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269화 (269/269)

제269화

레버넌트

영사는 꿈을 꾸고 있었다.

“동지.”

“….”

“영사 동지?”

영사는 깜짝 놀라서 턱을 괴고 있다가 깨어났다.

꿈속의 인물이 그를 흔들어 깨운 것으로 꿈이 시작된다.

싸늘하고 황량한 바람이 휘몰아 치는 병영에서 그는 깨어났다.

회색의 하늘, 칙칙한 침엽수림들 사이에 펼쳐진 조악한 천막 밑에서 사람들이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거지꼴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리고 영사 역시 더럽고 우중충한 모습에 이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누빔 옷을 입고 조악한 견장을 이불짝 같은 옷 위에 바느질로 박은 기묘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와 그의 동지 옆에는 콩도 제대로 먹지 못해 앙상한 말들이 성긴 풀을 뜯어먹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 무슨 일이오?”

“열차가 곧 지나갈 거 같소. 저기 연기가 보이오.”

저 멀리 증기기관차가 내뿜는 새카만 석탄 연기가 보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환경 오염이다 뭐다 하고 난리가 날 장면이지만 만주 벌판을 달리는 철마가 뿜어내는 연기는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같았다.

영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만주벌판에서 그는 적군 출신 독립의용군 세력들과 함께 있었다.

때는 1930년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공산주의가 숭고한 이상으로 빛나던 때.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심취했고 영사 역시 고향을 탈출해 소련 군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신의주로 돌아와 의용군에 합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심각한 고민이 있었으니….

‘이들은 공산주의라는 학문을 이해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 학문은 최신의 학문이며 난해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 의용군의 자질은 좋게 봐줘도 문맹이 절반, 사실상 마적떼나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이 무고한 민간인을 해치지 않도록 통제하는 데만도 진땀이 빠질 정도였다.

약탈과 강간을 자제시키고 아편을 멀리하게 하는 것으로 병사들이 그에게 불만을 품어가는 것을 느끼며 영사는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주위에서 그를 잘난체 한다고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영사가 아니면 최소한의 전략 전술을 이해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그에게 지휘를 맡기고 있긴 하지만 굶주리고 힘들어지면 이들의 프래깅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진실로 숭고한 이상을 품고 싸우고자 하는 이는 오직 그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영사는 악마를 만났다.

만주 벌판의 십자로에서 악마를 만나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십자로는 서양에서 악마와 만나는 주요 통로라는 것을 말이다.

악마는 그의 이상에 깊이 공감하고 그 이상에의 열정을 높이 사서 그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계약자의 힘, 보통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신체와 눈을 가늘게 뜨면 사람들의 영적 아우라를 읽어내는 능력. 그리고 총탄에 머리를 맞아도 재생하는 불멸의 신체까지.

그 힘을 얻고 난 후에는 그는 편히 잘 수 있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뭐라고 하건 간에 군인으로서의 품위를 강요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인간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꿈은 악몽이다.

영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체코제 군도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장갑을 끼고 있지만 장갑 너머로 익숙한 감촉이 느껴진다.

“갑시다.”

영사는 악몽을 기꺼워하며 걸어갔다.

그의 동지들이 말고삐를 잡고 그의 곁에서 대기한다.

* * *

만주벌판을 달리는 열차는 미카도 3형. 미국산 증기기관차를 일본에서 라이센스 생산해 만든 거대한 검은 철마다.

앞에는 만주벌판의 여러 짐승들, 장애물들을 쳐내기 위한 보습이 붙어있어 어지간한 장애물은 열차에서 튕겨나간다.

하지만 선로 위에 바위가 놓여있으면 열차가 탈선할 수 있기에 멈춰서게 되어 있었다.

구배가 있어 속도가 떨어지는 곳에서 그렇지 않아도 감속 운행하고 있던 열차는 멈춰섰다.

그리고 그때 영사와 그 휘하 세력이 몰아쳤다.

총은 몇 발 쏠 필요도 없었다.

만주철도의 직원들이 무장으로 맞서려 했지만 영사는 손쉽게 군도 만으로 그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오히려 그들의 총기도 빼앗았다.

총이 귀한 만주였다. 중국 군벌들도 대부분 총이 없어서 항일대도라는 큰 푸주칼로 무장한 판이었다.

