가 놀라서 뛰어갔지만 차는 이내 사라지고, 동영상은 거기서 끝나고 말았다.

* * *

“상대를 촬영해서 협박하려고 했군요.”

“그, 그야. 자기 정체 엄금하겠다고 하니까 어차피 몸도 팔아서 돈 버는데 좀 더 벌어볼까 하고....”

“아. 이자식들....”

그런데 동영상을 보던 사이다패스가 혀를 찼다.

호스트를 납치하던 남자 둘의 모습이 익숙하다.

바로 그녀를 폭행했던 청부폭력배들 아닌가?

“양천용 맞네. 이 자식들이 진짜....”

사이다패스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녀를 해쳤던 그놈들이 그녀 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양천용의 수족노릇을 하며 유린하는데 앞장섰다니.

비록 시현과 사이다패스가 이들을 잡기 이전의 영상이지만 사이다패스의 심정으로서는 이놈들이 자신을 기만하고 다시 양천용과 손잡고 나쁜 짓을 벌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그때 죽일걸! 개자식들!”

사이다패스가 분통을 터뜨리자 시현은 씨익 웃으며 호스트를 바라보았다.

“훌륭한 동영상이긴 하지만 이 동영상에서는 상대가 양천용 의원이라는 증거는 없군요?”

“양천용인건 내가 내눈으로 봤어!”

“목격만 했지 증거는 없다는 소리잖아?”

사이다패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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