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폭풍 속에서 #8
시현은 양천용 의원과 양지희 부녀를 동시에 격파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는 명품 선글라스와 명품 시계를 차고 고급스러운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차 안에서 갈아입는 중이라 사이다패스는 딴곳을 보다 문득 백미러를 통해 시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옷을 갈아입는 중인 시현과 의식을 잃은채 쓰러져 있는 김유라의 모습이 동시에 들어왔다.
“...야.”
“네?”
“어떻게 할 거야? 혹시 네가 변장해서 양천용을 끌어낼 거야?”
“아니요. 아마도 양천용 의원은 적어도 딸이 한국에 있는 이상 그 짓을 하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딸이 무슨 짓을 하건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다 무마해주는 인간입니다. 딸이 한국에 들어왔고 또 당신이 대놓고 적대하고 나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사이다패스는 갑자기 자신을 짚고 넘어가는 시현에게 당황했다.
“당신도 생각이 좀 있다면 최형림 검사나 영사와 갈라설 때는 이렇게 대놓고 하기 보다는 미리 준비하고 조용히 빠져나왔어야지요. 나 너희들이랑 적대할래 하고 대놓고 안면에서 반기를 들면 어쩌자는 겁니까? 당신이 양천용 부녀와 원한이 있다는 걸 영사가 알고 있으니 양천용을 경거망동시키진 않을 겁니다.”
“........”
“그러니까 고구마패스라고 불리는 거에요.”
“아니 날 고구마패스라고 부르는 건 너밖에 없잖아?! 내가 잘못한 거 아니까 계속 말하지 말고 그래서 어떻게 할지 방법이나 말해봐!”
사이다패스가 그렇게 항변할 때였다.
시현이 전화기를 두 개 꺼내서 그중 하나를 집어 전화를 받았다.
“네 시현 탐정사무소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 지은재라고 하는데요. 혹시 아십니까? 저 그 이사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어떤 이사님 말입니까? 한강건재 양원일 이사 말입니까?”
시현은 자연스럽게 영사의 현재 신분을 읊어보았다.
[네. 맞습니다.]
“지은재 씨라고요?”
“살인예술가야. 전화 줘봐.”
사이다패스는 시현에게서 전화를 받아챘다.
“어쩐 일이야?”
[역시 거기 있었군요.]
“내 위치 확인하려고 전화 건거야?”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 그, 당신 외조모 찾으라고 이사님이 보내서요.]
“뭐? 내 외조모? 할머니 말야? 야! 그거 건드리면 너희들 절대 살려두지 않을 거야! 다 죽여버릴 거라고! 네놈들은 물론 네놈들 집의 젖먹이 애새끼까지 남김없이 죽일 거야!”
[아, 아니 그, 그게....]
보다 못한 시현이 말렸다.
“자자 진정하시고. 이 사람은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전화한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협박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당신들은 어디를 찾아보고 있습니까?”
[다, 당신 사무실이요.]
“제 탐정 사무실이요?”
[네. 저 말고 그 이사님 부하랑 같이 와있는데... 저는 지금 몰래 나와서 전화걸고 있는 거고요.]
“그거 참 감사합니다.”
[아, 아뇨. 그리고 지금 저 또 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네?”
[당신에게 원한있는 사람들을 조종해서 당신을 습격하게 하라고 하더군요.]
“?”
“아.”
듣고 있던 사이다패스가 먼저 알아차렸다.
살인예술가라는 지은재의 능력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살의를 증폭시켜서 그가 정한 솔루션 대로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능력.
시현에게 원한이 있는 이들에게 그 살의를 부추겨 살인을 저지르게 한다면?
물론 시현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지만 시현을 훼방놓는데는 충분하리라.
[저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이사님께 몸도 의탁한 처지고 어머니가 사는 곳도 알고 있는 처지라서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죠?]
“이거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까지?”
시현은 지은재에 대해서 잘 모르니 대체 그가 왜 이런 사실들을 굳이 연락해주는 지 몰라 물었다.
[그게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지은재는 그렇게 말하며 당황스러워 했다. 이미 사람까지 죽인 놈인데 자신이 왜 이러는지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 * *
주택가 입구에 위치한 상가건물, 그곳에는 시현탐정사무소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그 간판을 바라보며 지은재는 우산을 움켜쥐었다.
“정말 할 겁니까?”
“네.”
요양보호사로 위장했던 조직원과 지은재는 사이다패스의 조모를 찾기 위해 그후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데드맨이 그녀를 안전한 곳에 숨겨두었을텐데 그의 수법이 워낙 깔끔해서 그들로서는 그녀를 찾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뭐 나로서는 다행이지.’
지은재는 사이다패스가 무사히 숨은 것에 대해서 기뻐했다.
아무래도 영사는 좋은 감정으로 사이다패스를 찾으려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조모를 찾는다면 필시 사이다패스를 제압하기 위해 인질로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지은재는 더 이상 단서가 없다 싶었을 때 영사에게 연락했다.
“이렇게 되어서 더 이상 단서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렇다면 기다리게. 데드맨에게 원한이 있는 친구들을 모아 줄 테니 자네의 능력으로 그들에게 살인을 시키게.]
“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영사는 지은재에게 살인을 시킬 것을 권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동안 기다리도록 하게. 아니면 둘이 같이 사무실로 돌아오던가.]
“아, 네. 그런데 저 친구가 조금 더 해보겠다고 합니다.”
[흠. 내가 벌할까봐 그러나? 뭐 좋네. 뭔가 성과를 낼 방법이 있다면 시험해보게.]
