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3화 (3/181)

0. Prolog. 낭떠러지 (3)

난 잿빛세계의 폐허를 탐색했다. 실재세계에서 건물이 있던 위치라면 이곳에서도 비슷한 건물을 찾을 수 있었고, 그 건물이 옷 가게라면 이곳의 건물도 옷 가게였다.

그러나 실재세계와는 달리 모든 게 폐허처럼 버려져서 멀쩡한 옷가지는 찾을 수 없었다. 낡은 건물은 군데군데가 허물어져서 벽 너머의 바깥이 훤히 보이고 널찍한 전면의 창문은 다 깨져있었다.

「여긴 아무도 없어.」

‘확실해?’

「적어도 지금 내 능력으로 탐색 가능한 수준에서는…?」

허물어진 벽 틈으로 흐릿한 햇빛이 들어온다. 난 그 빛에 의지해 실내의 누더기 같은 옷들을 하나씩 뒤적이기 시작했다.

‘힘을 얼마나 잃어버린 거야?’

「거의 다 잃어버렸어. 네가 약한 것들만 골라서 사냥을 좀 해야 돼.」

내 안의 악령은 악을 잡아먹고 성장한다. 그래서 실재세계에 있었을 때 나는 해결사로 활동하면서 악령들의 육체를 죽이고, 녀석은 악령들의 영혼을 죽여서 나는 돈을 벌고 녀석은 힘을 키운 것이다.

실재세계였다면 의뢰를 받아서 일거리(사냥감)를 찾겠지만 이곳엔 그런 것도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찾아내야 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은신처를 마련해야 해.’

「잿빛세계에도 밤이 있다고 하던가?」

‘있어. 이 세계의 밤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은 어둠이 몰려올 거야.’

세계가 품은 악이란 어두울 때 더 강해지고 어두울 때 더 자주 출몰한다.

내 안의 악령이 힘이 없고 내게 그럴듯한 장비가 없는 지금으로선, 밤이 되기 전에 은신처를 마련하는 것이 필수다.

「야, 그런데 잿빛세계에서 실재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세간의 정론이잖아.」

‘그렇지.’

「그럼 이런 곳이 있다는 거랑 이곳에 무엇이 있다는 걸 실재세계의 사람들이 어떻게 아는 거야?」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렇다. 잿빛세계에서 실재세계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면 실재세계의 사람들은 어떻게 잿빛세계의 형태를 짐작하고 있는가.

「알겠다. 우리처럼 양쪽을 오갈 수 있는 존재가 과거에도 있었나 봐.」

그럴 수도 있고.

‘일단 지금 신경 쓸 건 그게 아니야.’

난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누더기를 집어서 먼지를 털어냈다. 얼마나 오래된 건지도 모를 누더기를 몸에 걸치는 게 썩 달갑진 않았지만 알몸인 채 있는 것보단 한결 나았다.

이어서 나는 옷 가게 내부를 더 탐색했지만 먼지 쌓인 쓰레기만 나뒹굴었을 뿐 마땅히 무기로 쓸 수 있는 건 없었다.

‘기초적인 소재라곤 목재랑 돌멩이가 다야. 당장 사냥은 이걸로 시작하자.’

「문제가 생겼어. 아무래도 ‘숫자’를 보는 능력까지 잃어버린 것 같아.」

그 중요한 능력도 잃어버렸다니.

‘미치겠네. 할 수 있는 게 뭐야?’

「기초적인 탐색밖에 없어. 헤헤. 네가 사냥해서 먹여줘.」

내 악령은 존재를 보고 세계가 그 존재에 대해 정의하는 악의 정도를 꿰뚫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둑을 봤을 때 그 도둑이 갖고 있는 악이 1이라면, 살인자를 봤을 때는 1보다 높은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그 능력이 없으면 이 세계의 이물들을 뭘 보고 사냥할지 말지 결정해야 되냐?’

「덩치가 작고 덜 포악한 것들부터 노리자. 그러다 너무 센 것 같으면 도망치는 거야. 아까 보니까 네 달리기도 제법 빠르던데.」

나는 벽을 이루고 있는 나무판자 하나를 뜯어냈다.

뚜득!

