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8화
죽음 이상의 벌 #16
최형림은 부하들, 미카엘이 붙여준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CCTV 기록을 지울 수 있겠습니까?”
최형림은 병원 입구에부터 있는 CCTV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문제없습니다.”
“그럼...”
검은 눈의 여성 경호원이 CCTV를 바라보자... CCTV에서 잠시 검은 그늘이 나타났다.
“됐습니다. 가시지요.”
“그럼....”
최형림은 병원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집중치료실로 향했다.
마악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그 순간, 갑자기 검은 옷의 남자가 최형림의 앞에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을 노리고 누군가가 소화기를 최형림의 머리를 향해 투척한 것이었다.
경호원이 그 소화기를 받아내었지만 날아오던 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그가 뒤로 밀리고 엘리베이터가 충격에 흔들거리며 비상등이 켜졌다.
-투쾅!
“....”
“괜찮으십니까?”
여성 경호원이 최형림을 부축하며 균형을 잡아주었다.
“이제 왔나. 최형림?!”
병원 복도에는 사이다패스가 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제 슬슬 자신의 손을 더럽히려고 하나 보군. 그동안 잘도 나에게 살인을 전가했지?”
“흠. 전가?”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살인을 제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습니까? 뭐 제 책임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당신도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뻔뻔하지 않습니까?”
“윽!”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을 노려보았지만 그의 곁에 있던 여자가 손가락을 구부리고 사이다패스를 향해 걸어온다.
그녀의 손가락에서 뚜두둑 하는 소리가 나고 혈관이 도드라진다.
미카엘의 부하들, 최형림을 지키는 이들과는 이전에 한 번 싸웠고 사이다패스는 그때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꿈의 영역에 존재하는 사이다패스는 불멸의 존재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사이다패스를 한 번 위기로 몰아넣었다.
아마 그녀를 죽일 수도 있으리라.
여기서 저들에게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사이다패스는 문득 저들에게 느껴지던 한기를 떠올렸다.
저들에게 패배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느껴지던 한기는... 정녕 두려운 것이어서 상상만해도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지은재가 죽는다.
어떻게든 최대한 시간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데....
사이다패스는 불현 듯 고개를 돌려 소화전을 바라보았다.
소화전의 비상벨! 저걸 누르면 이들이 마음대로 경거망동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소화전의 비상벨로 달려가는 그 순간....
-쉬익!
소화기가 날아가 그녀의 팔에 명중했다.
“꺅!”
격통이 느껴진다.
단번에 팔이 절단되었다.
게다가 상처로부터 무시무시한 한기가 그녀를 엄습한다.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되었지만 검은 양복의 여성 경호원이 사이다패스의 머리채를 뒤에서 붙잡더니 벽에 밀어붙였다.
그리고...
-투콱!
등 뒤에서 관수로 꿰뚫는다.
마치 칼로 찌른 것처럼 간단히 근육을 비틀어 찢고 등쪽 늑골 틈사이로 손가락이 파고 들어와 폐를 분해해버린다.
“아아아악!”
사이다패스가 몸부림치며 날뛰지만 이 여자는 사이다패스의 등에 손을 꽂은 채로 그녀의 버둥거림을 지켜보았다.
“너... 이 썅.....”
사이다패스가 욕설을 퍼부으려 하자 그녀는 사이다패스를 팔에 꽂은 채로 바닥에 쿵 처박은 뒤 바닥에 긁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사이다패스를 바닥에 갈아버리며 달리던 그녀는 복도 옆 중앙홀에 당도해 그 밑으로 사이다패스를 집어던져 버렸다.
-투확!
무서운 기세로 사이다패스가 밑으로 떨어진다.
“놀랍군요. 그녀를 이렇게 간단하게 다루다니.”
최형림은 사이다패스가 이 나라의 사법체계를 간단하게 농락하는 걸 보아왔다.
물론 그 자신도 공범이긴 하지만 사이다패스의 힘은 말하자면 일종의 선언문이었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 인류가 쌓아올린 것들이 거대한 운명 앞에 얼마나 나약한가를 열파하는 하나의 이정표.
그것은 독선적인 폭력이었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들불 같은 위험이었다.
그러나 그 위험하던 존재가 진짜 초월자, 악마의 사도들 앞에서는 이다지도 무력한 것이었다.
이게 고작 미카엘의 하수인이라고?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 무시무시한 짓을 벌인 여성 경호원은 무표정하게 최형림을 돌아보며 그리 말했다.
“허락해주신다면 밑으로 내려가 마저 처리하겠습니다.”
“내던진 것부터 너무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
최형림은 사이다패스를 아래로 집어던진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었다.
워낙 커다란 병원이라 사람들이 적지 않다.
태풍이 휘몰아쳐 어둡고 시끄러워 어지간한 소음이 다 묻혀버리긴 하지만 저렇게 시원하게 일을 저지르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게다가....
-띠리리리링....
소방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밑으로 떨어진 사이다패스가 벨을 기어이 소방벨을 눌러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군요. 하세요.”
최형림은 여성 경호원에게 사이다패스를 추격할 것을 허용해주고 그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 * *
지은재는 폭풍이 창문을 때리는 걸 바라보며 자다 깨다 하고 있었다.
