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49화 (249/269)

제249화

죽음 이상의 벌 #7

“제가 트릭을 생각하거나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군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존재 그 자체 만으로도 훌륭한 도움이 됩니다. 훌륭한 계약자라니까요.”

“…….”

영사는 지은재를 칭찬했지만 지은재로서는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영사는 지은재가 자신에게 내심 반기를 들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기 때문일까. 그냥 내버려둘 뿐만 아니라 이렇게 칭찬까지 한다.

그 칭찬이 오히려 지은재를 무가치하게 느껴지게 했다.

‘네가 무얼 생각하건 무엇을 행하건 네게 가치있는 건 너의 계약 뿐이다.’

계약자이기 때문에 너는 어떤 행동을 해도 용서받고 괜찮다고 칭찬해준다면 인간 지은재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심지어 적대행위를 하는 것 조차 무시할 정도라니… 적으로서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다.

“저기 있습니다!”

김정식이라 불리는 요양보호사로 잠입했던 조직원이 전방을 가리킨다.

빗줄기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비로 환자복 차림의 여성을 덮고 폭우 속에서 이동하는 이들이 있었다.

“흠. 총격전이 일어나고 있으니까 눈먼 총탄에 맞아도 이상할 게 없지요. 암염 펠릿은 그렇게 강한 위력은 아니지만… 쇠약한 사이다패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치명상이 될 겁니다. 자 여기.”

영사는 지은제에게 장전된 공기총을 건네주었다.

“암염 펠릿을 쏘는 게 딱히 나쁜 트릭은 아닙니다. 이런 공기총엔 라이플링이 남지 않아서 누가 쐈는지 모르거든요.”

일반 총기라면 라이플링이 남아서 누가 쏜 것인지 식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다들 공기총을 쏴댈때 사람을 쏘면 누구의 총탄으로 죽었는지 알 방법이 없다.

하물며 그게 암염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총을 쏠 줄은 알겠지요?”

영사는 지은재에게 직접 방아쇠를 당길 것을 요구했다.

“제, 제가요?”

“네 빨리 쏘세요. 데드맨은 사람의 수명이 변하는 것으로 살의를 읽을 수 있으니 당신이 쏴야 합니다.”

영사는 지은재의 마음조차 이용하려고 했다.

만약 영사가 직접 총을 들어 김유라를 겨눈다면 김유라의 수명은 그 즉시 줄어들어 시현에게 들통날 것이다.

하지만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총을 겨눠야 하는 지은재에게 시킨다면? 총을 쏠지 말지 망설이는 것만으로도 시현의 눈을 현혹시킬 수 있으리라.

“윽.”

“어서 쏘십시요. 지은재. 그 총은 유효사거리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지금 쏘지 않으면….”

“네. 지, 지금 말이지요.”

지은재는 심호흡을 하고 총을 김유라에게 겨누었다.

가로등 불빛이 빗물에 번지는 데 투명한 비닐우비에 덮여 앙상한 몸을 드러낸 여자애가 덜렁거리며 실려간다. 마치 번져버린 수채화같은그 풍경에 지은재는 무심코 총구를 돌렸다.

-펑!

영사에게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하지만 영사는 손으로 공기총의 총구를 덮어 막고 있었다.

총탄은 그의 손등을 뚫고 튀어나왔지만 그러면서 암염 펠릿이 산산이 깨져 그후에는 자잘한 생채기만을 남겼다.

영사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자신의 피를 혀로 쓱 핥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이런… 이래서 참 젊은이 가르치기가 힘들단 말야. 세대차이인가.”

“아….”

“괜찮네. 아직 안에 압축공기가 남아있고 총탄도 남아있으니까 이번엔 제대로 겨눠서 쏘게.”

“아, 안해. 난 내손으로 살인은….”

“살인예술가랍시고 가벼운 마음으로 남들에게 살인을 부추겨놓고서? 제 손은 못 더럽히겠다 이 뜻인가?”

그 순간 지은재는 뭔가 뜨거운 것이 자신의 등을 관통하는 걸 느꼈다.