나무판자의 각 꼭짓점에 못이 하나씩 박혀있었다. 그 못을 돌조각으로 긁어서 빼낸 다음, 나무판자를 돌로 열심히 갈고 부숴서 조잡한 봉처럼 만들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천을 두르고,

‘불 좀 만들 수 있냐?’

「만들 수 있었지.」

발화(發火) 능력이 없다고 해서 그냥 천을 이리저리 잘 꼬아 묶었다. 처음에 빼낸 못 네 개는 돌로 두드려서 봉의 끄트머리에 동서남북으로 박았다.

못 박힌 방망이. 완성이다.

「네가 쓰던 은도끼랑 손목쇠뇌가 그립네. 그 비싼 장비들을 내가 몇 번이나 강화했는데 승천자가 다 압수해버렸잖아.」

‘몇 번을 생각해도 좆같아.’

「근데 그 새끼들은 그거 만지지도 못할 거야. 걔들은 고귀한 손에 신성함이 넘쳐나거든.」

‘장비 만드는 능력이나 서둘러 되찾도록 해.’

「그래도 지금은 숫자를 보는 능력이 먼저겠지?」

‘그건 최우선으로.’

* * *

나는 앙상한 나무 뒤에 숨어서 녀석을 관찰하는 중이다.

“우우우우….”

잿물이 흐르는 강가에 처음 보는 이물이 쪼그린 채 앉아있다.

생식기가 없는 빼빼 마른 남성의 맨몸. 털이 다 뽑힌 새 같은 머리를 달고서 흰자위도 없이 까맣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이물이다.

“우우우우우….”

이물이라는 건 아직 잘 모르겠다.

10분 정도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저 자리에 무릎을 끌어모아 앉은 채 계속 흐느끼는 모습이다.

강물에 떠내려온 불어 터진 사체를 제 앞에 끌어다 놓고 뭐가 그리 슬프다고 계속 우는지 의문이다.

‘저것도 악한 존재가 맞나?’

「저 손 좀 봐.」

울고 있는 이물의 손이 새빨간 피로 더럽혀져있다. 손에 묻은 피가 말라붙지 않은 모습을 보면 피를 묻힌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저 사체를 만든 장본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체를 까마귀처럼 뜯어먹는 것일 수도 있고.」

‘부리에 피가 묻어있지는 않은데.’

「만약 저게 사체를 만든 장본인이라면 저걸 먹으려고 죽인 건 아니라는 말이지.」

‘가끔 이 근처 강에 사체가 떠다녔던 이유가 저놈 때문인가?’

「죽이면 알 수 있어. 어서 사냥하자.」

내 안의 악령에게 먹일 악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너무 배가 고프다.

녀석 몰래 강을 건너려고 한참을 돌았다. 실재세계에 돌다리가 놓인 장소를 기억해 찾아갔더니 그곳에도 돌다리는 그대로 있었다.

돌다리를 건너서 다시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왔다. 등만 보이는 이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이렇게 뒤에서 보니 날개뼈가 좀 과하게 돌출되어 있는 녀석이다.

“우우우….”

몽둥이를 쥐고 있는 손이 어렴풋이 떨렸다.

「너보다 왜소하고 무방비로 그냥 앉아있는 놈이야. 너무 긴장하지 마.」

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긴장감을 최대한 통제한다. 심장이 조금은 빠르게 뛰면서 전신의 감각이 예민해진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은 게 없지만 내 몸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서 당장의 사냥에 전력을 집중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

타닷!

나는 그 즉시 땅을 힘차게 박차며 이물의 배후로 뛰어들었다.

“흐읍!”

매복 후 기습은 단 한 번만 통하는 수다. 이 한 번의 몽둥이질에 내 팔이 나가떨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했다.

몽둥이가 이물의 머리에 닿기 직전까지도 녀석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퍼억…!

이윽고 몽둥이가 이물의 머리를 강타했다. 몽둥이 끄트머리에 박아둔 못이 이물의 머리에 깊은 상처를 냄과 동시에 두개골을 깨부숴 선혈이 터지게 하였다.

“우우우아아아아아….”

두개골이 반쯤 함몰된 이물은 그대로 엎어져서 제 머리를 쥐어싸맸다.

