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존재감 (2)
잿빛세계의 어느 장소에서 이물을 무찌르면 실재세계의 같은 장소에서 좋을 일이 생긴다는 가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척척 맞아떨어졌어.」
앞선 사례로는 케베크 주조소와 황금달의 도서관이 있다.
「그런데 넌 사고방식이 참 다르단 말이야.」
「보통은 그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어떤 장소를 찾아서 다시 이물을 해치우고, 실재세계에서 좋은 일이 발생하는지 확인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잖아?」
지금은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보단 누구에게 나쁜 일을 저지를 생각만 있으니까.
나는 베르자인을 통해 깨달은 가설을 다른 관점에서 받아들였다.
‘잿빛세계의 어느 장소에 이물이 모이면, 실재세계의 같은 장소에서 나쁜 일이 생긴다.’
가설의 역이용이다.
오늘 난 이 장소에 이물을 끌어들일 것이다.
「중앙교회.」
「여기엔 이물이 단 한 마리도 없는 것 같네.」
왕궁에서 멀지 않은 위치. 세인트 왕국의 거의 중심에 있는 교회.
또한 세인트 왕국에서 가장 큰 교회이자, 다수의 신관과 신도들이 매일 방문하며 승천자와 함께 기도를 올리는 장소.
다시 말해 이 중앙교회는 승천자의 일자리이자 활동 영역 같은 것이다.
「실재세계에선 너무 신성하고 깨끗한 곳이었지. 괜히 더럽히고 싶을 정도로.」
비록 지금은 죽어버린 흙바닥의 마당 같지만, 원래는 넓은 정원에 꽃이 펼쳐져 있고 대리석으로 된 분수대와 하얀 의자들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실재세계에서는 말이다.
건물에 흙먼지와 탁한 재가 쌓이긴 했지만 상태는 제법 멀쩡한 편에 속하는 것 같다.
다만 알록달록했던 아치형 창문들이 죄다 먼지 탓에 불투명하게 변해서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정문은 굳게 닫혀있다.
‘이 근처에 이물이 한 마리도 없다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그리고 네가 다차원으로 이 정원에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건, 적어도 이 근처에 널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거야.」
「어째서 이 장소에만 이물이 없는지 궁금하긴 하네.」
결국 저 굳게 닫힌 정문 너머, 중앙교회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소리다.
그리고 나는 실재세계에서 이 정원까지는 들어와 봤어도 중앙교회 안에는 가본 적이 없기에, 다차원 능력으로 발을 들이는 건 정원이 한계였다.
일단 실재세계에서 모든 교회들은 해가 뜬 시간대에 문을 열어놓고 해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그래, 정문이 닫혀있어. 지금은 여기나 실재세계나 둘 다 대낮일 텐데.」
‘감각 증폭 1계.’
난 일시적으로 시력을 강화해서 정문의 앞쪽 바닥을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문 근처도 먼지가 쌓인 그대로다. 누군가의 발자국이라던가 문이 열렸던 흔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시든 정원을 가로질러 중앙교회의 정문 앞까지 접근했다.
「그대로야. 이 너머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그리고 조용하다. 어딘가에 있는 메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굴러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게다가 근처에 이물도 없어서 더욱이 조용하다.
하지만 음산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분명 신성함과 선의 상징인 중앙교회인데.
‘들어간다.’
나는 정문을 살며시 밀어보았다.
…덜컹.
그러나 안쪽에서 문이 걸렸다.
잠겨있는 것이다.
「정면돌파할 거야?」
그보다 안전한 방법이 있다.
나는 바닥을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
‘목줄. 1계.’
키이잉!
핏물로 그려진 소환진 두 개에서 붉은빛과 함께 거미 악귀 두 마리가 출몰했다.
‘창문을 깨고 들어가라.’
타다다다닷….
거미 악귀 두 마리가 내 양쪽으로 흩어져서 중앙교회 벽을 타고 수직으로 올랐다.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악귀들일 텐데 매끄러운 벽을 거미줄도 없이 잘도 오르고 있다.
