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귀소본능 (4)
부인과 아들을 토막 낸 나무꾼.
가지고 있는 악은 35.
쿵! 쿵! 쿵!
거구의 이물이 뚜렷한 살의를 표출하며 내게 달려오고 있다.
「악귀. 혐오의 대상을 소환했어.」
나는 새롭게 터득한 능력을 실전에서 써보기로 했다.
키이잉!
핏물로 새겨진 역오망성과 고대의 달력이 둥글게 펼쳐지며 붉은빛을 토해냈다. 그 부정한 소환진의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거미의 모습을 한 악귀였다.
“크르그극…!”
악귀의 등장과 동시에 소환진은 사라졌다. 그리고 내 왼쪽에서 악귀가 등장하든 말든 나무꾼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계속 뛰어오고 있다.
“케에에엑…!”
츠츠츳!
내가 소환한 악귀는 턱을 좌우로 한껏 벌리며 거미줄을 사출했다. 전방으로 뻗어나간 거미줄은 나무꾼의 진행경로에 떨어져서 끈적한 함정이 되었다.
쯔윽…!
그러나 나무꾼은 거미줄을 밟고도 계속 다가왔다.
「느려졌지만 저 정도론 부족해.」
나는 좀 전에 악귀에게 명령했다. 놈을 구속하라고.
그러니까, 내가 내린 명령을 들은 악귀는 놈을 구속하는 방법으로 방금과 같은 행동을 취한 것이다.
‘내가 상상한 건 이게 아니었는데.’
지능이 짐승에 가까운 악귀라 그런지 바닥에 거미줄을 까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더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자.
‘놈의 두 다리를 묶어라.’
그러자 악귀는 뚱뚱한 배를 몇 번 떨더니 다시금 턱을 벌렸다. 거미줄을 만드는 기관이 배에 들어찬 걸까, 악귀는 이번에도 뭔가를 게워내는 소리를 내며 거미줄을 사출했다.
“케에엑…! 케겍!”
쯔윽…!
이번에 사출된 거미줄은 나무꾼의 두 다리에 적중했다. 그리고 거미줄은 마치 악귀의 의지가 담긴 것처럼 움직였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나무꾼의 다리를 중심으로 빙빙 도는 것이다.
쿵!
마침내 나무꾼이 넘어졌다.
“그아아아아아!!!”
녀석은 지면에 코를 처박고는 얼굴을 치켜들었다. 흥건한 코피가 거미줄에 얽혀서 검붉게 더러운 끈처럼 늘어졌다.
「통했나?」
‘네가 그 말을 해서 다시 일어날 것 같아.’
나무꾼은 거미줄의 점성을 억지로 버티며 몸을 일으켰다. 그 점성이 어찌나 강한지 안면의 살가죽이 뜯어질 정도였다.
뚜드드득!
“으으으! 그으으으으으!!”
얼굴, 가슴, 배, 허벅지, 손바닥까지 앞부분만 살가죽이 뜯어져서 새빨갛다. 그런 꼴로 거친 숨을 쉭쉭 몰아대며 더 짙은 살의를 내뿜는 모습이 심히 공격적이다. 또한 폭력적이다.
「내 말이, 진짜 폭력적이네. 혹시 가족을 토막 내기 전에 가정폭력을 저지른 죄악도 추가됐나?」
어디까지나 해결사로서의 내 경험이지만, 실재세계에서 가정폭력을 저지르고 악령화를 일으킨 자들은 대체로 술에 취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다쳐도 아픈 기색이 없고, 이성이 없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마치 지금 저 나무꾼처럼 말이다.
「언제나 세계의 어두운 면만 보며 살아왔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부인과 아들을 토막 낸 나무꾼. 아까 내 안의 악령이 말했듯 저건 대형 쓰레기다.
전생에 끔찍한 죄악을 저지른 괴물이었고, 잿빛세계에 있는 이물이고, 35의 악을 가지고 있어 먹잇감으로 삼아야 할 상대다.
부웅! 부웅!
몸의 정면으로 피를 철철 흘리며 다가오는 나무꾼은 허공에 도끼를 휘둘러댔다.
