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40화 (240/269)

제240화

폭풍 속에서 #6

“아니 납치까지 당했는데 어쩌라고? 납치당한 상황에서 어떻게 동영상을 찍어? 그냥 묶어두고 뒤에서 해버린다고. 그나마 내가 상대가 양천용이라고 안 건 바닥에 라이터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라이터 표면이 매끈매끈해서 봐서 알게 된 거라고. 내가 알아낸 것만 해도 대단하지 보통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당했을 걸?”

“보통 사람은 그런 늙은이에게 몸팔러 나가지도 않을 것 같은데?”

“아니 뭐 이런 게 다있어?”

호스트가 사이다패스의 폭언에 짜증을 내자 시현이 그들을 말렸다.

“자자.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피해자들은 없습니까? 보아하니 이거 꽤 여러번 해본 솜씨인데?”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자 호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알고보니까 나말고도 이렇게 당한 사람들이 꽤 있더라고. 동네를 바꿔가면서 여기저기서 다 한 모양이야.”

그러니까 양천용 의원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 아이디를 새로 파가면서 익명 데이트 어플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을 강간하고 내다 버리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나선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동성간 매춘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라 신고할 수도 없었다. 신고하더라도 잡을 방도가 없었다. 뭐 그런 이야기겠군요.”

“그래. 내 말이 그거야.”

“경찰에는 안보여줬군요?”

“당연하지. 경찰에게 보여줬으면 나는 지금 살아있지도 못할걸?”

“네. 그건 동감입니다.”

만약 이런 일을 당하고서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경찰서에서 계속 범인이 양천용이었다고 주장하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 * *

류하리는 마포 경찰서에 돌아와 서장실에 불려갔다.

류하리의 모친이 난리를 쳐서인지 서장도 난감해하고 있었다.

“아니 거. 류 경위. 난처하지.”

“죄송합니다. 서장님.”

류하리 입장에서는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모가 자기 직장에 와서 행패를 부라고 갔으니 제대로 된 사회인이 아니라 아직도 부모 품에서 보호받고 있는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아서 수치스럽다.

“아니 그러지 말게. 어머님이 몸이 안좋으시잖아. 잘 말씀드리게.”

“........”

류하리는 서장의 말에 움찔 놀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다른 데서 딱 부러지는 류장천 회장도 아내에게만은 약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왜 서장이 알고 있냔 말이지.

서장이 무슨 류하리의 친척이면 모르겠다.

‘내 친인척도 아닌데 왜? 아 이거 더더욱 난처하네.’

그 다음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인수인계하고 앞으로는 내근직으로 돌리도록 하겠네.”

“네?”

류하리는 서장의 말에 당혹스러워했다.

“그건 곤란합니다. 제가 그 탐정 사무소에 비정규직 비슷하게 조수로 잠입해 있는데 이제 와서 인수인계라니요?”

“뭐 정 그러면 그냥 인수인계 없이 나와도 되네. 어차피 정보 3팀 업무는 박진감 팀장이랑 잘 인계하고...”

“.......”

류하리는 자신이 공들여왔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산되는 것에 당혹스러워 했다.

“아니 그게 생각해보니까 사이다패스 이전에 한 일이라서. 지금 사이다패스 때문에 어수선한데 그런 걸 할 때가 아닌 것 같아.”

경찰들 입장에서 시현에 대한 감시, 조사는 사이다패스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에 정한 일이었다.

지금은 사이다패스 사건 때문에 세상이 뒤숭숭하고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중이라 이런 쓰잘데 없는데 경찰력을 소모할 수 없었다.

‘사실 그때도 딱히 경찰력이 썩어 넘쳤던 건 아니잖아?’

사이다패스 사건 이전에는 뭐 경찰력이 썩어나서 이 건방진 탐정을 감시했었는가?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찰력, 치안력은 항상 부족해서 허덕이고 있었다.