“우우우우우….”

그러고는 새까만 눈으로 날 올려다보며 또 구슬프게 우는 것이다.

“뭐, 뭐야…?”

아무 저항도 없다.

나보다 약자가 분명하다. 이대로 때려서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정도다. 그래서, 그래서 이상하다.

이건 정말 악한 존재가 맞는가.

「악하지 않은 존재가 이 잿빛세계의 어디에 있겠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기에 정상적인 존재는 결코 없을 거야.」

“우우…. 우우우….”

버려진 세계. 잿빛세계.

이 세계에 있는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악하다. 그건 진리다.

「너랑 나랑 이대로 굶어죽을 건 아니잖아.」

‘나도 안다고…!’

퍼억!

그대로 이물의 머리만 노려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물은 머리를 감싸서 최대한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 앙상한 팔로 성인 남성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퍼억!

이물의 팔이 이상한 각도로 으스러졌다. 까만 눈으로부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퍼억!

내 얼굴에 피가 튀고 이물의 머리가 더욱 함몰되어 진득한 뇌수가 흘렀다.

…쩌억!

선혈과 뇌수가 몽둥이를 흥건하게 적셨을 때, 이물은 구슬픈 울음을 멈췄다.

사냥 성공이다.

난 본능적으로 주변부터 확인했다. 안개처럼 탁한 공기 너머로 보이는 폐허, 잿물이 흐르는 강, 살아있는 식물이라곤 없는 강가, 그리고 어느덧 저물어가는 해.

「난 다 먹었어.」

내 안의 악령이 먹을 수 있다는 건 악을 말하는 것이고, 방금 죽인 이물은 악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너는?」

불을 피울 수는 없다. 발화 능력을 아직 되찾지 못했다. 그리고 불을 피웠다가 그 빛이나 연기를 보고, 멀리까지 퍼지는 그 냄새를 맡고 잿빛세계의 이물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그보다 멍청한 죽음이 없다.

막상 이 순간이 되니까 망설여진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사람이라서 해야 하는 짓이야.」

「어쩔 수 없잖아. 난 악한 영혼만 먹으면 되지만 너는….」

나는 방금 죽인 이물의 사체로 손을 뻗었다. 파르르 떨리는 손아귀로 사체의 팔을 붙잡고, 미리 가져온 날카로운 돌칼을 들었다. 돌칼이라고 하기에도 좀 부끄러운 돌멩이지만 말이다.

그대로 어깨 아래를 베어냈다.

스걱! 스걱!

살점 밑으로 벌레가 파먹은 듯 구멍이 송송 뚫린 뼈가 드러났다. 이어서 나는 강가에 널린 적당한 크기의 돌을 주워서 뼈를 내리쳤다.

퍼억!

뼈가 으스러지며 사체의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

인육은 아니다. 이 사체가 한때 사람이었다고 한들 지금은 악령화를 거쳐서 뭔지 모를 이물이 된 것이다. 애당초 사람이 아니라 잿빛세계에서 태어나 계속 살아온 이물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쨌든 이건 이물의 살점이다. 먹어서 육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고기가 갖고 있는 악에 의한 것이고, 그런 악은 내 안의 악령이 얼마든지 먹어치울 수 있다.

팔의 절단면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물어서, 붉은 살점을 뜯어냈다.

그것을 입에 머금고 씹었다.

“욱…!”

역겨운 피비린내가 입안 가득 퍼져서 내 숨과 하나가 되었다. 혓바닥처럼 물컹하지만 힘줄처럼 질긴 것이 도저히 씹히질 않아서 억지로 목구멍까지 넘겼다.

“웨에엑…!”

다 게워내고 말았다. 먹은 것도 없어서 애꿎은 위액만 나왔지만 말이다.

하지만 굶주림에 먹을 것을 원했던 몸은 호흡에 섞인 역겨운 피비린내조차 참을 수 있게 하였다.

“으으….”

내 혀는 입안에 남은 작은 살점에서조차 끔찍한 감칠맛을 찾아냈다.

“우으읍…. 우읍….”