“그아아아아아!!”
“네놈도 술 마시면 손이 올라가는 새끼였냐?”
“그아아아…!”
나는 쇠도끼를 들고 녀석에게 접근한다.
저 괴물의 본성을 몰라서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여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저런 괴물의 밑에서 태어난 아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은 죽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제 아비를 원망했을까. 신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너무 아프고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내 경우에는 셋 다였던 것 같다.
“그으…! 그으으…! 그으으…!”
똑같이 토막을 낼 것이다. 저 위협적인 거구의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다리부터. 그다음엔 폭력적인 팔을 잘라내고 관절을 하나씩 분리하고 마지막엔 머리를 베어서 토막 난 자신의 몸을 보며 죽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
「진정해.」
“….”
「네가 이성을 잃게 할 정도의 상대는 아니잖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좀 전까지 나도 모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네가 처음으로 죽였던 악령과 비슷한 죄악이라 그런다는 건 이해해.」
화가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삼킬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흥분해서 녀석에게 달려들어 봤자 대책이 없다. 녀석이 휘두르는 도끼의 길이가 더 길어서 위험할 수 있었다.
부웅!
저 커다란 도끼에 한 대라도 맞으면 내 몸은 두 동강이 날 것이다. 하지만 악귀의 거미줄도 떼어내는 괴력이니 손아귀의 힘도 장난이 없을 것이고, 그럼 저 커다란 도끼를 빼앗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놈의 두 팔을 구속해라.’
몇 걸음 뒤에서 날 따라오던 악귀가 턱을 한껏 벌렸다.
“켁…. 케겍…….”
그런데 그 게워내는 소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뒤를 돌아보니 거미줄을 토하긴 했는데 침을 흘리듯 아래로 몇 가닥만 추욱 늘어뜨린 모습이다.
“케윽….”
「뱃속이 비었나 봐.」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나무꾼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보니 전에 숲길에서 내 발목을 묶었던 거미줄은 저 정도의 점성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저 거미줄은 저만한 거구를 구속할 정도로 강력한 점성을 갖추고 있다. 저 정도로 점성이 강력한 거미줄이 나무꾼의 진행 방향에 카펫처럼 촘촘하게 깔려있고, 아직 다 떼어지지 않은 일부 거미줄이 나무꾼의 다리에도 제법 묻어있다.
‘내 악귀의 힘이 다한 건가.’
너무 강한 거미줄을 너무 많이 사출한 탓.
「육체적인 능력으로 쏘아낸 거미줄에 영력을 더한 거야. 결국 갖고 있던 영력을 다 써버린 거지. 그래서 거미줄을 더 만들지 못하는 것 같아.」
“그아아아아아!!!”
괴력의 나무꾼은 곧 거미줄 카펫 위를 벗어날 것이다. 녀석의 보폭을 고려해보면 내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도망치고 싶지도 않다.
「정말로?」
나는 앞으로 뛰었다.
「진짜 그렇게 하려고?」
저 나무꾼보다 끔찍한 것들도 숱하게 상대해왔다.
「위험할 텐데….」
기회는 한 번뿐이다. 성공하면 나무꾼을 쓰러뜨리고 35의 악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실패하면 오늘 나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놈을 물어뜯어라.’
내가 그렇게 명령하자 뒤에 있던 악귀가 내 머리 위로 훌쩍 뛰어서 앞서갔다. 내가 전속력으로 뛰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앞서간 악귀는 나무꾼의 상반신에 달라붙었다.
“케그극…!”
타닥! 타닥!
악귀는 나무꾼의 얼굴을 뜯어먹을 기세로 턱을 움직여댔다. 그 붉은 눈빛이 이형의 것처럼 살벌했고, 악귀와 얼굴을 마주한 나무꾼은 더욱 분노했다.
“그으아아아아!!”
거미를 닮은 저 악귀도 애당초 몸집이 있었다. 그래서 거구를 자랑하는 나무꾼도 녀석과 힘 싸움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 나무꾼의 측면까지 접근했다.