그와 함께 김유라와 그 외조모의 행방을 쫓던 조직원, 김정식이 어느새 그의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이었다.

“크억…?”

“아. 이런. 누가 이런 짓을 하라고 했나?”

정작 영사는 칼을 찌른 이를 비난하고 있었다.

“영사님께 총을 겨눴습니다.”

“괜찮다니까.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쯧. 아직 더 내버려둘 생각이었는데. 네놈이 멋대로 감히 계약자에게 손을 대다니.”

영사는 쓴웃음을 짓고 구멍난 손을 손수건으로 덮었다.

“뭐 이렇게 되었으니. 그동안 수고 많았네.”

영사가 그리 말하자 김정식은 지은재의 등짝을 찔렀던 칼을 뽑아 목을 쓱 그어버리고 물탱크 아래 거리를 향해 던져버렸다.

-텅!

빗줄기 속에 서있는 차량 지붕으로 떨어진 지은재가 다시 튕겨올라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틀렸군. 뭐 이정도로 해두기로 하고 빠질까?”

영사는 그리 말하고 김정식과 함께 자리를 피했다.

* * *

동작경찰서 인근에서 공기총을 쏴대던 폭도들은 전부 체포되었다.

사이다패스가 그들을 제압하긴 했지만 비가 많이 와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현장에 있던 경찰들은 누군가가 폭도들을 무력으로 먼저 제압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사이다패스 건 때문에 경찰들의 무능에 대해서 잔소리가 많은데 공기총이 무서워서 다들 빌빌거리고 있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동작경찰서의 경찰들은 그런 자신들의 상황에 한탄했다.

“아니 뭐 하지만 우리도 월급쟁이인데 총탄이 날뛰는 데 대가리를 들이 밀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음 확실히 경찰도 인간인데 총질이 무서워서 벌벌떠는 건 이해하지. 하지만 소방관은 불타도 뛰어들어가는데. 평소에 소방관 보면 오체투지하고 기어다녀라. 응?”

“이새끼가 넌 경찰 아닌 것 처럼 말하네.”

“아니 나는 총탄이 빗발쳐도 내 일 할 것 같거든.”

“코로 알사탕 싸먹는 소리 하지 말고…. 너 이새끼 내근직이잖아.”

동작경찰서의 경찰들은 그리 말하고 심문을 했다.

공기총으로 무장한 이들은 다들 탐정 시현이라는 놈에게 가정이 파탄나서 원한 때문에 왔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살인예술가라는 자가 그들에게 접근해 총기를 주고 살인을 해도 될 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도 암염탄으로 사람을 쏴죽이면 증거가 없어진다는 트릭에 대해서는 난감해했다.

“아마 취해서 곧이곧대로 들은 것 같습니다.”

“총을 쏠 때는 취해있지 않았는데요?”

“그게,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

그러니까 술김에 응했는데 말한 거 주워담기 싫어서 폭동에 나섰다는 이야기 아닌가?

이건 뭐 사람을 단체로 세뇌한게 아닐까 의심되는 발언이었다.

“시현 탐정사무소면 그놈이지?”

“우리 경찰들 우습게 만든 놈.”

“잘되었네. 이자식 불러서 조사하면서 일 못하게 계속 괴롭히면…..”

경찰들은 이번 기회에 시현의 버릇을 고쳐줄 생각에 들떠있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시현이 무고한 피해자의 입장이라는 건 잘 알지만 그건 상관없다.

경찰 조사는 그 자체로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다.

시간이 곧 돈인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월급쟁이가 아닌 자영업자에게 경찰에 와서 조사받으라는 건 그 자체로 경제적 타격이고 고문이다.

경찰들은 이 기회에 시현을 옭아매어 어떻게든 타격을 주고 꼬투리를 잡아 그를 집어넣으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시현 씨의 변호사인 박원일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전직 서울 고법 판사인 박원일 변호사가 시현의 변호사로 나선 것이다.

일개 탐정이 자기가 가해자도 아니라 피해자인 사건에 변호사를 내보내다니.

