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죽음 이상의 벌 #3
“그래서 이 마약을 훔쳐내서 어쩔건가요?”
“그야 당연히 양천용 의원에게 먹여야지요.”
“....................”
“어.”
류하리와 사이다패스, 둘다 시현이 하는 말에 당황했다.
“딸이 하는 짓에 덮어놓고 보호를 제공하던 사람이 파멸하는 방법으로서는 적당하지 않습니까? 고객님을 파멸시킨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대로 되갚아 준다는 점에서 미학이 느껴지는 군요.”
“아니 미학이 느껴지긴 하는데….”
‘악마인가 이작자는? 그런 걸 미학이니 뭐니 하고 있어?’
류하리는 질려서 사이다패스를 바라보았다.
사이다패스조차 태연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시현에게 질려있었다.
원래라면 그녀는 망치로 양천용과 양지희의 두개골을 부숴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양지희의 앙상한 몸을 보니 마약에 중독되어 파멸하는 것도 죽이는 것과 같은 등급의, 아니 어쩌면 더 나은 복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이다패스아 원수니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 쳐도 이놈은 자기 원수도 아닌데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계획한단 말인가?
“그런데 영화에서는 약을 주사로 투약하던데 먹어도 효과 있어?”
사이다패스는 그렇게 물어보고 아차 싶었다.
자신의 가족도 바로 그렇게 마약을 먹어서 파멸하지 않았던가?
“먹어도 효과 있습니다. 결국 장내 점막을 통해서 흡수되지 않겠습니까? 다만 주사나 비강점막흡입과 달리 흡수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먹어서 흡수할 경우 배드트립이 잘 일어나고 토하면서 토사물로 질식해 죽거나 위산 때문에 식도가 타는 식도염이나 이가 다 썩는 치아우식증에 시달리게 되지요. 양천용 의원은 원래 약을 안하던 사람이니 이정도 약을 투약하게 되면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군요. 토사물이 목에 막혀서 죽을 수도 있겠지요.”
“.....”
“어, 어떻게 먹일 거에요?”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뭐 먹이는 것 자체는 쉽습니다. 다만….”
시현이 그렇게 말할때였다.
탐정사무소의 업무를 보는데 쓰는 공용 전화기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은재의 전화였다.
“네.”
[저, 저기 큰일났어요!]
“큰일이라니요?”
[이사님이랑 그 일당이 김유라 양의 외조모 위치를 찾았다고 애들 긁어모아서 이동중인데요!]
“......”
“뭐?!”
사이다패스가 그 말에 놀랐다.
영사와 그 패거리들이 시현이 만든 아지트를 알아챘단 말인가?
“흠? 어디라고 말하던가요? 위치는?”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네? 그게 저에게는 안가르쳐 주던데요?]
“왜죠?”
[저는 그, 싸울 줄 몰라요.]
“그럼 사람들이 찾았다고 움직이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건… 지금 같이 있던 이들이 그렇게 말하면서 움직이니까요.]
지은재는 당황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현의 말투에서 그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느낀 모양이었다.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같이 계신 분께 안부 부탁드립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이봐! 뭐야? 지금 그 통화는?”
“함정이군요.”
“뭐?”
“저들은 제가 어디에 고객님의 외조모님을 숨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살인예술가를 이용해서 저를 떠보는 겁니다.”
“이봐 할머니 있는 곳에 내 몸도 있어. 알지?”
“네. 알지요.”
“무작정 함정이다. 허풍이다. 그렇게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고. 설령 당신이 정보를 안흘리고 다녔다 해도 상대는 영사잖아. 악마 숭배자로 초능력을 가진 놈이 있을 수 있고? 안그래?”
“후후. 네 알겠습니다. 함정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억측만으로 안심하라는 건 무리겠지요. 아마 영사도 그걸 알고 이렇게 노골적인 함정을 펼친 것 같습니다만.”
“단 1%라도 사실일 가능성이 있으면 어쩔 수 없어!”
“아 이거 참 고구마 패스시군요. 당신은 지금 꿈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지.”
사이다패스는 그리 말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아 잘 안되네.”
“네?”
“이게 꿈에서 하늘 나는 거랑 비슷해서 그렇게 정확하게 잘 되는 건 아냐.”
“그동안 잘했지 않습니까?”
“사람 죽이는 건 신나서 했는데… 내가 불안하니까 오히려 잘 안되네.”
듣고 있던 류하리의 어이가 증발되는 발언이었다.
‘이 범죄자 자식이! 진짜!’
“긴장 푸세요.”
“그렇게 말해도. 그거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거랑 비슷해.”
“하하.”
“나도 알아! 내가 고구마 라는 건!”
사이다패스가 그렇게 외쳤을 때였다.
갑자기 그녀의 몸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맙소사. 깨고 있어!”
“이럴때?”
사이다패스의 본체인 김유라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때 시현의 차량 뒤에 밝은 헤드라이트가 비춰지기 시작했다.
검은 픽업트럭 한대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보통 요새 출시된 픽업트럭이면 속도제한이 걸려있을텐데 이 픽업트럭은 옛날 모델인지 속도제한없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고 있었다.
“저건?!”
“레반테스 호텔 근처에서 매복하고 있었군요.”
“윽!”
“내가 처리해주지!”
사이다패스가 고무망치를 집어들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몸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깼군요.”
시현은 사이다패스가 완전히 잠에서 깼음을 깨닫고 혀를 찼다.
* * *
“으아, 어쩔 거에요? 저거?”
