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57화 (257/269)

제257화

죽음 이상의 벌 #15

아마도 최형림은 양천용 의원이 거절할 때를 대비해서 그를 피의자로 수사 영장을 청구했을 테고, 그의 검사 선배들은 최형림을 제지하고 영장 청구를 내부에서 막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천둥벌거숭이가 하늘 같은 선배에게 대든 꼴인데 그걸 양천용 의원에게 직접 말하다니?

‘이 자식. 귀엽다고 오냐오냐 했더니만 대놓고 반기를 들어? 내가 설마 이따위 일로 실각이라도 할 것 같냐?!’

양천용 의원은 자신에게 대들던 딸의 모습을 최형림에게 겹쳐보았다.

“최형림 검사님… 본인의 뜻은 확고하니까 이만 물러나 주시게.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네.”

양천용 의원은 그리 말하고 경호원과 비서들에게 턱짓했다.

* * *

“어떻게 되었습니까?”

양천용 의원에게 쫓겨나 엘리베이터로 나온 최형림을 맞이한 것은 영사였다.

“당연히 수사협조를 거부하더군요. 그런 걸 보면 아마 마약류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양천용 의원은 마약을 투약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만. 데드맨 성격상 그렇게 되게 만들었겠지요.”

“큭. 재밌는 친구군요. 그게 사실이라면 거대 정당의 중진의원에게 마약을 투약했다는 말 아닙니까? 대체 무슨 수를 쓴거지?”

최형림은 데드맨이 저질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을 떠올리고 실소를 터뜨렸다.

재밌다 정도로 말할 일이 아니다.

“뭐 됐습니다. 저는 영장을 청구했었다는 사실은 남겨두었으니까요.”

양천용 의원을 구속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었다는 사실은 최형림의 다음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작하세요.”

최형림은 싸늘한 시선으로 영사에게 명령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영사는 최형림의 의향을 다시금 물어보았다.

이제 저지르는 일은, 일단 해버리고 나면 돌이킬 수가 없는 비가역적인 일이다.

정말 각오하고 하는 일인가?

영사가 그렇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이지요.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최형림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영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미카엘의 부하들이 그런 최형림을 맞이해 차로 데려가는 게 보였다.

“흐음.”

영사는 최형림이 미카엘의 부하들과 함께 움직이는 걸 보며 입맛을 다셨다.

* * *

양천용 의원은 수사협조를 거부했지만 사이다패스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경호는 요청했다.

물론 요인 경호는 전부 다 경찰의 지출이었다.

인근 경찰들이 총 출동되어 양천용 의원을 따라다니며 그를 지키기 위해 모였으니 인근 경찰서들에는 막대한 인력 공백이 발생하였으리라.

하지만 양천용 의원은 지금 사이다패스보다는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반기를 든 최형림에 대한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우선 대학 후배이기도 한 서부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선배님 어쩐 일이십니까?]

“내게 영장을 발부하자고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그게.... ]

“사실이군. 이 자식 안되겠어. 이쁘게 봐주려고 했더니만... 바로 기어오르다니.”

[아무래도 재벌가 자식이지 않습니까. 세상물정을 좀 모르는 친구죠.]

“재벌가 자식이고 나발이고 그래서야 쓰겠나? 인사조치를 취하게. 마침 사이다패스도 통 못잡고 있지 않나?”

[그게....]

사이다패스를 못잡는다고 무능으로 질타하게 되면 옷 벗어야 할 인물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청장이 옷을 벗네 마네 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대변인으로 브리핑에 나섰던 젊은 평검사 하나 벗기는 건 꼬리자르기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 친구가 얼굴이 괜찮지 않습니까? 대변인으로 얼굴을 팔았으니 인사 이동을 시키려면 좀 복잡합니다.]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 엉덩이 살까지 잘라야 한다.

서부지검장이 당황스러워 하고 있어다.

[그런데 그, 괜찮으십니까? 사이다패스가 이번에는 선배님을....]

“그딴 살인범 따위가 날 어쩌겠나!”

양천용 의원이 그렇게 말할 그때였다.

“어?”

-쩅그랑!

갑자기 사무실 유리창이 깨지고 파편들이 안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선배님?]

“........”

[서, 선배님? 양 의원님?]

서부지검장이 놀라서 물어보았지만 답이 없다.

깜짝 놀란 경찰과 경호원들이 사무실 안으로 뛰쳐들어왔지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이미 머리에 고무 망치를 맞아 죽어있는 양천용 의원이었다.

창밖에서 초고속으로 날아든 망치가 양천용 의원의 머리를 강타해버린 것이었다.

* * *

사이다패스가 양천용 의원을 참살했다는 소식은 속보로 퍼져나갔다.

모든 모니터, TV에서 특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스마트폰을 들고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들, 길거리의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연쇄살인마가 대형 정당의 중진을 참살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사건들과는 격이 다른 일이다. 서부지검 형사부장을 살해한 것도 큰 일이었지만 대형 정치가는 그보다 더 큰 일이었다.

사이다패스는 더 이상 단순한 연쇄살인마가 아니라 테러범이나 반군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 * *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탐정사무소에서 TV로 뉴스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안 했어.”

“네. 압니다.”

