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6화 (6/181)

1. 귀소본능 (1)

주조소에서 삼백 걸음은 떨어진 위치.

다리와 손목은 다 나았다.

…툭!

난 혓바닥 주동자의 큼지막한 일부 살점을 무너진 다리 앞에 놓았다. 이러면 나중에 이 살점을 탐하러 뭔가 오기는 올 것이다. 그게 뭐가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투툭!

방관자의 눈알 두 쪽도 살점과 함께 버렸다. 간단한 주술을 부리는 물건으로 요긴하게 써먹었지만 아쉽게도 그 효력은 짧다고 한다.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주물이었다면 좋았겠는데 말이다.

* * *

혓바닥 주동자의 사체 대부분, 방관자와 골조 살인마들의 고약한 살점은 주조소 앞에 있는 용광로에 구겨 넣었다.

불을 지펴서 사체를 태워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용광로 위로 적잖은 연기가 발생할 것이라 그냥 이렇게 덮개만 닫아놓고 방치하기로 했다.

내부의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계된 용광로 속 사체에는 재를 덮어두었다. 그래서 사체의 끔찍한 냄새가 퍼져나가진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이라곤 보이지도 않으니 곤충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용광로 안에 구더기가 생길까 궁금하긴 하다.

「사체를 파먹을 벌레들이 없는 것 같지만 폐허에는 뒤틀린 뼈다귀들이 널려 있었어.」

그래서 내가 짐작하건대, 사체를 먹거나 처리하는 이물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폐허에는 뼈다귀가 아니라 사체가 널려있어야 했으니.

하지만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 잿빛세계에서 저 용광로에 숨겨진 사체를 이물들이 찾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손으로 꺾고 재가 묻은 마른 나뭇잎을 긁어모아서 주조소 안으로 옮겼다.

“휴….”

주조소의 장인이 쓰는 방에는 잡다한 가구들이 있었고 그중엔 깨진 유리거울과 더러운 침대도 있었다.

유리거울의 깨진 균열 사이로 내 얼굴을 보니 이게 누구인가 싶다. 멀끔한 청년은 어디로 가고 웬 폭삭 삭은 거지가 있는 게 아닌가.

「멀끔한 청년…?」

그리고 내 동공의 색이 빨갛다. 누가 봐도 악령화의 증상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다.

‘힘을 다 잃었는데 눈 색깔은 왜 아직도 이래?’

「힘을 되찾는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어?」

‘그게 왜?’

「예전에 우리가 의뢰 처리하면서 획득한 악으로 성장하는데 걸린 시간이 있잖아. 그때랑 비교해서 지금은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그렇긴 하다.

「이건 네 영혼이 기억하는 거야. 전생은 아니지만 마치 전생의 특성처럼 취급해서 원래 가지고 있어야 했던 능력을 빠르게 획득한다는 말이지.」

실재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50이 넘는 악령들을 처리하는 게 내 직업이었다. 그때 며칠에 한 번씩 습득했던 악은 지금에 비하면 훨씬 큰 숫자였고, 당연히 우리는 지금보다 그때 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승천자와 네 마법사가 구축한 추방 술식은 어떻게 견뎌낼 수가 없는, 오로지 한 대상을 향한 매우 신성한 마법이었다.

우리 둘의 영혼이 일부 추방당해서, 그 추방당한 분량의 영혼이 갖고 있던 힘까지 잃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게 내 눈이 붉은 거랑 무슨 상관인데?’

「말했다시피 이건 영혼이 기억하는 거야. 네 영혼은 나와 협력하면서 악을 먹는 방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경험이 있는 능력에 대해선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

「그리고 영혼이 기억하면 몸도 기억하는 법이야. 너의 뇌, 너의 근육, 너의 살갗, 신경까지 악을 먹고 성장한다는 행위에 있어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라는 거지. 눈은 살갗과 달리 숨길 수 없이 투명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악이 노출되는 거야.」

눈은 살갗과 달리 숨길 수 없다.

악령화의 보편적인 증상은 일단 동공이 붉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부가 백지처럼 새하얗게 변하면서 머리칼까지 피부처럼 하얗게 변한다. 그런 다음엔 괴이한 능력이 생기거나 육체가 뒤틀리면서 완전한 악령이 되는 식이다. 보편적으로는.