류하리는 뒤에서 덮쳐드는 차량을 보며 당황했다. 시현의 차도 커다란 SUV지만 저 픽업트럭도 크고 앞에 그물철망을 대놔서 위험해보인다.
“아니 범퍼 앞에 저런 거 달아도 되나? 불법개조아냐? 교통과는 뭐했어?! 단속 안하고!”
류하리가 짜증을 내자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걱정마세요.”
시현은 다른 차량들을 이용해 가볍게 피했다.
“영화같은 차량 추격전은 대한민국에선 무립니다. 적어도 저녁 시간의 서울에서는 말이지요.”
퇴근 러시아워 시간은 지났지만 여전히 차가 많다. 새벽시간이나 되어야 차량 추격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상대는 기세좋게 달려들다가 시현이 다른 차량을 방패막이로 피해버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괜히 기세 높여 달려들었다가 눈치채이기만 했다.
차가 옆 차선에서 시현의 차 옆에 붙었지만 그때 시현이 창문을 내리면서 류하리에게 외쳤다.
“시트에 붙으세요!”
“네?”
류하리가 붙는 순간 시현이 차량 컵홀더에 손을 짚더니 휙 휘둘렀다.
-퍼퍼퍼퍽!
옆 차량의 차창이 터지고 운전사가 비명을 질렀다.
“와.”
류하리는 시현이 뭘 했는지 정확하게 보았다.
시현은 컵홀더에 있던 동전을 한웅큼 집어서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동전이 차창을 산산조각내고 관통해 들어가다니.
대체 시현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사이다패스랑 싸울때 분명히 사이다패스보다는 좀 밀리는 인상이었지?’
힘에서는 밀려도 기술 자체는 시현이 훨씬 뛰어나서 사이다패스는 상대가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이다패스는 역시 고구마패스라고 해야 하나.
그녀와 계약한 악마가 능력은 아주 강력한 걸 준것 같은데 정작 그녀 본인이 약해서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 괴롭힘당해서 폐인이 된 여자애가 전투훈련이 되어있길 바라는 게 문제지만.’
시현의 활약덕분에 달려들던 차량은 헛되이 창문만 터지고 물러났다.
* * *
“흠…..”
최형림은 검사의 고된 업무들을 끝마치고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의 사무실 안에는 의자에 앉아있는 두 명의 남녀가 있었다.
미카엘이 붙여준 경호원들은 무표정하게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같아보였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그들이 뭔가를 느끼고 일어났다.
“...이런.”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영사와 지은재가 걸어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최 검사님. 일이 좀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되었다?”
“네. 사이다패스의 몸과 그 외조모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시현은 보안전문가이기도 하지요. 제가 가르쳐 준 대로 아마도 어디 숙박업소에 사람을 숨겨둔 것 같습니다. 현금으로 말이지요.”
시현이 명의를 바꾸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들에 숨긴다면 결국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시현의 소유도 아닌 숙박업소에 현금으로 사람을 숨기면? 추적도 당하지 않고 찾을 방도도 없다.
지은재를 이용해서 캐내려고도 했지만 연기가 어색해서였는지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원칙상 위치를 가르쳐 주진 않는지 시현이 속아넘어가질 않았다.
보안전문가인 이상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제게 왔습니까?”
“네. 수배를 부탁드립니다.”
“흠.”
숙박업소는 사람을 숨기기에 쉽고 안전한 장소지만 검사인 최형림이 직접 손을 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긴급수배를 내리게 되면 숙박업소의 직원들이 직접 수사기관에 연락을 주기 때문에 숙박업소에 숨겼을 때 오히려 쉽게 들키게 된다.
“제가 수배를 내리면 사이다패스와는 영원히 갈라서게 되겠지요. 설득할 수 있습니까?”
“이제는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슬슬 결정하셔야 할 때입니다. 접니까? 사이다패스입니까?”
“.........”
영사는 최형림이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당연히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사이다패스와 영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그냥 데드맨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안되겠습니까? 굳이 수배를 해야 합니까? 수배한 후에는 어떻게 뒷수습을 하실 겁니까?”
고작 평검사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긴급수배할 수는 없다.
아마도 수배한다면 사이다패스 사건에 관여되었다, 그렇게 말해야 할 텐데 그러면 수배가 성공했을때 이 행위를 정당화할 구실이 필요하다.
“그건 제가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유면 어떻습니까?”
영사가 최형림에게 메일을 보냈다.
최형림은 휴대폰을 들어 그 메일을 열어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정신입니까? 이런 짓을 해버리면….”
“최 검사님의 목표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일정에 차질 없도록 하겠습니다.”
“차질이 없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요. 최 검사님도 사실 아시지 않습니까? 양천용 의원이 최검사님을 데려오려는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인기가 없어서 소품으로 가져오는 것이고 그걸로 의회에 입성하더라도 절대로 ‘아버님’을 어찌할 수는 없다는 걸 말입니다.”
“...........”
“류장천 회장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헥사곤의 윤회장님도 동의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 계획을 미리 알렸다고요?”
“예. 다들 동의하셨습니다.”
최형림의 스폰서인 기업인들이 동의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최형림 역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사이다패스를 버리고 영사와 확실히 손잡게 되는데.
사이다패스는 좀 단순해서 최형림이 그녀를 도구로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영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며 오히려 영사가 최형림을 도구로서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알겠습니다. 수배를 하도록 하지요.”
최형림은 결국 영사를 선택하고 말았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