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Prolog. 낭떠러지 (4)
강가를 따라 드문드문 자리한 날지 못한 아기 새들은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사실 저항도 하지 않고 우는 그것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마음이 썩 편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세계가 그 어린 존재들을 악이라 정의하고 있다 생각하니 움직임에 망설임은 점차 사라져갔고, 무뎌졌던 죄책감조차 더는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날지 못한 아기 새들을 다섯 마리나 때려죽였다.
사체에서는 살점을 떼어내 은신처로 삼은 변소 안에 못을 박고 걸어두었다. 불을 피우기 마땅치 못한 환경이고 적절한 발화 능력도 없어서 그렇게 고기를 말려서 먹기로 한 것이다.
한 마리당 가지고 있는 악은 0.6이었고 다섯 마리를 죽이면서 내 안의 악령이 먹게 된 악은 3이었다.
「악에 대한 탐지 범위가 조금 더 넓어졌어.」
‘탐지 1계(階)는 됐냐?’
「1계는 됐어. 탐지 범위는 대략 스무 걸음 정도.」
세상의 모든 마법과 주술을 통틀어 영적인 힘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들엔 ‘9계’가 있다. 어떤 이는 선천적으로, 어떤 이는 후천적으로 그런 능력들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모든 영적인 능력들은 마치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개방되고 강화된다. 어떤 뿌리로 향하는가에 따라서 그쪽 계통의 새로운 능력들을 개방하거나 기존의 능력들을 강화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지식은 영적인 능력에 대한 계통과 그 종류들을 주술서, 교본 등의 형태로 세상에 알리고 있다.
그래도 세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능력들이 더 많다는 게 정론이다.
「탐지 2계까지도 금방 강화할 수 있을 거야.」
악령은 본디 악을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진다. 그런데 내 안의 악령은 능력 강화와 개방을 미리 알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잠재력이 있다.
「비록 지금은 예전의 능력을 되찾는 일에 불과하지만 말이지.」
어쨌든 탐지가 1계까지 강화되었다. 덕분에 폐허 변두리에 있는 주조소로 가는 길에는 몇몇 위험한 이물들을 조기에 발견하여 충돌 없이 우회할 수 있었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왜? 다 왔잖아.」
다 오긴 했다. 서른 걸음 바깥의 암벽 앞에 무너진 농가처럼 보이는 벽돌 구조물이 있는데, 저것이 바로 실재세계에도 있는 케베크 주조소다.
이 잿빛세계에서도 저것이 주조소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건물 근처에는 커다란 항아리 모양의 벽돌 용광로나 녹슨 주조 도구들이 보인다.
「부식된 철을 소재로 쓰기엔 좀 그래.」
금방 부러지니까.
“흐읍…. 하….”
잿빛세계의 탁한 공기 때문에 금방 피로감이 몰려온다.
만약 이 앞에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면, 혹은 내가 전력으로 도망쳐야 할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면 이쯤에서 조금의 휴식을 취함이 옳다.
난 앙상한 나무 사이, 바스러지는 잿빛의 나뭇잎 더미에 엎드렸다. 내가 몸에 걸치고 있는 허름한 누더기가 나약한 나를 가려주는 위장색이 되어주길 바란다.
그대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날지 못한 아기 새의 눈알을 하나 꺼냈다.
「목말라?」
‘아니. 전혀.’
날지 못한 아기 새의 눈알은 귀중한 식수다. 역하긴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꺼내든 눈알에 손톱을 박아 넣고 천천히 찢었다.
그리고 빨아서 마셨다.
「목도 안 마른데 왜 마셔? 항우울 효과가 필요한 거야?」
‘기도가 너무 아파.’
「그거 마시면 좀 괜찮아?」
“우윽….”
비릿하고 투명한 액체를 억지로 목구멍에 넘겼다. 식도와 기도는 서로 다른 기관이지만 이렇게라도 뭔가를 마시니 목구멍에 쌓인 재가 좀 씻겨내려가는 것 같다.
