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1화
죽음 이상의 벌 #9
“거짓말. 날 현혹시키지 마. 영사는 날 벌레같이 본다고. 나 따위 잡으려고 내 어머니까지 손댈까?”
그 순간 시현이 놀라워했다.
“정말 모르시나 보군요.”
“뭐를?”
“당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건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지 아십니까?”
“어? 뭐? 무슨 소리야?”
갑자기 시현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해서 지은재는 깜짝 놀랐다.
“대양 개발 살인사건을 아십니까?”
모를 리가 없다. 왜냐면 그 살인사건이 바로 지은재의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니까.
“세간에 의하면 대양 개발 살인사건은 대금을 체납당한 중장비 기사, 그러니까 당신의 부친이 분노해서 상대를 몰살한 그런 사건으로 알려져 있지요. 정확히는 급료를 체납당해서 회사에 직접 침입해 강도질을 하려고 하다가 들켜서 오너 일가족을 살해했다. 맞지요?”
“그, 그게……….”
지은재는 말꼬리를 흐렸다.
살인자인 아버지 때문에 평생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살아온 그였다.
여기서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오다니 저절로 어깨가 위축되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다릅니다. 당시 대양 개발은 환경오염 문제로 골재 채취 면허가 신규 발행되지 않는 때에 마지막으로 강원도 홍천강 유역에서 골재를 채취할 면허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당시는 아파트 건설 붐이 일고 마침 몇몇 건물들이 바다 모래를 쓰다 부실공사로 적발된 상태여서 골재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 때였습니다.”
“……….”
“한강건재사는 그 면허를 탐내서 아예 대양 개발을 인수하려고 했지만 교섭 과정에서 금액이 맞지 않아서 인수합병이 불발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아버지가 대양 개발의 오너 일가족을 참살한 후에 대양 개발은 오너일가의 조카에게 상속되었고 처음 교섭가격에 비하면 굉장히 헐값으로 한강건재에게 인수되었지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한강 건재라면…….”
“……….”
한강건재의 이름이 나오자 지금까지 듣고 있던 류하리가 흠칫 놀랐다.
그러나 시현은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당시에도 한강건재의 이사였던 영사는 이런 식의 일처리를 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은재씨, 당신도 그의 곁에 있어보았으니 잘 알겠지요?”
“마, 말도 안돼. 그렇다는 건…….”
지은재는 시현이 하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시현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럼 그의 아버지가 살인에 나선 것은 영사가 시킨 일이었다고?
그의 집안을 말아먹고, 그가 마을에서 살인자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며 살아가는 게
그런데 그 배후에… 바로 영사가 있었단 말인가?
“재미있는 일 아닙니까? 남에게 살인을 교사하는 능력이 하필 당신에게 주어졌다는 게? 뭐 악마들이 그런 걸 좋아하긴 하지요. 그게 그들의 미학이니까요.”
지은재의 아버지는 모종의 이유로 영사에게 살인을 강요당해 범죄자가 되었다.
그런데 지은재가 바로 그, 살인을 남에게 강요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고 뭐겠는가?
이런 아이러니는 악마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시현이 하는 말은 현재로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지만 지은재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신이 계약의 능력을 가진 채 살아있는 걸 반길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영사를 증오할 이유가 있으니까요.”
“잠깐만요.”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하리가 놀라서 시현을 불렀다.
* * *
“그 이야기가 사실이에요?”
“…………….”
한강건재는 바로 류하리의 아버지 류장천 회장의 회사다.
뭐 건설업 관련 회사고 2010년대 이전의 건설업이라는 건 싫어도 위법과 합법의 줄타기를 해야 했다는 게 세간의 이야기지만 류하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그렇게까지는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말을 들어보니……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영사의 공식적인 직책은 한강건재 영업이사.
하지만 본사 외에 오피스를 두고 그곳에서 건달, 깡패, 살인청부업자등을 고용하고 있다.
물론 선량한 기업인에게 닳고 닳은 계약자, 아니 전직 계약자가 초능력을 이용해 엉겨붙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영사는 받아가는 돈 이상으로 류장천 회장에게 벌어다 주고 있으며, 류하리가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낸 것도, 지금도 경찰 월급따위는 용돈으로 여겨지는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도 다 그러한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류하리는 경찰대학에 들어가서 경찰대학 수석 졸업생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스스로의 눈과 귀를 속이고 살아왔다는 게 역겹기까지 하다.
류하리는 자신이 역겨워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잠깐만 눈돌려 자신의 집안을 유심히 보았다면 모를리가 없다. 자신의 부모가, 아버지가 저지르는 위법행위들을…….
그런데 그녀는 그것에 눈돌리고 올바른 경찰이 되고 싶다고 까불고 있었으니 우물안 개구리도 이런 개구리가 없다.
“뭐 좋습니다. 자책은 나중에 하시고 지금은 지은재씨와 계속 상담을 해보도록 하지요.”
시현은 류하리가 자책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은재를 설득해야 하는데 괜히 여기서 자신이 한강건재 회장의 딸이라고 밝혀서 사건 꼬이게 할 필요가 없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야?”
지은재가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왜냐면 제가 바로 영사의 제자이기 때문이지요. 전투훈련, 조사, 미행, 사격, 함정, 사기, 모략, 그 모든 것을 저는 그에게서 배웠으니까요.”
“당신이 영사의 제자라고?”
“네. 한때는 그랬지요.”
“…알겠어. 믿지.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내 가족이 위험하다는 것, 다 믿겠어.”
지은재도 이제 시현이 하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 수명을 다 거둬가지 말고 일부는 사이다패스에게 줄 수 있어?”