콰창!!!
「깜짝이야!」
녀석들은 머리로 창문을 깨부수고는 중앙교회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내 안의 악령은 자신과 비슷하게 악한 존재인 악귀들의 영혼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문을 열어라.’
…쿵.
거미 악귀들이 내부에서 박치기를 가하고 있다.
…쿵! …쿵!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야 이 멍청이들아. 그거 당기는 문이잖아.」
쿠직! 끼이이이이!
커다란 정문이 안쪽으로 활짝 열렸다. 워낙에 큰 문이 폭력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자욱한 흙먼지가 날 덮쳤지만 호흡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흙먼지가 이만큼이나 문에 끼어있었다는 건 아주 긴 시간 동안 문이 열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흙먼지를 뚫고 중앙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는 정말 생각보다 깨끗했다.
이질적일 정도로 말이다.
‘이런 상태면 누군가 관리를 한 거야.’
깨끗한 대리석 바닥에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칠 정도다. 넓어서 개방감이 있는 공간에 마법 등불들과 휘황찬란한 조각상들이 빠짐이 없고, 앞쪽을 향해 나란히 배치된 고급스러운 나무의자들은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다.
그리고 시선 끝에 닿는…. 저걸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승천자가 서는 단(壇) 같은 곳의 벽 끝에 황금 십자가도 아주 멀쩡하게 세워져있었다.
「무식하긴. 저렇게 올라서는 단은 ‘무대’라고 하는 거야.」
‘무대는 아니지.’
「아니기는 뭐가 아니야.」
‘생각을 좀 해봐라. 승천자가 저 위에서 춤추고 노래라도 하냐?’
「걔 말고 다른 신도들이 노래는 하잖아. 신관은 날마다 재밌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여기 찾아와서 앉는 사람들은 그런 걸 매번 진지하게 관람하고.」
「그게 광대가 하는 연극이랑 다를 게 뭐야? 그리고 광대가 오르는 자리를 무대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겠어.」
‘네가 악령이라서 세인트교에 반발심이 있다는 건 이해하겠는데, 지금은 장소가 이러니까 자중 좀 해라.’
「하늘을 존중해서?」
「…아니면 하늘이 두려워서?」
나는 자리 하나를 골라서 앉았다.
‘둘 다.’
잠시 앉아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이게 올바른 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뭐든 마음이 중요하지 않은가. 하늘 너머의 존재들이라면 못 배운 나의 기도를 이해해 줄 것이다.
세인트 여신이시여. 휘하의 천사들이시여.
이 중앙교회를 그대들이 깨끗하게 관리하시고, 사악한 이물들이 성역에 들어올 수 없도록 그대들이 지켜낸 것이라면 제 목소리에 귀를 열어주소서.
모든 곳, 모든 세계에서 매일 역병처럼 만연하는 악으로부터 선한 사람들이 모여 세운 나라가 바로 세인트 왕국이 아니겠습니까.
혼돈의 시기로부터 살아남아 유구한 역사를 세워온 세인트 왕국이 오늘날까지도 있을 수 있었던 건 세인트교의 존재 덕분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만약 세인트교가 없었다면 왕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배울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고, 선악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 악에 잡아먹혀 모조리 악령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인트교를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선의 가치가 쉽사리 내려앉지 못하는 실재세계에서, 이 신성한 장소를 관리하고 세인트교의 선을 가르치는 자가 있습니다.
그자는 승천자라고 합니다.
그자는 제게 누명을 씌우고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 절 죽이려 했습니다. 제 영혼까지 잿빛세계로 추방하려 했습니다.
저는 실재세계에서 해결사로 일하며 쌓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핏줄인 리인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그날의 지옥 속에 있습니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실재세계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미치도록 알고 싶습니다.
승천자는 무엇 때문에 제게 그런 짓을 저지른 것입니까?
승천자는 정말 그대들의, 천사들의 대리인이 맞는 것입니까?