“저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만 어머님이 뭐라고 했다고 절 내근직으로 돌린다면 그건 인사청탁이 아닐런지요?”

“하아.”

서장이 한숨을 내쉬고 효자손을 꺼내서 자신의 등을 벅벅 긁었다.

“이봐 류 경위. 지금 협박하는 건가? 사태를 악화시키는 게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나?”

“........”

사실이 그래서 할말이 없다.

* * *

[야 들었냐? 마포경찰서에 그 우리 기수 수석 졸업자 님의 엄마가 쳐들어왔단다. 왜 우리 딸 위험한데 근무시키냐고.]

[대박이네.]

[망신이다. 망신이야.]

[그러게 잘나신 부잣집 따님이 왜 굳이 아락바락 경찰대를 와가지고.]

[왜는 왜야? 일반 명문대 들어가봤자 부잣집 자식이면 이새끼 이거 어디 기부금으로 뒷문으로 입학했나 싶지. 우리가 재벌 자식들이 외국계 유명 MBA따봤자 별로 신뢰하지 않잖아. 하지만 경찰대학이나 사관학교 같은 거면 그런거 없이 온전히 본인 실력으로 들어왔다는 게 입증되는 거지.]

[그러니까 뭐야? 결혼 스펙 쌓으려고 온 거야? 와 징그럽다 진짜.]

[그래서 최형림 선배랑 약혼했다더라.]

[어휴...아니 이게 뭔 꼴이야. 결혼하면 경찰 그만둘 거 아냐? 그거? 딱 한 명 때문에 밀려난 사람만 억울하게.]

[그러고보니 차석자인 성신아는 어때?]

성신아는 류하리를 제외한 경찰대학 여성 동기들의 단톡방에서 류하리에 대한 험담이 쏟아지는 걸 보며 혀를 찼다.

“아니 왜 이 타이밍에 나를 불러?”

같이 험담하자는 소리인데 성신아는 그들의 태도에 좀 짜증이 났다.

정작 류하리 앞에서는 행여 콩고물 떨어질까 설설 기던 인간들이 뒤에서 이런 소리 하는 것도 짜증이 났고 류하리에게 싫은 소리 하는 인간들이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아니 다들 같이 봐놓고서 알잖아. 류하리가 스펙 쌓으려고 경찰대학에 온게 아니라고. 애초에 너희들 다 내근직이면서 어떻게 외근직으로 뛰던 류하리를 욕하냐? 너희들이랑 달리 나는 류하리를 미워할 이유가 있다고. 내가 미워해야 할 류하리에 너희들이 들러붙지 마라.’

하지만 성신아는 단톡방에서 그저 맞장구 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여기서 눈치없이 류하리를 옹호했다가는 다음 타겟이 그녀가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아 징그럽다. 진짜. 이런 정치질 싫어. 진짜 정치인이면 권력이라도 장악하고 나랏돈으로 활동비라도 받지 이건 뭐냐?”

성신아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합동수사본부에 도착했다.

태풍이 북상하고 있어서 서울에 비가 내리고 있는지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그녀는 역에서 서부지검까지 잠깐 걷는 정도로 비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합동수사본부의 사무실 근처에서 류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대체 뭐하자는 거에요?!”

다짜고짜 합동수사본부에 들이닥친 류하리는 최형림에게 따지고 들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형림은 시치미를 뚝 뗐다.

“부모님에게 수작을 부렸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하신거 아니에요?”

“흠. 어차피 류 경위님이 그 남자와 한편인 이상 저와는 적이 아닙니까? 게다가 생판 남도 아니라 약혼자인 제가 부모님께 그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사협정이라는 게 있잖아요?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다들 쏴대면 인류가 남아나겠어요?”

“하하. 과장이 심하군요.”

최형림은 부모님에게 이른 것에 대해서 분개하는 류하리의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발상 치고는 참 안일하군요. 만약 제가 류 경위님을 지금 이순간 제거하거나 납치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설마 공공기관에서 그런 짓을 할 바보는 아닐테니까요. 쓸데없는 협박은 하지 마시죠.”