‘나도 계속 강해지면 나중엔 피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나?’

「그렇진 않아. 그 정도는 내가 숨길 수 있거든.」

‘그런데 눈은 숨길 수 없다는 건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투명한 부위니까.」

어쨌든 내 안의 악령을 없애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평생을 이렇게 붉은 눈을 달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평생 사람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살게 아니라면, 실재세계보다 수십 배는 혹독한 이 잿빛세계에서 계속 살아갈 게 아니라면 이런 눈은 반드시 숨겨야만 한다.

하지만 난 실재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실재세계로 가서 눈을 잘 숨기고 있다가도 누군가에게 들키게 되면 그것만으로 인생에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내 이름도 정체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그런 인생이 될 것이다.

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죄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이 눈 하나 때문에.

「…그…. 불편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방독면 좀 만들자.’

상관없다.

얼굴을, 이름을, 정체를 숨기고 죄인처럼 사회의 그림자 속에서만 은둔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뭐 대수인가.

어차피 내 직업은 모두가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해결사였다. 거기에 더해서 이젠 사형수가 되었다. 이건 비단 눈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얼굴도 이름도 정체도 숨겨야 하는 운명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승천자에게 찍혀 단두대에 오른 순간부터 양지에서 살아가기엔 글러버렸다. 아니, 애초에 악령의 눈을 들키지 않았다고 한들 나는 해결사라는 직업으로 줄곧 음지에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음지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몰랐어. 네가 그런 일을 당하고 인생을 잃어버렸으니까. 틀림없이 날 원망하고 있을 줄…」

‘방독면 좀 만들자고.’

「응?」

‘숨쉬기 힘들어. 얼굴도 가려야 하고.’

그래서 좀 전에 생각이 바뀌었다. 무기보다 앞선 과제가 있던 것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이전에 더 원초적인 욕구는 호흡이 아닐까.

잿빛세계에서 끊임없이 풍기는 역겨운 악취도 그렇고, 그냥 숨만 쉬어도 짜증이 나서 더는 못 버티겠다.

* * *

방독면.

그것은 해로운 공기를 걸러내는 정화 기능이 주가 되는, 대체로 코와 입을 완전히 덮어서 호흡기를 외부 공기와 차단하는 가면의 일종이다.

부가적인 기능으로 안면 보호나 악취를 방지하는 방독면들도 있으며, 영력(靈力)이 뛰어난 장인이나 마법사에 의해 강화된 방독면은 그 자체만으로 착용자에게 이로운 효과를 주기도 한다.

영력이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영혼에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힘이다. 그 잠재력이 큰 사람들은 특수한 의식을 치르거나 축복을 받음으로써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영력이 거의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부리는 걸 ‘주술’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내 안의 악령은 악을 먹을수록 영력이 강해져서 마법을 부릴 수 있다. 인간이 아니라서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잠재력에 한계가 없는 것이다. 또한 녀석의 영력이 강해지면 내 영혼도 악에 동화되어 함께 강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부리는 주술은 마법사들이 부리는 신성한 마법과 달리 부정한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서 실재세계의 그들이 인지할 수 있는 주술을 대놓고 부렸다간 흑마법이라 여겨지며 즉각 화형을 당할 염려가 있다.

「네 다리와 손목을 고치는데 6을 썼어. 남은 악은 13이야.」

누군가는 영력을 공부와 수련을 통해 성장시키지만, 내 안의 악령과 내 영혼은 다른 악을 잡아먹음으로써 성장한다.

쿵.

나는 골조 살인마의 쇠망치 하나를 책상에 올려놨다.

‘단단하고 가벼운 합금을 만들고 싶은데….’

「아직 재결합 1계라서 합금은 무리야. 애당초 소재도 없고.」

결국 지금 쓸 방독면은 쇠망치를 소재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우선은 이 쇠망치를 최대한 얇게 가공해서 써야겠지.’

「안면 보호는?」

‘방독면의 부가적인 기능은 나중에 조금씩 추가해나갈 거야. 지금 그런 기능에도 악을 투자하기엔 일러. 네가 말했듯 소재도 부족하고.’

