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신에게 도달하는 길 (2)
* * *
나는 세비우크의 시신이 담긴 관을 통째로 들고 왔다.
「3일 동안 99마리의 한을 끌고 다니는 거 아니었어? 왜 바로 돌아온 거야? 그 관은 어디다 쓰려고?」
내가 잿빛세계로 돌아온 위치는 숲속이다.
내 시선의 오른쪽 위에는 오두막이 있다. 그리고 왼쪽에서는 핏기 어린 눈이 풍선처럼 부푼 99마리의 고양이 무리가 들끓고 있다.
두 배척자와 거미 악귀들은 고양이 떼에 거의 집어삼켜지다시피 싸우고 있다.
‘저것들이 오두막을 파괴하게 둘 수는 없어.’
무채색의 세계에 오로지 핏빛만이 강조되는 가운데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괴성과 신음만이 지옥의 메아리처럼 퍼지고 있다.
나는 관을 어깨에 올린 채 격렬한 싸움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고양이를 온몸에 붙이고 있는 배척자를 보며 소리쳤다.
“뒤로 빠져!”
쿠직…!
제 몸에 붙은 고양이를 떼어내고 짓밟던 배척자 둘이 동시에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그건 의문의 시선이었다. 왜 돌아왔냐고, 그 관은 뭐냐고.
‘저 고양이들은 원한의 골이 깊다고 했지.’
「그렇다니까! 그래서 배척자의 필요악도 통하지 않는다고!」
‘그게 요점이 아니야.’
「그럼 뭐가 요점인데?」
같은 순간, 두 배척자가 가까스로 고양이들을 뿌리치고 내게 접근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거미 악귀들에게 명령하여 배척자를 쫓는 고양이들을 저지하도록 하였다.
- 케에엑!
내 명령을 듣고 고양이 무리를 막아선 거미 악귀들은 영력이 다하였는지 더는 거미줄을 사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저렇게 자신의 피와 살을 내주며 고양이들에게 물어뜯기고 할퀴어지는 것뿐이었다.
일단 나는 거미 악귀 한 마리만 따로 골라내 명령했다.
‘머리띠를 가져와.’
그 거미 악귀는 다리가 세 개인가 부러진 상태로 처절하게 기어서 머리띠를 찾아냈다.
“케에…! 케에에…! 키익…!”
녀석은 등과 배를 고양이들에게 물어뜯기면서도 마지막 힘을 쥐어짜 거미줄을 사출하였고, 그 거미줄을 움직여 머리띠를 내 쪽으로 던져주었다.
툭!
나는 머리띠를 서둘러 챙겼다.
배척자가 물었다.
“페인. 실재세계로 돌아간 게 아니었나?”
“갔다 왔어.”
나는 지면에 관을 내렸다.
쿵!
그대로 관 뚜껑을 열어서 세비우크의 시신을 배척자들에게 보였다.
“이것은…?”
“저것들은 원한의 골이 깊다고 했잖아.”
“그렇다.”
“그래서 머리띠를 내줬더니 머리띠엔 관심도 없었어.”
“그렇다.”
“날 쫓아오는 듯했는데 그건 아니었지. 나는 실재세계의 뒷골목으로 이동했는데 저것들은 숲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싸웠으니까.”
“저 순수했던 존재들. 싸우는 이유는 모른다. 저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뭔가를 되찾고 싶어서 싸우는 건 아닐 거야.”
“그걸 어떻게 알지?”
“눈알을 이미 잃어버렸으니까 되찾을 수는 없어. 그 상태에서 남는 것은 오로지 복수심뿐이야.”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녀석들의 목적을 배제하니 남는 답이 그것 하나였다.
99마리의 한.
저 고양이를 닮은 이물들을 무력으로 이길 수 없다면 ‘성불’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의 영혼이 윤회하지 못하여 잿빛세계에 남아 뒤틀려버린 원인을 찾아 해소해야만 했다.
“그 머리띠는 이 자식이 쓰고 있던 거야.”
「거미 악귀들이 뚫렸어!」
고양이 무리를 저지하고 있던 거미 악귀들이 끝내 버티지 못했다. 마치 굶주린 쥐 떼에 덮쳐져서 산 채로 물어뜯기는 것처럼, 개미 군단을 뒤집어쓴 사냥감처럼 죽기 직전까지 괴롭게 발버둥 치다가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이젠 막을 수 없어…! 제단분쇄를 쓸 영력도 없고 도망칠 때 탈 수 있는 거미 악귀 한 마리도 없다고!」
‘다행이네.’