“오, 이거 아리사카 아냐?”

“이 간나새끼 이거 만주군인가?”

아리사카 소총을 들고 있는 병사 한 명이 1등칸 입구에서 서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소년이다. 눈을 굴리며 난처해하는 그 소년은 전장에 나서기엔 너무 어려보였지만 영사와 그 동지들은 소년병 보다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소총을 탐내고 있었다.

30식 아리사카 소총은 1930년대 초인 지금에서 보면 이미 35년 전의 낡은 물건이지만 이것만 해도 지금 만주에서는 명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사의 부하들 중에는 종이 탄피를 쓰는 드라이제 소총을 쓰는 이들도 있었으며 그 드라이제 소총조차 없어서 단창으로 무장한 이도 있었다.

“…….”

하지만 영사는 소년병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 소년병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다.

이상에 취해 처자식을 내버리고 소련으로 떠났던 그였다.

그가 버린 처자식은 차가운 만주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그의 아들은 운 좋게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 이 열차를 경호하는 경호병이 되어 지금 눈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닮았구나.”

아들의 얼굴에서 영사는 문득 어린 시절의 시현을 본다.

하지만 아들의 모습을 망막에 새기기도 전에….

-탕!

동지 중 한 명이 드라이제 소총을 쏴서 소년을 죽여버린다.

“…….”

“미쳤소!? 동지?”

“아니 이 간나새끼가 방금 방아쇠에 손을 걸었소!”

영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뒤져보았다.

소년의 목에는 부러진 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가 있었다.

그가 어린 아이를 안고 울며불며 매달리던 아내에게 정표로 남겨준 것이었다.

영사는 자신의 목을 더듬어 목걸이를 꺼냈다.

똑같이 옥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였다.

두 개의 옥을 서로 맞대어 보니 세월에 닳아 매끄러워진 부분까지 똑같이 맞물린다.

이미 몇 번이나 본 꿈인데도 그는 무뚝뚝하게 그 짓을 반복하고 자신의 아들의 시체를 뒤져 품안에서 열차 화물칸 금고의 열쇠를 찾는다.

“아 신묘하오. 어찌 거기 있는 걸 아시오?”

보고 있던 동지 중 한명이 감탄해서 말한다. 영사가 너무나 빠르게 마치 알고 있던 것처럼 소년병에게서 열쇠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이 꿈이 몇 번째인지 모르기 때문이오.”

“음? 전날 좋은 꿈 꾸셨소?”

동지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소.”

영사는 그리 대답하고 아들의 시체를 버려두고 일어났다.

그의 뒤에서 동지라는 것들이 아들의 시체를 약탈하고 소총 탄약과 소총을 놓고 악귀처럼 다투고 있었다.

* * *

장면이 바뀌었다.

영사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아리사카 소총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의 입에는 구겨진 담배가 물려져 있고 주위에는 온통 총구를 겨눈 동지들의 모습이 있었다.

“왜 날 겨누고 있지?”

“그대는 악랄한 트로츠키주의자요.”

“지금이라도 전향하시오. 영사 동지.”

레프 트로츠키가 소련에서 실각한 것은 1929년, 하지만 트로츠키의 모든 것을 지워내는 숙청은 1930년 중반기, 그가 제 4 인터내셔널을 주창하고 새로운 공산당을 만들 때 시작되었다.

적군에서 훈련받고 물자를 지원받던 공산당계 독립군은 스탈린을 추종하고 있었으며 트로츠키 주의자로 낙인찍힌 자는 스탈린계나 중국공산당 계, 어느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하 내가 트로츠키 주의자? 당신들처럼 머저리들이 트로츠키 주의가 뭔진 아시오?”

“뭐?”

“멍청한 새끼들아. 너희들 대가리로 공산주의가 뭔진 알긴 하냐? 헤겔의 변증법을 이해하긴 하고? 공산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스탈린 주의니 트로츠키 주의니 어떤 주의를 가질 만큼 대가리가 굴러가긴 하냐? 아니 사실 문맹이지? 노어는 읽고 쓸 줄 아냐?”

“이런!”

그들이 영사에게 총을 쏘았지만 영사는 슬프게도 총탄 정도로는 죽지 않았다.

