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세계 유일의 강령술사 (1)
자살할 때 쓰일법한 올가미 모양의 밧줄을 피멍 든 목에 두르고 긴 혀를 늘어뜨린 악귀.
안타깝기도 징그럽기도 한 외모를 소유한 자살기도자다.
녀석은 원래 6의 악을 갖고 있는 이물이었는데 목줄을 걸어서 내가 쓸 악귀로 만든 것이다.
「전투능력은 없지.」
자살기도자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자살한 사람의 영혼이 악에 잠식당하여 잿빛세계에 떨어진 것이며, 녀석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자살기도자는 자살을 할 수 없다. 육체에 그런 저주를 가지고 다시 태어난 녀석이다.
그래서 자살기도자는 모순적이게도 언제나 타살당하기를 원하고 있다.
- 남자?
- …아니야.
- 네가 아니야….
역병 마녀는 자살기도자를 손으로 쳐버렸다.
퍼억!
그 일련의 행동만으로 자살기도자는 멀찍이 나가떨어져서 척추가 으스러지며 죽었다.
「6을 회수했어.」
자살기도자를 죽인 존재는 역병 마녀지만, 자살기도자는 내게 목줄로 엮인 악귀였다.
그리고 자살기도자가 내게 의존하게 된 이유는 타살당하기 위해서였으니, 그 염원이 이뤄지면서 오히려 내가 악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자살기도자 한정 성불 같은 개념이지. 그런데 그 늙은이는 목줄 능력에 이런 원리가 있다는 걸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몰랐겠지. 이물이나 악귀를 성불시킬 상황 자체가 없었거나.’
바람이 몸의 앞쪽에 부딪히는 감각이다. 그래도 방독면이 있어서 눈은 멀쩡하게 뜨고 있을 수 있다.
스스스스슥!
나는 거미 악귀를 말처럼 타고 와서 숲의 경사면에 내렸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라 주변 환경이 잘 보인다.
멀찍이 폐허가 보이고 폐허로부터 이어지는 비좁은 흙길 끝에 무너진 교회가 있다. 흙길의 한쪽 구석에는 허리가 이상한 모양으로 접힌 자살기도자의 사체가 선명한 색감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역병 마녀는 무너진 교회 앞에서 나무 십자가를 거꾸로 세워놓고 뭔가 중얼거리고 있는 듯하다.
무슨 주문이라도 외우고 있는 걸까.
「늙은이는 역병 마녀가 주술까지 다룰 수 있다고 했어.」
영적인 힘. 즉, 영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은 주술과 마법으로 구분된다.
지금까지 만난 이물들은 신성하지 못하기에 모두 마법이 아니라 주술, 주물만을 썼다. 마법은 신성한 존재만이 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저 역병 마녀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게 일종의 주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감각 증폭을 개방해.’
감각 증폭은 고속화와 지적 활동을 개방했다는 조건에서 부수적으로 개방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감각 증폭 1계. 개방했어.」
「개방에 60을 썼고 남은 악은 421이야.」
나는 곧바로 감각 증폭을 발동했다.
시각, 청각, 촉각 등 내 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이 전체적으로 증폭하여 신체 내외부에서 인식되는 변화들이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온다.
무엇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발걸음 소리, 어디선가 나뭇잎이 부서지는 소리, 바람이 나무를 스치며 갈라지는 소리,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재, 칙칙한 구름의 움직임과 시간 흐름에 따른 그림자의 변화까지 인식한다.
하마터면 머릿속이 총체적 난국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고속화와 지적 활동 능력이 있고, 내게 이런 감각은 실재세계에서 해결사로 활동한 덕분에 앞선 경험이 있다.
나는 감각 증폭에 곧잘 적응할 수 있었다.
- 여긴…… 아닌……
소리를 걸러내고 걸러낸다. 온 사방에서 크고 작게 들려오는 소리를 걸러서 내게 필요한 것만 인식한다. 그러면서 눈으로는 무너진 교회 앞의 역병 마녀를 집요하게 쫓는다.
저 방향에서 들려오는, 저 방향에 있는 역병 마녀가 중얼거리는, 저 역병 마녀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만을 걸러서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 거리에서 녀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 보고 싶은데…….
헤어진 연인도 아니고 저게 뭔 소리인가.
설마 나를 생각하면서 말하는 건가.
- 여긴 아닌데….
먼지 묻은 내장은 이제 피도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까부터 저 십자가는 왜 거꾸로 세우려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십자가의 두께가 얇아서 그냥은 세울 수 없으니 십자가의 머리 부분을 흙바닥에 억지로 쑤셔 넣는 것이다.