이러고 있으니 기름진 음식이 생각난다.
실재세계에 있었을 때는 가끔 리인한테 기름진 음식을 사주고 함께 먹기도 했는데. 부엌에서 값싼 등불을 하나 켜놓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리인에게 공부를 강요당하는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당연시했던 그런 날들이 인생의 행복이었던 것 같다.
‘여기 공기는 최악이야.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전부 다 최악이라고.’
속이 비어버린 눈알은 흐물흐물한 가죽처럼 변했다. 나는 혹여나 어딘가에 있을 이물들이 이 눈알의 흔적을 찾을까 싶어 바스러지는 나뭇잎과 잿더미 속에 슬쩍 파묻어 처리했다.
‘차라리 실재세계가 나았어. 이제 보니까 내가 실재세계에서 매일 내뱉던 불평들이 다 배부른 소리였던 것 같아.’
내 처지를 탓하고 세상을 욕하면서 내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그 바닥보다 더한 밑바닥이 있었다.
더는 추락할 곳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더 추락할 수 있던 것이다.
「방금 생각난 게 있어.」
‘뭔데?’
「무기 다음엔 방독면을 만들자. 어차피 실재세계로 돌아가서 얼굴을 가릴 것도 필요하니까.」
무기든 방독면이든 만들기 위해선 소재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난 반드시 저 주조소를 정리해야만 한다.
또한 저 주조소만 정리해낸다면 변소보다 넓은 공간의 은신처로 삼아서 작은 불까지 피울 수 있을 것이다.
‘남은 악은 어느 정도지?’
「1.5를 탐지 강화에 쓰고 나머지 1.5는 아껴놨어.」
난 엎드린 그대로 못 박힌 몽둥이를 꺼내들었다. 날지 못한 아기 새를 다섯 마리나 죽이면서 꾸준히 선혈을 닦아내긴 했지만 붉은 색감이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은, 당장에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무기는 내 목숨과 같다.
‘이걸 조금이라도 강화해 줘.’
「원하는 요소라도 있어?」
‘그냥, 휘두르다가 부러지지 않게만 해줘.’
그렇게 1.5의 악을 소모한 결과, 표면의 질감이 조금 더 매끄럽게 변한 몽둥이가 되었다. 마치 저품질 유리를 입힌 것처럼 아주 약간의 광택도 느껴진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일어나서 주변부터 확인했다.
탁한 공기 때문에 안개라도 낀 것처럼 가시거리가 짧다. 변두리까지 왔기에 폐허는 조금 멀찍이 보이는 듯하다.
당장 내 주변에 이물로 보이는 사물은 없다. 시야 전체에 움직임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대로 주조소 내부만 확인하면 되겠다.’
「빨리 가자. 지루해.」
이번 일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잿빛세계에서 거칠 관문들의 난이도가 크게 뒤바뀔 것이다.
이제 난 주조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세계는 너무 지루하다고.」
‘제대로 집중해. 퇴마 시켜버리기 전에.’
조심스레 열 걸음을 더 가보니 어렴풋이 땅이 울리는 듯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미약한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느껴진다.
「주조소 안에 악한 존재들이 있어.」
‘내가 상대할 수 있는 것들인가?’
「조금 이상해. 직접 봐야 알 것 같아.」
탐색 능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복잡한 존재들을 상대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충 악을 기준으로라도 말해봐.’
「일단 커다란 거 하나. 그리고 작은 것들 여섯 마리가 같은 장소에 모여서 망치질…? 같은 걸 하고 있어. 커다란 녀석은 가만히 있고 작은 것들 여섯 마리가 망치질을 하는 거야.」
지금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미약한 진동의 원인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캉.
……캉.
주조소 벽에 귀를 대보았다.
캉…! 캉…! 캉…!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서 망치질을 하고 있다.