따라서 방독면의 필수적인 기능 두 개를 우선 해결한다.

‘먼지를 거르고 악취를 막아줘.’

「악취를 막는 건 쉬워. 다른 냄새가 나는 소재를 방독면 안에 두면 되거든. 그런데 먼지가 문제야.」

‘먼지가 왜?’

「극세사를 뽑아내야 하는데 그건 재결합과 발화 능력의 높은 계를 요구해. 그렇다고 이 잿빛세계에서 이미 완성된 극세사 소재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야.」

그렇구나. 내가 극세사를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항상 상점에서 구매만 해봤지.

‘옷가지를 소재로 대체할 수는 없나?’

「할 수 있어. 그래서 그걸로 대체하긴 할 거야. 공기에 섞인 고운 재만 걸러내도 숨 쉬는 게 한결 편해지겠지. 하지만 극세사가 아닌 탓에 정화통을 아주 크게 만들어야 해. 악취를 막는 기능이 있어야 하기도 하고.」

‘정화통이 크다면 얼마나 크게 되는데?’

「머리가 세 개인 것처럼 보일걸? 목뒤로 빼서 만들면 호흡이 불편할 것 같고…. 가방처럼 들고 다니거나 어깨 위에 다는 것도 좀 그렇잖아?」

목뒤로 빼면 고개를 뒤로 젖힐 수 없고 앞에다 만들면 마찬가지로 고개를 내리기 힘들어진다. 가방처럼 들고 다니면 기동이 힘들고 어깨 위에 달면 양옆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주술로 강화해서 모든 방향의 시야각을 확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나 크게 만들면 몸의 어디에 달든 전투에 방해가 돼.’

「어쩌지….」

우리는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화된 방독면이나 가면이라도 해로운 공기를 걸러내는 장치적인 부분이 있다.

양말에 모래, 자갈, 숯 따위를 넣어서 더러운 것을 걸러내는 것처럼 반드시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 마법이나 주술로만 만들 수 있는 극세사가 있다면 정화통의 크기를 극단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냄새를 막는 것도 문제라서 향긋한 약초 같은 것을 넣을 공간은 필요하고….

‘양말…….’

양말에 모래, 자갈, 숯 따위를 넣어서 더러운 것을 걸러낼 수 있다.

방독면의 정화통도 같은 원리다. 달팽이 껍데기나 소라의 내부처럼, 혹은 접시를 겹친 것 같은 공간 속에서 해롭고 더러운 것을 걸러낸다.

그렇게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정화통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강화되지 않은 방독면들은 대체로 둥근 형태의 정화통을 달고 있다.

왕국에 역병이 돌 때가 아니라면 평상시에 방독면이라는 건 구경도 하기 힘들다. 방독면이란 애초에 마법이나 주술로 강화하지 않으면 호흡하는 게 정말이지 불편한 가면이기 때문이다.

뭔가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양말……?’

그러니까, 그러니까 양말에 모래, 자갈, 숯 따위를 넣어서 걸러내는 것처럼.

그냥 ‘길게’ 빼도 되는 게 아닌가?

어차피 해로운 공기는 완벽하게 거르지 못해도 된다. 그건 나중에 방독면을 강화해서 해결해도 상관없으니.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잿빛세계의 공기에 있는 빌어먹을 미세한 재 가루와 악취를 막는 기능이다.

「정화통을 길게 뺀다는 건 무슨 말이야?」

나는 즉흥적으로 어떤 형태를 떠올렸다.

‘양말에 걸러내는 원리를 이용하자. 긴 깔때기처럼 만들어서 그 안에 걸러내는 장치랑 악취를 막는 소재를 넣는 거야.’

「양말에 거르는 건 자연스럽게 밑으로 흐르지만 공기는 그렇지 않아. 너 폐활량에 자신 있어?」

그건 다른 조잡한 방독면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결국 강화되지 않았다면 어떤 방독면이든 숨 쉬는 건 불편할 것이다.

「너는 그걸 머리통에 쓰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싸울 거잖아.」

「마치 코를 막고 존나 큰 담배로만 호흡하는 꼴이 될 텐데, 그 상태로 뛰거나 싸울 수나 있을까?」

일리가 있다.