나는 원하지 않는데 내 몸이 원한다는 감각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죽기보다 먹기 싫지만 먹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거의 정신을 놓다시피 갈 길을 잃은 내 손은 기어코 이물의 팔을 가져다 입에 댔고, 내 입은 게걸스럽게 살점을 씹었다. 그리고 사체의 눈망울에 남은 눈물까지 모조리 핥아서 입안의 핏기를 가시게 했다.

그렇게 몇 번의 토악질을 반복해서야 내 뱃속에 이물의 고기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 * *

잿빛세계에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춥지는 않은 날씨, 밤하늘에는 달도 별도 없다. 밤공기는 변함없이 탁해서 호흡하는 것이 여전히 버겁다.

나는 지금 강가의 변소를 은신처로 삼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다. 바깥으로부터 들리는 건 강물이 흐르는 소리와 간혹 이 근처를 지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박자의 발걸음 소리였다.

「네가 아까 먹은 건 ‘날지 못한 아기 새’의 고기였어.」

내 안의 악령은 소화를 마치면서 사냥감에 대한 실체를 일부 알아냈다.

「날지 못한 아기 새의 눈물에는 항우울 효능이 있더라고. 네가 지금 멀쩡한 정신으로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건 그 덕분이야.」

‘날지 못한 아기 새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잿빛세계를 방황하고 있던 거야?’

「좌절, 우울, 슬픔.」

「형제를 향한 약간의 질투와 어미를 향한 약간의 원망이었지. 그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져서 그런 뒤틀린 형태로 이 세계를 떠돌게 됐던 것 같아.」

그것도 악이라고 치부하며 벌하는 끔찍한 세계다. 하지만 또 그런 점에서는 잿빛세계도 실재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세계든 곱게 살지 못하고 곱게 죽지 못한 존재들은 무언가로 뒤틀리는 것이다.

「잿빛세계의 존재들은 악령이 아니라 이물이라고 부르는 게 맞았어. 이 세계의 존재들 대다수는 애초에 악령화라는 단계를 밟지 않았던 거야.」

「그냥 실재세계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죽어서 여기로 온 것 같아. 이곳 대다수 이물들에게 있어 실재세계는 전생이라고 할까….」

눈이 어둠에 적응했지만 잿빛세계의 밤은 몽둥이의 색깔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둡다. 그래도 난 몽둥이에 묻은 선혈을 누더기로 닦아내며 물었다.

‘숫자를 보는 능력은 되찾았어?’

딱히 뭐라고 정의할 수 없는 능력.

숫자를 보는 능력.

「그것부터 되찾았지. 참고로 아기 새의 악은 단 0.6에 불과했어.」

‘고작 0.6의 악으로 그렇게 뒤틀린 존재가 될 수 있다니….’

「여기서 계속 살다간 나도 악에 잠식당해서 이성을 잃을 것 같아.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실재세계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나도 이곳에서 계속 살다간 미쳐버려서 이물이나 악령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재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지 않았나.

돌아가기 위해선 내 안의 악령이 힘을 되찾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사냥을 거듭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 잿빛세계라는 환경에 적합한 장비부터 마련해야 한다.

‘숨 쉬는 게 어려워서 잠도 못 자겠어.’

「상점도 의뢰 보상도 없는 이곳에서 소재를 구하는 방법은 오로지 사냥뿐이야.」

‘아기 새를 사냥하면서 얻어낸 악은 다 써버렸나?’

「숫자 보는 능력을 개방하는 일에 다 써버렸지. 애초에 그건 먹을 악도 별로 없는 사냥감이었잖아.」

하긴, 고작 0.6의 악으로 뭘 하겠는가.

‘더 악한 존재를 사냥해야겠네.’

「그래야 뭐라도 진전시킬 수 있을 거야.」

결론은 이제부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두리에 작은 주조소가 있어.’

장비부터 마련해야 한다.

‘폐허 중심으로 들어가면 첫날에 조우했던 그 녀석처럼 너무 강한 것들이 있을 테니까 당장은 변두리가 최선이야. 그 작은 주조소에서 은제 무기는 기대할 수 없겠지만.’

「케베크 주조소라면 철이 있겠지.」

‘그래. 내일은 거기로 가서 무기부터 만든다.’

「쓸만한 철이 남아있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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