녀석의 다리에 쇠도끼가 닿을 거리까지 접근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악귀의 비명이 위쪽에서 들려왔다.
“카가아아아악!!!”
위쪽을 보자 내 얼굴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나무꾼이 악귀의 턱을 잡아서 좌우로 벌리고 있는 것이다.
…쿵!
그와 동시에 나무꾼의 발치에 커다란 도끼가 떨어졌다. 나무꾼의 도끼다. 그리고 턱이 좌우로 찢어진 악귀가 주르륵 흘러내리듯 지면으로 추락했다.
“흐음!”
나무꾼의 흉악한 주먹이 악귀의 가슴을 때렸다. 그 행동 하나로 악귀는 무력화되었고,
쿠직!
내 쇠도끼는 나무꾼의 발목을 쳤다.
“그아아아아!!!”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명확하게 보였다. 그것은 내 얼굴보다 큰 주먹이 번개처럼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생각을 끝냈다. 지금 내 신체나 장비로는 저 주먹을 절대 피할 수 없으며 막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이어지는 건 거의 본능과 직감에 모든 것을 건 명령이었다.
‘날…’
날 지켜.
그렇게 명령하려고 했는데 놈의 주먹이 훨씬 빨랐다.
쿠저적…!!
바로 그때 악귀의 다리가 주먹을 받아주면서 부러졌고, 나는 조금이나마 속도가 느려진 주먹을 향해 쇠도끼의 날을 향할 수 있었다.
“그아아아아!!”
나무꾼은 괴성을 질렀다. 바로 위에서 지르는 그 소리가 폭음과도 같아서 심장이 철렁할 정도였다.
지금 내 쇠도끼는 긴 손잡이가 부러진 채 흙바닥에 처박혔다.
“그으…! 그으읏…!”
또한 나무꾼은 한쪽 주먹을 잃어버린 채다. 아직 힘이 약한 나로선 녀석의 힘을 역이용하는 수밖에 없던 것이다.
방금 쇠도끼의 날을 있는 힘껏 내려친 나무꾼은 한쪽 주먹이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갈라진 주먹에서는 흥건한 피의 폭포가 쏟아졌고 새하얀 힘줄까지 보였다.
촤악!
나는 아까 쇠도끼로 한 번 찍었던 나무꾼의 발목을 단검으로 쭉 그었다. 그러자 깊게 파인 상처, 붉은 협곡 사이에 발목을 이루는 힘줄이 눈에 들어왔다.
촤악! 촤악!
연달아 단검을 휘두르자 그 힘줄이 끊어지면서, 한쪽 주먹과 발목을 다 잃어버린 나무꾼은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거목을 베었을 때 거목이 어디로 쓰러지는가를 예상하고 피하듯, 나는 나무꾼이 쓰러지는 방향을 최대한 확인하다가 안전한 방향으로 물러섰다.
「빨리 죽여! 빨리!」
‘재촉하지 마.’
내 쇠도끼는 부러졌다. 나무꾼은 앞으로 엎어지듯 쓰러졌다. 그래서 눈이나 경동맥은 노리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 들고 있는 단검으로 저 거구를 빠르게 죽일 방법이 있다면 뒷덜미를 최대한 깊게 찌르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도중에 내 시야의 아래쪽에서 무언가 붉은 것이 움직였다. 나무꾼의 어깨까지 이어진 그것은 나무꾼의 팔이자, 갈라진 채 너덜거리는 주먹이었다.
“…쉬익…!”
내 방독면에서 거친 호흡의 소리가 뿜어졌다. 체력을 너무 많이 소모한 것이다. 나무꾼이 쓰러진 채로 바닥을 훑듯 휘두르는 한쪽 팔을 분명히 눈으로 보았음에도, 다리가 무거워서 피할 수 없었다.
으직!
이번엔 시야가 몇 차례 정도 뒤집혔다. 아마 다리를 강타당한 내 몸이 공중에서 몇 바퀴를 회전한 탓이리라.
지면에 떨어지기 직전,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퍼억!