영사는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지은재는 끊긴 전화기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지만 날 홍어의 생식기로 보고 있다는 것 쯤은 알 수 있다고.’
살인 예술가라고 자처하며 지은재는 살인 트릭을 내세워 사람들을 조종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억울한 사람들이 한을 풀 수 있기를 바라고 트릭을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영사는 그가 멀쩡한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는 능력에만 초점을 맞출 뿐, 지은재가 만드는 트릭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바보취급하고 있다.
지은재는 그저 계약자로서의 능력을 들고 다니는 일종의 능력 보관장치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지은재는 영사에게 뭐라고 항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은재는 사이다패스를 위해 경고도 할 겸 시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경고해준 것이다.
-와장창!
조직원이 사무실을 강제로 진입하기 위해 뭔가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지은재는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까 두려워 하며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시현 탐정 사무소로 들어오는 길목 중 하나에서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멈춰섰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누가봐도 건달로 보이는 이들이 허겁지겁 달려나와 우산을 펼치는 게 아닌가?
“어?”
그리고 뒷문에서 내려선 이는 영사였다.
‘방금 나랑 통화하지 않았나?’
전화 한지 몇 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영사가 여기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사님?!”
“음 지은재 군. 마침 잘됐네. 김정식은?”
“네?”
“요양보호사로 잠입했던 친구 말이네.”
“아, 지금 사무실을 수색하고 있는데요.”
지은재는 심장이 쿵쾅 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영사가 갑자기 찾아오다니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군. 흠. 그런데 혹시 전화기를 보여주지 않겠나?”
“네?”
“지금 자네 전화기, 잠깐 넘겨주게. 확인할 게 있어서.”
“.......”
지은재는 목구멍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어찌된 일인지 영사는 지은재에게 전화를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화기를 넘겨주면 지은재가 시현탐정사무소에 전화한 통화이력이 보이게 될 것이다.
통화이력을 지웠어야 했는데 미처 지우지 못한 사이에 영사가 들이닥친 것이었다.
게다가 보자마자 요구하는 걸 보니 이미 알고 온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안심하게. 자네에게 뭐 해 끼치려는 게 아니야. 그냥 확인하려고 그러는 거네. 이봐.”
영사가 고개를 까딱 하자 그의 곁에 있던 이들이 와서 지은재를 붙잡았다.
지은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들은 능숙하게 지은재의 양 팔을 붙잡고 그의 품을 뒤져 전화기를 꺼내더니 영사에게 곱게 바쳤다.
패턴과 지문으로 휴대폰을 잠가두었지만 그들은 지은재의 손을 빼내서 그대로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영사는 어렵지 않게 지은재의 전화기에서 통화목록을 찾아냈다.
“아. 여기 있군.”
“저, 저기....”
지은재는 자신이 큰 위기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사는 지은재의 스마트폰을 들고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쯧쯧. 아무래도 미숙하군. 이런 건 통화하면 바로 지웠어야지.”
“아, 그, 그렇습니까?”
“애초에 이건 자네가 취직할 때 우리 쪽에서 내준 폰이지? 안에는 우리 그룹웨어가 심어져 있는데 이건 위치와 통화목록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네.”
“.......”
지은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러니까 저 휴대폰은 상시 감시당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자신이 시현에게 전화를 건 순간 알아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빠르다.
‘우연히 근처에 있었을리는 없고 날 미행하던 거 아냐?’
지은재는 겁이 더럭 났다.
맞서 싸우고 도망가야 하나?
하지만 영사는 지은재의 어머니가 어디 사는지도 잘 알고 있다.
영사에게 거스르면 가족도 무사하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그가 무슨 액션영화의 주인공이라고 이 많은 사람들 상대로 혼자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시현에게 연락했나. 잘했군. 칭찬해주지.”
“네?”
“덕분에 자네를 믿을 거 아닌가? 안그런가?”
영사는 그리 말하고 지은재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김정식이 불러와. 데드맨의 사무실을 두들겨 부숴봤자 정보따위는 있을리 없다. 위대한 분의 손길이 닿아있는 곳에서 소란을 일으키게 할 수는 없지.”
타자기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다. 영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은재는 당황해서 그런 영사에게 물어보았다.
“저, 이사님? 저는....”
“괜찮네. 자네는 계약자 아닌가? 계약자는 소중한 존재야. 한 번 마음이 흔들려서 마가 끼었다고 해서 그 정도로 자네를 탓하거나 벌하지 않겠네.”
“.......”
“그리고 일이 잘되면 사이다패스와도 잘 지내게 해주겠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이다패스를 제거하려는 게 아니야. 그녀도 계약자라 내게는 매우 소중한 존재라네.”
“그, 그럼?”
“자네들 둘 다 소중한 존재지. 뭐 사이다패스를 필요하다면 죽일 수도 있겠지만... 설득할 수 있다면 설득할 걸세. 문제는 사이다패스가 우리를 믿지 않으니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관용을 보여야 할 게 아닌가?”
그러니까 김유라의 외조모를 찾고 있는 것도 어디까지나 사이다패스와의 교섭에서 유리한 위치에서기위해 하는 것이다.
영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좋은 말씀이긴 한데.’
지은재는 영사를 보며 간담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사이다패스를 용서해주겠다, 교섭하겠다는 건 이 상황이 되어서도 아직 사이다패스가 쓸만하면 써먹겠다는 소리로 들렸고 또 지은재 역시 계약자이기에 살려두겠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현과 연락하다 들킨 이상 지은재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