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차원의 강령술사-20화 (20/181)

3. 존재감 (5)

어둠이 물러간 후 이른 아침.

이곳의 작은 교회는 어김없이 새로운 날을 맞이하며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는 중이다.

- 거룩한 천사들. 하늘을 따르는 작은 등불들이여.

새하얗고 깨끗한 복장으로 통일된 아이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아이들 뒤에 세워진 찬란한 황금 십자가, 알록달록한 아치형 창문으로부터 부서지듯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높고 낮은 화음이 이루는 아름다운 선율은 가히 환상적이다.

- 우리 어린 자들이 세상을 두려워하여도 그들은 햇빛으로 달빛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네.

나란히 배치된 나무의자에는 상인, 농부, 주부, 학자 등 계층을 막론하고 세인트교를 따르는 이들이 앉아서 아름다운 황홀경에 빠져있다.

또한 그들 사이에는 달란트도 있었다.

- 거룩한 천사들. 말씀을 따르는 신성한 승천자들이여. 자애로운 신관들이 함께 세상을 비추시고 우리는 참된 노래와 기도로 하늘을 따르네.

성에서 사는 왕족이 아니라면 이 정도로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장소는 오로지 교회뿐이다. 그렇기에 누구든 찬송가를 듣고 있으면 황홀경에 빠져서 없던 신앙심까지 생길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에 악한 마음이 달아나고 선심이 깃들어 그야말로 승천하는 기분이리라. 그 정도로 아름답고 깨끗한 노래였다.

한창 찬송가를 듣고 있던 달란트의 옆으로 누군가 허리 숙여 다가왔다.

“의장님.”

그는 달란트의 귀를 빌렸다.

그리고 아침에 들어온 소식을 전했다.

“전멸당했습니다.”

- 하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천사를 내려주시니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찬양하는 우리의 노래 악령으로부터 우리를 수호하네.

달란트는 손톱을 씹었다.

“그렇게까지 준비를 해놓고…?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그의 욕설은 아름다운 찬송가에 묻혔다.

“세비우크는?”

“절명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그쪽으로 치료사가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되어…. 아무래도 베르자인의 숨통이 붙어있다는 것 같습니다.”

-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네. 우리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시고 눈물을 흘리시네. 천사들은 거악과 전쟁을 벌이네.

달란트는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따졌다.

“천하의 세비우크를 누가 해치웠다는 말이지? 암습 당시에는 그쪽 자객들을 거의 다 죽였을 터….”

“그건 맞습니다. 그곳에서 자객들의 시체가 스무 구 이상 나왔다고 합니다.”

“허면 세비우크와 동급의 용병이라도 있었나? 그년 귀걸이도 세비우크 앞에선 소용없었을 터인데, 도대체 누가 세비우크를 해치울 수 있다는 말이지?”

“그 부분은 조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보다, 이대로 베르자인이 명령을 내린다면 전면전이 시작될 테니 당분간은 호위와 함께 다니심이 좋겠습니다.”

“자객들 움직임 주시해. 그리고 세비우크를 해치운 놈이 누군지 알아내라고.”

“알겠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찬송가가 끝나버렸다.

“쯧. 마지막 부분이 절정이었는데.”

이 작은 교회의 신관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천사의 권능을 빌리신 승천자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성수를 내려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쌓인 부정함을 물러가게 하십시오. 오늘도 이웃을 사랑하시고 어려운 자들을 도우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해가 떠있는 오늘이 있다는 건 축복입니다.”

찬송가를 마친 아이들이 질서 있게 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아이들은 성수가 담긴 유리병을 하나씩 들어서 모두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본래 일정대로라면 이틀 후에 베풀 성수였지요. 그런데 어제, 하늘과 세인트교를 사랑하시는 분께서 많은 정화수를 중앙교회에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교회까지도 성수가 흘러올 수 있었습니다.”

“흠, 흠.”

달란트는 목을 풀었다.

“달란트 상회의 달란트 의장님. 잠시 일어나주시겠습니까?”

“아, 예. 하하.”

달란트가 일어서자 교회에 모인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지난날들에 비하면 어두운 시기입니다. 하지만 오늘 의장님처럼 가진 것을 베푸시는 분이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기에, 세상은 결코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영혼에 쌓인 악을 치료하는 성수는 비싼 물건이다. 그래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성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교회뿐이다.