지면에 떨어진 다음엔 가슴에 담긴 공기가 강제로 빠져나왔다.
“커헉!”
그래도 저번보다는 낫다.
저번에 주조소에서 혓바닥에 맞은 것보다는 이게 한결 낫다. 그때 내 다리는 거의 산산조각이 났었고 지면은 차갑고 딱딱한 주조소의 바닥이었으니까.
나는 곧잘 일어설 수 있었다.
바스러지는 나뭇잎, 수북이 쌓인 재, 흙바닥이 충격을 완화해 준 것이다. 또한 다리에 덧댄 방어구가 골절상을 피하게 해준 것 같다. 그래도 피멍은 들었으리라.
힘이 풀린 내 손아귀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려는 단검을 고쳐 쥐었다.
나는 그대로 한쪽 다리를 절뚝이면서 나무꾼을 죽이러 다가갔다. 그런데 저 거구의 목덜미에 붙은 까만 형체는 뭘까.
「정신부터 차려.」
「악귀가 이미 목을 조르고 있어.」
여덟 개의 다리 중 두 다리가 떨어진 악귀.
녀석이 나무꾼의 목덜미에 붙어서 짧은 거미줄로 목을 조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턱을 쓸 수 없어도 입으로 뽑아낸 조금의 거미줄은 나무꾼의 목을 조르기에 충분한 길이였다.
“그으으으…”
나무꾼은 기력이 다한 듯하다. 피부가 벗겨진 흉측한 얼굴로 두 눈을 다 까뒤집고 짐승 같은 신음을 내고 있다.
「악귀가 죽이는 건 상관없지?」
‘상관없어.’
목줄 능력과 연결된 악귀는 내가 언제 어디서든 소환할 수 있는 소유물이며, 내 근처에 있을 때 악귀의 모든 살상행위는 내가 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악귀가 악한 것을 죽였을 때 상대가 갖고 있던 악은 고스란히 내 것이며, 악귀가 선한 것을 죽였을 때 발생하는 죄악도 고스란히 내 책임이 되는 것이다.
* * *
“결국엔 술, 가정폭력, 친족 살인의 전형적인 사례였다는 것이죠.”
선생은 오늘 내가 겪은 일을 흥미로운 경험담이라도 듣다시피 하였다. 그만큼 내게 거는 기대감이 크다는 것 같기도 하다.
“다친 악귀는 나무꾼의 고기를 먹여서 낫게 해줬어요. 진짜 거미처럼 탈피를 하더니 새로운 다리가 자라나더라고요.”
“혐오의 대상은 실재세계의 거미와 아주 비슷한 악귀라네.”
“나무꾼이 갖고 있던 커다란 쇠도끼는 골조 살인마의 쇠망치보다 품질이 좋았어요. 그래서 그걸로 새로운 쇠도끼를 만들고 방어구와 방독면을 강화하는 소재로 썼어요.”
“그 신발은?”
선생이 턱으로 가리킨 내 신발은 검은 가죽으로 되어 있었다.
“나무꾼의 바지에서 질긴 가죽만 떼어내 만들었어요. 악귀의 거미줄을 실로 쓴 덕분에 신발이랑 지금 입고 있는 누더기 옷도 조금은 사람이 입는 것처럼 변했죠.”
“잿빛세계에서 자급자족을 하나씩 이루고 있구나.”
“그렇죠. 자급자족….”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자네는 악을 숫자로 볼 수 있다 하였지. 그럼 이번에 얻은 35의 악은 어디에 썼나?”
“5는 무기와 장비에 소모했고 나머지 30은 악령에게 먹였습니다.”
“그건 자네 속에 있는 악령이 강해지는 일인가, 아니면 자네가 강해지는 일인가?”
“네?”
선생은 두 번 묻지 않았다.
주름진 눈가, 깊은 눈매에 담긴 붉은 눈동자가 내 진의를 찾고 있는 듯하다.
뭐,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제가 제 안의 악령을 성장시키는 건 곧 제 성장과 같습니다.”
“그런가?”
