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54화 (254/269)

제254화

죽음 이상의 벌 #12

“…어.”

경호원이 홈IOT시설로 방문자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따님입니다.”

“뭐? 딸이라고?”

양천용 의원은 당황했다.

그와 딸의 사이는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외국에서 살던 딸이 들어와도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다시 출국하는 게 일상다반사였는데 이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에 어찌된 일인가?

“네. 왠 남자가 따님을 데리고 왔는데요?”

“…이게 무슨.”

양천용 의원은 의아해했다.

그가 그날 어디에 머물지는 딸도 모를 텐데 어째서 정확하게 여길 찾아온 것이지?

그런 호기심이 앞섰다.

“어떻게 할까요?

“안에 들여보내지 뭣하고 있나.”

비바람이 쏟아지는 데 밖에서 딸을 방치할 수는 없다.

양천용 의원은 딸과 함께 온 남자를 안에 들여보냈다.

* * *

“음.”

시현은 대리석을 아낌없이 처바른 고급스러운 바닥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원목 갈매기 몰딩으로 마감된 저택 인테리어에 당황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시각테러라고 할만한 집이다.

이것이 핀란드 사우나인가 사람사는 집인가?

대리석과 원목 조합이라니 어떤 미치광이가 만든 인테리어인가?

그렇지만 돈이 많이 든 것은 분명해보였다.

“실례합니다.”

“그래서 자넨 누군가?”

“아 그게, 따님의….”

“남자친구인가?”

“그건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아 여기 명함이 있습니다.”

“…자산운용이라고? 뭐 보험팔이인가? 아니면 부동산 떳다방?”

시현이 내민 명함을 본 양천용 의원은 거리낌없이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물론 자산운용이라고 하면서 사기치는 놈들이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그걸 대놓고 면전에서 물어보다니.

무례함이 지나치다. 더 놀라운 것은 본인은 그런 무례함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가 가진 지위와 권력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고시를 통과해 검사가 된 이래 쭉 권력을 손에 쥔 채로 살아온 그였다.

젊을 때는 그래도 겸허한 마음으로 어떻게든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스스로 절제하던 사람도 권력의 달콤함에 취하고 계속 간신처럼 굽신거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균형감각을 잃게 되고 보통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황당한 일을 저지르곤 한다.

‘장기간 집권한 독재자같군. 하긴 동성 강간 같은 짓을 저질러대는 점에서 이미 선을 넘었지.’

시현은 양천용이 이미 균형감각을 잃고 쓰러져가는 거목이라는 걸 눈치챘다.

겉보기엔 그럴싸 해보이지만 그 뿌리는 썩어들어가고 있다.

“그냥 여기저기 사업을 하고 있어서 지주회사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흠. 그래서 내 딸과는 무슨 관계지?”

“말 그대로 투자자 입니다.”

“투자자? 투자자인데 딸을 술로 떡실신 시켜놨단 말이지?”

“몸이 안좋아보이던데 술은 센지 물처럼 마시더군요. 마음 상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

“그럼….”

시현은 양천용에게 마약을 투약할 여러가지 옵션을 생각해두고 있었다.

먹이기, 몸에 패치로 붙이기, 고속 주사기로 빠르게 주사하기 등등의 방법을 말이다.

그런데….

“비바람이 심하니 기껏 온 손님을 보내긴 그렇군. 차라도 한잔 하겠나?”

양천용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깜짝 놀란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 차를 부르면 됩니다.”

“그러지 말게. 이곳은 서울 안이지만 고갯길이고 번잡해서 운전기사를 불러도 쉽게 오진 않을걸세. 마침 이 집은 넓고 빈방도 많으니까 쉬었다 가도 될 걸세.”

양천용 쪽이 먼저 묵어갈 것을 제안했다.

분명히 비우호적인 기색은 여전한데 그런데도 시현을 굳이 잡아두려고 한다.

“그, 그러시다면.”

“그런데 어떻게 여기로 왔나?”

“따님이 취하고 나선 여기로 오고 싶다고 해서요.”

“그런가.”

양천용 의원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양천용이 아직 결혼생활을 하던 시절, 양지희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양지희의 진면목을 모르는 그로서는 딸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상처 때문에 취했을 때 무심코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로 찾아온 것은 순전히 시현의 수작이었다.

* * *

시현이 수명을 보는 능력을 응용해 사람들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이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고위정치인과 장차관급, 대기업 간부등 고급 정보에 접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다짜고짜 태그를 박아 넣는 짓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그를 너무 많이 박아넣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너무 많아서 관리가 안되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 너무 많이 박아넣은 태그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시현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태그에 특수부호를 넣고 태그 색도 바꿨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면 특수부호는 보이지도 않고….

색으로 구분하려고 해도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색상의 개수에 한계가 있었다.

초창기에 막 능력을 얻고 나서 폭주할 때 저질렀던 한심한 실수였다.

그래서 시현은 양천용 의원에게 태그를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추리를 해야 했다.

‘내가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면 태풍이 불 때는 가급적 낮은 쪽 집을 선호할 거야. 고층 아파트는 바람 소리가 너무 심하거든. 게다가 양천용 의원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비싸게 주고 산 집인데 이런 때 여기서 안 머물면 손해 아냐?’

그런 추리에 따라 왔는데 다행히 양천용 의원이 S동 자택에 머물고 있었다.

‘추리대로 있었던 건 좋은데... 아무래도 의심하는 눈초리인데?’