그것은 즉 녀석들의 목표물이 내 쪽으로 변경되었다는 말이니까. 저대로 숲길을 따라 오두막까지 올라가지 않고 이대로 나를 노려서 달려들 것이라는 말이니까.
이제 198개의 붉은 풍선 같은 시선들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 그 눈알들의 숫자와 형태가 징그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순수했던 존재들의 지독한 원망이 마음속에 독처럼 퍼져나가는 기분이다.
“…굳이 거미 악귀를 희생하면서 우리를 부른 이유는?”
“만약 이게 통하지 않으면 너희 둘이 나 대신에 희생하라고. 나는 뛰어서라도 도망쳐야 할 테니까.”
“명령인가?”
“명령이야.”
“….”
“내 목줄에 묶이기를 선택한 건 너희잖아.”
“알겠다.”
두 배척자가 좌우로 비켜서고, 나는 관 속에 누워있는 혐오스러운 시체를 일으켜 세웠다.
지익…
세비우크의 시체는 이미 피가 다 굳어서 손에 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후경직 때문에 인간 크기의 딱딱한 목각인형을 세우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래도 시체가 딱딱하게 굳어 있으니 일단 일으켜 세워서 한 손으로 서있게 만들기는 쉬웠다.
그러는 사이에 고양이들은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내가 너희의 원수를 죽였다!”
내가 큰 소리로 외치자 고양이들이 멈칫했다.
“세비우크!”
- 이야아아아아아아오오오…!!!
그 이름을 입에 담자 99마리의 한은 일제히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면서 커다란 눈알들이 보내오던 시선이, 수많은 동공들이 이젠 내 얼굴이 아니라 내 옆에 세워진 시체로 이동하는 듯했다.
“나는 이 사악한 인간을 방혈하여 죽이고 눈알을 뽑아냈다! 그리고 잿빛세계까지 시체를 가져와 너희에게 넘긴다!”
나는 시체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웠다.
그러고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두 배척자도 나를 따라서 눈치껏 뒷걸음질을 쳤다.
99마리의 한은 슬금슬금 시체 앞으로 다가왔다. 녀석들의 커다란 눈알이 모두 시체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저대로 다 같이 달려들어서 시체를 물어뜯거나 할퀼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저 존재들. 네가 가져온 자의 육신을 그저 지켜보고 있다. 감상하고 있다.”
「이대로는 성불이 안 되는 거야. 뭔가가 부족해. 뭔가가….」
“페인. 저대로는 안 될 것이다.”
고양이.
전생에 세비우크한테 뭔가를 당하여 죽은 고양이들. 저것들이 길고양이인지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들인지는 모른다. 허나 일단 세비우크가 도시에서 찾아낸 고양이들이라면 가정에 있던 고양이거나, 가정으로부터 버려진 고양이거나, 그런 고양이의 밑에서 태어난 새끼들일 것이다.
- 이야아아옹…
수많은 눈알들 중 하나가 나를 향했다. 한 녀석이 눈알 하나만 돌려서 내게 시선을 보내오는 것이다.
“위험하다. 우리가 희생할 테니 도망쳐라.”
고양이.
개만큼은 아니지만 인간과 제법 가까운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과 정서적인 교감도 가능할 것이다. 전생에 거미였던 거미 악귀들도 주인의 감정과 의도를 대충은 알아볼 수 있으니, 이물이 되어버린 저 고양이들이라면 더욱 내 감정과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윽고 시체를 향했던 녀석들의 눈알이 하나둘씩 내 쪽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또한 배척자는 저것들의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나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경고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넌 죽는다.”
생각의 정리는 금방 끝났다.
“그럴 필요는 없을 거야.”
투욱!
나는 등에 멨던 도끼를 뽑아서 발치에 버렸다. 품에 숨기고 있던 단검도 뽑아서 도끼 옆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나의 그러한 행동을 198개의 커다란 눈알이 지켜보았다.
그렇게 무장을 해제한 다음엔 대놓고 녀석들을 향해 걸었다. 한 걸음씩 천천히 다가갔다.
「미쳤어? 그거 맞아?」
나는 녀석들에게 다가가면서 방독면까지 벗었다.
‘이거 아니면 뭔데.’
그리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발치에 고양이가 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까 눈알의 크기가 내 머리보다 클 것 같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눈꺼풀도 없이 풍선처럼 부푼 두 눈알은 핏줄을 세운 채 흰자위를 대신하는 붉은 배경에서 검은 동공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그런 눈알들 198개가 전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아주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나는 고양이 좋아해.”