“네. 악령이 어떤 능력을 얻고 그것을 강화하였다고 한들, 그런 능력과 영력을 휘두르는 일에는 반드시 제 육체와 영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흠…….”
“예를 들어 제가 단일 대상에 대한 탐지 능력을 쓰고 싶다면, 그 단일 대상을 구분할 눈이라는 기관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눈에서 얻은 정보와 탐지 능력을 행하겠다는 의지를 영혼에 넘기고, 제 안의 악령은 영혼에게서 정보와 의지를 받아 악의 힘으로 실행하는 원리죠.”
“그걸 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정리하자면 제 안에 있는 악령은 능력과 영력의 저장소 같은 겁니다.”
그래서 악령이 없는 나는 영력 하나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며, 내가 없는 내 안의 악령은 역시나 이성도 특별한 능력도 없는 흔한 악령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찌 됐든 우리의 영혼은 둘이서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페인. 본디 악령이란 악마가 보내는 것이네. 시초부터 악마가 창조한 것들이지.”
선생은 단어 하나하나를 강조해가며 말했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악령은 자아가 있고 의지가 있지. 실재세계에서 악령화를 일으킨 자들이 미친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이미 악령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이네. 잿빛세계에 떠도는 망자 같은 이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들이지.”
“네, 압니다.”
“주술적인 힘을 휘두르기 위해선 서로가 필요하다. …자네와 자네 안의 악령이 그 조건 하나로 협력한다는 일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게.”
「이거 이간질이지? 너랑 나 사이를 방해하는 거잖아.」
“하물며 자네는 자네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악령과 공유한다고 하지 않았나.”
“….”
“반대로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자네의 안에 있는 악령이 어떤 진의를 갖고 있으며, 진정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전부 꿰뚫어볼 수 있는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또한 아무 생각도,
해선 안 될 것 같다. 왠지.
“자네는 녀석을 들여다볼 수 없는데, 녀석은 자네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럼에도 자네는 그 관계를 신뢰한다니…. 그건 그것대로 무서운 일이라네.”
「늙은이가 뭐라는 거야, 왜 이렇게 말을 어렵게 하지?」
“조금 난해하게 내 우려를 표하긴 했다만. 녀석은 몰라도 ‘자네’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겠지.
* * *
부인과 아들을 토막 낸 나무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으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으며, 그리 독특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은 흔한 사연이었다.
「실재세계에서 그런 일이 흔하다는 게 웃기지. 그래서 나는 인간이 없었다면 이물이나 악 같은 게 있었을까 싶기도 해.」
그 이전에 악령을 창조한다는 악마에 대해서 조금 궁금하긴 하다. 내 안의 악령은 자신을 창조한 악마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신이 악마를 창조한 이유가 뭘까? 그래놓고 천사와 악마들이 태초부터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신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
「이야, 그거 실재세계에서 내뱉으면 돌팔매 맞을 소리네.」
나무꾼을 해치우고 얻은 35의 악에서 5는 장비와 무기에 소모했다. 그리고 남은 30의 악은 악령에게 먹여서 기본적인 능력들을 일부 개방할 수 있었다.
「고속화 1계.」
「항시 발동이야.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빠른 움직임이나 사물의 미세한 변화를 인식할 수 있어.」
마당의 앙상한 나무 사이로 흩날리는 재 가루의 이동경로가 뚜렷하게 보인다. 그런 움직임을 인식하고자 의도하면 인식할 수 있다.
「지적 활동 1계.」
「항시 발동.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생각할 수 있어.」
흩날리는 재 가루나 앙상한 나무에 달린 나뭇잎의 숫자, 그것들의 바스러진 정도로 악귀들이 어떤 나무를 몇 번이나 올랐을까 추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자 하면 생각이 된다.
「이미 알겠지만 두 능력 모두 자유롭게 항시 발동할 수 있어. 지금은 정말 기본적인 수준이라 예전의 너보단 한참 부족하겠지만.」
지금까지 내 안의 악령이 성장하며 머금게 된 악은 62.7이다. 그리고 나무꾼의 사체를 먹이로 삼아서 거미를 닮은 악귀도 다섯 마리나 목줄을 채워뒀다.
