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0화
여기가 지옥이다 #1
태풍이 지나가 날이 개고 있었다.
하지만 태풍이 할퀴고 간 흔적은 선명하게 도시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 태풍의 상처는 곳곳의 가로수가 부러지고 정전으로 인한 전기 공사가 시행되는 것 만이 아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하루 만에 두 명이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했다.
특히 양천용 의원은 대형 정당의 중진이었으니 그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 * *
“들었어?”
류하리는 양천용 의원이 살해당한 의원 사무실에 와 있었다.
양천용 의원이 살해당한 곳은 여의도, 영등포 경찰서에 있는 동기들이 류하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청장님이 책임지고 사퇴할 것 같은데.”
“사이다패스를 못잡아서요?”
류하리는 살해현장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증거품은 아무것도 없다.
지문도, 카메라도 그 모든 것이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날아든 고무 망치 하나가 단번에 의원의 머리통을 날려 살해했다.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아마 거대한 발사장치 같은 걸로 고무망치를 날려 사람 머리에 맞춰야 할 것이다.
야구공을 발사하는 피칭머신은 강력한 회전 롤러로 공을 말아서 가속시켜 발사하는 것인데... 자루가 있는 고무망치는 그런 피칭머신으로 발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길고 거대한 특수 기계를 따로 제작해서 발사해야 가능하리라.
‘아니면 계약자던가. 그나저나 망치를 보니 사이다패스 소행이 아닌데.’
그게 아니더라도 사이다패스는 현재 시현과 행동을 함께 하고 있으니 양천용 의원을 죽일 이유는 있더라도 그녀가 양천용 의원을 죽이진 않았으리라.
류하리는 그 사정을 알고 있기에 이게 사이다패스의 소행이 아니라 최형림 검사 일파의 소행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도 그걸 입증할 방법이 없다.
주위 경찰들은 살해현장을 보고 이미 사이다패스의 소행이라고 결정지은 상태였다.
“아니 이 신출귀몰한 귀신같은 놈 못잡았다고 청장님이 옷을 벗어야 하다니....”
“하지만 그럼 또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지 않겠어?”
“아니 그렇게 올라가봤자... 사이다패스가 사람들 죽일 때마다 여기저기서 두들겨팰거 아냐?”
이제 승진해봤자 이득이 없다.
경찰들은 다들 불만에 가득차있었다.
문득 궁금해진 류하리가 동료 경찰들에게 물어보았다.
“검찰 측에서는 누가 책임지죠?”
“아 검찰측은....”
“법무부 형사과장인 천용덕 검사던가. 그 합동수사본부의 장이던....”
“와 너무하네. 우린 청장님이 옷을 벗는데 거기선 고작 형사과장 한 명이 벗는다고?”
“법무부 형사과장이면 사실 부장급이지.”
“부장이고 뭐고 우리 청장님이랑 같습니까? 아 열받네. 누가 뭐 공부 못해서 고시 안쳤나. 고시가 워낙 들어갔다 하면 인생 갈아먹는 거라 안쳤지.”
경찰대학은 군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던 연도 까지는 SKY 따라가는 엄청난 입결을 자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대학 출신들은 검사들이 더 엘리트 취급받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이쪽은 청장이 옷을 벗는데 저쪽은 법무부 형사과장 하나 옷을 벗는다니 양쪽을 너무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 같아서 경찰들이 불만을 느끼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류하리는 생각이 달랐다.
‘사이다패스가 검사들을 많이 죽였고 이번에 살해당한 양천용 의원도 전직 검사니까 검사 측도 사기가 떨어져 있겠지.’
사이다패스가 검사 출신들을 주로 죽여댔기 때문에 검사들은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그런 판국에 그나마 인망있던 천용덕 검사가 옷을 벗게 되니 그쪽도 분위기가 말이 아닐 것이다.
경찰도 검찰도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사다.
‘최형림 선배는... 아니 그 자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류하리는 눈앞에 벌어진 끔찍한 참극에 당황했다.
지금까지는 최형림이 자신의 손을 직접 더럽히지 않고 사이다패스를 이용했었다.
하지만 이제 사이다패스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 과연 얼마나 막나갈 것인가?
그때 그녀의 전화기에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바로 그 최형림의 전화였다.
“...네.”
[류 경위님. 파혼에 대해서는 집안에 이야기해보셨습니까?]
“아직요.”
[빨리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제 저는 당신의 아버님에게 좀 많이 투자를 받아내야하는 데 그걸 받아내고 나면 당신 혼자의 뜻으로 파혼하긴 불가능에 가까워질 테니까요.]
최형림에게 류장천 회장이 투자를 많이 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결혼이라는 족쇄로 그를 혈연안에 묶어두려 할 것이다.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
류하리는 뻔뻔스러운 건지 자신만만한 건지 모를 최형림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뭐 저는 류 경위님이 그냥 포기하고 저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물론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만.]
“네?”
류하리는 최형림의 기막힌 소리에 혀를 찼다.
[하지만 상상해보시지요. 우리의 결혼생활은 꽤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초법적 수단을 쓰는 살인 검사와 경찰 아내?
류하리는 최형림이 말하는 가족 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순간 당황했다.
‘재밌긴 하겠네.’
그게 자기 집이 아니라면 말이다.
남의 집이야 풍비박산이 나건 개박살이 나건 웃으면서 볼수 있지만 자기 집, 자기 결혼생활 자신의 인생인데 웃으면서 볼 일이 아니다.
“웃기려고 한 농담이라면 최악인데요.”
[네 그럼 잠시 후 뵙도록 하지요.]
“...네?”
류하리가 당황했지만 최형림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니 대체... 이 인간 뭐야?”
* * *
할 일이 없다.