시현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탐지기로 사무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좋아요. 도청장치는 없군요. 유리창에 레이저를 쏴서 도청할 수도 있겠지만 이 근처에 저희 사무실의 유리창에 직선거리 100미터 이내엔 별 건물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동을 흡수하기 위한 댐퍼를 유리창에 붙여두었지요.”

“치밀하군.”

“상대가 영사라면 그 정도는 해둬야 합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를 살펴보고 타자기의 잉크리본을 갈며 말했다.

“그래서. 만족하셨습니까?”

“만족하냐고?”

“네. 이제 양천용 의원이 죽었으니 양지희는 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진 못할 겁니다. 배우로서의 재능이 있긴 하지만 그녀만한 재능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캐릭터, 외모, 사생활, 다방면에서 그녀보다 나은 이들이 많을 테니 이제부터 그녀를 기다리는 건 내리막의 고통일 겁니다.”

“........”

“뭔가 불만이라도?”

“아니. 내가 긍정하면 나는 죽게 되나? 너에게 수명을 빼앗겨서?”

사이다패스는 그걸 물어보았다.

“당신이 말한대로 되겠지. 양지희는 이미 끝장나있으니까. 하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사이다패스는 복수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양천용 의원을 처치하면 양지희가 파멸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째 허탈하다.

복수란 이런 거였나?

잔혹하게 사람을 때려죽이던 그녀는 불현 듯 과거의 살인을 떠올려보고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그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사이다패스라고 자처한 만큼 오히려 시원해했다.

사이다패스로서 살인을 저지를 때 그녀는 상대의 잘못을 파내고 그것 때문에 죽인다고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신나게,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관련된 일에서는 이 살인이 너무나도 자신이 원하던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자문할 수밖에 없다.

나는 옳은가?

자기 일이 아닐때는 머리를 비우고 스스로를 정당화 할 수 있었는데 자신의 일이 되니 아무래도 머리가 비워지지 않는다.

“왠지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아. 왜지?”

“자신의 일이니까요. 보통은 그게 정상입니다.”

“뭐?”

“지금까지 많은 고객들에게 억울한 일들을 해결해주었습니다만 대부분의 고객들이 복수를 행하고 나면 허망해하더군요. 당해서 억울할 때는 그렇게나 분하고 갈망했었는데 막상 갈망이 이루어지고 나면 허탈해하지요. 복수를 성공한다고 해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도 없는데... 이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던 복수를 해치우고 나면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거든요. 잃어버린 것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죠.”

“잘 알고 있군.”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말을 듣고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녀가 잃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뭐 몸이 망가져서 폐인이 되어 온가족들을 파산시키게 된 입장으로서는 죽는 쪽이 차라리 낫다.

꽃다운 나이에 기저귀를 차고 살며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고 가족들을 파멸시키며 살아가느니 말이다.

시현에게 수명을 넘겨주고 죽어버리는 게 그렇게 사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왠지 미련이 남는다.

“...양지희가 파멸하는 꼴을 봐야겠어.”

지금까지의 감정과는 달리 이제 사이다패스는 양지희의 파멸을 목도하는 게 그다지 본인에게 즐겁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녀는 봐야 했다.

자신이 직접 보아야 했다.

“알겠습니다. 지은재씨의 부탁도 있고 그러니, 당신에 대한 징수는 늦추도록 하지요. 그럼 이제 슬슬 지은재씨를 위한 준비를...응?”

그렇게 말하던 시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

“왜그래?”

“이런, 지은재 씨가!”

깜짝 놀란 시현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혹시 병실로 가서 그를 지켜줄 수 있습니까?”

“뭐? 왜?”

“지은재 씨의 수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뭐?! 아니 병원이잖아?”

사이다패스는 시현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 내가 어떻게 해보지!”

사이다패스는 지은재의 병실로 이동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 * *

최형림은 미카엘의 경호원들이 운전하는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 앉아서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폭풍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양천용 의원의 살해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흠. 네. 수고했습니다.”

멈춰선 차에서 내려선 미카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흑석동 중앙대학교 병원의 주차빌딩이었다.

지하주차장엔 차들이 많아서 이곳에 세웠다.

건물 밖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뇌우가 번뜩인다.

최형림은 그 하늘을 보며 휴대폰을 들었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크, 큰일났습니다. 검사님! 사이다패스가....]

검찰 수사관이 최형림에게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뉴스는 들었습니다. 현재 현장에 누가 와있습니까?”

[경찰입니다. 서울 중앙에서 그 있잖습니까?]

검찰도 경찰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 합동수사본부와 별개로 전담팀을 따로 만들어 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 말하는 걸 보면 전담 팀에서 찾아와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흐음.”

최형림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겼다.

사이다패스가 아니라 영사의 부하들을 시켜 저지른 일이니 수사를 하다 보면 사이다패스의 소행이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수사기법으로 이 범인을 특정하고 잡을 수 있는가?

[그런데 이번엔 살해당한 사람이 사람이라 그런지 언론이 엄청나게 몰려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경찰들에게 초동수사는 맡겨두지요. 이건 합동수사본부에서 회의를 좀 하고 대응해야 할 문제 같군요. 저는 여기 일 마치는 대로 바로 합동수사본부로 향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최형림은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의 일을 마치고 말이지요.”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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