‘그 부분은 악을 소모해서 보완하자고.’

「아하.」

이러면 해결이다.

* * *

「좀 기괴한데?」

골조 살인마의 쇠망치를 소재로 완성된 방독면은 마치 까마귀의 부리처럼 앞으로 돌출된 형태가 되었다.

내심 인정한다. 상상한 모양이 그대로 나오긴 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좀 기괴하긴 하다.

‘이물들이 날 자기들이랑 같은 이물로 착각하면 좋겠네.’

「존재가 존재를 보는 건 겉모습으로 구별하는 게 아니니까 그건 힘들 거야.」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어두침침한 금속의 가면에 눈을 가리는 부분은 유리조각을 썼으며, 바깥에서만 검게 보이는 식이라 내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노출될 일은 없다.

얼굴이 조금도 노출되지 않는 방독면을 쓰고 누더기를 손봐서 로브처럼 머리까지 다 가리도록 하였다.

누더기 바깥의 상반신과 관절부에는 갑옷이나 방어구를 덧댔다. 전체적으로 옷도 장비도 신경을 많이 쓴 덕분에 기괴하면 기괴했지 거지 같다는 느낌은 이제 없다.

「실재세계 사람들이 보기엔 무서울 수도 있겠어. 진짜 악령들을 수천 마리는 죽인… 암흑가의 지독한 용병이나 암살자 같아.」

악령을 수천은 아니더라도 수백 마리는 죽여봤다.

‘차림새가 좀 그렇긴 하지만 이게 효율적이야. 실재세계에선 접근하기 꺼려지는 사람처럼 보여야 하니까.’

그래서 내친김에 옷도 방독면도 이렇게 기괴한 느낌으로 만들었다.

「너는 항상 선택에 이유가 있구나? 그 정신병만 고치면 참 매력적인 사람일 텐데.」

‘요즘 시대에 멀쩡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랑 비교했을 때 내가 앓고 있는 건 그렇게 심각한 수준도 아니라고.’

「음……. 그래, 싸우는 직업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이제 좀 살만해졌다.

숨 쉬는 게 편해졌다. 약초가 없어서 당장은 탄내 나는 숯을 방독면의 부리 같은 부분에 넣어놨지만 이것만으로도 악취는 어느 정도 막아진다.

‘실재세계로 돌아가면 더 좋은 소재와 약초를 쓰고 강화까지 할 거야.’

그리고 기존에 쓰던 못 박힌 몽둥이는 소재로 소모되었다.

대신 더 좋은 무기가 생겼다.

무언가를 쪼개기에 좋은 길이의 도끼다.

실재세계에 있었을 때는 강화된 은도끼를 썼지만 지금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건 투박한 쇠도끼다. 어두침침한 저품질 날과 좀 전까지 몽둥이였던 것을 손잡이로 만든 것이다.

「무게는 어때? 네가 쓰던 은도끼보다는 가볍게 했는데.」

‘가볍게 했어도 체감은 약간 무겁지만. 괜찮아.’

무게가 있으면 움직이고 휘두르기 어려워지는 대신 파괴력이 높아진다. 팔에 붙은 방어구에 근력을 강화해주는 기능을 붙이거나 다른 능력을 개방하면 그때 가서 도끼의 무게를 늘릴 것이다.

* * *

밤엔 춥지 않다. 그래서 불을 피울 이유가 있다면 고기를 굽기 위함이었다.

골조 살인마, 방관자, 혓바닥 주동자의 고기는 그것들이 전생에 사람이었다는 걸 상상하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 선택은 날지 못한 아기 새였다.

다시 강가로 왔다.

무너진 다리 앞에 혓바닥 주동자의 살덩이를 뒀었는데 지금은 그 살덩이가 없어졌다.

대신 바닥에 핏자국이 선명해서 그걸 길잡이로 따라간 결과, 날지 못한 아기 새가 강가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우…”

녀석의 양팔과 손이 피범벅이다. 마치 방금 묻힌 것처럼 말이다.

‘저럴 줄 알았어.’

지금까지 내가 마주한 아기 새들은 모두 사체를 앞에 놓고 무릎을 모아 앉은 채 울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이었던 것이 아니라서 왜 그러는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죽은 것을 앞에 가져다 놓고 우는 습성이 있던 거야. 강가에서.’