결국 이곳 사람들은 고마움을 담아 달란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닙니다. 제가 가진 것에 비하면 그리 큰 것을 베푼 것도 아니지요. 성수의 완성에 필요한 정화수를 베푼 것보다, 상회 운영을 위해 아껴둔 돈이 더 많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의 신관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모르지만 하늘은 아십니다. 의장님이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베풀었는지를 하늘과 천사들은 전부 알고 계십니다.”

달란트의 눈썹이 아주 작게 꿈틀했다.

“그러니 의장님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그것 또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선한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하하. 너그러운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그러자 저마다 성수를 받은 자들이 달란트에게 찬사를 보냈다.

“베풀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저희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데, 의장님 덕분에 당분간 생활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장님은 반드시 천국에 가실 거예요.”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제 삶에도 여유가 생긴다면 상회를 통해 갚고 어려운 자들에게 베풀겠습니다.”

“우리 아이도 커서 의장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네요.”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의장님.”

그때 달란트는 인상 좋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무능한 새끼들 때문에 일만 꼬였네. 쯧.’

* * *

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잿빛세계에 가려고 했는데 자객이 찾아왔다.

베르자인이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르자인의 방으로 가보니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 초췌해진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살아남은 건 좋은데 목에 흉터가 생겼어.”

“그게 내 최선이었다.”

베르자인의 목에는 흉터가 생겼다. 칼자국을 중심으로 주변 피부가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찌그러져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하얀 피부에 갈색의 흉터가 있으니 더욱 보기 흉한 것 같다.

“전쟁이야.”

역시나 그녀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달란트 상회랑?”

“이런 짓을 당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실은 너도 이참에 상회 무너뜨리고 한몫 챙기려는 거 아니냐? 명분도 확실하고.”

“웃기네.”

베르자인은 힘없이 코웃음을 쳤다.

“마음 같아선 전쟁 비슷한 것도 하기 싫어.”

“그런데 왜 무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거야?”

“이 바닥의 사람이라는 게 그래.”

그녀의 달관한 표정 너머로 얼핏 살의가 엿보인다.

그런데 그 살의는 지옥불처럼 뜨겁게 타오른다거나 검은 바다처럼 깊은 것이 아니었다.

“이런 짓을 당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말로 해결하려고 하면 우리를 얕볼 거야.”

그저 고요했다.

밤의 호수처럼 고요한 살의다.

“더러워서 피하거나, 나중을 생각해서 참거나, 대화로 해결하려 하거나, 이성적으로 나가면 그게 나약한 건 줄 알지. 그래서 더 달려들어.”

그녀는 이 바닥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괴롭히고 빼앗고 나중엔 협박까지 해. 여기에 둥지를 튼 놈들은 사고방식이 아주 다르거든.”

“상회를 이길 수는 있냐? 그쪽이 여기보다 몸집이 더 크잖아.”

“페르메트.”

그 가문의 찌질한 장남.

그녀는 이 대목에서 녀석의 이름을 꺼낸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갈등이 정리되고 몇 번의 전쟁도 치르고. 황금달이 암시장의 정점에 섰을 때. 그때까지를 기간으로 했어.”

계약에 관한 이야기였다.

“맞지?”

“그래. 그때까지는 주물을 너한테만 팔기로 했지.”

베르자인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페인.”

“왜.”

“너, 승천자한테 복수할 생각이지?”

베르자인이 어떻게 그런 결론까지 도달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놀랍거나 당황스럽지는 않다.

내가 무슨 짓을 당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전부 아는 그녀라면 그리 어려운 추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맞아. 승천자를 죽일 거야.”

“달란트 상회는 세인트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고.”

“알지.”

“세비우크가 누군지는 알아?”

“약해빠진 놈이었지.”

“내 입장에서 너는 천군만마야. 반대로 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황금달이 상회를 이기는 편이 좋을 것 같고. 달란트 상회를 죽이면 승천자의 팔다리까진 아니더라도 손가락 발가락 정도는 자르는 셈이 아니겠어?”

“그래.”

“나는 이 전쟁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상태. 그리고 너는 이 전쟁을 원하고 있지. 이거면 너랑 나 사이에 충분한 이해관계가 성립된 것 같은데.”

서로 본심을 떠볼 필요조차 없었다.

나와 그녀는 목적이 일치한다.