칼에 찔리고 목이 베이고 엄청난 양의 피를 수혈받긴 했지만 젊어서 그런지 그는 별 문제없이 회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실혈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비몽사몽 속에서 지내고 있었다.
잔 것 같지도 않은데 눈을 감았다 뜨면 두 세시간이 휙휙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시끄러운 소방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지은재는 미망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병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 어수선한 가운데... 그의 병실 안쪽에 한 사람이 서있었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최형림....”
지은재는 눈앞에 있는 청년을 알아보고 나직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언제나 검사님이라고 불렀었는데 지금은 그저 이름으로 부른다.
영사가 자신의 원수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영사와 한패거리인 이 검사또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여기에 온 그가 좋은 의도로 왔을 리가 없다.
소방벨이 울리고 있는데도 침착하게 자신이 의식을 차리길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몸은 좀 괜찮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해? 칼에 찔리고 베였는데... 그보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뭘 말입니까?”
“영사가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에게 살인을 시킨 장본인이라는 걸.”
“물론 몰랐습니다. 그렇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쳇. 관심이 없었다고? 하긴 그렇겠지. 그래서 왜 왔지?”
“혹시 마음을 고쳐먹을 생각은 없습니까?”
“마음을 고쳐먹어?”
“다시 저희에게 힘을 빌려줄 생각말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당신도 복수하려고 이러는 거 아냐? 그런데 당신은 그럼 자기 원수랑 손잡을 수 있겠어?”
“저는 영사와 손잡을 생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용할 뿐이지요. 언젠가는 잘라내야 하는데 그때 저 혼자만 남으면 힘의 균형이 맞지 않거든요. 당신이나 사이다패스의 존재가 그래서 소중했는데 저로서도 곤란한 상황입니다.”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품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윽.”
지은재는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지만 시현과 대화할 때 무리해서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제기랄... 지금은 꼼짝할 수도 없어.’
그는 최형림이 자신의 병상에 다가오는 걸 망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정말 다시 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내가 만약 다시 생각한다면 내게 뭘 해줄 거지?”
지은재가 물어보자 최형림이 쓴 웃음을 지었다.
“저는 최연소 대통령이 될 생각입니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다.
한국 사람들은 절대로 파릇파릇한 젊은이에게 표를 던지진 않을 것이다.
사이다패스 사건을 해결한다면 모르겠지만 이 사건을 검사가 해결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뭐라고 증언 할 것인가? 병상에 누워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소녀가 악마와 계약하고 꿈으로 사람들을 죽였다고?
악마들이 그걸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지은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최형림의 배후에 있는 이들, 영사와 미카엘을 생각하면 불가능하다고 비웃을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당신에겐 그 개국공신에 걸맞는 대우를 약속해주지요. 물론 영사의 목숨도 당신의 손에 붙여주겠습니다. 영사는 통제할 수 없는 자니까요.”
“.......”
“영사에 비해 당신이 다루기 쉽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영사는 미치광이이니 위험한 존재라는 거지요.”
“그 미치광이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당신도 훌륭한 미치광이인데?”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바 힘은 없고 뜻은 이루기 어려우니 수단을 가릴 수 없었습니다. 그 점에서는 당신들도 절 비난할 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이다패스도 살인예술가도 결국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서 도리를 저버리고 사람을 죽여댔다.
그런 처지니 자신의 입장을 더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지.
“마음은 알겠어. 그런데... 미안하게도 난 이미 여자 앞에서 폼을 잡을 대로 잡아버려서. 이제와서 그걸 없었던 걸로 하긴 그런데?”
“흠. 확실히 죽을텐데도 말입니까? 저로서는 당신을 살려주고 싶어도 살려줄 수 없습니다. 당신이나 사이다패스나 초자연적인 힘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들을 적대하는 채로 살려둘 수는 없으니까요.”
최형림으로서는 자신을 언제든지 위협할 수 있는 사이다패스와 살인예술가를 살려둘 수 없다. 지금은 미카엘에게 경호원을 빌려서 사이다패스를 상대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무상으로 경호원을 빌려갈 수는 없다.
빌린 만큼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전에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다.
“닥치고 빨리 해. 왜? 남들 시키면서 살인을 사주했으면서 정작 자신의 손으로 누굴 죽이는 건 처음인가?! 자기 손 정도는 더럽혀 보라고! 물론 그런 살인자가 과연 제대로 된 정치가가 될 수 있을지는....”
“하아.”
최형림은 쓴 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군요.”
최형림은 쓴웃음을 짓고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검은 옷의 경호원이 그에게 고무망치를 들려주었다.
“미쳤나?”
지은재는 최형림이 선택한 흉기를 보며 문득 그렇게 물어보았다.
사이다패스야 인간을 초월한 힘이 있으니까 그걸로 사람을 펑펑 때려죽이는 거지....
아무리 지은재가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할 병자 상태라 해도 고무망치로 때려 죽이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았던 저 부잣집 도련님, 귀티나는 최형림이 고무망치로 그를 때려죽이겠다고?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최형림의 눈동자는 싸늘한 무기질의 한기만을 발산할 뿐이었다.
그 순간 창밖에 번개가 번뜩이며 병원 전체의 불이 꺼졌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 * *
-끼이익.....
대형 suv한대가 폭우를 뚫고 병원 주차장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시현은 급히 차량에서 뛰어내리고 병원쪽을 바라보았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