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6화
죽음 이상의 벌 #4
사이다패스 사건의 관련자일지도 모른다고 김유라의 외조모에 대한 수배가 걸렸다.
그 사실은 빠르게 경찰들에게 전파되었다.
“뭐야? 검찰이 한 거야? 어디서 정보를 얻어서?”
사이다패스 전담수사팀에서는 발칵 뒤집어졌다.
자신들의 첩보에 걸리지 않고 검찰 쪽이 따로 정보를 얻어서 긴급수배까지 걸 정도라니?
“어.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성신아는 그리 말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최형림이 수배를 요청했고 그게 일사 천리로 진행되었다.
문제는 이 수배를 신청한 사람이 최형림이라는 것이다.
성신아는 류하리와 최형림이 다투는 것을 보고 최형림이 그동안 겉보기와 달리 뭔가 위험한 야망을 가진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수배를 걸었다는 게 어째 마음에 걸렸다.
“성신아 경위. 최형림 검사는 성 경위가 단독 마크하고 있었잖아? 경찰대학 선배기도 하고. 뭐 언질 없었나?”
“딱히 그런 건 없었는데요.”
“알겠어. 그럼 퇴근하게.”
“아, 아닙니다.”
“뭐야 야근 수당 찍게?”
“…네.”
“그럼 혹시 말해줄 지도 모르니까 최검사에게 물어봐.”
“알겠습니다.”
성신아는 그리 말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걸기 목록을 살펴보았다.
최형림과 류하리에게 통화했던 기록들이 남아있다.
성신아는 손을 위 아래로 옮기다가 류하리를 찍었다.
* * *
“아. 맙소사. 그게 진짜야?”
류하리는 혀를 찼다.
“수배를 걸었다는 데요?”
“아. 그렇군요. 최형림 검사가 움직였군요.”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쪽은 일개 탐정일 뿐인데 상대는 검사에 국회의원도 있고 반건달 재벌도 있고 그러니 참 불공평한 싸움이군요.”
최형림이 공권력을 움직여버리니 기껏 묵혀두었던 수가 바로 위험해졌다.
“여기 경찰이 있잖아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덕분에 수배가 걸렸다는 걸 빨리 알아챘지요.”
“그런데 괜찮아요? 숙박업소에 숨겼잖아요?”
수배자들에 대한 신고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숙박업소 직원들이다.
범죄자를 수배하게 되면 여관, 모텔, 여인숙, 호텔등등에 수배 전단을 보내고 수사협조 공문을 돌리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잡히는 것이다.
“뭐 일반 숙박업소에 숨긴건 아닙니다만 걱정이 되는 군요. 가봅시다.”
“괜찮을까요?”
“아직은 괜찮을 겁니다만 빨리 가야겠지요. 그나저나 의외군요.”
“뭐가요?”
“수배를 하게 되면 최형림 검사도 잃을게 많을텐데요.”
“잃을게 많다니요?”
“평검사인 그가 긴급수배를 건다는 건 그 수배를 할만한 상응하는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사이다패스 관련으로 수배한다면 사이다패스에 대한 뭔가를 확실히 제시해야 하지요. 가장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청원자여서 수배를 걸었다고 하는 게 좋겠지요. 아마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는 청원사이트는 최형림 검사가 직접 만들고 조작하는 걸 테니까요.”
“그렇다면….”
“양천용 의원과 양지희 양의 추문에 대한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겠지요.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더 좋을 겁니다. 양천용 의원은 이미 떡값을 넉넉히 뿌려대고 있고 선후배사이로 얽힌 검찰은 그가 검찰에서 나왔음에도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양지희가 김유라를 학대했고 암습했다는 추문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오히려 덮일 것이다.
어차피 그건 피해자 가족의 주장일 뿐이고 정말 청부폭력이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검찰 측에서 덮으려고 하면 다 덮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급수배를 한다는 건 최형림에게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뭐 당장은 안심이겠네요. 수배에 걸려서 경찰들이 알게 되더라도 참고인 정도지….”
“그런데 문제는 제가 그 외조모님께 약을 드렸다는 겁니다.”
“…네?”
“마약이요.”
“뭐라고요?!”
“김유라 양에게 잘들어서 좀 줬는데… 설마 최형림 검사가 이런 강수를 쓸 줄은 몰랐군요. 빨리 가야 겠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 * *
김유라의 머리는 고문에 의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청부폭력으로 엉망이 된 그녀의 머리는 망치질이 없어도 스스로 계속 번쩍이는 환통을 불러 일으켜 정신을 아득하게 한다.
이제 더이상 폭행은 없는데도 계속 머릿속에서 신경이 고통을 반복해서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환통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며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쇠약해지고 있었다.
어서 빨리 잠들면 좋을텐데…. 아파서 잠들 수가 없다.
하지만….
“어?”
김유라는 아픔이 사라져 있는 걸 깨달았다.
“깨, 깨어났니?”
“아으….”
입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지만 평소 그녀를 괴롭히던 번쩍이는 환통은 사라져 있었다.
“그 사람이 준 약이 먹혔나 보구나. 비명도 안지르고.”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게 들려왔다.
김유라는 쇠약해져 스스로 거동도 못하는 몸을 움직이려 애써보았다.
머리 조차 무거워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잠깐 손가락 움직이는데만도 땀이 날 정도로 힘겹게 움직여야 했다.
아마도 마약을 투약한 모양이었다.
웃기게도 그녀의 원수인 양지희가 쓰는 블렌딩 마약이 김유라에게도 기막히게 잘 듣는다.
양지희에게는 쾌락을 위한 마약이지만 김유라에게는 환통을 제거해주는 진통제로 작용하고 있었다.
기구한 운명이다.