망치질을 하는 존재들이 평범한 장인이라던가 잿빛세계의 기적적인 생존자들이라면 좋겠지만, 내 안의 악령은 그 희망을 완강히 부정했다.
「작은 것 여섯 마리에게서 느껴지는 악은 각각 1에서 2 정도. 큰 녀석은 10을 살짝 넘기는 것 같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확실히 말해줄 수 있는 건, 지금 저 안에 있는 것들은 절대 인간의 영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거야.」
도대체 뭘 망치질하고 있는 걸까. 이 변두리의 작은 주조소에 모여서 망치질이나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역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겠다.
난 기억에 의지해 움직였다. 주조소 벽을 따라 빙 돌아서 후문으로 접근한 것이다. 두꺼운 나무에 쇠 손잡이가 달린 후문에는 실재세계와 마찬가지로 작은 철창이 달려있었다.
한껏 숨을 죽였다. 나는 손에 몽둥이를 꼭 쥐고 머리만 살짝 옮겨서 철창 사이로 주조소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철창 바로 너머에 두 눈이 있었다.
“…!”
놀라서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다시 보니 이건 눈이 아니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가 움푹 파여서 까맣게 보이는 것이었다. 눈썹이 있는 자리까지 파여서 눈알뿐만 아니라 눈 근처의 살점을 전부 둥글게 도려내버린 것 같다. 그리고 눈 밑에 새빨간 피가 흥건하다.
그래서 난 더욱 숨을 죽였다. 가만히 멈춰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혹여나 내 심장소리가 앞에 있는 이물에게 들릴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앞이 안 보이는 건가?」
녀석은 미동도 없다. 새까맣게 파인 눈으로 그저 가만히 서있는 것 같다.
「악한 존재가 맞아. 하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놈이 가진 숫자는 보이지 않아.」
‘네가 꿰뚫어볼 수 없는 경지라고?’
「경지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나는 탐지 1계밖에 되지 않잖아.」
참, 그랬었다.
「최소한 10은 넘기는 존재일 거야. 영적 존재감을 숨기는 특성도 갖춘 것 같고.」
그래서 녀석의 악을 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내 안의 악령이 머금고 있는 악은 2.1이므로 녀석이 가진 10보다 낮고, 탐지 능력의 수준은 고작 1계.
게다가 상대가 영적 존재감까지 숨길 수 있다면 오히려 이쪽에서 녀석을 탐지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다.
도대체 이 눈깔 파인 이물의 정체가 뭘까.
「이러면 안에서 망치질을 해대는 작은 것들 여섯. 그리고 가만히 있는 커다란 녀석 하나. 거기에 이 눈깔 파인 놈 하나가 전부라는 거지.」
포기할까. 안전하게.
뭔지도 모를 상대가 합쳐서 여덟 마리다. 이대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오늘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문 앞까지 걸어왔는데도 반응이 없어….’
그 말은 즉,
「앞이 안 보이는데 그렇다고 귀가 밝은 놈도 아니라는 거네.」
우리는 생각이 일치했다. 다만 나는 망설였다.
우리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내 안의 악령은 웬만해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잿빛세계의 모든 이물이 처음이다.
「나 한번 믿어봐.」
「얘는 높은 확률로 좆밥이야.」
난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쇠로 된 문고리를 살며시 쥐었다. 그리고 달팽이에라도 빙의한 것처럼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손잡이를 당겼다.
끼긱…
캉! 캉! 캉!
녹슨 쇳소리가 났지만 그보다 뒤에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가 훨씬 컸다.
이윽고 문을 완전히 열어보았다.
내 앞에 서있는 눈 없는 이물은 나와 비슷한 복장에 비슷한 신장이었다. 누더기를 걸친 사람의 몸에 사람의 머리, 장발의 노파처럼 보이는 행색에 흥건하게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녀석의 뒤로 슬쩍 시선을 옮겨보니 망치질을 해대는 여섯 마리와 가만히 있는 커다란 한 녀석이 보였다.
