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56화 (256/269)

제256화

죽음 이상의 벌 #14

영사가 쓴 웃음을 지었다.

19세기 출생인 그에게 이 핏덩이가 감히 책임을 추궁하다니.

하지만 지금 복도에는 미카엘이 붙여준 경호원 둘이 최형림에게 있다.

“보통 데드맨은 사람을 죽이는 걸 선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우리를 관조하는 저 절대자 분들은 인간성이 마주하는 모순과 역설의 미학에 심취해있다는 걸. 그런 의미에서 복수극은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서사지요.”

“사이다패스가 저들을 직접 죽이는 것도 허용할 만하다?”

“권좌에서 내쫓아 파멸시키는 게 원래 그의 스타일이지만 워낙 까다로운 권력자니까요. 죽여버리는 것도 가능할지도요.”

“흠. 자꾸 딴 소리 하지 말고 본론을 말하세요. 제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설마 이것도 모른다고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양천용 의원을 후원자로 정계에 입문하려 했던 최형림으로서는 이 사건은 치명적이다.

젊은 미남 검사, 최형림을 후원하는 동성애자 소문이 있는 중진 의원.

이것만으로도 이미지 손상이 엄청나다.

만약 최형림이 정계에 입문하고 난 뒤에 이게 밝혀졌다면?

세간에서는 최형림과 양천용의 사이를 의심할 거고 의심하지 않더라도 그걸 빗대어 조롱하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양천용의 젊은 애인 아닌가?’

‘몸 팔아 정계입문?’

‘저 쪽이 늙은이에게 찔러넣는 쪽 아냐?’

그런 비아냥에 시달릴 게 분명하다.

정치인으로서의 목숨은 끝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형림으로서는 그 이미지 때문에라도 양천용 의원과 손을 끊어야 할 판이다.

“……….”

영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이트도 하필이면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로군요. 검사님이 관리하는.”

시현의 의도가 느껴진다.

공을 이쪽에 던져준 것이다.

어디 한 번 해 봐라 하고.

솔직히 말해서 영사는 제자의 발전에 감탄하고 있었다.

세련된 수법이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시현이 한 짓을 이해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과연 이 의도를 최형림은 캐치했을까?

‘캐치하고도 남았군.’

영사는 최형림이 격노로 몸을 떠는 걸 보며 시현의 의도가 충분히 제대로 최형림에게 전달되었음을 알았다.

“놀아나고 싶지는 않지만 데드맨 녀석이 재밌는 녀석이라는 건 인정해야 겠군요. 정말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친구로 삼고 싶을 지경입니다. 유쾌하고 즐거운 친구로군요.”

“친구 말입니까?”

입으로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지금 최형림의 표정은 시현을 산채로 씹어먹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똑똑한 녀석 같으니.’

영사는 최형림에게도 내심 감탄했다.

저 얼마되지 않는 정보로 시현의 뜻을, 그의 계략을 정확하게 눈치채고 이해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인재는 인재다. 젊은 나이에 고시를 통과한 녀석이니 만큼 만만하게 휘두를 수 있는 꼭두각시가 아니다.

“아 진짜… 재미있는 친구로군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하하하.”

최형림은 탁자를 움켜쥐었다.

계약자도 아닌 그의 살기가 영사 조차 주눅들게 했다.

그때 창 밖에서 번개가 쳤다.

“………”

잠시 생각하던 최형림이 울부짖는 천둥소리가 끝나는 걸 확인한 후 나직히 물어보았다.

“천용덕 검사는 어떻습니까?”

천용덕 검사.

법무부 형사과장이며 사이다패스 대책본부장인 이 검사는 놀랍게도 인품이 좋다.

성취의 상납 리스트에도 없고 검사들이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다.

“천용덕 검사 말입니까? 평판도 좋고 본인도 성격이 아주 좋지요. 개인적으로는 흠모할 만한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성취의 상납리스트에도 없고요.”

“양천용 의원이 이번 사건으로 무사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이 경우 무사해도 오히려 제게 독이 되겠군요.”

“…….”

“무사하지 않게 만들어야 겠군요.”

최형림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그는 절대로 일선을 넘지 않았다.

손에 피를 묻히는 건 어디까지나 사이다패스나 영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저 부추기는 정도로만 할 뿐 직접적으로 도덕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형림이 스스로 양천용 의원을 처리하자고 말을 꺼낸 것이다.

“그러시다면?”

“천용덕 검사를 올리고 싶은데 협력해주시겠습니까?”

“기꺼이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안되겠습니까?”

“시간을요?”

“네. 데드맨에겐 수명 제한이 있을테니까요.”

영사는 시현의 계약 조건을 알고 있었다.

그 수명을 제한해서 악마에게 도전하기 때문에 악마들은 데드맨을 사랑한다.

영사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무리 갈구해도 자신을 혐오하는 저 절대자들이 시현만을 편애하는 것에 질투심이 솟구쳐 올라 미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최형림의 선택은… 시현의 노림수 대로 굴러가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시간을 조금 끌어서 시현을 죽일 수는 없을까?

하지만 시간을 끌자는 이야기에 최형림이 코웃음쳤다.

“저도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면 그는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 같은데요.”

설마 이렇게 치밀하고 악랄한 놈이 시간 끌기에 당하겠냐? 최형림은 그렇게 반문하고 있었다.