- 여긴 확실히 아닌데….
‘쟤가 원래 저렇게 혼잣말을 했었나?’
「그렇진 않았어.」
그런데 저런 혼잣말이 어떤 주술에 필요한 주문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하지만 저 십자가를 굳이 거꾸로 세워서 머리 부분만 땅에 박는 모습이 수상하다. 굳이 저런 행동을 하면서, 굳이 혼잣말을 내뱉고 있다.
「그럼 설마…」
설마.
설마 했던 순간에 역병 마녀의 머리가 돌았다.
그게 기이하게도 천천히 돌아가서 귓바퀴, 광대뼈, 눈썹, 코, 입가, 소름 끼치는 얼굴이 순서대로 보였다.
녀석은 지금 등과 얼굴을 내게 향하고 있다.
머리가 올빼미처럼 180도를 돌아버린 것이다.
- 자기야…….
- 거기에 있었어…?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이 먼 거리에서. 지금 저 녀석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주술을 쓴 거야! 십자가를 땅에 처박은 게 술식이었고 혼자 중얼거렸던 게 주문이었어!」
역병 마녀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게 기어 오기 시작했다. 등과 얼굴을 내게 향한 채 팔을 반대 방향으로 꺾어서 기어 오는 것이다.
이러면 기습은 실패다.
역병 마녀의 배후로 흙먼지가 치솟고 있다. 거미 악귀보다도 빠른 속도다. 저 미친 듯한 속도라면 내게 도달하기까지 앞으로 30초도 걸리지 않으리라.
「당장이라도 거미 악귀를 타고 후퇴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지? 그럴 수도 없고.」
나는 대답 대신 행동부터 했다. 팔을 양옆으로 펼쳐서 두 손바닥이 지면에 향하도록 했다.
키이잉!!
내 양옆으로 일곱 개의 소환진이 전개되었다. 역오망성과 고대의 달력이 핏물로 둥글게 펼쳐졌고, 일곱 개의 소환진들은 각자 붉은빛을 내뿜으며 일곱 마리의 거미 악귀들을 불러냈다.
그래서 지금 나와 함께 싸울 수 있는 악귀는 타고 온 녀석까지 합해서 총 여덟 마리.
거구에 괴력을 자랑했던 나무꾼이나 잘못된 부모의 움직임도 견제할 수 있었던 거미 악귀가 무려 여덟 마리다.
쿠구구구구…
얼굴 방향을 내게 고정한 역병 마녀는 흙길을 벗어났다.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오면서 경사면 아래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제 쇠도끼를 던지면 맞출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리감이다.
‘녀석을 사냥해라.’
“키그그그극!”
여덟 마리의 거미 악귀가 일제히 경사면 아래로 뛰었다. 어떤 녀석은 땅을 밟고 어떤 녀석은 나무에 붙고 어떤 녀석은 아예 나무 위에서 뛰어다녔다.
츠츳! 츠츠츳!
거미줄이 사출되어 경사면에 깔렸다. 일부 거미줄은 역병 마녀의 두 팔을 묶어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두 다리로 걷는 게 아니라 내장을 질질 끌면서 기어 오는 역병 마녀다. 그래서 역병 마녀와 흙바닥의 접촉면이 넓었고, 녀석은 속도가 점점 떨어지다가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히히잇…!”
하지만 역병 마녀의 괴력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두 팔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거미 악귀 네 마리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 네 마리는 물고 있던 거미줄을 끊어내고 재차 새로운 거미줄을 사출하려 했다. 하지만,
촤악!
역명 마녀의 머리칼이 네 마리를 덮쳤다.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 마아아!”
「저 미친년이 진짜…!」
길어진 머리칼이 살아있는 채찍처럼 움직여서 역으로 거미 악귀들을 휘감아버렸다. 머리칼에 묶인 네 마리는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그 머리칼을 끊어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거미들이…. 자기야…. 내가 지금 구해줄게….”
후드드득!
역명 마녀는 문드러진 하반신에서 내장을 흘려냈다. 대장, 소장, 간, 혈액이 보인다. 지면에 깔린 거미줄의 점성에 내장을 내어주면서까지 내게 접근하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녀석의 머리칼 중 한 묶음이 사악한 손아귀처럼 내게 뻗어왔다.
쐐액!
그 머리칼의 속도가 너무도 빨랐다.