시현은 단지 명함만으로 자신을 불신하는 양천용의 태도에 의구심을 느꼈다.

‘혹시 내 얼굴 사진 같은 걸 돌린 건 아니겠지?’

양천용 의원이 영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양천용 의원은 영사와 직접적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아무래도 유명 정치가로서의 입장이 있다 보니까 영사처럼 명백히 암흑가 인물과 교류를 나눌 수는 없겠지.

‘뭐가 되었건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을 수 없는 법이지.’

시현은 비우호적인 분위기에서도 마음을 굳게 먹고 거실에 앉아 기다렸다.

* * *

“어떻게 보나?”

양천용 의원은 시현을 뒤에 남기고 주방으로 이동하며 경호원에게 시현이 준 명함을 건네며 물어보았다.

“구두가, 페라가모 진품입니다. 시계도 진품인 것 같고... 일단 몸에 걸친 게 상당히 있어보이는 데요.”

“흥. 사기꾼 놈이 수작부리는 거겠지.”

“그러시면 이 주소로 조회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늦어서 좀 조회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뭐 볼 것도 없어. 사기꾼 놈일 거다.”

“저 그게... 외람되지만 따님에게 접근한 투자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드라마나 엔터산업에서 먼저 돈을 댄 투자자라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낮다. 처음에 투입되는 돈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즉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양천용이 시현을 의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천용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자신의 육감을 확신했다.

“아니 그놈은 사기꾼이다. 내가 검사를 몇 년 했는 줄 아나? 척 보면 알지.”

“아 네.”

경호원은 여기서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생긴건 꽤 괜찮군. 뭐 외모 반반한 걸로 내 딸을 속여서 어떻게 하려는 것 같은데.”

양천용은 그리 말하고 경호원에게 찬장을 가리켰다.

“.......”

경호원이 말없이 찬장을 열어 안에서 약병을 하나 꺼냈다.

플루니트라제팜, 로힙놀이라고도 불리는 수면제로 세간에는 물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이걸 쓰시게요? 하지만 이건 그 데이트 앱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데이트 앱에서 만난 사람들을 납치해서 기절시킬 때는 어차피 서로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적당히 기절시키고 욕망을 채우고 내다 버려도 데이트 앱의 아이디만 버려버리면 추적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여긴 양천용 의원의 자택이 아닌가?

집에 찾아온 손님을 강간할 셈인가? 경호원이 그렇게 물어보자 양천용 의원이 짜증을 냈다.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다만 사기꾼 녀석을 혼내주려고 그러는 거네.”

“아, 그렇군요.”

경호원은 별다른 증거도 없이 저 청년을 사기꾼이라고 주장하는 양천용 의원의 억지에 쓴 웃음을 지었다.

양천용 의원은 지금까지 데이트 앱이나 그런 걸로 사람들을 조달(?)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이 녀석은 날 속여서 약점을 잡으려 했다.’

‘프로필이 가짜다.’

등등 어떻게든 상대에게 비난할 요소를 찾아낸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상대를 약물이나 전기충격기로 쓰러뜨려 납치하고 강간한 것은 악행이 아니라 오히려 사기꾼을 역으로 제압한 통쾌한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다.

이 도식하에서는 강간조차 용납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뒤틀려있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양천용이다.

역으로 말해서 저 청년을 사기꾼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건 양천용 의원이 저 청년에게 혹해서, 육욕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딸을 데려온 남자에게 이런 짓을 하나... 보통? 이럴 거면 그냥 평소 하던대로 욕망을 해소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왜 딸이 한국에 왔다고 참다가 이런 짓을 하는 거지?’

경호원은 뒤틀린 양천용의 인식에 혀를 내둘렀지만 양천용을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뭐 집이랑 얼굴 알고 찾아온 사람을 강간까지는 하지 않을 거고 그냥 적당히 신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우고 보내겠지. 아 하지만 만약에 미쳐서 강간해버리면 어쩌지? 증거 인멸에 힘써야 하나? 젠장. 돈을 많이 주니까 하고 있긴 하지만 이거 원 더러워서.’

그는 커피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면서 커피에 조심스럽게 약을 탔다.

“나는 물이면 되네. 밤이 늦어서 커피는 좀.”

“네. 여기 있습니다.”

경호원은 물과 커피를 준비했다.

“그래. 그럼 저 사기꾼 놈에게 좀 교훈을 주도록 하지.”

양천용 의원은 음험한 눈빛으로 시현을 돌아보고 직접 커피를 들고 시현에게 다가갔다.

* * *

‘완전 미쳤군....’

시현은 자신에게 커피를 내주는 양천용 의원을 보며 표정관리를 하느라 애써야 했다.

비록 주방에서 양천용 의원이 작당모의하는 게 보이지 않았지만....

시현은 이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지 안봐도 뻔히 알 수 있었다.

‘뭔가 음료에 탔구나. 로힙놀인가? 아니면 GHB?’

지금까지 탐정일을 하면서 많은 미친 놈들을 상대해온 시현이지만 이런 경우는 또 간만이었다.

‘자택에 온 손님에게 왜 뜬금없이 약을 먹이는 거야? 정말 영사와 한패거리인가 보군. 내 사진이라도 돌려서 공유했나.’

시현은 원래 양천용의 성격상(?) 생긴 문제라곤 상상치 못하고 그저 자신의 정체가 밝혀져서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생각해도 위기 상황이다.

‘날 잡아서 영사에게 넘길 셈인가? 아니면 검찰에?’

시현은 양천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자 들게.”

양천용이 시현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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