「미끼가 통했네.」

이번에는 그냥 당당하게 아기 새의 뒤로 걸어갔다. 0.6의 악에 공격성조차 없는 아기 새는 지금 기초적인 장비를 갖춘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쿠적…!

두개골이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이제 아기 새 정도는 고통 없이 일격에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 * *

「남은 악은 4.6이야.」

‘성장에 써.’

아기 새 한 마리를 잡은 다음엔 은신처로 썼던 변소까지 갔다.

변소에 걸어둔 고기들도 주조소까지 가져오니 밤이 되었다.

치지지지…

아기 새의 고기로 꼬치를 만들어서 밀폐된 화로에 넣고 바싹 구워냈다. 방독면을 벗어보니 여전히 역한 냄새지만 굽기 전의 날 것보다는 훨씬 괜찮아졌다.

으적으적!

입에 넣고 씹으면 역시나 구역감이 치미는 맛이다. 하지만 전처럼 목젖이 마중 나오면서 속에 있는 것을 반사적으로 게워낼 정도의 맛은 아니었다.

그냥 썩은 고기를 억지로 불에 익힌 정도의 맛이라고 생각하면 편한 것 같다.

「좋네.」

‘뭐가?’

「의식주를 다 해결했잖아. 이 혹독한 잿빛세계에서.」

나도 솔직히 잿빛세계에서 이런 일들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잿빛세계란 뚜렷하지도 않은 악몽의 이야기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난 평범한 사람이야. 네가 없었으면 절대 못해냈어.’

「글쎄? 내가 보기에 넌 절대 평범한 놈이 아니야.」

나는 그릇을 들고 와서 밀폐된 화로에 잿물을 부었다.

치직…!

작게 피워둔 불은 손쉽게 꺼졌다.

밤이 되기 전에 주조소의 모든 문을 닫았다. 빛이 새어나갈 수 있는 창문 및 철창에는 누더기를 걸어서 가렸다.

그리고 이 주조소에 딱 하나 있는 장인의 방을 열고 침대에 누우면 피로가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주조소를 정리한 보람이 있다.

잿빛세계에서 이렇게나 편하게 잘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안 벗어?」

입고 있는 방어구와 방독면을 말하는 것이다.

‘이게 마음이 편해. 숨쉬기도 편하고.’

쇠도끼는 침대 옆에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도록 기대어 놨다.

내일은 폐허의 외곽부터 들어가 조금 더 강한 이물들을 사냥할 것이다. 그러면 더 많은 악을 획득하고 운이 좋다면 소재나 주물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야. 잠깐만.」

‘왜?’

예고도 없었다.

「…그 새끼가 뛰어오고 있어!」

그 새끼가 뭐냐고 물어볼 겨를도 없었다.

내가 반사적으로 허리를 일으켜 쇠도끼를 집은 그 순간,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벽 너머에서 악몽처럼 침투해온 것이다.

“남… 자…!”

크드드득!

벽 너머에서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났으며, 천장에 살짝 보이는 틈새로 별이 두 개 떠있나 싶었다. 그런데 잿빛세계의 밤하늘에는 별이 없고.

제대로 보니 별 없는 밤하늘에 그림자 드리운 얼굴과 소름 끼치는 미소가 있던 것이다. 별 두 개가 녀석의 눈 두 짝이었던 것이다.

“널 찾았어…! 너…!”

그 직후 녀석이 내뱉은 말은,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들어온 그 어떤 말보다 무서웠다.

그건 내가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공포였다.

“나랑 섹스해…!”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시, 싫어 미친 새끼야!”

「이제 보여! 여기 떨어진 첫날부터 줄곧 널 추적하고 있던 거야!」

「악명은 ‘역병을 불러온 마녀’야! 가지고 있는 악은…」

나는 장인의 방에서 뛰쳐나가 주조소 내부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이동함에 따라 벽 너머의 긁는 소리도 날 따라왔다.

이어서 숫자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가지고 있는 악은…! 344…!」

344.

나는 실재세계에 있었을 때도 세 자릿수가 넘어가는 녀석은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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