‘감각 증폭…’
내가 한 박자 늦었다. 고속화와 지적 활동이라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녀석의 머리칼이 뻗어오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나는 등에 맨 쇠도끼를 재빨리 뽑았다. 머리칼이 내 온몸을 붙잡기 전에 쇠도끼를 휘두르려고 했다. 그런데 머리칼이 이미 내 가슴에 닿기 직전이어서 휘두를 수가 없었다.
절대 붙잡혀선 안 됐다.
그래서 몸을 뒤로 뺐는데 넘어졌다.
「야! 다리! 다리!」
다리가 뭔가에 걸렸다.
두 다리가 머리칼에 묶인 것이다. 쇠도끼로 내려찍고 단검을 뽑아서 그어도 머리칼은 끊어지지 않았다. 발버둥 쳐도 자꾸만 끌려서 역병 마녀와 가까워질 뿐이었다.
촤아아아악!
등과 엉덩이가 흙바닥에 빠른 속도로 쓸렸다.
와중에 역병 마녀는 나를 보면서 미소 짓고 있다.
저 섬뜩한 미소가 심장을 뚫고 등골까지 간질이는 것 같다. 몸속의 피가 차갑게 퍼져나가서 오한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자기야…! 내가 안아줄게…!”
녀석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하면서 나를 탐닉하고 있는 것이다.
‘철인 능력 개방해!’
사냥과 전투에 있어 철저한 계획은 필수다. 나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악을 비축해뒀다.
「철인 1계 개방했어!」
「350 쓰고 71 남았어!」
나는 그 즉시 온몸에 있는 근육이 깨어남을 느꼈다. 엄청난 활력이 몸의 중심을 통과해서 발가락과 손가락 끝까지 혈관을 따라 퍼지는 것만 같은 감각이다. 차갑게 느껴졌던 온몸의 혈액들이 뜨겁게 변하는 듯했다.
이윽고 개방에만 350의 악을 요구하는 철인 능력이 제값을 발휘했다.
부우웅!
나는 무거운 쇠도끼를 한 손으로 던졌다. 수직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날아간 쇠도끼가 역병 마녀의 안면을 강타했다.
쩌억…!
그 순간 내 다리를 잡아당기던 머리칼의 힘이 느슨해졌다.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단검으로 머리칼을 썰어서 한 가닥 한 가닥씩 끊어냈다.
그제야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었다.
…툭!
동시에 쇠도끼가 떨어졌다.
역병 마녀의 코부터 이마까지의 얼굴이 좌우로 갈라져서 너덜너덜 흔들리고 있었다.
“아프잖아…….”
얼굴에 쇠도끼를 맞고 한다는 소리가 저거다.
나는 고함을 질렀다.
“너도 아픈 게 뭔지 알면 좀 적당히 하라고!! 왜 그렇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아니야….”
역병 마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때마다 갈라진 얼굴이 좌우로 혐오스럽게 흔들거렸다.
“아니,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니잖아. 자기야.”
쐐액!
고속화와 지적 활동이 있던 덕분에 그 짧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보고도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크기기기긱…!!”
“케엑! 케윽…!”
“크그그륵….”
역병 마녀의 머리칼이 거미 악귀 네 마리를 찔러 죽였다. 하지만 내가 놀란 건 그 다음 순간이었다.
“…여기가 아파…….”
갈라진 얼굴이 아프다는 줄 알았는데.
역병 마녀는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자기 때문에 ‘여기’가 너무 아프다고…….”
이어서 역병 마녀가 두 다리로 일어섰다.
내장의 무게를 다 버린 덕분일까.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내장을 맨발로 짓밟고 일어선 모습이 가히 위압적이다. 나보다 키가 다섯 배는 큰 것 같다.
“……책임져.”
“씨발…!”
내가 속으로 거미 악귀들에게 뭐라고 명령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녀석을 죽이라고 했던 걸까. 남은 거미 악귀 네 마리가 역병 마녀의 다리로 돌진한 것이다.
저 다리는 정말, 정말 가늘고 기니까 저대로 돌진해버리면 어떻게든 부러지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쿠직!
그러나 역병 마녀는 두 손을 내리쳤다. 그것으로 앞서 달려든 거미 악귀 두 마리가 납작하게 찌그러져서 흙 속에 파묻히듯이 되었다. 마치 벌레를 때려잡는 듯 간단했다.
이어서 돌진하던 두 마리가 주춤거렸다.
“자기야……. 날 용서해 줘….”
“무슨…”
“지금부터 널…….”
지금부터 널.
그다음에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이었다.
온 세상이 귀를 기울인 채 침묵하는 듯했다.