만약, 만에 하나라도 그렇지 않다면….
그대들이 승천자에게 천사의 대리인 자격을, 그 압도적인 마법의 권능을 부여한 적이 없다면….
부디 그대들이 승천자를 심판하소서.
제가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지기 전에 말입니다.
* * *
「하늘을 협박한 거야?」
‘기도한 거야. 간절하게.’
그리고 이렇게나 내 사정을 토로했으니 마음씨 좋은 여신과 천사들이라면 이해해 줄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벌일 만행을 말이다.
“후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었다. 작은 계단을 오르고 승천자가 항상 서있는 자리를 지나서 커다란 황금 십자가 앞까지 왔다.
그대로 뒤로 돌아서 중앙교회를 한눈에 담았다.
‘목줄. 전부 다.’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목줄을 발동한다. 악으로부터 시작된 영력은 6개의 부정한 소환진을 허공에 그렸다.
키기기기깅…!
허공의 소환진들이 붉은빛을 토해내며 거미 악귀 여섯 마리를 출몰시켰다.
‘이 장소를 더럽혀라.’
“케에에에엑!!!”
창문을 깨고 들어온 녀석까지 합해서 총합 여덟 마리가 중앙교회 내부를 기거나 뛰어다녔다. 아치형의 높은 창문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천장에 달린 꺼진 등불들은 거미 악귀에게 부딪혀서 흔들거리다 바닥으로 추락했다. 또한 천장에 그려진 세인트교의 왕가, 역대 승천자들, 천사들이 거미 악귀의 거미줄에 더럽혀져서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불결한 거미줄들이 밑으로 축 늘어졌다. 악귀들은 천장의 구석마다 흉측한 거미집을 쳤다.
‘부디 용서하소서.’
쾅!
이어서 거미 악귀들은 가지런했던 의자들을 밀치고 부쉈다. 정문도 아주 활짝 열어서 거미줄로 고정해버렸다.
나는 눈을 한번 감았다.
다시 몸을 돌렸다.
눈을 뜨니 십자가가 있다.
「너…. 진심이야…?」
‘부디, 헤아리고 용서하소서.’
나는 벽 쪽에 세워진 십자가를 맨손으로 뽑아서 날뛰는 거미 악귀들에게 던져버렸다.
“케게그극!”
거미 악귀들은 십자가를 물어뜯고 긁어댔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십자가를 거미줄로 칭칭 감아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가 정문 밖으로 쓰레기처럼 내던져버렸다.
「야! 뭐 하는 짓이야?!」
‘왜?’
「저건 황금이잖아! 가져다 팔아야지!」
바깥으로 떨어진 십자가는 부서지고 말았다.
겉만 황금이고 그 속은 돌이었던 것이다.
‘금판만 뜯어서 가져와라.’
거미 악귀들은 십자가에 붙은 금판들을 입에 물어서 내 앞에 모았다.
미리 가져온 보따리에 황금이 가득이다.
그리고 중앙교회는 폐허에 있는 다른 건물들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바람이 들어오면 이곳에도 먼지와 재가 쌓일 것이며, 창문을 깨고 문을 열어놨으니 이물들도 조금씩 유입될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리던 순간이었다.
투둑!
투두둑!
조각상들.
역대 신관들의 모습을 본뜬 조각상 네 개가 일제히 움직였다.
투두두두두두…!!!
관절에 균열이 생기더니 그 부분만 부서져 떨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보고 있으면 조각상을 이루던 돌덩이들이 공중에 떠서 보이지 않는 실에 연결된 관절 인형처럼 하나로 움직이는 것 같다.
또한 그 모습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저것들도 이물이야?’
악한 존재가 맞는가.
해치워야 할 이물이 맞는가.
‘악명’이 있는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배척자(排斥者)…!」
쿠웅! 쿠웅!
사람보다 두 배는 큰 덩치와 신장. 움직이는 조각상들의 폭력적인 발걸음이 울렸다.
“키이익!”
