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47화 (247/269)

제247화

죽음 이상의 벌 #5

손을 더럽히고 적당히 부패하면 그 반대급부로 이득을 주겠다.

‘아. 맙소사.’

성신아는 자신이 처한 일의 무게를 깨닫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럼 지금 누워있는 저 여성분이… 외손녀 분이겠군요. 김유라씨.”

“네.”

“알겠습니다.”

성신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한다?

일단 최형림에게 연락을 해볼까? 만약 이 사람들을 최형림에게 팔아넘기면 최형림은 대체 뭘 줄 거지?

돈?

권력?

아니면 사랑?

성신아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만약 넘기지 않고 빼돌린다면?

그때는 보복당하게 되나?

그건 또 싫은데… 두렵다. 무탈하게 공무원 생활하고 싶었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되었지?

그런데 그때 그녀의 전화기가 울렸다.

최형림으로부터의 전화였다.

* * *

성신아는 잠시 주위사람들로부터 양해를 구하고 좀 멀찍이 이동했다.

“…네 선배님?”

[혹시 지금 노량진에 나가있습니까?]

“맞아요. 잘 아시는 군요.”

[경찰 측에서 따로 전담 수사반을 꾸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희측의 정보를 가로채려는 속셈인가 보군요.]

검찰 입장에서는 화를 낼 법한 일이지만 최형림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단지 공로를 다투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그게 말이죠.”

[성신아 경위. 저는 당신을 매우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젊고 유능하고 인물도 빼어나지요. 장래가 촉망되며 동시에 몸이 힘든 현장직을 자원해서 나올 정도로 책임감도 강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충고하는 거에요. 경찰의 사이다패스 전담수사반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겁니다.]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요?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시죠?”

성신아는 의아해했다.

사이다패스의 정체는 현재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최형림은 도저히 경찰들로서는 잡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문에 대해서 최형림은 속시원하게 답해주지 않았따.

[커리어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충성하는 것보다는 다른 끈을 잡는게 나을 겁니다. 뭐 여성 경찰로서 현장직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도 성신아 경위의 커리어는 보장되어있다고 봅니다만…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한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

경찰 쪽 상사들에게 충성해서 잡아가지 마라.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신아는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만약 제가 선배님에게 충성한다면 뭘 해줄 수 있나요?”

[…전화로 이야기할만한 건 아니군요. 괜찮다면 약속을 잡겠습니까?]

최형림은 전화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겠다고 뺐다.

언제 통화내역이 녹음될지 모르니 말이다.

‘절대로 책잡힐 짓은 안하겠다 이거로군. 하긴 그게 상식이지.’

성신아는 망설였다.

‘나는 부정부패를 할 거야.’

어린 시절 그런 꿈을 품고 자라는 아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성신아가 경찰에 들어설 때도 그러했다.

그녀는 부정부패 따위는 저지를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부정부패를 벌이는 이들을 혐오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멀쩡해보이는 직장동료들이, 친구들이, 그리고 자신을 언제든지 파멸시킬 수 있는 상사들이 부정한 일에 손을 댄다.

그리고 그들만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건 아니다.

세상 곳곳이 썩어들어있고 이 안에서 혼자 독야청정하면 바로 눈에 뜨일 것이다.

튀어나온 못이 정을 맞듯 홀로 고결하다면 순식간에 조직에서 방출당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형림은 오히려 성신아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것이었다.

그냥 짓밟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미리 경고해주고 회유도 해온다. 이건 보통 호의가 아니다.

만약 최형림이 내미는 손을 잡으면 최형림과 그 뒤에 있는 세력이 그녀를 돌봐주어 앞으로 그녀의 앞길이 환히 밝혀지겠지.

손을 잡지 않으면?

아무런 배경도 없는 성신아가 버틸 수 있을까?

경찰 대학에 들어와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녀지만 부정부패를 고발하면 경찰에서 방출당할 것이고, 내부 고발자라는 딱지를 달고 재취직을 하려고 하면 어디서도 받아들여주지 않을것이다.

이 사회가 전방위로 썩어있기 때문에, 아니 인간성이란 그 자체로 부패를 내정하고 있기에 관리가 까다로운 내부고발자는 그 어느 조직에서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실직상태를 버티기엔 돈이 없다.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다.

성신아가 무슨 정의의 화신, 불타는 사명감으로 목숨조차 초개처럼 버리는 영웅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회초년생에 불과하다.

‘어쩔 수가 없나?’

성신아가 그렇게 망설일 그때였다.

* * *

갑자기 성신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형림과 통화 도중 다른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놀랍게도 시현의 전화였다.

“아, 자, 잠시만요. 다른데서 전화가 와서.”

[성신아 경위? 지금 상황에서 다른 전화를 받을 여유가 있습니까?]

최형림이 어이없어했지만 성신아는 최형림의 전화를 끊고 시현의 전화를 받았다.

과연 이 탐정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성신아의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아마 지금쯤 회유가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시현은 전화기 너머로 대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에요? 당신은? 혹시 점집 차리셨나?”

[알다시피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탐정이지요. 성신아 경위님. 단도 직입적으로 말씀드리지요.]

“네?”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예?”

뭐지 이건?

갑자기 프로포즈?

성신아가 당황하는 사이 시현이 말을 이어나갔다.

[누가 회유하더라도 회유되지 말고 양심대로 사십시오. 그럼 만약 경찰에서 잘리더라도 제가 조수로 고용해드리죠. 탐정 업무니까 초과근무 수당이나 야간 수당을 책정하기 힘들고 포괄임금제로 해야 겠지만 급료는 초봉 연 6천에 +성과급으로 시작하지요.]