“알겠어.”

“그리고 로나디.”

선생의 아들.

세인트 왕국에 있다는 스무 살의 청년.

“그를 찾아냈어.”

역시 황금달의 정보력이다. 예상대로 사람 하나 찾는 것쯤은 금방이었던 것이다.

“로나디는 어디에 있지?”

* * *

나는 뒷골목을 벗어나서 조금 외지로 나왔다. 시험 삼아 한적한 거리를 걸어보니 행인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긴 했어도 나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나 노골적인 접근은 없었다.

오히려 까마귀를 닮은 기괴한 방독면과 검붉은 로브는 행인들의 접근을 제대로 차단하는 역할이 되어준 것 같다. 게다가 등에 쇠도끼까지 매고 있으니, 내가 음지의 사람이라는 걸 강력하게 표현하고 다닌 셈이다.

하지만 순찰 중인 기사들은 좀 달랐다.

“어째서 그런 가면을 쓰고 계십니까?”

기사 두 명이 내게 접근한 것이다.

“왕국에서는 유통되지 않는 가면 같은데….”

가면이 아니라 방독면이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겠다.

일단 그들이 내게 접근한 이유는 의심이라기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적의 대답은 하나였다. 앞으로 기사들이 내 정체를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라고 베르자인도 조언했었다.

“저는 이름 없는 일개 강령술사입니다.”

“강령술사요?”

낯선 직종일 것이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을 것이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변조된 남자가, 마녀들이나 취급하는 강령술을 쓰는 술자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으니 말이다.

내가 역으로 당당하게 나서자 두 기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내게 물었다.

“소속이 어디십니까?”

“황금달입니다.”

기사들 사이에 소문이 퍼진다면 더 좋다.

황금달에 심상치 않은 강령술사가 있다는 소문이 달란트 상회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당연히 달란트 상회는 내 존재를 정체불명의 변수로 경계하느라 공격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듣자 하니 세비우크라는 녀석이 그쪽에서 몇 년간 공들인 주요 전력이었다는 모양인데, 그게 단숨에 무너졌으니 가뜩이나 경계하고 있을 것이라 한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움직임으로서 황금달이 힘을 모을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벌 수 있다는, 베르자인과 나의 계산이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는 황금달이라는 간판이 있으니 대낮에도 조금은 당당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자세히 알려줘야 합니까? 제가 갈 길이 바쁜 참이라.”

“…아니요. 됐습니다.”

황금달과 달란트 상회 사이에서는 위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나 왕궁의 명령에 따라 음지의 일을 덮어야 하는 기사들이라면 더욱이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 도끼. 거리에서는 휘두르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그렇게 기사들의 표면적 검문까지 통과할 수 있었다.

건물들의 높이와 밀도가 점점 낮아지고 거리의 사람들은 계속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벽돌로 포장된 도로가 사라지고 흙길이 나왔다.

농가, 텃밭, 울타리, 작은 상점과 여관들이 즐비한 길을 지나서 이곳까지 도착했다.

창살을 꽂은 석재 울타리가 네모난 구역을 나누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울타리와 비슷하게 창살이 꽂힌, 감옥의 철창 같은 대문을 지나서 들어오니 다양한 모양의 비석들이 쭉 늘어서 있다.

「난 이곳이 좋아.」

이곳은 묘지다.

「이건 몰랐지. 몰랐어.」

나는 묘지의 비교적 뒤쪽 열에 있는 비석들을 둘러보다가, 하나를 찾아내 그 앞으로 다가갔다.

‘로나디….’

닳고 닳은 비석에는 로나디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또한 그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는 내게 작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스무 살의 청년이라며? 한참 전에 태어나서 51살까지 살다가 죽었네.」

비석에 적힌 사인(死因)은 자연사(自然死).

로나디는 살 만큼 살다가 늙어죽은 것이다.

‘처음부터 선생의 손자 손녀를 찾는 편이 좋았겠다.’

「찾을 거야?」

‘그럴 시간 없어.’

그리고 이렇게 매장해서 장례를 치러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곧 로나디에게 가족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또한 묏자리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그의 집안에 있었다는 말이니, 이 정도 알아냈으면 충분하다.

로나디는 잘 살다가 자연사하여 묘지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선생한테 가서 전하고 이 빚을 청산하자고.’

나는 아무도 없는 묘지에서 다차원 능력을 발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선지 발동이 안 됐다.

