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50화 (250/269)

제250화

죽음 이상의 벌 #8

그 아픔이 칼에 찔린 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걸 증명해주었다.

그렇다면 그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다는 게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다.

‘여, 여긴?’

놀라서 깨어난 지은재는 자신의 몸 전신이 누덕누덕 기워져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깨어났군요.”

때마침 병실에 들어온 젊은 여경이 지은재가 깨어났다는 걸 확인했다…

“어, 어떻게….”

목을 열자 말하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자 진정하세요. 수혈을 많이 받아서 상태가 안좋을테니까요. 지은재씨 맞으시지요? 저는 서울중앙경찰서의 성신아 경위입니다.”

“네.”

그렇게 대답하자 또 아픔이 밀려온다.

“말하기 어려우면 필담으로도 괜찮아요. 손은 움직이시나요?”

그녀는 펜을 가져와 지은재에게 쥐어주었다.

그리고 경찰 조사가 시작되었다.

경찰들은 공기총 난동사건 인근에서 추락한 지은재를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했고 공기총 난동사건에서 잡힌 이들과 대질해서 지은재가 그들의 한패인지 아닌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공기총 난동사건의 범인들은 지은재를 본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그럼 지은재는 과연 이 난동사건과 관련이 없는 생판 남인지? 아니면 관계자인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조사를 청한 것이었다.

“왜 거기에 계셨지요? 누가 당신을 해쳤는지 알고 있나요?”

[잘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아요.]

경찰이 물어봐도 지은재는 조사에 소극적이었다.

영사와 사이다패스, 그리고 자신까지, 과학수사로 잡아낼 수도 없고 증거도 남기지 않는 이들을 상대할 때 경찰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들에게 영사에 대해서 말해봤자 정신병원에 끌려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아니면 그도 계약자인데 계약과 관련한 것을 일반인들에게 말해버리면 비밀을 엄수하지 못한 죄로 영혼을 징수당해 고통받게 될 지 모른다.

‘하지만 나도 명색이 계약자인데 이런 꼴이라니.’

지은재는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고, 또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흠. 경찰에게 말 못할 뭔가가 있나보군요.”

젊은 여경은 그리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경찰 말고 탐정에게는 이야기 하고 싶은 생각이 드나요?”

“네?!”

필담을 하던 지은재가 참지 못하고 아픈 목으로 소리를 냈다.

그리고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며 병실 침상을 쥐어뜯었다.

“아 이거 걸리면 큰일인데.”

성신아 경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잠시 후, 데드맨이라 불리는 탐정 시현과 그 조수, 류하리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는 건가요? 살인예술가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

“어? 이사람이 살인예술가라고? 하지만….”

성신아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살인예술가라면 공기총 폭도들을 조종한 사이다패스를 흉내내는 모방범이 아닌가?

그런데 그 모방범이 왜 칼에 쑤셔져서 뒷골목에 떨어졌지?

하지만 류하리가 그녀를 병실 밖으로 내보냈다.

“잠깐 나가줄래? 이건 네가 들어서 좋을게 없는 이야기니까.”

“뭐? 왜 그래? 나도 알거 다 아는 사람이야.”

“그래도 안돼.”

계약에 관련된 사항을 알게 되면 좋을게 없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냥 이런 악마니 계약자니 하는 것들과 연관없이 살아가는 게 이득이니까.

류하리는 그래서 억지로 성신아를 내보냈다.

* * *

“자. 계속하세요.”

성신아를 내몬 류하리는 병원 문 쪽에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 그걸 붙인채 문에 섰다.

문 밖에서 귀를 대고 엿들으려고 하던 성신아가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렸다.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자 그럼 우리끼리 이야기 해볼까요? 보아하니 영사에게 당한 모양이로군요.”

“….윽.”

지은재는 말을 못하고 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이 데드맨이지? 왜 당신은 그렇게 불리는 거지?]

“뭐 제가 수명을 거래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이, 죽음보다 더한 형벌 속에서 살아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제입으로 말하자니 좀 부끄럽군요. 뭐 말하자면 계약자라 이겁니다. 당신도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요? 당신도 계약자일테니 말입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계약자라서 데드맨이라고 불리는 건가? 그럼 나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짊어진 계약을 짊어진 이들 모두에게 내려오는 일종의 계약명입니다. 저 이전에 이 계약을 짊어진 자도, 그 전에 짊어진 자도 다 데드맨이라고 불렸지요. 자 그럼 제 명칭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셨지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지요. 당신의 모친을 보호하고 영사에게 보복해드리겠습니다. 대가로 당신의 수명을 1년 정도 접수하지요.”

[1년 정도? 무슨 의미야?]

“당신의 경우 남은 수명이…. 1년 하고 얼마 안됩니다. 원래 제가 의뢰를 받으면 최하 1년, 사건이 어렵거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들에게는 그보다 더 수명을 받아내는 데 당신의 경우는 남은 게 그것 밖에 없습니다.”

[뭐? 내 수명이 그것 밖에 안 남았다고?]

20대 청년인 지은재로서는 자신의 수명이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시현은 냉정하게 말했다.

“아마도 지금 죽다 살아난 것 때문이겠지요. 사실 당신은 살아있는게 이상합니다. 영사의 부하들이 그렇게 어리숙한 놈이 아닌데 당신의 목을 그은 상처는 너무 얕아요. 마치, 누군가가 당신이 아직 살아있기를 바라며 억지로 숨을 이어놓은 것 같군요.”