“..........”

성신아는 갑자기 제안을 던져오는 시현의 말에 당황했다.

[상대가 뭘 제안했 건 그보다는 싸겠지만 대신 양심도 지키고 생활도 지킬 수 있는 적당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무슨 탐정질에 초봉을 6천을 줘요? 그것부터 이미 수상한 뒷거래 아닌가요?”

[4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의 업계 최고, 1등 탐정사무소는 직원에게 그 정도 줄 수 있습니다.]

“4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 어디서 조사한 거에요? 그거?”

[자체조사입니다.]

“.........”

허풍이잖아. 그럼. 성신아는 황당해했지만… 어쨌건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시현이 말하는 바는 만약 권력에 맞서다 잘리게 되면 자기랑 같이 일하자. 보수는 이만큼 챙겨줄테니까 양심대로 살아라.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혹시 내 몸에 뭐 도청기라도 박아뒀어요?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보아하니 정확한 타이밍에 연락한 것 같군요.]

“알겠어요. 생각해보죠. 만약에 제가 잘못되면 정말 채용해줘야 해요.”

성신아는 그리 말하고 시현의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마자 다시 최형림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래도 양쪽 모두 일촉즉발의 상황인 것 같았다.

최형림은 틀림없이 이 나라 전체를 움직이는 어떤 거대한 권력자들과 엮여있을 것이고 그가 내미는 손을 잡지 않으면 앞으로 경찰생활은 물론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반면 시현이 제시한 조건은, 급료 자체는 만족스러운 선이지만 포괄임금제라는 거, 아니 지금은 포괄임금제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과연 안전하냐가 중요하다.

안전하진 못하겠지. 일개 탐정이 무슨 재주가 있어서 검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쪽의 안전을 보장한단 말인가?

그러나 성신아는 시현의 말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네 선배님.”

성신아는 발랄한 목소리로 최형림의 전화를 받았다.

[...누구 전화였습니까?]

“절 책임져주겠다는 사람이요.”

[네?]

“이야. 생각해봤는데 저도 꽤 인기가 있더라고요.”

[흠. 그쪽의 제안을 수락하시려고요?]

“그건 아니고요. 음. 일단 가만히 있도록 하지요.”

[가만히 있겠다?]

그건 결국 최형림 입장에서는 답을 뒤로 미루어두겠다. 즉 지금 단계에서 큰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적으로 두고 싶지도 않다는 소리였다.

[그런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높으신 분들 입장에선 고작 사회초년생인 제가 감히 밍기적거리는 게 마음에 안들겠지만 그건 사이에서 최형림 선배님이 어떻게 잘 말해주세요.”

[...하. 하하.]

최형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성신아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면 그걸 증명해보여라. 성신아는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제가 어장관리를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군요. 알겠습니다.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도 아니라면 뭐 상관없습니다.]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성신아는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 * *

“자 그럼 검찰 수사관에겐 알리지 말도록 하죠.”

성신아는 현장에 나온 경찰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 성 경위님….”

“아 노골적으로 알리지 말자는 게 아니라 딜레이를 좀 주자는 거죠. 여기 환자도 있는데. 잠시 준비할 시간을 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성신아는 그리 말하고 윙크했다.

수배는 검찰에서 걸었지만 찾는 건 경찰, 그런데 이게 사이다패스 사건의 중요한 인물이며 법적으로는 수사에 강제로 협력시킬 방도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을 수배한 걸 보면 검찰 쪽에서는 어떻게든 이 위치를 알고 싶어할테니….검찰 수사관들에게 알리는 걸 약간 지연시키는 걸로 경찰들로서는 검찰의 수사에 훼방을 놓을 수 있다.

‘사이다패스 전담 수사반의 경찰 선배들이 좋아하겠군. 음 이걸로 최형림 선배가 날 너무 미워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성신아는 무시무시한 권력자들과 밑바닥을 알수 없는 기이한 탐정 사이에 줄타기를 하기로 선택했다.

* * *

시현과 류하리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성신아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검찰 수사관은 당도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설득이 효과적이었군요.”

류하리는 시현을 흘겨보며 그렇게 말했다.

“왜요?”

“아니 성신아가 마음에 들었나 보군요. 책임 져 주겠다니.”

“제가 그렇게 책임져주니까 제 협력자들이 기꺼이 손을 빌려주는 겁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던데요? 당장 그 기자만 봐도 얼굴이 벌레씹은 표정이 되던데?”

“그야. 사람의 수명을 읽고 거래하는 자를 껄끄러워 하지 않으면 그것도 좀 센스가 뒤틀린 사람이지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꺼려하지 않겠습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김유라와 그 외조모, 박순임을 만났다.

“잠깐… 당신은 뭐야?”

성신아는 시현이 그들을 만나는 걸 방치했지만 성신아와 같이 온 동작 경찰서의 경찰들이 반발했다.

그러자 시현이 품을 뒤져 두툼한 지갑을 꺼냈다.

‘뭐지?’

‘미쳤나?’

경찰들은 설마 지금 이자리에서 자신들에게 뇌물을 주려고 그러나 싶어서 당황했다.

하지만 시현은 두툼한 지갑에서 자격증을 꺼냈다.

“보시다시피, 간병인입니다.”

“간병인?”

“요양보호사라고?”

그들은 시현이 내민 자격증을 보고 당황했다.

성신아와 류하리도 덩달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뭔가 문제라도?”

시현은 뻔뻔스럽게 경찰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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