「뒤.」

내 안의 악령이 존재를 느낄 수 있으면 나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 뒤에 있는 어떤 존재를 느껴서 반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런데 웬 평범한 노파가 날 보고 있는 것이다.

「어디 가문이라도 있는 할머니인가?」

노파는 제법 부유해 보였다. 보석은 아니지만 은빛이 도는 팔찌와 목걸이에 질 좋은 천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 있다. 신발은 황소나 말의 가죽인 것 같은데.

“제게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댁한테서 주물이 느껴지는군요.”

내가 몸에 걸치고 있는 주물이라면 ‘세비우크의 머리띠’밖에 없다. 하지만 그 머리띠는 방독면 안에 숨겨서 쓰고 있다.

「마법이든 주술이든, 주물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야.」

마법사인가.

상인인가.

마법을 쓸 수 있는 상인인가.

아니면 어떤 능력을 계승할 수 있는 어느 가문의 어른인가.

“나를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매일 이 시각에 남편을 보러 오는 과부일 뿐이죠. 허허. 주물을 만지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무심코 입방정을 떨고 말았군요.”

「주물 만들어서 돈 버는 인간인가. 뭐 대단하고 수상한 놈이라도 되는 줄 알았네.」

나는 적당히 대답한다.

“예…. 그럼, 소중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잿빛세계로 가려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있으면 갈 수가 없다.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그러면서 서둘러 자리를 비키려고 했는데, 뒤에서 노파가 친절하게도 경고한 것이다.

“이마에 쓰고 있는 그 주물….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로 완성된 불량품이군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만 열었다.

“허허. 노파심에 참견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그 주물은 서둘러 처분함이 신변에 이로울 것 같군요. 불량품이라 액운이 끼어있답니다.”

내가 지금 머리에 쓰고 있는 건 안구에만 가해지는 주술을 4계까지 방어하는 주물이다.

그래서 어차피 잠깐만 쓰다가 내 저주 저항이 4계까지 강화되면 그때 팔아치우든 소재로 쓰든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묘지를 나왔다. 적당히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걷다가 다차원 능력을 발동했다.

키이잉!

시야 안에 잿빛세계가 펼쳐진 후 다차원 능력으로 곧장 오두막에 발을 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오두막에 선생과 거미 악귀들이 있어서 그렇게는 발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두막의 아래에 있는 숲길에 발을 들였다.

- 이야아아아…

그런데 그 노파, 경고를 할 거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줄 것이지.

- 야옹…

커다란 공처럼 부푼 눈알.

당장이라도 피를 쏟아낼 듯 심각하게 충혈된 눈알들.

- 이야아아아앙…

자기 뇌보다 큰 눈알을 달고 있는 피투성이의 고양이들.

그것들이 붉은 쥐 떼처럼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숲길 위로 뛰었다.

- 키이야이야아아아아!

수십 고양이가 내뱉는 소리는 영락없는 절규였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러운 절규라서 듣고 있으면 온몸의 털끝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제기랄!’

「네가 실재세계에 있었을 때도….」

「저것들은 잿빛세계에서 그 머리띠를 쫓아다니고 있던 거야.」

동시에 거미 악귀들도 내 주변에 뛰어내렸다.

그리고 숲길 위쪽에서 선생이 다급하게 내려왔다.

“페인…! 저 흉측한 것들은 무엇이냐!”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생님….”

“어서 악귀들부터 소환해라! 전부 다!”

“괜찮습니다. 방법이 있어요.”

나는 목줄 능력을 발동했다.

키이잉!

커다란 석상 두 개가 내 양옆에 출몰했다.

배척자는 고양이 떼를 보고 선생과 똑같이 반응했다.

“페인…. 저 작은 존재들은 무엇이지?”

“날 쫓고 있는 이물들.”

“그렇군.”

“너희들 능력이라면 내쫓을 수 있을 거야.”

배척자들에겐 필요악이라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배척자를 중심으로 주변 이물들을 쫓아내는 편리한 능력이다.

“필요악. 항시 발동하고 있다. 그런데 저것들. 갖고 있는 원한의 골이 너무 깊다. 따라서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그래…?”

「좆됐네.」

이윽고 고양이 떼는 최전선의 거미 악귀들과 충돌한 것이다.

그 광경이 마치 피거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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