캉! 캉! 캉!
코가 아주 길고 허리가 새우처럼 기형적으로 굽은 이물이 여섯 마리다. 그것들은 오른손 자체가 살점에 눌어붙은 쇠망치였는데, 그것으로 바닥에 깔린 새빨간 살점을 때리고 있었다.
왼손에 말뚝보다 작은 대못을 들고 바닥에 깔린 새빨간 살점에 꽂아서, 오른손으로 연신 망치질을 해대는 것이다.
캉! 캉!
그리고 바닥에 깔린 새빨간 살점을 따라서 시선을 옮겨보니, 그 살점의 정체는 다름 아닌 ‘혀’였다.
「뭔 존재들이지? 저 짓거리에 무슨 의미라도 있나?」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상대를 보는 것만으로 정체를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은 탐지 능력이 1계라서 그럴 수가 없다.
지나치게 비대한 혀를 내밀어 바닥에 깔고 있는 이물은 너무 뚱뚱해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보기 흉한 여인처럼 생겼다.
나체인 건지 늘어지는 살가죽에 옷이 파묻힌 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벅지살이고 가슴이고 뱃살인지, 그냥 보기 흉한 덩어리가 저 자리에 앉아서 혀에 망치질을 당하고 있는 기이한 광경이다.
캉! 캉!
바깥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던 망치질은 주조소 내부에 시끄러운 소음을 낳고 있었다.
「어쩔 거야?」
‘해볼게.’
캉!
망치질 소리에 집중한다.
캉! 캉! 캉!
이물 여섯 마리의 망치질에 일정한 박자가 있었다. 나는 임기응변으로 그 박자를 외워서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캉! 캉!
그대로 힘껏 내리쳤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눈 없는 이물의 머리를 일격에 쪼개버릴 기세로 내리쳤다.
몽둥이질의 소리는 망치질 소리에 묻혔다.
“아파…”
그런데 눈 없는 녀석의 머리가 쪼개지지 않았다. 두피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는데 쓰러지진 않은 것이다.
“아파아아…!”
그 순간, 눈 없는 녀석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날 찌르거나 때리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녀석의 두 손에 눈알이 하나씩 들려있던 것이다. 노란색 홍채와 매끈거리는 표면 사이로 울퉁불퉁한 혈관이 빨갛게 드러난 눈알이다.
분명 뽑혀진 눈알인데 기이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고개 돌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흐릿하다. 아직 밤이 되려면 한참 멀었을 터인데 시야의 외곽이 까맣게 잠식되어서 혼란스럽다.
어지럽다. 쓰러질 것 같다.
‘앞이…. 앞이 이상해…’
「진정해. 아무 소리도 내지 마.」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으려고 내 허벅지를 스스로 꼬집었다.
「시력과 정신력을 빼앗는 저주야.」
허벅지를 꼬집은 손가락에서 핏물이 묻어 나왔다. 너무 세게 꼬집어서 누더기 바깥까지 피가 스며나온 것이다. 그걸 보자 때늦은 통증이 허벅지에서 퍼져나갔고, 난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캉! 캉! 캉!
나는 다시 이어지는 망치질 소리에 맞춰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녀석의 다리만 보며 몽둥이를 힘껏 내리쳤다.
…철퍽!
마침내 눈 없는 녀석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녀석은 피거품을 입술에 잔뜩 묻히며 가래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나는 몽둥이를 고쳐 쥐었다.
캉! 캉! 캉!
그대로 망치질 소리에 맞춰 연달아 세 번을 더 휘둘렀다. 눈 없는 녀석은 머리가 부서져서 뇌수를 질질 흘렸고, 그 죽음을 증명하듯 내 안의 악령은 녀석이 가지고 있던 악을 잽싸게 먹어치웠다.
「방관자.」
방관이라면 흔히 있는 죄악이다.