사이다패스가 죽였건 최형림과 영사가 죽였건 현장에 남아있는 증거는 쓸만한 게 없다.
그러나 경직된 공무원 사회 답게 할 일도 없음에도 먼저 가보겠다는 말이 선뜻 덜어지지 않았다.
지금 경찰들은 다들 뭐라도 하는 시늉을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했다.
살인마의 살인행각을 막지 못하는 경찰들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 뭐라도 하는 시늉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별 증거도 없는 CCTV를 몇 번이고 되돌려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탐문을 하고 할짓 못할짓 다하고 있었다.
“피해자인 양천용 의원을 부검해보죠.”
기왕 이리 된거 양천용 의원을 부검해보자는 제안을 해보는 경찰도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부검하자는 의견이 나오자 유족들이, 특히 딸인 양지희가 격렬하게 반발했다.
어차피 사인은 명백하다.
강렬한 힘으로 날아온 고무망치에 의한 살해니 부검은 정말 소문대로 양천용 의원이 약을 했는지 확인하자는 절차였다.
유가족이 동의할 리가 없고 영장도 나올리 없다.
그저 뭐라도 해야 하니까 일하는 시늉을 하다 나온 해프닝일 뿐이다.
모든 일이 이런 식이었다.
‘아. 진심 그만두고 싶다.’
류하리는 의욕을 잃었다.
사이다패스건 영사건 초능력자들인데 초능력자들이 초능력으로 저지른 일을 어떻게 일반 과학수사로 잡는단 말인가.
결국 이런식으로 경찰들은 매번 고통받을 것이다.
류하리가 이 무의미한 벌서기의 현장에서 풀려난 것은 박진감 팀장이 교대해주고 나서였다.
“류 경위님. 어차피 여기서 할 거 없지? 그 탐정 놈 추적하라고.”
“네. 그래도 되나요?”
“뭐 어차피 남아봤자 할 것도 없고... 사이다패스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애초에 여긴 우리 관할도 아니지 않나. 이건 벌서기라고. 벌서기. 눈치 보면서 우리가 이렇게 노력은 하고 있다. 그러는 거지 뭐. 그러니까 벌을 서도 류 경위님처럼 부잣집 아가씨보다는 추가 수당이 절실한 내가 서야지.”
박진감 경위는 류하리와 교대해서 이 벌서기를 자처했다.
돈 잘버는 집안 딸이라고 빈정거리는 것으로 들리는 소리기도 하지만 대신 벌서주겠다니 반갑기만 하다.
“그, 그럼 부탁드립니다.”
류하리는 박진감 경위의 제안을 덥썩 받았다.
* * *
그렇게 박진감 경위 덕분에 간신히 벌서기 근무에서 풀려난 류하리는 시현에게 연락해보았다.
“지금 어디있어요?”
[장례식장입니다.]
“...네?”
[김유라 양의 장례식장입니다.]
“.........”
류하리는 순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김유라가 누구였지?
사이다패스?
“사이다패스가 죽었나요?”
[...네.]
시현의 목소리가 어두웠다.
“맙소사.... 어디에요? 저도 지금 갈께요.”
류하리가 시현에게 장례식장의 정보를 듣고 나왔을 때 그녀의 앞에 차가 한 대 멈춰섰다.
“타시지요.”
영사가 부하와 함께 대형 RV차량과 함께 나타난 것이었다.
* * *
“영사....”
원래 류하리는 영사 아저씨라고 불렀지만... 상황이 이리 되니 그렇게 친근하게 부를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김유라 양의 장례식장에 가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타시지요.”
“아니 그냥 전철 타고 갈께요.”
류하리는 차량에 타라는 영사의 말에 당황했다.
“안심하시지요. 저는 아가씨를 해치지 않습니다. 해칠 수 없다고 해야 겠지요. 게다가 제게 궁금한 게 있지 않으십니까?”
“하아.”
류하리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차에 올라탔다.
“이거 정말 미친 짓인데.”
“후후후. 류 회장님의 따님이시면서.”
영사는 그리 말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차 안은 리무진 시트로 되어 있어서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류하리는 그 리무진 시트에 드러누워서 영사를 흘겨보았다.
“우선 저부터 물어봐도 되지요?”
“네. 물어보시지요.”
“아버지는 어디까지 알고 계시죠?”
“어디까지라면?”
“최형림 선배가 저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살인자라는 거라던가....”
“알고 계십니다.”
영사의 대답은 류하리의 가슴을 망치로 때리는 것 과 같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아버지는 최형림이 살인자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녀와 최형림을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
“그것 뿐만이 아니라 류 회장님은 많은 걸 알고 계시지요.”
“많은 거라면....”
“계약자나 악마에 대한 것들을 알고 계십니다. 그분도 한 때는 계약자였으니까요.”
“............”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다.
영사와 짝짜쿵이 되어 있는 아버지였다.
영사가 하는 짓이 수상쩍기 그지없는데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아버지가 무지할 리없다.
그러나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이제는 제가 말을 해도 됩니까?”
“네. 제게 할 말이 뭐죠?”
“아가씨, 최형림 검사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갑자기 최형림에 대해서 물어본다. 류하리는 어이없어서 반문했다.
“저보다는 당신이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아가씨의 견해가 중요합니다. 제가 최 검사랑 약혼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는 음. 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류하리가 툭 쏘아붙였다.
“흠. 그럼 결혼 상대로서는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시겠군요.”
“...네?”
류하리는 영사의 말에 당황했다.
아니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학교의 좋은 선배인 것 보다는 오히려 지금 개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쪽이 더 가깝지 않습니까?”
무관심한 것 보다는 차라리 미워하는 쪽이 낫다 이건가?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