“키이이.”
제일 앞에, 내 발치에 있는 녀석이 작게 울었다.
“난 가난하게 자랐거든. 집구석에서 쥐가 자주 나왔어.”
그러면서 손을 뻗었다. 눈알이 너무 커서 머리를 쓰다듬을 수 없으니 턱 밑으로 손을 향했다.
그렇게 손이 닿았다.
폭신한 털이 있었다. 피에 젖었지만.
“리인이라고 여동생이 있는데, 걔가 어느 날 길고양이를 데려왔더라고. 그 다음날부터 내가 본 쥐는 너희한테 물려서 죽은 쥐밖에 없었어. …그래서 나도 저 뒤에 있는 ‘사냥감’을 선물로 주고 싶은 거야.”
쿠르르륵….
나는 속으로 심장이 철렁했다.
턱을 간질여준 녀석이 커다란 눈알에서 피를 흘린 것이다. 그 핏물이 폭포처럼, 피눈물처럼 흥건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쿠륵쿠륵쿠르륵….
그러자 녀석은 곪은 것이 빠진 고름처럼 눈알의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잇달아 근처에 있던 녀석들도 피눈물을 흘리며 눈알이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흐른 피가 모이고 모여서 하나의 강물이 되어, 숲길의 내리막을 따라 붉게도 흘러가는 광경이다.
“너희는 아무 잘못 없어. 다 우리들의 잘못이야. 전부 다…. 우리들의 잘못이지.”
피투성이지만, 몇 번인가 죽고 되살아나 뒤틀린 몸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눈알이 작아지니 확실히 고양이라는 느낌이 살았다.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영문도 모른 채 버려지는 그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태어나서부터 추위와 배고픔에 싸우는 그 마음도 감히 헤아릴 수 없겠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과할게.”
“기기긱…. 키기기….”
“정말, 정말 우리가 많이 잘못했어. 미안해.”
겨울에 쌓인 눈이 바람을 맞아 흩어지듯,
99마리의 한은 저마다 부서지는 밝은 빛의 조각이 되어서 바람을 따라 형체를 잃어갔다.
- 야옹.
잿빛세계의 탁한 하늘이 그 순간만큼은 맑게 변했던 것 같다.
* * *
99마리의 한이 성불하여 사라지고 배척자들은 폐허로 돌아갔다.
거미 악귀들의 사체는 죽은 숲에 남겨져 다른 거미 악귀들의 먹이가 되었다.
나는 오두막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성불했네. 891의 악을 얻었어.」
「그리고 녀석들이 너한테 고유한 능력을 선물했어. 당연히 마법은 아니고 주술 계통으로.」
‘역병 마녀를 죽이고 존재 추적을 얻은 것처럼?’
「비슷하지만 달라. 역병 마녀의 경우엔 내가 녀석의 영혼을 포식하고 운 좋게 얻은 거라면, 이번 경우엔 이물이 자신의 의지로 너한테 능력을 준 거지.」
‘무슨 능력인데?’
「죽음의 문턱에서 아홉 번의 기회가 주어져.」
그게 내 안의 악령이 설명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른 자세한 건 직접 죽음의 문턱에 이르지 못하면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물 받은 능력의 이름은 애틋한 상상을 자극했다.
「추억 속의 리비카.」
지금쯤 누군가의 추억 속에 있을 리비카.
녀석이 내게 선물을 준 것이다. 그 많던 고양이들 중에 어느 녀석이 리비카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두가 누군가의 ‘리비카’였겠지.」
「처음에는, 버려지기 전에는 녀석들 모두가 리비카였을 거야.」
* * *
내가 목줄로 묶고 있던 거미 악귀 10마리 중에 8마리가 죽었다. 그리고 오면서 사체를 세어봤는데, 선생의 거미 악귀는 36마리가 다 죽은 것 같았다.
오두막의 마당으로 진입하는 입구 근처에 거미 악귀들의 사체가 쌓여있었다. 필시 이 녀석들은 선생을 지키려고 이 자리에서 싸우다가 죽은 것이리라.
「이게 어딜 봐서 혐오의 대상이냐고.」
거미 악귀의 본래 악명은 ‘혐오의 대상’이다.
「거미 악귀가 없었으면 우린 다 뒈졌어.」
선생은 마당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거미 악귀의 희생이 많았던 탓인지 선생의 얼굴에서는 감출 수 없는 수심이 엿보였다.