지은재는 그 말을 듣고 내심 신음했다.

‘뭐야. 그 말은? 그냥 나를 해치려던 놈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지은재의 뇌리에는 그의 목을 서걱 베어버리는 칼날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내가 살아있는게…. 누가 살려둔 거라고?’

지은재는 시현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도 마음에 짚이는 게 있었다.

영사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떠올랐다.

‘훌륭한 계약자니까….’

지은재 자체는 별 가치가 없다. 지은재에게 걸려있는 계약이 더 중요하지.

그렇다면 그 계약을 지키기 위해 지은재를 살려둔 게 아닐까?

“마음에 짚이는 게 있으신가 보군요.”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난 아직 20대인데 살날이 얼마 안남았다니 무슨 헛소리야?]

“뭐 부정하셔도…. 저는 당신에게 1년 반 정도 수명을 요구하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수명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 1년 반 정도는 별로 부담되지 않겠지요?”

그러나 시현이 말하는 태도로 보니 1년 반의 수명을 지불하면 지은재는 죽는다.

즉 지은재의 수명은 1년 반 이하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게 내 남은 수명 전부라고?]

“네. 계약자인 당신은 그대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접수당하게 되지요. 하지만 제가 수명을 접수해서 자연사로 죽게 하면 당신의 영혼은 적어도 악마에게 넘겨지지 않게 됩니다. 나쁘지 않은 계약일텐데요. 설마 당신에게 주어진 그 능력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어진 거라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사이다패스도?]

중의적인 질문이었다.

사이다패스도 너와 이런 계약을 맺었느냐?

아니면 사이다패스도 악마에게 힘을 얻었으니 그녀가 죽게 되면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겨 고통받게 되는가?

“그녀도 동의했습니다. 뭐 그녀의 경우는 남은 수명이 정말 얼마 없어서 이건 파격적인 혜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녀를 봐서 알고 있지요? 그녀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

지은재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지은재에게 1년 반도 안남았다고 뭐라고 하면서 사이다패스는 그것보다도 더 짧게 남았단 말인가?

문득 앙상하게 메마른 김유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발랄한 미녀인 사이다패스의 모습과 죽음의 문턱에서 신음하고 있는 김유라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보상받을 길 없는 약자의 분노였다.

[그녀가 잘되었으면 좋겠어.]

무심코 지은재는 그렇게 글을 썼다.

추상적인 말이다.

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어떻게 해서 어떻게 결판나는 게 그녀가 ‘잘 되는’ 거란 말인가?

그러나 지은재는 그저 사이다패스가, 김유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정도만 해도 파격적인 혜택입니다.”

시현은 딱 잘라 말했다.

“그녀는 누가 뭐라고 했건 자신의 손으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악마와 계약했다는 건 논외로 두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의 신앙들,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시아파, 수니파, 그 어떤 종교에서도 그녀는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건……]

“물론 그녀 자체가 일종의 꿈이니 완벽한 심신상실의 상태, 법적으로는 무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 뭐 죽음 정도로 타협합시다. 죽음보다 더한 벌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죽음으로 과거의 은원을 씻어내고 오직 가여운 한 영혼으로서 고통에서 해방되길 바라자고요.”

사이다패스의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

김유라가 고통받은 피해자이고 그녀의 가해자가 사악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이다패스가 사람들을 마음대로 죽여댄 것을 합리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공평하다.

죽음으로 은원을 씻어낸다면 김유라라는 소녀와 그녀가 겪었던 가혹한 운명을 동정해줄 수 있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상 그게 살인자인 사이다패스에 대한 최대한의 자비일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이 자식, 뻔뻔하군.’

지은재는 시현의 태도에서 거부감을 느꼈다.

그도 계약자이기 때문에 사이다패스에 대해서는 더 동정적일 수밖에 없다.

왜 사이다패스가 법을 넘어서서 무력을 휘둘러야 했는가?

법이 제대로 약자들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자들은 멋대로 법을 뛰어넘고 판검사들은 부와 영화를 위해 그들의 편에 서있는데 약자들이 가진 건 오직 피륙으로 이뤄진 두 주먹 뿐.

이걸 휘둘러 울분에 호소하면 범법자라고 경멸받을 뿐 아닌가?

“목숨을, 수명을 빼앗아가면서 법을 어겼다고 그녀를 비난해?!”

지은재는 목의 아픔을 참고 소리를 쳤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목숨을 내놓으라고?”

“네.”

“개 자식…. 으욱…….”

지은재는 화가 났다.

“냉정하게…. 네가 뭘 알아!? 힘없이 저들이 유린하는 대로 짓밟혀서 법대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어서 살인자가 되어야만 저들에게 갚아줄 수 있는 처지가 되어본 적이 있어?”

지은재의 한탄에 시현이 쓴 웃음을 지었다.

“말했지요.”

시현이 다가와 지은재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저는 이미 죽음보다 더한 형벌을 받고 있다고.”

“……….”

칼침을 맞고 바로 깨어난 환자에게 너무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시현의 눈빛이 진지해서 그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저는 당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라고 당신이나 그녀를 동정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냉정해지세요. 지금 이순간에도 당신의 모친이 위험합니다.”

시현은 갑자기 지은재의 어머니를 언급하며 머리를 놓아주었다.

지은재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쳤다.

“날 바보로 보냐? 아니 뭐, 바보 맞지만 그 정도까지는….”

“…….”

시현이 웃어야 할지 참아야 할지 몰라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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