“…!”
녀석이 갑자기 뛰었다. 자기 몸에서 쏟아진 내장을 짓밟고 뛰어오고 있다. 내 보폭으로 스무 걸음 정도 되는 거리를 녀석은 다섯 걸음 만에 다가들었다. 얼핏 거미줄에 의해 발바닥의 살가죽이 찢어지는 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철인을 개방한 상태다.
인간을 초월한 속도를 인지하고, 이제는 그 속도에 맞춰서 몸을 움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냥과 전투에 있어 철저한 계획은 필수다.
‘지금이야!’
…부웅!
거미줄에 묶인 쇠도끼가 역병 마녀의 배후에서 날아들었다. 동시에 역병 마녀의 다리 사이로 뻗어온 거미줄이 나의 다리를 붙잡아 당겼다.
촤아아아아아!
나는 역병 마녀의 다리 사이를 미끄러지듯 통과해 경사면 아래로 굴렀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역병 마녀의 상태를 보았는데, 역병 마녀의 목이 반쯤 잘려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히이이이이! 히이이!”
촤아! 촤아아!
역병 마녀의 목에서 새빨간 혈액이 일정한 박자로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리고 저 멍청한 거미 악귀들이 혈액의 단비에 취해서 제 몸을 핥고 있다.
나는 재빨리 일어섰다. 경사면을 따라서 몇 번 튕기며 내려온 쇠도끼를 주워들었다. 쇠도끼에는 역병 마녀의 혈액이 묻어있었다.
“키엑!”
그 사이에 역병 마녀는 거미 악귀 두 마리를 두 손으로 찍어 죽이고 내게 달려오고 있다.
「아까부터 머리칼을 휘두르는 주술은 쓰지 않고 있어!」
그 말은 즉,
「드디어 영력이 다 떨어진 거야!」
됐다.
* * *
역병을 불러온 마녀는 반쯤 잘린 목과 갈라진 얼굴을 덜렁거리며 산 아래까지 내려왔다.
녀석의 앞에는 페인이 쇠도끼를 들고 서있었다.
“히이이…! 히이이이이이…!”
목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게 된 역병 마녀는 갈라지는 신음소리만 내면서 페인에게 달려들었다.
역병 마녀의 긴 팔이 페인에게 닿기 직전, 철인 1계를 개방한 그의 쇠도끼가 녀석의 한쪽 손목을 쳤다.
“히이…!”
페인의 괴력이 역병 마녀의 그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손목 하나를 쓸 수 없게 잘라내는 정도는 되었다.
터억!
하지만 역병 마녀의 다른 한 손이 자유로웠던 탓에 페인은 몸을 붙잡히고 말았다.
“…이제 날 어쩌려고?”
그런데 페인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별다른 몸부림도 없이 역병 마녀의 손에 붙들려서, 녀석의 하반신이 있는 곳까지 옮겨진 것이다.
“히이이…. 히이이이이….”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찢어진 넝마를 보았으리라. 그 넝마 너머에서 끔찍하고도 혐오스럽게 짓눌려 퍼진 죽음의 균열을 보았으리라.
그래도 그는 말했다.
“내가 졌어.”
“히이이이…”
“네 맘대로 해.”
“히이이이이…!!!”
역병 마녀는 고양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나 흥분한 건지 반쯤 드러난 목구멍에서 다시금 피가 분출되고, 페인을 바닥에 눕힌 다음에 갈라진 얼굴을 그에게 들이밀었다.
피투성이의 입에서 새빨간 혀가 뱀처럼 기어 나와 페인의 방독면을 핥았다. 그 길쭉한 혀가 방독면 다음에 그의 목덜미를, 가슴을, 배를 날름거리며 핥고 페인의 사타구니까지 내려가려고 했다.
“…이딴 거짓말이 통하다니.”
그때 두 손이 자유로웠던 페인은 품속에서 인형을 꺼내들었다.
그 주물의 이름은 부모가 사준 인형.
잘못된 아이로부터 빼앗은 부두인형이었다.
“히이이이…”
부두인형의 목이 반쯤 잘려있었다.
페인은 인형의 덜렁거리는 머리를 쥐었다.
“키히이이이이이이!!!!!!”
역병 마녀는 찢어지는 괴성을 내질렀다.
「배신감.」
「지독한 원망.」
“미친 새끼…!”
그 말을 끝으로 페인은 부두인형의 머리를 비틀어 떼어버렸다.
투욱!
동시에 페인의 옆으로 묵직한 머리가 함께 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