영사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 될 것 같군요. 탐욕스럽고 능글맞고 아무래도 신변에 좀 티가 있는 양천용 의원보다는 처신이 깨끗한 천용덕 검사가 다루기는 더 어렵더라도 약점 또한 없으니 말입니다.“

고작 일개 평검사인 최형림과 그 후원자, 지원자인 영사가 까마득한 선배 검사를 자신들의 정략의 재료로 다루고 있었다.

이미 그들은 양천용 의원을 대신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 * *

양천용 의원은 자신을 향해 도는 소문들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아예 신경쓰지 않냐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이따위 소문으로 그의 권력에 금이 가게 할 수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검사 출신으로 현직 검사장도 그의 앞에서 굽신거리는 데 누가 그를 조사하고 잡아넣을 것인가?

이상한 놈에게 당해 마약에 중독당하고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탈취당하긴 했지만 단발적인 마약 사용 정도로 만성 중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검찰이 그를 수사할 의지가 없는데 그의 모발을 떼어다가 잔류마약 조사같은 걸 할 놈도 없다.

그런데….

그의 의원 사무실의 앞에 익숙한 얼굴이 와 있었다.

최형림 검사였다.

“무슨 일인가?”

“사이다패스가 의원님을 노리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수사에 협조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양천용은 최형림의 말에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 나를 그깟 정신병자 살인마 때문에 오라가라 하는 건가?”

그에게 최형림은 젊고 잘생기고 집안이 좋아서 정계에 입문시켜주려고 했던 귀여운 녀석이다.

어린 시절부터 머리 좋고 인물 좋다고 까부는 모양인데 양천용 의원이 보기엔 까마득한 어린 놈, 이제 막 평검사 된 말학에 불과하다.

그런 놈이 감히 날 오라가라하라고?

“사이다패스는, 상상치도 못한 살인들을 성공한 놈입니다. 의원님의 안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 수사에 협력 부탁드립니다.”

“웃기지 말게. 지금 상황에서 날 검찰에 불러들이는 건… 내게 도는 그 불손한 소문들 때문이겠지?”

양천용 의원은 최형림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가 수사 협조를 거부하는 건 검사 출신으로서 서열의식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몸에 마약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소변에서도 검출될텐데 검찰에 자신의 신변을 맡기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게다가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 그 청원 사이트에서 양천용 의원을 고발한 익명의 글에는 그가 마약을 사용했다는 음해도 들어있었다.

수사를 한다면 몸에서 마약이 검출될 테고 이리 되면 뭐라고 변명해도 뺄 수가 없다. 내가 약을 하는게 아니라 누가 강제로 투약했다고 변명하면 그 약의 출처는 어디인가?

‘…딸이 갖고 있었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보다 이 자식을 조사해보게.”

양천용 의원은 명함을 하나 꺼내서 최형림에게 주었다.

“이건 뭡니까?”

“내 딸에게 접근한 녀석일세. 그놈이… 으음. 아니 그건….”

양천용 의원은 뭐라 말하려다 말이 궁해졌다.

내가 플루니트라제팜을 먹이려 했는데 그놈이 역으로 날 먹였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내 몸에 마약 패치가 붙어있더라.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약 부분을 빼고 말하자니 또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자신에게 플루니트라제팜을 먹이고 마약 패치를 붙인 걸 보면 분명히 수상한 놈인데….

자기가 켕기는 부분을 빼고 말하려니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마약중독자인 딸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말하기 힘드니 짜증만 났다.

거 어린 놈의 새끼가 까마득한 후배 검사면서 어른이 말하면 어련히 알아서 잘 해야지 지금 감히 날 추궁하고 있단 말인가?

뭐? 정말 수사라도 하게?

양천용이 짜증을 내자 최형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의원님. 지금 상황을 정말 모르시는 군요?”

“음?!”

양천용 의원은 최형림의 어조에서 무례함을 느꼈다.

원래 최형림은 그에게 행여 밉보일까 늘 몸을 사리며 조심히 말하던 인물이었는데 지금은 밉보이는 걸 전혀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다.

‘이 자식이, 내가 설마 그정도로 몰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과연 최형림의 눈이 싸늘하게 얼어 있었다.

“사이다패스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됐네. 이야기는 끝이야. 영장 가져오던가.”

“그렇지 않아도 영장을 신청했습니다만 상부에서 반려당했습니다.”

“뭣?!”

양천용 의원은 최형림의 말에 격노했다.

* * *

검찰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지금 최형림과 양천용 의원의 대화에서 왜 양천용 의원이 격노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원래 수사협조를 요정하는데 상대가 거부해서 수사영장을 발부한다면 일단 거부를 한다고,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수사 협조는 사실 강제성이 없다.

협조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수사기관이 협조를 요청하면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기꺼이 협조하는 데,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야 귀한 시간 내서 업무시간에 수사에 협조하는 건데 누가 시간이 썩어돌아서 수사에 협조하겠는가?

그래서 거절하게 되면 그때 가서 영장을 발부하는 것이다.

수사 요청을 거부하는 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지만 이 사람이 가진 정보나 관련성 때문에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서라도 강제적으로 수사하고 싶다.

이럴 때 청구하는 게 바로 수사 영장이 아닌가?

그런데 최형림은 양천용 의원이 수사협력을 거부하는 절차를 밟기도 전에 영장 청구를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양천용 의원을 범죄자로 보고, 수사협조가 아니라 수사의 대상, 장본인으로 보고 영장을 청구하자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즉 데이트 강간이나 마약 사용 혐의에 대한 피의자로 영장을 청구했다.

이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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