총탄이 그를 쑤시지만 그는 코웃음쳤다.

“괴, 괴물!”

“어쩐지! 이자는 늙지도 않고….”

-퍽!

그 순간 영사의 손에서 군도가 번뜩였다.

영사는 한때 동지였던 이들을 군도로 베어버리고 분수처럼 쏟아지는 핏줄기 속에서 소매에 손을 넣었다.

딱성냥을 손끝으로 비벼 불을 붙인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희들은 저능아야. 어떤 주의를 가지기엔 너무나 멍청한 새끼들이지만 머릿수가 필요해서 살려뒀었지. 하지만… 그런 너희들보다 더 멍청한 놈은 이런 네놈들 데리고 뭔가 해보겠다고 내 자식도 내 손으로 죽인 나지.”

영사는 이후에 벌어질 일도 잘 안다.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한다.

스탈린주의건 마오주의건 주체사상이건 간에 나라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국 관료가 필요하며 권력이 누군가에게 집중되면 부패가 일어난다.

인간은 이상을 이룩하기엔 너무나 속물이며 모든 권력은 결국 부패한다.

위대한 합일, 이상을 실현하고 세상에서 악을 제거하기에 인간은 그 본질부터 악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희망은 남아있다.

악마.

초월자.

그에게 이 불멸의 힘을 안겨준 위대한 존재가 이 세상에 아직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어떤 위대한 진리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 위대한 존재에 귀의하고 싶다.

인간의 학문으로 그려낸 이상이 아니라 명백히 존재하는 초월자에 귀의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악마가 빠르게 영사에게 흥미를 잃는 게 느껴졌다.

[생각과 달라.]

[나는 그대의 이상에의 열정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그 열정이…]

[변질되었군.]

악마들은 영사가 열망의 방향을 바꾼 것에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날 버리지 마십시오. 위대한 자여. 나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젊은 시절 심취했던 것이 최악의 형태로 부서지는 걸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저것을 이상으로 삼고 열정을 유지하라는 말입니까? 이 열정 때문에 나는 내 아들도, 처자식도 죽이고 아무것도 남지도 않았는데?”

[….]

[너는 우리가 기대한 자가 아니다.]

악마들은 영사에게서 떠나갔다.

악마들이 준 권능은 여전히 그의 몸에 남아있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을 곁에서 지켜보는 위대한 존재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텅빈 공허속에서 영사는 울부짖었다.

“아, 안돼! 날 버리지 마! 이제와서… 이제 와서 그냥 버리면 어떻게 해! 차라리 날 데려가라! 너희들의 지옥에 날 처박아 줘! 이 멍청한 놈을 비웃고 벌해달란 말이다!”

그러나 악마들은 코웃음 쳤다.

[여기가 지옥이다.]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의 지옥이니.]

[20억의 지옥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수명도 없이 영원히 배회할 그대의 지옥이 우리가 만들 지옥보다 나으리라.]

악마들은 영사를 버렸다.

하지만 영사는 악마들에게 애원하며 피분수 위에서 몸부림쳤다.

“아니야! 이제와서 날 버리면 난 어떻게 하라고! 제발… 날… 나를 받아들여줘! 받아들여주시옵소서! 그대들에게 귀의함을 허락하소서!”

영사가 악마들에게 애원할 때마다 악마들은 그런 영사를 경멸과 혐오로 대했다.

* * *

한국전쟁의 전화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서 영사는 미군 트럭을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꿀꿀이죽을 파는 곳 근처에서는 드럼통을 망치로 두들겨 펴는 사람들이 있었다.

철판을 얻기 위해 드럼통을 망치로 두들기며 안에 들어있는 기름기를 그냥 강물을 퍼서 씻어낸다. 환경 오염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의 결말이 저 아래 시궁창으로 흘러내려간다.

영사는 그곳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미 계약이 해지된 몸이지만 죽지 못하고 살아가는 망집의 괴물이 된 그는 자신의 망상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른 계약자들이 있을 거야.”

악마들은 인간성에 매료되어 인간들에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인간들의 욕망과 갈망이 넘쳐나는 곳에서 악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흐흐흐. 다른 계약자들. 그들에게 가면 다시 악마들을 만날 수 있어. 그렇지 않으면….”