「가지고 있던 악은 13.」
흔히 있는 죄악인 만큼 그렇게 무거운 악은 아닌데, 실재세계에서 도대체 뭘 방관했기에 이런 잿빛세계의 이물이 되어 악을 13이나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걸 딱 하나 짚어서 말해줄 수가 없어. 너무 많아서 보이지가 않아.」
한 마디로 실재세계에 살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방관하며 살아온 모양이다.
「녀석의 눈알은 간단한 저주에 필요한 주물이나 약한 저주 속성의 소재로 쓸 수 있어.」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단, 녀석이 죽었어도 녀석의 눈알은 똑바로 마주하면 안 돼.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시력을 조금씩 빼앗기다가 자기가 만든 어둠 속에 갇혀서 광인이 되고 말 거야.」
나는 방관자가 두 손에 꼭 쥐고 있던 눈알 두 개를 하나씩 천으로 싸서 품에 넣었다.
‘13의 악은 전부 탐지 강화에 써.’
「그냥 먹어서 성장하면 안 돼?」
딱히 특정한 능력 강화나 개방에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먹어서 모든 능력이 전체적으로 강화되는 것.
그런 것을 녀석은 성장이라고 표현한다.
‘탐지에 써. 지금은 성장기반이 될 능력도 몇 개 없잖아.’
「흥.」
캉! 캉! 캉!
와중에도 망치질은 계속되고 있다. 허리가 굽은 왜소한 여섯 이물과 혓바닥을 내놓고 있는 뚱뚱하고 커다란 이물이 하나.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고 싸우는 건 매 순간이 도박이다. 그래서 방금 13의 악을 고스란히 탐지에 투자한 것이기도 하다. 13의 악으로는 탐지 2계까지 강화할 수 없지만 어쨌든 악을 투자했으면 능력 자체는 향상이 된다.
‘저것들 정체가 좀 보여?’
「살짝 보인다.」
우선은 아까부터 넓게 펴진 혓바닥에 망치질을 해대고 있는 작은 여섯 마리다.
「불순물을 섞은 골조 살인마.」
그리고 혓바닥에 망치질을 당하고 있는 뚱뚱한 녀석은,
「혓바닥의 주동자.」
‘…그게 다냐?’
「미안하지만 탐지 1계로선 악명(惡名)을 알아내는 게 최선이야. 저것들에게서 쓸만한 게 있는지, 저것들의 구체적인 정체가 뭔지는 죽여야 더 알아볼 수 있어.」
‘탐지 2계까지는 가야겠네.’
머릿수가 많다.
세계가 저것들에게 붙여준 악명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악명으로부터 대강 추측할 수 있는 게 있으니 그 점은 다행일까.
이 일만 제대로 끝내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수월해질 것이다.
‘혓바닥 주동자는 발설로 뭔가 죄악을 저질렀을 거야. 그러니까 녀석의 무기는 아마도 내뱉는 말이나 휘두르는 혓바닥이 되겠지.’
「상상력 좋네. 그래도 저 혓바닥은 대못 여섯 개에 박혀서 꼼짝도 못할 것 같은데? 혀가 저러니 말도 제대로 못할 거고.」
‘그러니까 녀석은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고. 망치질을 해대는 골조 살인마 여섯 마리부터 해치워야겠어.’
「그 몽둥이 하나로 다 때려잡기엔 위험한 머릿수야.」
그럴싸한 무기도 방어구도 없는데 여섯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면 부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덩치 큰 혓바닥 주동자 한 마리까지 위험요소다.
「차라리 다른 곳에서 소재를 찾아보는 게 어때?」
‘마음 굳혔어.’
난 누더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좀 전에 습득한 방관자의 눈알을 꼭 쥐었다.
「목숨 참 쉽게 건다.」
주조소에 널린 철제 도구들은 다 녹슬었는데, 모순적이게도 골조 살인마들의 쇠망치는 비교적 멀쩡해 보인다.
‘저 새끼들 손에 달려있는 쇠망치는 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