이로써 나는 탐지 2계, 재결합 1계, 영력 발산 1계, 고속화 1계, 지적 활동 1계, 목줄 1계를 갖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되찾아야 할 기본적인 능력은 ‘철인’ 하나 남았네.」
철인이란 내 안의 악령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내 영혼에 지속적인 힘을 불어넣고, 그 힘을 받은 내 영혼이 내 육체가 쓸 수 있는 형태로 힘을 주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서 영력을 육체적인 힘으로 연동하는 능력.
육체가 항시 강해지는 것으로 전투를 하든 일상생활을 하든 큰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그런 기본적이고도 좋은 능력을 왜 아직도 개방하지 않았냐면, 철인 개방에 요구되는 악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350이나 필요하지. 단순히 개방만 하더라도.」
그리고 마침 내가 아는, 350 정도의 악을 갖고 잿빛세계를 돌아다니는 이물이 한 마리 있다.
그 이물은 첫날에 날 습격하고 둘째 날에 내가 힘겹게 정리한 주조소까지 찾아와서, 오밤중에 날 죽도록 뛰게 만들고 몇 번이나 내게 위기를 가져왔다.
또한 그 이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날 추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오두막도 결국엔 위험해질 예정이다.
「역병을 불러온 마녀. 344.」
선생은 날 처음 본 날에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 마녀에게 쫓기느라 피곤했을 테니 눈 좀 붙여두게.
그러니까, 목줄 말고는 다른 능력이 거의 없는 선생조차도 그 이물의 악명을 대충 알고 있었다.
그건 제법 오랫동안 그 이물과 조우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이물과 오랫동안 조우했음에도, 그 많은 악귀들을 목줄로 부리고 있음에도 해치우지 못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선생이 나보고 숲속으로 나가서 이물을 사냥하며 힘을 키우라고 한 것도…. 녀석이 날 추적하여 오두막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늦추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녀석이 갖고 있는 344의 악이 내게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오두막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선생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내가 주조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생도 보금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제 보금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정말,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강해져서 실재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잿빛세계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이리라.
「역병 마녀가 오두막에 도착해서 늙은이를 어떻게 해버리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보나 마나 그 늙은이가 악귀들을 부려서 네 흔적을 최대한 지웠겠지. 어차피 역병 마녀가 도착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344의 악을 얻을 수 있기도 해.’
「어차피 그때쯤이면 너는 이미 강해져서 실재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일 거야.」
‘그런 이물이 선생 근처에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
「늙은이의 아들이 실재세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아내기만 하면 되잖아. 그게 약속이었고 다른 거래는 없었어.」
‘맞아.’
「그러니까 늙은이의 아들을 알아내고 잿빛세계로 돌아왔는데 늙은이가 뒈져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때쯤 너는 잿빛세계를 사냥터쯤으로 삼고 있을 거야.」
‘그래서?’
「뭘 물어? 이제 우리에게 그자는 이용 가치가 없잖아.」
‘빚을 질 수는 없다고.’
「왜 이걸 빚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거래잖아. 거래. 아니, 그보다 빼먹을 건 다 빼먹었는데 왜 거래를 신경 쓰고 있어?」
「너에겐 나뿐이야.」
「네가 그 늙은이랑 몸이라도 섞었냐? 아니면 만난 지 한 달이라도 됐냐? 너는 뼈저리게 알잖아. 부모도 친구도 동료도 믿을 수 없는 세계라고.」
「인간은 못 믿어.」
「이 고생 다 견뎌낸 다음부터는 너만 잘 살면 돼. 너 말고 다른 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응?」
내 안의 악령이 뭐라고 현혹하든 나는 역병 마녀를 해치울 것이다. 돌아갈 때 돌아가더라도 역병 마녀는 반드시 해치우리라고, 이미 그렇게 결심했다.
「진짜 고집불통이네.」
‘너는 악령이라서 잘 모르겠지.’
「모르겠어. 답답하게 왜 그러는 거야?」
‘나는 사람이니까.’
지금부터 역병 마녀를 죽이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