그것도 이렇게 비싼 변호사를 산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 * *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류 경위?”

마포경찰서 서장 장하원 총경은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당황스러워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 그리고 그 목표가 평소 자기네 서에서 담당하고 있던 탐정, 시현이라는 점 때문에 그는 경찰들 사이에서 많이 질문을 받고 있는 듯 했다.

‘그놈은 관리대상 아닌가?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런 사건이 벌어졌나?’

‘그 탐정 놈 그거 문제있는 거 아니냐? 아무리 봐도 뒤가 구린 냄새가 풀풀 나는데? 보통 사람이 그렇게까지 폭도들의 표적이 되진 않을 거 아니냐?’

‘어째 이놈은 경찰들이 비난받을만한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보이는 것 같은데?’

시현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이지만 경찰들 입장에서 보면 고작해야 혼자서 운영하는 탐정사무소 하나가 이 많은 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은 류하리에게는 오히려 아주 좋은 전개였다.

“말했지 않습니까? 그 탐정이… 사업체등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요. 재산이 상당합니다.”

류하리는 그렇게 보고했다.

“탈세는? 탈세는 하고 있겠지?”

“마포구 세무서 올해의 우수 납세자던데요.”

“젠장. 웃기는 녀석이군.”

“어쨌건 변호사 비는 많이 쓰게 했으니까 꽤 괜찮지 않겠어요? 게다가 저는 내근직으로 돌리신다면서요?”

이제 시현이 무슨 짓을 하건 내 알바 아니다.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장하원 총경이 당황스러워했다.

원래 장하원 총경을 존경하고 무서워 하던 류하리였다.

사회초년생의 어수룩한 느낌, 그리고 임관 초기 몸 상태를 이유로 한 달이나 휴직을 했던 원죄 때문에 주눅들어 있던 류하리였다.

그러나 지금의 류하리는 당당하고 당돌했다.

“음. 그게 말이지.”

“그러나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후임자를 꽂아놓을 동안은 제가 그 탐정을 계속 전담하지요. 그는 저를 믿고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제 후임자는 가능하면 여경이면 좋겠는데요. 아니 여경이어야 할 거에요.”

“뭐? 왜인가?”

“그 사람이 절 조수로 받아들인건 그 뭐냐. 좀 호색한에 인간 쓰레기라서 그런 거거든요. 남자 경찰은 받지 않을 거에요.”

“.......”

그말인 즉 여경보고 잠입수사를 하라는 건데 그런 잠입같은 걸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느와르 영화등에서 종종 폭력조직에 잠입수사하는 경찰들이 나오지만 경찰들 대부분은 월급쟁이 마인드라서 그런 짓 안한다.

대한민국의 폭력 조직이 일소된 이후 더 이상 그런 짓을 해야 할 만큼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도 컸다.

따지고 보면 류하리가 특수한 경우였다. 별 생각없이 정보를 따내라고 보냈는데 본인이 덜컥 조수로 잠입해버린 것이다.

부모가 펄펄 뛰는 것도 그런 면에서는 이해가 간다. 딸이 느와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잠입수사를 한다니 부모가 직장에 와서 뒤엎더라도 인지상정 아닌가?

문제는 류하리를 빼내면 후임자를 류하리 자리에 대신해 넣을 수가 없다.

위험한 잠입수사를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하물며 여성이어야 한다면 더더욱 후임자를 구하기 힘들다.

“그럼 후임자 없는 동안은 계속 일하겠습니다.”

류하리도 그걸 알기에 '내 후임자 못구하지? 계속한다?' 전략으로 버티기에 나섰다.

* * *

“...으윽.”

지은재는 몸을 비틀었다.

놀랍게도 그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그 자신도 깜짝 놀랐다.

분명히 영사의 부하에게 등이 찔리고 목을 그은 것 같은데?

무심코 상처를 만져보기 위해 손을 움직이던 지은재는 등 전체를 강타하는 통증에 기겁해서 손을 놓았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팔 전체를 움직이는 순간 등근육이 움직여 상처를 자극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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