거미 악귀들이 화들짝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새끼들 어딜 가는 거야? 돌아와!’
그러나 거미 악귀들은 내 명령을 듣지 않았다. 중앙교회를 벗어나 사방팔방 흩어져 도망치는 것이다.
「놈들이 땅을 울릴 때마다 주술이 발동되고 있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법이나 주술이 걸린 장소가 아닌데도 이물이 없던 이유를, 굳게 닫힌 중앙교회 내부가 관리라도 받은 듯 그토록 깨끗했던 이유를 말이다.
「이건 필요악(必要惡)이라는 주술이야!」
「배척자들 말고는 그 어떤 이물도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어! 그렇게 정신적인 강박을 심는 능력이야!」
그래서 거미 악귀들이 도망친 것이다.
「배척자 한 놈당 200의 악을 갖고 있어!」
45의 악을 갖고 있는 거미 악귀들로선 배척자의 영력에 대항할 수 없다. 내가 강하다고 거미 악귀들도 강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내 명령을 무시하고 여덟 마리 모두가 도망친 것이다.
기본적으로 악을 가진 존재라면 그 악의 숫자가 곧 얼마나 강한지를 예상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그렇게 계산한다면 우리는 1233.7이고 배척자들은 넷이니까 800이야….」
약 1233 대 800이면 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그리고 거미 악귀가 전부 도망치는 바람에 이쪽이 수적으로 열세니까 어떤 의미에선 위험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두두두두!
이윽고 배척자 네 마리가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면으로 돌파하기엔 위험하다. 나는 녀석들이 또 어떤 능력을 갖고 있으며 싸울 때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도망칠 수는 있다. 단의 뒤쪽, 양 끝에 후문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로 나간 다음에 창문을 깨든 벽을 부수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정면으로 뛰고 있어?」
하지만 나는 쇠도끼를 들고 녀석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왜, 왜, 왜? 왜 싸워?」
‘놈들을 해치우지 않으면 이곳에 이물들을 불러들일 수 없으니까.’
배척자들이 가진 필요악이라는 능력이 주변 이물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따라서 놈들을 해치우지 않으면 오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나중에 해도 되잖아!」
‘하루라도 빨리…’
배척자가 내 앞에서 큼지막한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나는 자세를 한껏 낮춰서 주먹을 피했다.
‘하루라도 빨리 승천자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
나는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녀석의 하체를 노려 쇠도끼를 휘둘렀다.
카각!
역시, 철인이 쇠도끼를 아무리 힘차게 휘두른다고 한들 그것으로 단단한 돌을 부수기란 무리였다.
“인가하지 않는다.”
그때 내 앞의 배척자가 동굴에서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느릿한 말을 꺼내왔다.
“너는. 인가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다른 세 놈이 내게 달려들었다. 왼쪽 하단에서 허리를 향한 발길질, 오른쪽 상단에서 머리를 향한 주먹질이다. 자세를 바꾸는 것으로는 피할 수 없다.
타앗!
나는 빠르게 뒤로 굴러서 거리를 벌렸다. 직후 허공을 가른 주먹과 다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를 냈다.
저 정도면 철인 능력이 있어도 치명상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쇠도끼 따위로는 놈들의 돌덩이 같은 몸을 부술 수가 없다.
즉, 물리적인 타격은 넣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방혈을 개방해.’
「몸속 혈액이 없는 조각상한테 방혈이 통하겠어?」
‘뒤집힌 신관을 잡고 남은 악이 있잖아. 170.’
「아니 내 말은…」
콰앙!
배척자들은 나무의자를 육중하게 짓밟으며 다가왔다. 좀 전에는 일직선으로 달려들더니 이번엔 그 속도를 늦춘 것이다. 아마 내가 녀석들의 공격을 회피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조금씩 거리를 좁혀서 나를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속셈이리라.
따라서 놈들에겐 지능까지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일단 개방하라고!’
「50을 써서 개방했어!」
개방에 50이면 된다.