진통이 되어 좀 살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안좋아서 말을 하기 힘들다. 마약 기운이 돌아서 제정신이 아니고 워낙 몸을 쓰지 않아서 전신의 근육이 말라버려 혀 움직일 힘도 없다.
‘으, 어서 다시 사이다패스로....’
김유라는 사이다패스가 다시 깨어나길 바라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하루 진종일 자고 있었으니 자려고 한다고 바로 잠이 올 리가 없다. 게다가 마약을 투약해서 고통이 덜어져서 오히려 잠이 달아났다.
잠도 자지 못하고 그렇다고 외조모에게 경고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덧없이 흐르고 있었다.
* * *
노량진, 동작경찰서 인근의 모텔에서 김유라의 외조모 박순임은 김유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객실의 문이 두들겨졌다.
“실례합니다. 경찰입니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네? 어쩐 일이세요?”
“박순임씨 되시지요? 잠시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었다.
젊은 정장차림의 여성과 그녀의 뒤에 조금 떨어져있는 건장한 체구의 경찰들이 보였다.
아마도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일부러 여성 경찰이 앞서서 그녀와 교섭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요?”
“서울 중앙경찰, 연쇄살인사건 전담반의 성신아 경위입니다. 사이다패스 건에 대해서 수사협력 요청이 와 있어서요.”
젊은 여성 경찰, 성신아 경위는 그리 말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박순임의 상태가 생각보다 멀쩡해보였고 숙소에 자살을 위한 흔적 따위도 없었다.
보통 긴급수배라면 도주할 범죄자라던가 정신이 이상해서 어떻게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사람들, 그게 아니면 역시 정신이 불안정하거나 해서 자살할 지 모르는 사람을 긴급히 보호하기 위해 내거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박순임 여사는 그런 것에 해당되지 않는 듯 했다.
그냥 수사협조 요청은 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거절하면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다.
뭐 보통 경찰이 협조해달라는 데 협조해주지 않는 한국인은 드물지만 말이다.
“무슨 협조 말인가요?”
“혹시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어디 청원 사이트에 청원하셨나요?”
“아뇨. 사이트니 뭐 그런 휴대폰은 잘 몰라서요. 하지만 억울한 일이라면 있네요.”
“어떤 일인가요?”
“…그게.”
“괜찮으시면 저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아뇨. 손녀 딸이 몸이 안좋아서 제가 돌봐야 해요.”
“아….”
성신아는 입맛을 다셨다.
사이다패스 전담수사반은 갑자기 최형림 검사가 긴급수배를 건 이 사람, 박순임이라는 노파에게 관심을 보였다.
검찰이 자신들 몰래 수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다면 그걸 어떻게 중간에서 낚아 채서 성과를 내고 싶다는게 본심이다.
그러니 수사를 하려면 이 노파를 어떻게든 경찰서로 데려가야 하는데.
영장이 없다.
수사 협력을 부탁하면 보통은 들어주지만 돌봐야 할 환자가 있다는 데 데려갈 명분이 없다.
할수없이 성신아는 다른 경찰들에게 손짓했다.
“의자 좀 가져와 주세요.”
“네?”
“저 그렇다면 안에서 잠시 대화를 좀 나눠도 될까요?”
“그거야….”
박순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그녀에게는 김유라에게 쓴 마약이 아직 남아있다. 만약 몸수색 같은 걸 당해서 이게 걸리기라도 하면 그냥 끝장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지나치게 튕기고 밀어내면 경찰이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형사의 감이라는 걸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쪽이 너무 거북하게 밀어낸다면 경찰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밀고 들어올 것이다.
“네 아, 알겠어요. 들어오세요. 하지만 손녀가 몸이 안좋아서 빨리 조사하고 가주셔야 해요.”
박순임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안에 들어오게 했다.
“우선 어떤 억울한 일을 겪으셨나요?”
“그게… 여기 정리되어 있어요.”
박순임은 클리어 파일을 건넸다. 시현이 미리 만들어둔 사건 개요문이었다.
“아. 이건….”
성신아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아니 뭐 할머니가 중언부언 하는거 들어주는 것보다는 이게 낫긴 한데. 뭐지? 왜이렇게 대비가 잘되어 있어?’
성신아는 속독으로 빠르게 서류를 읽어보고 혀를 찼다.
‘양지희면 양천용 의원 딸이잖아? 그러면 이건….’
왜 검찰에서 갑자기 긴급수배를 때렸는지 알겠다.
검찰은 언제나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관료사회의 정점으로 부와 권력을 이미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다만 단 하나, 선출직인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정당한 선출권력 마저 장악하는 걸 언제나 꿈 꿔왔다.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마지막 한조각마저 더 가지기 위해 몸부림칠때, 그 몸부림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는게 바로 슈퍼 엘리트, 양천용 의원이었다.
양천용 의원이 저 자리 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다른 검찰들과 달리 여색이나 유흥에 심취하지 않아 자기관리가 잘되었다는 점인데… 그런 양천용 의원의 일신상에 흠집이 될 수 있는 일이 생긴다면 당연히 긴급수배라도 때릴 수밖에….
‘그럼 이 노파가… 위험한 거 아냐?’
성신아는 그런 생각을 하고 흠칫 놀랐다.
‘내가 미쳤나? 그러면 또 뭘 어쩌자고?’
최형림이 그녀에게 선배라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기실 그는 검사다.
성신아처럼 그저 월급 받아서 빚 갚고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하는 소시민 입장에서는 이 사건은 발을 들이밀어선 안될 일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최형림이 물었던 게 생각난다.
성신아 당신은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냐고.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왜 최형림이 그 말을 물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최형림은 손을 더럽히면서 부귀영화를 추구할 것인지 물어본 것이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