영사는 인간들의 세상을 견딜 수 없다.

헛된 이상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뛰쳐나왔다.

이상의 동지라는 것들이 방아쇠를 당겨 그의 아들을 죽였다.

그런데 그 이상이라는 게 허망하게 박살나버리는 걸 자신의 눈으로 봐왔다.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견디고 살 수 있을까?

인간이란 그릇은 이상을 품기엔 부적합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고 대부분은 멍청하며 그 똑똑한 사람들도 욕망에 휩쓸린다.

게다가 그런 똑똑한 이들이 만들어낸 이상과 사상은 불같은 지옥을 이 땅에 불러왔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영사에게 남은 희망은 저 초월자들 뿐.

그래서 영사는 인간들의 욕망과 갈망이 소용돌이 치는 곳에, 인간성이 들끓는 암흑가에 투신했다.

* * *

“즐거운 꿈이군. 간만에 좋은 꿈을 꿨어.”

눈을 뜬 영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눈을 뜬 곳에는 카드 도박을 하며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거친 사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너머 한 소년이 손에 신문지를 말아 쥔 것을 들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 패거리에서는 칼잡이로 유명한 장광이란 녀석이 그 소년을 상대로 신문지를 둘둘 말아 만든 종이 칼로 후려쳐가며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야 이자식아! 이정도 솜씨로 아가씨를 지킬 수 있겠냐?”

비록 신문지를 말아 만든 종이 칼이라 해도 장광이 휘두르는 신문지 뭉치는 빠르고 위력적이어서 소년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침착하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디스틱한 장광은 소년을 실컷 유린한 뒤에 이쯤이면 되었다 싶었는지 목덜미를 향해 찌르기를 넣었다.

그러나 그 순간 소년은 목으로 날아드는 공격을 피해내고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칼을 반으로 접어 뭉친 뒤 오히려 장광의 명치에 찍어버렸다.

장광이 켁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 이 새끼가?!”

“돌았나!”

다들 일어나 소년을 린치하려는 그 순간, 영사가 나서서 그들의 뺨을 후려갈겼다.

“모두 그만. 야. 꼬마야. 제법이구나. 이름이 뭐지?”

“현, 시현.”

“현시현?”

“아뇨 시현. 시씨입니다.”

“흠. 굉장히 드문 성씨군.”

영사는 바닥에 떨어진 소년의 칼을 차올려 집어들었다.

“종이 뭉치니까 반으로 접으면 더 단단하고 튼튼해지지. 저 녀석이 널 괴롭히려면 목을 찌를 걸 알고 기다리고 있었구나. 제법인데?”

영사는 시현이 장광과의 스파링에서 상대의 수를 완전히 읽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어린 놈의 배포가 아니다.

“하지만 이건 단검술 훈련인데 이래선 훈련이 되겠나. 강철 나이프도 이렇게 접어서 찌르려고?”

“그건 죄송합니다….”

“아니다. 조용해보이는 거랑 달리 꽤나 성깔이 있는 놈이로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으니까 화가 나서 받아치려고 했단 말이지? 이거 재밌는 녀석인 걸? 한동안 심심풀이는 되겠지.”

영사는 그리 말하고 시현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시현이 흠칫 놀랐지만 그는 시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문득 그는 이 시현이라는 소년이 자신의 아들과 비슷한 또래라는 걸 깨달았다.

“한동안 날 따라다녀라.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가르쳐주마.”

“어?”

“형님?”

다른 건달들이 영사의 말에 당혹감을 느꼈다.

“앞으로 이 녀석은 내가 관리한다. 함부로 손대지 말도록.”

영사는 그리 말하고 시현을 바라보았다.

“…….”

그는 미소를 지으며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배고프지 않냐?”

“………”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년을 보며 영사는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자신의 가슴이 다시 아파오는 걸 느꼈다.

역시, 절대자에 귀의하는 수밖에 없어.

눈앞의 소년이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게 너무나 괴로워서 그는 다시금 절대자에 대한 망집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마도 그의 정신은 이미 망가져서 평생 이 망집을 벗어나지 못하겠지.

이것이 바로 그가 살아가야 할 남은 생애 모든 것이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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