방혈은 몸속에 혈액이 있는 상대에게 효과적인 능력으로 주술적인 위력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방혈 1계.’
나는 배척자들을 응시하며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말했잖아! 저것들은 피 한 방울 없는 조각상이라고!」
방혈이 통하지 않는다. 배척자들은 피 한 방울 없는 조각상이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저들의 몸이 완전한 돌이라는 사실을.
‘남은 120으로 재결합과 고속화를 2계까지 강화해.’
「맘대로 해! 이젠 나도 몰라!」
평범한 대장간 정도의 수준이었던 재결합 1계가 2계로 강화되었다. 또한 사물의 빠르고 미세한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는, 항시 발동인 고속화 1계가 2계로 강화되었다.
이제 남은 악은 0이다.
그리고 배후에 벽이 있어서 더는 물러설 수도 없다.
“인가되지 않은 자. 성전에서 나가라.”
내가 더는 거리를 벌리지 못하자 배척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묵직한 주먹질과 발길질은 공기를 갈랐고 내가 그것을 피할 때마다 대리석 바닥이 부서지거나 유리조각들이 굴렀다.
후웅!
나는 역으로 놈들 사이에 파고들어서 무작정 회피하기만 했다. 고속화를 2계까지 강화한 덕분에 시도할 수 있는 위험한 수였다.
콰앙…!
순간순간의 파괴력은 무섭지만 역시나 움직임이 큰 배척자들이었다. 내가 역으로 파고들어서 회피만 하고 있으니 자기들이 휘두른 주먹에 옆에 있는 녀석을 실수로 때리는 일이 잦아졌다.
콰앙! 콰앙!
나는 튕겨나간 돌 파편을 맞으면서 놈들 사이를 질주했다. 그렇게 서로의 위치가 바뀌면서, 나는 정문 방향을 등지고 놈들은 단을 등지게 되었다.
“…제단분쇄(祭壇粉碎).”
제일 앞에 있던 배척자가 대리석 바닥을 두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쿠우웅!!!
그러자 극심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두 주먹으로 찍은 바닥으로부터 땅이 거꾸로 폭발하듯 치솟았다.
콰콰콰콰콰!!
폭발하는 균열이 내게 다가오는 듯하여 옆으로 뛰어서 피하려고 했는데, 그 폭발 반경이 점점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는 것이다. 이러면 수평으로는 피할 수가 없다.
콰콰콰앙!!
나는 높게 도약해서 천장에 걸린 거미줄에 가까스로 매달렸다. 한 손에는 쇠도끼를, 다른 한 손에는 거미줄을 붙잡고 버텼다.
「위험해. 놈들을 놓쳤어.」
내 시선 아래쪽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배척자들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놈들도 날 놓쳤을 거야.’
따라서 이 흙먼지는 나와 배척자들 사이에 피어오른 일시적인 연막이 된 것이다.
* * *
사아아…
흙먼지 속에서 기동하는 배척자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제단분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의한다. 그는 앞에 있을 것이다. 죽거나, 불구가 된 채로.”
배척자들은 서로 거리를 벌려서 이동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완전히 뒤집어진 바닥을 밟으며, 어딘가에 있을 페인의 시체를 찾는 것이다.
중앙교회의 커다란 아치형 창문이 모두 깨진 상황, 외부의 바람은 별다른 무리 없이 들어와서 자욱한 흙먼지를 빠르게 걷어주었다.
그렇게 시야가 열렸다.
“시체…. 없다.”
“…어디?”
키이잉!!
부정한 소환진의 소리가 천장에 울리며 검붉은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성스러운 천장의 그림이 역오망성과 고대의 달력에 더럽혀져서 굶주린 괴물들을 낳는 듯했다.
“저것들. 도망쳤던 존재들이 아닌가?”
그것은 누군가의 악몽에서나 보일 법한 그림이었다.
“성전에서 나갔던 존재들. 어느 틈에…”
배척자들의 머리 위로 거미 악귀 여덟 마리가 우르르 떨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