게다가 서부지검이 있는 공덕동 일대는 오피스 밀집지역이며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곳에서 류하리를 어찌 하겠다는 건 참으로 질 낮은 협박이었다.

그러나 류하리가 여기에 찾아온 것도 별 의미없는 짓이기도 했다.

류하리가 항의한다고 해서 이제 와서 선을 넘어버린 최형림을 말로 통제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럼 류하리는 왜 여기에 왔는가?

“약혼을 파기하고 싶어요. 어차피 허울뿐인 약조로 서로서로 묶여있는 건 바보같군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려울 겁니다.”

“왜죠?”

“제가 당신의 행각을 부모님에게 일러바친 뒤기 때문이지요. 지금 약혼을 파기하겠다고 하면 부모님 입장에서는 제가 부모님들께 고해바친 것 때문에 딸이 화가 난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이는 딸이 자신들의 행동에 정면으로 대들고 비난하는 것으로 보일 겁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예비 사위인 제가 자신들의 편에 섰다가 그 불똥을 혼자 맞는 걸로 보이니 어찌 가엽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

“당신이 약혼을 깨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격렬하게 저항해야 했습니다. 이제 와서는 늦었지요.”

최형림은 그렇게 말했다.

“아니, 할 수 있어요. 당사자는 저니까.”

“네. 그러시지요. 시험해보는 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래서. 고작 그거 이야기하려고 오셨나요?”

“그것외에도 사이다패스 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류하리는 사이다패스와 양천용 의원 문제에 대해서 최형림과 이야길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윽!”

“실례합니다.”

성신아의 뒤에 검은 양복의 남녀가 걸어들어왔다.

“이 사람이 밖에서 엿듣고 있었습니다.”

“다, 당신들은 뭐야?!”

성신아 경위가 검은 양복의 남녀에게 끌려들어온 것이었다.

“성신아 경위님이시군요. 오시기 전에 연락을 주시지. 놓아주세요. 경찰 분이십니다.”

그들은 최형림이 말하자 그제야 성신아를 놓아주었다.

성신아는 자신을 잡았다 풀어주는 여자를 흘겨보았다.

‘뭐지 이 여자?’

상식적으로 서부지검 건물 안에서 사무실 앞에서 잠깐 엿들었다고 바로 제압하는 건 말이 안된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이들 상당수가 공무원이나 관계자일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엿듣고 있으면 언론사 직원쯤으로 여기기 때문에 쉽게 공격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성신아가 동년배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에게 너무나 쉽게 제압당했다는 것이다.

경찰 대학 출신인 성신아는 자신의 체력에 자신이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그녀만한 완력과 체력을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저 검은 양복의 여자는 그녀를 너무나 쉽게 한손만으로 제압했다.

이 완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어지간한 남자 동기들과 체포술 훈련할 때도 느껴지지 못한 것이었다.

흡사 중장비에 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들은 뭐지요?”

“제 경호원입니다.”

“네?”

성신아는 자신을 제압했던 여성과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디 소속인가요? 검찰조사원? 아니면 경찰? 국정원이나 국방부?”

성신아가 그 점을 따지고 들자 최형림이 헛기침을 했다.

“사설 경호원들입니다.”

“네? 사설 경호원이요?”

비상식적인 것도 정도가 있다.

현직 검사가 사설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고?

‘아니 뭐 어떤 의미로는 그래 국가 예산을 안 먹고 자비로 해결하는 거니 옳긴 하네.’

연쇄살인 사건이 들불처럼 번지면서 각지의 경찰들은 연일 계속되는 신변경호 요청에 혹사당하고 있었다.

최형림처럼 재벌가 자제가 스스로 돈을 써서 사설경호원을 들였다 하면 경찰들 입장에서는 반겨야 할 일이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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