나는 선생과 함께 오두막으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실재세계에서 겪고 있는 일들을 이번 기회에 모조리 털어놓았다.
뒷골목의 일, 베르자인과 황금달, 달란트 상회, 예정된 전쟁, 잿빛세계와 실재세계 사이의 알 수 없는 인과율까지 말이다.
“이번에도 주물을 얻으러 온 건데 수확은 없었네요.”
“꼭 물질적인 것만이 수확은 아니다. 네가 강해지는 것도 그 여자의 입장에서는 수확이지.”
“죽음의 문턱에서 아홉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아홉 번을 부활하는 게 아닐까 싶군. 고양이는 본래 목숨이 아홉 개라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흠….”
선생의 붉은 눈이 지쳐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만큼 말동무해줬으면 됐잖아. 이제는 슬슬 말해줘야지.」
그 말이 맞다.
“선생님. 실은…. 실재세계에서 아드님을 찾아냈어요.”
선생의 지쳤던 눈에 활기가 돌았다.
“로나디! 어떻든가? 잘 살고 있더냐?”
“그게….”
말해야 한다.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정상적인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말하자. 거짓 없이 말해야 한다.
“아드님은 51세까지 살다가 자연사하셨어요.”
“자연…. 자연, 뭣, 뭐?”
“살 만큼 살다가 늙어서 작고하신 겁니다.”
51살이면 조금 이른 나이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
“그래도 묘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어요. 그렇게 장례를 치러줄 가족과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겠죠.”
“이런…. 어찌 그렇게….”
손자나 손녀라도 찾아드릴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억지로 삼켰다.
지금 베르자인이 그런 것까지 알아볼 여유는 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알아보기엔 능력도 시간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조만간에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또한 선생과의 거래는 애당초 로나디라는 자의 소식을 찾아서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내키지 않아도 냉정하게 정리함이 옳다.
그래도,
“뒷골목 전쟁이 끝나면 아드님의 가족들 소식이라도 찾아드릴게요.”
그러자 선생은 웃어보였다.
“마음만 고맙게 받겠네. …기특하군.”
그 웃음은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표정에 괴리감이 없고 호흡은 안정적이다.
“듣자 하니 로나디 녀석은 잘 살다가 갔다는 모양이니 그 아랫것들도 녀석을 닮아 잘 살고 있겠지…. 이 죽다 만 늙은이는 아들의 소식이라도 확인했으면 그만인 것이야. 정말 고맙네. 정말, 정말로.”
“…다른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아들의 소식을 확인했으니 더 원하는 건 없나.
잿빛세계에서 살아가며 더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없나.
내 질문의 의도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편안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만하면 내 삶에 미련은 없네. 어서 이 세계를 벗어나 아들놈을 만나고 싶을 뿐이지.”
그렇게 대답하고는 나지막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잠시 혼자 있고 싶구나.”
그래서 나는 꾸벅 인사를 드리고 오두막 밖으로 나와서 한동안 거미 악귀의 사체를 구경했다.
살아남은 두 거미 악귀가 다른 거미 악귀들의 사체를 파먹으며 몸집을 키우고 영력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맛있냐?”
우적우적! 오도독…!
거미 악귀들의 숫자를 어떻게 다시 늘릴까 고민하던 중, 오두막 내부에서 어떤 빛이 보였던 것 같다.
그 빛을 목도한 다음엔 내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의심은 했다.
상상은 했다.
가정도 해봤다.
그럴 수도 있다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보다 그건 아닌 것 같았으니까. 나랑 비슷한 사람 같으니까. 눈도 빨갛고 속에서 나와는 다른 종류의 악령을 기르고 있다 하였으니까. 고유한 능력인 목줄까지 있었으니까. 나랑 비슷하게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런데 아들이 51년을 살고 죽었으니 잿빛세계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두 세계의 시간 흐름이나 인과율이 좀 이상해도 대충은 이곳에서 51년 안팎일 것 같았다. 물론 51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세월이, 자신의 이름까지 잊어버릴 정도인가 재차 의구심은 생겼었다.
그래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믿었다. 나 자신을 설득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진실을 말하기를 망설였다. 좀 전에 아들에 대한 진실을 선생에게 말하기를 망설였다. 괜히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혹여나 이걸 말했다가 이렇게 되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선생님!”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오두막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섰다. 좀 전까지 나와 선생이 앉아있던 의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네가 성불시켰어.」
선생은 이물이었다.