“…네?”
“그게 아니면 잠깐이라도 좋아. 우선 내 수명을 거둬가고 사이다패스에게는 좀 징수를 약간 미룬다던가…. 복수를 하고 난 뒤에 말야.”
“흠. 무슨뜻이신지?”
“사실 나는 원한이 있긴 한데, 사이다패스처럼 그렇게 모질게 두들겨 맞은 건 아니니까, 영사가 내 아버지를 조작해서 날 해쳤다고는 해도 정말 날 해치고 날 화나게 한건 나를 핍박한 마을 사람들이야. 영사에게도 화가 나는 건 사실이고 날 기만했다는 것도 알겠지만…….”
“진심으로 그에게 화낼 수는 없습니까?”
“뭐 당신에게 듣기만 한 거니까.”
“칼에 찔려서 떨어졌잖아요?”
“그건 그 옆에 있는 다른 놈이 한 거야.”
“흐음. 참 속도 편하시군요.”
“응?”
“아니 아닙니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해드릴 수있지요. 그래서 왜입니까?”
“…아무래도 그녀는 복수한 뒤에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더 오래 지켜보고 싶을 것 같아서. 원수가 파멸하는 모습은 자기 눈으로 봐야 할 거 아냐?”
“단지 그것 때문에요?”
“그런 것도 있고 당신이 너무 그녀를 뭐라고 하니까.”
“?”
“나는 그녀가 왜 사람들을 죽여서까지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하는지 공감하거든. 그녀가 사람들을 죽여대서 난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고. 살인이 나쁘다고 하는 데 나는 그 좁은 동네에서 살인자의 자식이라고 어릴 때부터 멸시받고 조롱받고 가난속에서 고통받으면서 살았어. 살인이 그렇게 나쁘다고 하는 놈들이 어떻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속에서 사는 사람을 괴롭히고 조롱하고 능멸하냔 말이지. 사람들을 괴롭히던 놈들이 살인만은 나쁘다고 학을 떠는 게 같잖아서 견딜 수가 없어!”
지은재의 목에 감긴 붕대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흥분해서 움직이고 있으니 상처가 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은재는 분노 때문인지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해나갔다.
“그래서 나는 사이다패스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그런데 내가 그녀를 위해서 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나도 당신처럼 그녀의 복수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지은재는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이 보기엔 나나 사이다패스나 죄없는 사람들 죽여대며 화풀이 하는 바보로 보이겠지만 사이다패스 덕분에 나는 그래도 조금은, 힘들때 위안이 되었다고. 그래서 그녀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어.”
사이다패스가 한 일을 시현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마치 빈곤이나 기아 같이 없으면 좋지만 사회 구조상 생길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것들을 바라보듯 말하고 있었다.
유니세프 광고에서 흔히 나오는 고통받는 제3세계 사람들 보듯 말이다.
하지만 지은재는 그런 사이다패스를 긍정해주고 싶었다.
네 덕분에 나는 적어도 속이 후련했다.
너를 이해하고 긍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주고 싶은게 많은데 결국 계약자의 힘까지 얻은 그는 아무것도 못하고 아버지의 원수에게 농락당하고 사이다패스에게 별다른 도움도 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게 고객님의 뜻이라면. 저희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럼 어머니는…….”
“이미 대피시켰습니다.”
“뭐?”
“당신이 저와 계약할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굳이 계약이 성사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지요. 사이다패스의 외조모를 피신시키는 김에 함께 피신시켰습니다.”
“………….”
일처리가 빨라서 기쁘긴 하지만 또 반대로 자신을 설득하는 것 쯤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저 뻔뻔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가 뭘 생각하건 손바닥 위다 이건가?
“뭐 그래. 난 호구니까. 맘대로 해라.”
“그럼 더 누워계시지요. 휴식이 필요할 겁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몸을 돌렸다.
과연 시현의 말대로, 흥분이 가시자 졸음이 쏟아져왔다.
* * *
“열렬한 팬이 있어서 좋겠군요.”
“………….”
시현이 복도로 나오니 그곳엔 성신아와 함께 사이다패스가 서 있었다.
성신아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 여자는 뭐에요? 해괴한 복장에…… 게다가 안에서 하는 소리 안들렸는데.”
류하리가 문에 대고 외국 팝가수의 유명한 후킹곡을 틀어서 성신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반복되는 후렴구가 저절로 재생되고 있었다.
“경찰로서 당신들 들여보내는 거 묵인해 줬는데 저만 따돌리고 이러기 있어요?”
“나도 경찰이잖아? 날 믿어.”
류하리가 나서자 성신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널? 차라리 지나가는 포교꾼을 믿겠다.”
안의 이야기를 듣지 못해 짜증이 나있는 성신아와 달리 사이다패스는 안에서 있던 대화를 엿듣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멍청한 남자네. 현실의 나는 바짝 말라비틀어져서 뭐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는데.”
“기대에 부응한다면?”
“남자들이 원하는 건 어차피 다 그런 거 아냐?”
“글쎄요. 그는 당신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보고도 일관성을 유지했습니다. 멍청이긴 하지만 그 점은 인정해줘야겠지요. 뭐 굳이 제가 말해봤자 사족이겠지만요.”
“쳇.”
입으로는 험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지은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호의가 익숙하지 않아서 퉁명스럽게 구는 건데 이 재수없는 탐정은 그녀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보는 류하리의 심정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살인교사범과 연쇄살인마가 까불고 있네. 하지만 나도....’
류하리는 아버지 류장천 회장과 영사의 끈끈한 관계를 떠올리며 머리가 복잡해졌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